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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8

        

         – 교차 사격(Crossfire; 서로 떨어진 위치에 자리잡은 여러 화기가 특정 목표물을 향해 화선이 교차하도록 배치함) 태세 유지! 움직임이 현란해도 사선을 흐트러트리지 말아라! 장갑이 두껍지 않아서 대충 맞춰도 저지력 자체는 충분해!! –

         

         “……잘도 멋대로 떠드는구나.”

         

         투다닷—!

         

         살랑거리던 사냥개 꼬리 촉수가 코너 끝자락을 살짝 넘자, 거의 시간차도 없이 발사된 총알 무리가 벽면과 바닥에 탄흔을 남기며 튕겨 나갔다.

         

         엑사테크 측은 지금 대다수의 엔지니어들을 시설 복구에 투입, 내 영역 확장을 방해하는데 집중하고 있어서 전문 오퍼레이터들이 조종하는 소규모 드로이드 분대만 계속 돌아가며 레오나르의 전진을 방해하는 형국이기에.

         

         저항이 거세다면 다른 통로로 우회하면 그만이고, 수비 라인이 단단하다면 사냥개들의 압도적인 기동력으로 측면이던 후면이던 도려내서 포위 섬멸하면 된다.

         

         여태까지도 그런 식으로 전진해왔고 그 과정에서 병력은 조금 격렬하게 소모될지언정 안전성에 문제는 없었다.

         

         다만 이번에는 정공법 외의 돌파는 불가능했으니 바로 병력이 외딴 길목을 점거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슬슬 이쪽 침입자의 신원과 목적을 특정하는데 성공했는지, 저들이 우리가 확인해야 할 첫번째 캡슐 보관고를 뒤에 낀 채로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감히.”

         

         본인의 연구 성과를 폄훼한 게 거슬렸나? 아니면 목표했던 고지가 바로 코앞일 수도 있는데 억지로 발이 묶인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 걸까?

         

         일단 둘 중 어느 쪽인지는 정확히 알기 어려웠으나 여차하면 직접 몸을 대고 돌진하기라도 할 것처럼 초조하게 개인 화기를 만지작거리는 레오나르를 만류했다.

         

         “그… 네트워크 봉쇄는 잘 유지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진정할래?”

         

         “그건 잘 알고 있다. 그대의 솜씨를 의심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시간이 마냥 우리편은 아니지 않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틀어막는 게 영 느낌이 안 좋아… 설령 신체 표본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원칙적으로 주요 보호 시설 목록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 텐데.”

         

         아무리 침입자들을 견제한다는 명확한 목적이 있다지만.

         

         대구경 포탑들이 신나게 건물벽을 두들기고, 전파망에서는 치열한 주도권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진짜 중요한 핵심 시설이라면 모를까, 이런 냉동 창고 비스무리한 곳에 드로이드를 할애할 정신머리가 남아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게 그의 견해였다.

         

         그리고 이에 대해선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한다.

         

         뭔가 특수 작전스러운 일을 하는 만큼 분위기도 챙기고 몰입율도 올릴 겸 평소와 같은 도서관이 아니라 경찰 시절에 틀어박혀 있던 작전실을 본떠 구현한 심상 세계가 숫제 초 단위로 일렁이며 공격당하고 있는데.

         

         정말 이런 상황 속에서 여타 실물 가치가 높은 자산이나 자료를 보호하기보다 시신 안치소를 우선한다고? 레오나르의 말마따나 낌새가 좋지 않았다.

         

         위잉…! 투쾅!!

         

         배터리 온존을 위해 사냥개의 등 위에 얹혀져 있던 드론 한두 기가 럭키 샷이나 사선 교란을 일으켜보고자 갑자기 동체를 내밀었지만 순식간에 격추당했다.

         

         조종하는 건 어디까지나 인간이라 해도, 과연 기계 대 기계의 교전답게 양쪽 모두 공격 명중률이나 정확도가 장난 아니었다.

