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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8

     면검부.

     죄 지은 자, 지브롤터의 검을 사들이고 형의 집행을 유예받으리라.

     ‘정말 많이 팔렸지.’

     미래, 매국노 그레이가 가장 많이 팔아치운 물건 중 하나다.

     ‘그냥 검인데.’

     실제 물건은 오직 검 한 자루.

     ‘검에다가 적당한 글귀 새겨넣었을 뿐인데, 하루에도 십수 자루씩 팔려나갔어.’

     

     그 검에 ‘집행유예’라는 문구를 멋드러지게 박아넣은 뒤, 무릎 꿇은 죄인의 어깨와 머리에 각각 검을 올리며 기사 서임을 하듯 주문을 읊는다. 

     -다시 또 죄를 짓는다면, 지브롤터의 검이 네놈을 찾아갈 것이다.

     라고.

     -한 번은 죄를 지을 수 있다. 다시 또 그 죄를 짓는다면, 그 때는 인간이 아닌 짐승으로 대할 뿐. 짐승은 죽인다. 이상.

     노스트럼 왕국이 멸망한 이후.

     대륙이 제국으로 통일되었으나, 워낙 노스트럼의 덩치가 큰 상태로 합병되는 바람에 구 왕국과 제국은 여러 방향으로 트러블이 일어났다.

     문명수준의 차이.

     제국은 야만의 시대에 살고 있는 왕국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왕국은 고작 마도공학을 가지고 깝쭉거리는 제국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브롤터 덕분에 여태까지 버틴 주제에.

     지브롤터 아니었으면 왕국 넘어오지도 못했던 주제에.

     서로가 그런 생각을 가슴 깊은 곳에 가지고 있었기에, 왕국민과 제국민은 서로 만날 때마다 사건 사고를 일으켰다.

     -차라리 왕국민들이 전부 사망하거나 그랬다면 어땠을까.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었다.

     -그냥 저 야만인들 전부 청소해버리고, 우리가 그 땅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

     그랬다면 왕국 땅 전체가 피로 물들기야 했겠지만, 사람이 비어버린 땅을 제국인들이 마음껏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황제는 걱정했다.

     모처럼 왕국을 손쉽게 멸망시키고 ‘합스베르크 통일 제국’을 만들어 초대황제가 되었는데, 기껏 합병하는데 성공한 노스트럼에서 국가단위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는 걸 경계했다.

     어떻게 하지, 라는 걱정보다는 귀찮음과 짜증이라고 해야 할까.

     

     예술작품을 만들어 멋드러지게 미술관에 전시를 해뒀는데, 그 예술품에 테러를 하겠다고 하는 놈들이 미술관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으면 신경이 쓰이는 것과 같은 이치.

     평화의 시대를 열었는데, 정작 자기 대에서 바로 그 평화가 몇 년 가지 않고 깨져버리는 걸 극도로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분란을 조장하는 방탕한 자들은 모조리 죽여라.

     그래서 황제는 철저하게 사람들을 잡아들였다.

     -구 왕국, 제국 가릴 것 없다. 내 아래에 모든 백성은 평등하다.

     2등 시민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에도 잡아들였고, 노스트럼에서 2등 시민을 상대로 트러블을 야기하는 1등 시민-제국민들도 잡아들였다.

     주로 잡히는 경우는 여행을 온 제국민이 왕국인을 ‘야만스럽다’라고 모욕을 하고, 그에 열받은 왕국민이 제국민을 향해 결투를 하겠다고 날뛰면서 주먹이나 무기를 휘둘러 상해를 입히는 경우.

     둘 다 잡혀들어갔다.

     각 영지의 감옥에는 씩씩거리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넘쳐났다.

     그러나 마냥 감옥에 처박아둔 채로 놔둘 수는 없는 노릇.

     -꺼내주시오! 내가 여행을 하러 온 거지, 이런 더러운 곳에서 감옥체험을 하러 온 줄 아시오?!

     왕국을 구경하다가 죄를 지어 감옥에 들어간 제국민은 대부분 자산가들이었다.

     -내가 사진 찍으러 왔지, 지나가는 놈에게 얼굴 맞으려고 온 줄 아시오?!

     왕국으로의 길이 열리자, 500년 동안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노스트럼의 땅을 자신의 발로 직접 가보고자 했던 이들이었다.

     -돌려보내주시오! 귀국하자마자 바로 납품 대금을 넣지 않으면, 우리 회사는 파산한단 말이오!! 소, 솔직히 그 자가 죽은 것도 내 잘못은 아니잖소! 달려드는데, 총을 쏠 수밖에!

     그런 자들이 구 왕국 사람과 다툼이 일어났다거나, 재산이나 집기가 파괴되었다거나, 심한 경우에는 사람을 죽인다거나 하는 일이 다소 자주 발생했다.

     -권총을 쏜 건 내 잘못이 아니오! 놈이 나보고 ‘쏴 봐!’라고 했고, 그래서 쐈단 말이오!

     원인을 따지고 보면 ‘쌍방과실’이라는 형태가 많기는 했지만, 결국 그들을 수습하고 책임지는 건 매국노 변경백과 노스트럼령 총독 뿐.

     -도, 돈이라면 얼마든지 주겠소!

     -얼마든지?

     -그, 그렇소! 성의를 보일테니, 제발…!

     그래서 만들었다.

     면검부.

     죄를 지었지만 5~10년 정도 형 집행을 유예하며, 그 동안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간다면 형 집행을 미뤄주겠다고.

     황제는 나에게 사형에 대한 집행권을 줬고, 나는 그 집행권을 활용함에 있어 여러 가지로 자유로운 선택권이 있었다.

     베어죽여도 좋고.

     쏴죽여도 좋고.

     죽이기 애매하거나 아까운 그런 자가 있다면, 적당히 보석 같은 걸 내는 걸로 용서해주는 것도 좋다.

     그래서 팔았다.

     -저, 정말 이걸 사면 5년 동안은 사형을 유예해주겠다는 것이오?

     -그렇다.

     -사, 사겠소! 

     

     시간을.

     기회를.

     -5년 동안 노스트럼에는 발도 들이지 않을테니, 부디 살려주시오!!

     형의 집행을 미룰 수 있는, 죽음이 다가오는 시간이 연장될 수 있는 상징을.

     그 기간 동안 죄를 짓지 않으면 다시 나의 앞으로 다가와, 사형 집행은 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대신 그냥은 안 되고, 당연히 그에 대한 ‘성의’를 보여줘야만 면검부를 내어줬다.

     검 한 자루 만드는데 드는 돈이 얼마나 되겠는가.

     심지어 휘두르기 위한 검도 아니고, 그저 예식용 검 중에서도 어디 장식해둘 검도 아니다.

     그렇기에 제작비도 간단했고, 그저 죄수를 향해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것만으로도 그 죄수가 5년 정도 벌어들일 돈이 무수히 많이 들어왔다.

     물론.

     -형, 나 면검부 한 3개만….

     -오빠. 면검부로 파는 검 있잖아, 미리 사놓고 죄 지으면 그걸로 퉁치면 돼?

     -…또 나를 실망시키는 구나, 동생들아.

     면검부 팔아서 사들이는 돈이 정작 누아르와 레타르가 면검부를 사들이는 일이 잦아지게 되어 결과적으로는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였지만, 두 사람이 하루에도 몇 자루씩 면검부를 사들이려고 할 정도로 막대한 지출을 채워나간 만큼 엄청난 수익을 내기도 했다.

     돈으로 사람도 살 수 있는 세상.

     적어도 피해자의 용서는 살 수 없다고 하더라도, 사형의 집행에 대한 판결 및 죽음에 대한 유예는 어떻게 돈으로 살 수 있다.

     돈이 없다?

     그렇다면 뭐,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해결하지 못하면 죽는 거고.

     여기까지는 회귀 전, 매국노 그레이의 방식.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면검부로 사하는 죄는 오로지 하나에 한정되어 있을뿐.

     지브롤터를 향해 검을 든 죄.

     단지, 그것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수많은 영지에서 검을 사들이게 되겠지만.

     

     * * *

     “그러니까 네 말은, 그냥 검의 형태만 한 거에다가 ‘불문에 부친다’라는 문구를 새겨넣은 걸 팔겠다는 거네?”

     “그렇죠.”

     “…….”