         스치기만 해도 치명타라는 게 이런 경우를 말하는 건가, 씁.

         

         “…어쩔 수 없군.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강제로 뚫는다. 우선은 내 몸의 위치부터 확인해야겠어.”

         

         “진짜로…?”

         

         “물론. 정 필요하다면 대동한 장비들을 전부 폐품 처리해서라도. 틀어박혀 있는 시건방진 오퍼레이터 녀석들 모가지를 일일이 꺾어서라도…!”

         

         으르렁거리며 그냥 정면에서 깨부수겠다는 선언을 한 레오나르가 꿇고 있던 무릎을 일으키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복도 가득, 대기 상태로 엎드려 있던 사냥개들도 다시 발톱을 뽑고 질주할 준비를 끝마쳤고.

         

         그래도 명색이 전 직장 동료들이라고. 그들을 죽이는 거에 심리적 저항이 있었는지, 이후에 이루어질 전후 처리를 고려해 메가코프 직원들을 무차별 살해한다는 거에 부담을 느꼈는지는 몰라도.

         

         질풍처럼 돌파는 하되 쓸데없는 소모전은 피한다는 게 원래 방침이었지만… 노골적으로 이쪽의 선택지를 제한한 적들의 동태에 수상쩍음을 감지한 그가 더는 예의 지키며 -뭐, 여태까지 입힌 손해만 따져도 사실 정중함과는 좀 거리가 멀기는 한데- 사정 봐주지 않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아니, 그럴싸하게 말했어도 결국 자기 몸이 곧 고강도 합금으로 이루어진 사실 하나 믿고 철갑탄 포화 속으로 돌진하겠다는 거 아냐?

         

         그러다 재수없게 뇌가 담긴 시험관이 깨지기라도 하면 진짜 죽어요 이 아저씨가.

         

         “신념 없이 사느니 그냥 죽는 게 나을 때도 있는 법이지.”

         

         “개인적인 집착을 신념이라고 과대 포장하는 건 괜찮고…?”

         

         “…크흠!”

         

         다소 무례한 지적에도 기대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는 내게 뭐라하기는 어려웠는지 그가 어색한 헛기침으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에휴… 그래, 뭐 이미 창고 구석 사무실에 앉아서 엑사테크의 방어 체계를 뺏는 스킬도 보여줬겠다 몇 가지 더 노력해준다고 세상이 뒤집어지겠어.

         

         촉이 나쁜 만큼 목표 달성을 100퍼센트 장담하는 건 솔직히 무리지만, 적어도 레오나르가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게는 도와야지.

         

         “……저기, 레오나르? 내가 시설 전체를 장악한 건 아니래서 그런데, 저것들이 일반적으로 관절을 움직이거나 방아쇠를 당기거나 하는 것 이상의 신호 교환을 하게 유도할 수 있겠어? 가능하다면 해결해볼게.”

         

         “과연, 알겠다.”

         

         공유 받는 사냥개의 시야로는 특정하기가 조금 힘들다.

         하지만 오퍼레이터와 드로이드 사이의 관계는 곧 사용자와 단말기의 그것과 다름이 없으니. 찰나의 순간이라 해도, 유별나게 눈에 띄는 정보 교류가 이루어진다면 그걸 캐치해낼 수단은 존재한다.

         

         여기서는 아니고… 더 깊은 공간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풍덩……!

         

         

         “프핫…!?”

         

         물방울 대신 코드가, 공기 대신 뜻을 이루지 못한 문자 나열이 허공으로 비산했다.

         분명 호흡을 멈추고 잠수하는 감각으로 머리부터 바닥을 향해 다이빙했거늘, 참았던 숨을 토해낼 때는 왜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키는 느낌이 들까?

         

         의식을 전기 신호로 치환한다는 이 어비스 다이브도 잘 생각해보면 일반적인 논리로는 설명하는 게 불가능한 무시무시한 테크닉이 틀림없다. 함부로 쓰는 걸 지양하긴 해야 하는데… 지금은 이만한 게 없으니까 어쩔 수 없다.

         

         몸에 달라붙으려는 데이터 뭉치들을 네트워크의 심해로 떠내려 보내고 양팔을 들어서 허공을 움켜쥐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향한다.

         

         바라보는 건 어지럽게 뒤얽힌 네오 헤이븐의 무수한 거미줄 네트워크.

         찾아내는 건 거기에 얽히지 않은, 작전 개시 직전에 내가 무자비하게 도려낸 엑사테크 연구소 전파망.

         

         마치 어린애가 재미삼아 지구본을 톡 쳐서 회전시키는 것처럼. 내가 주먹을 잡아당기자 이 세계의 천체天體가 따라서 움직이며 손님 앞에 바라던 메뉴를 대령해왔다.

         

         으득.

         의식을 더 깊게 전자 세계에 매몰시키는 걸로 잠시나마 여유가 생겼던 머리에 지끈거리는 감각이 되돌아왔다. 아까보다 훨씬 더 강하게.

         

         “으아으…!!”

         

         모든 저장장치에는 용량 제한이 있다. 기술이 얼마나 발전한다 한들 물리적 제약을 초월할 수는 없는 법이니, 마찬가지로 내 능력도 뇌의 한계에 묶여 있는 셈이리라.

         

         거 어디 임플란트 말고 불법으로 지능 스탯 좀 더 찍을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은 없나!? 진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용 메모리가 딱 두 배만 되면 제 운신의 폭이 훨씬 넓어질 것 같은데요!

         

         손안에 안착한 연구소 망이라는 이름의 소우주(Microcosm)를 낱낱이 분해한다.

         수도 전체에 비하면 하나의 세포에 불과했던 점에서 눈부신 폭발-확장-이 일어나며 얼핏 무한에 가까운 정보 줄기들을 뿜어냈지만… 당황하지 않는다.

         

         “좋다. 항복하겠다. 부디 정중하게 대접해 주길 바라지.”

         – 이런 씹, 이제 와서 그게 무슨!? –

         

         어렴풋이 시야 한구석에 띄워 놓은 공유 화면에, 겁대가리를 상실한 것 마냥 태연하게 투항하는 연기를 일삼고 있는 레오나르와 존나게 당황한 적 병력들의 모습이 비쳤다.

         

         ……상대를 저렇게까지 엿을 맥이라고 주문한 적은 없지만 뭐 상관없겠네.

         일반적인 드로이드 조작과는 다른 긴박한 통신, 주체를 특정할 수 있는 목소리를 내고 상부에 보고하느라 발생한 전기 신호를 찾아내는 게 목표였으니 이래주면 딱 알맞긴 하다.

         

         사냥감을 찾는 매가 한창 들판을 내려다보고 있는 도중에 함부로 움직이는 건 그냥 나 잡아먹어 줍쇼~ 하는 것과 똑같지 않나?

         

         응? 아니라고? 아님 말고. 그렇지만 뜻은 달라도 바쁘게 움직이는 우리 일행을 그동안 꾸준히 괴롭힌 건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그거, 전부 이리 내놓고 꺼져.’

         

         

         푸욱—!!

         

         전파망이라는 이름의 피막을 뚫고, 활발하게 신호를 뿜어내던 정보 주체를 내 손아귀가 움켜쥔다.

         무엇이 닥쳐오는지 모르고 펄떡거리는 반항을 돌려주는 게 흡사 낚시바늘에 잡혀 올라온 물고기나… 맥동하는 심장을 붙잡은 것 같았다.

         

         아, 잠깐만. 그렇게 생각하니까 좀 많이 징그러운데 으.

         

         “…….”

         

         요란하게 저질러 놓고 뒤늦게 이런 말을 하기는 웃긴데 사실 나는 내가 정확히 뭘 붙잡았는지 모른다.

         

         드로이드를 조종하던 사용자. 즉, 오퍼레이터를 완전히 무력화하겠다는 일념으로 전자 세계를 헤집어 놓긴 했지만 사소한 행동 하나조차 코드로 변환되는 이 심해에서의 파괴 행위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적의 총구가 레오나르 경의 뇌수조가 있는 가슴팍에 향하는 걸 보고 사고를 멈췄다.

         깊게 따지는 걸 그만두었다는 소리다. 이게 다 안전한 장소에서 깨작거리고 있으니 드는 헛생각에 불과한 것 같아서.

         

         배 부르고 등 따시면 다른 마음이 피어나는 게 사람이라고. 적에게 베풀 자비는 없는 법일진대 우위를 차지한 상황이면 꼭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탈이다.

         

         콰지직!

         

         손에 힘을 주자 허망할 정도로 쉽게 작은 알맹이가 바스러졌다.

         안타까운 사고로. 조종사가 부재하자마자 허물어지려는 실 끊어진 드로이드 분대의 통제권이 바다 속으로 잠기기 전에 얼른 낚아채서 이어받았다.

         

         그리고 급하게 명령을 내려 취한 자세는… 왠지 받들어 총.

         

         아니, 이게 속에 있는 게 나라는 걸 밝혀야 하는데. 소름 끼치는 감각을 피해 급하게 어비스 다이브를 해제한 걸로도 모자라 갑자기 드로이드 수십 마리 어치의 부하가 동시에 걸리니까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어서… 우웁!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경이롭군. 이런 게 가능한 줄 안다면 본사도 기계화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고민할 수도 있겠어.”

         

         “………지금 말 시키지 마. 진짜 토할 것 같으니까.”

         

         낯부끄러울 정도의 극찬과는 별개로.

         눈치껏 무력화가 끝난 걸 확인하자마자 움직인 레오나르가 보관고 문을 따고 진입했다.

         

         출입 패널에 접속 단자를 연결한 지 10초도 채 지나기 전에 잠금을 열어버리는 걸 보면 이 인간도 표준치를 아득히 벗어난 해커임은 분명하다.

         

         쓰읍, 그냥 드로이드 통제권을 다 던져줄까? 아직까지 꽤 평온한 걸 보면 오히려 나보다는 여유가 있어 보이는데.

         

         어쨌거나 이걸로 난관 하나는 넘었다.

         이 보관고에 몸이 있다면 적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들고 빠져나가면 그대로 끝, 다른 곳에 있다 쳐도 안에 있는 컴퓨터로 조회하면 위치를 알 수 있다 했으니 최단 경로로 돌파하면 된다.

         

         혼란을 수습하고 싶어도 내가 꽉 쥐고 있는 포탑들의 훌륭한 위험도를 고려하면 이쪽에 쓸 신경이 많이 줄었어야 정상인데….

         

         하지만 그건, 문제가 발생하면 그걸 근본적으로 제거하려 드는 기업의 생리를 너무 무시한.

         안일한 판단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반성이 들었다.

         

         “…아나스타샤. 나도 조력할 테니, 시설 장악에 좀 더 집중해줄 수 있겠나? 그 년이 손을 썼는지 공식적으로는 내 몸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관리 시스템이 응답하는군.”

         

         “어… 무리하면 해 줄 수는 있는데. 혹시 폐기장 창고 쪽에 안전 확보용으로 띄워 놨던 감시 드론, 네가 회수했어?”

         

         “…? 설마 그럴 리가.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보나?”

         

         그야 방금 막 연결이 끊어지고 화면이 암전 됐으니까? ……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분노의 백도어(물리).

    잠수하고 나왔더니 포위 당한 허당 아나스타샤 선생. 그녀는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언제나 재밌게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주인공은 어떨지 몰라도, 저는 머리가 아파지면 댓글을 몰아 읽으면서 힘을 얻습니다.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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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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