     면검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들은 바토리 소장은 진지한 자세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당장 돈으로 들어오지는 않겠네.”

     “있다고 소문을 내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죠. 혹시나 당장은 사지 않겠다고 강짜를 부리는 이들도 바르셀 후작가가 망하면 바로 사들이게 될 거 아닙니까.”

     “그 때 되면 비싸게 팔아야 하지 않을까?”

     “당연하죠. 수요가 높아지면 물건가도 오르는 게 상식. 내전 중에 살 때랑 내전 끝나고 살 때랑 가격이 같아서야 되겠습니까?”

     “그렇지. 면검부를 지금 산다는 건 지브롤터 가문이 이길 수도 있다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으니까.”

     우리가 이기기 전에 면검부를 산다?

     우리를 믿어준 것에 대한 신뢰의 보답이며, 시류를 읽을 줄 아는 정확한 눈을 가지고 있는 판단력에 대한 칭찬이다.

     “몇 자루 필요해?”

     “왕국 귀족 가문의 수만큼.”

     “그러면…최소한 사흘 정도는 필요하겠는데. 한 가문에 한 자루씩 들어간다고 생각한다면.”

     “사흘이면 충분합니까?”

     “그럼. …아니, 사실 농담이야. 하루면 충분해.”

     

     사흘이라는 시간 때문에 놀라서 바라봤는데, 바토리 소장은 얌전히 두 손을 들며 항복하는 자세를 취했다.

     “너무 순진해서 무슨 말을 못하겠네. 잘 들어, 그레이 지브롤터. 연구원을 상대로 할 때는 시간을 넉넉하게 주면 안 돼. 특히 연구원 스스로 시간을 정하게끔 하는 거라면.”

     “하지만 바토리 소장은 그런 나태한 연구원이 아니잖습니까?”

     “나는 그렇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그러지 말라는 거야. 알겠어?”

     “알겠습니다. 그러면 면검부, 어떻게 찍어내면 되겠습니까?”

     “간단하지? 만드는 게 아니라, 시중에 나와있는 걸 가져다가 도장 바르면 끝이니까.”

     “…호.”

     제법, 구미가 당기는 아이디어다.

     “파내는 게 아니라 바른다? 양각…아니, 무슨 도료라도 있는 겁니까?”

     “그냥 페인트 바르면 끝 아니야? 벗겨질 걸 걱정한다면, 염료 바르고 위에다가 왁스칠하거나 니스 바르면 끝날 것 같은데.”

     “확실히. 일부러 벗겨내려고 하는 변태가 있는 게 아니라면…아니, 안 됩니다. 지브롤터에서 파는 건데, 그런 싸구려 잡철처럼 보이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아…. 퀄리티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거지? 흐음, 꼭 검이어야 해? 나무 같은 걸로 하면 안 되나?”

     “노스트럼 국민들을 너무 무시하는 군요. 그런 거 생기면 바로 위조품이 나올 겁니다.”

     

     면검부를 조잡하게 만들면 금방 위조품이 나올 것이다.

     “지브롤터 가문에서 명단을 관리하고 직접 인증도 찍을텐데, 위조품이 나온다는 거야?”

     “우리를 향해 쓰는 게 아니라, 면검부를 샀다며 들고다니면서 다른 이들에게 사기를 치는 이들이 생길 거라는 말입니다.”

     지브롤터의 축제에서도 위조화폐가 돌아다니기도 한 곳인데, 설마 면검부라고 위조하지 않을까.

     실제로 그랬다.

     매국노 그레이로부터 면검부를 샀다면서, 자기는 제국으로 가서 몇 년 숨 죽이고 올 테니 이걸 맡긴다면서 왕국민들에게서 사기를 치고 다니던 이들도 있었다.

     내가 다 잡아들여서 쏴죽였지만.

     

     “흐음….”

     “혹시 판매가 걱정된다면….”

     “걱정되지는 않아. 싫어도 사야할 걸? 바르셀 후작가 친척인 귀족가에서도 면검부를 사들일 거야.”

     바토리는 손을 날처럼 세워 자기 목을 슥 긋는 시늉을 했다.

     “안 사면 지브롤터의 적이 되는 건데, 어떻게 안 살 수 있겠어?”

     “그겁니다.”

     아군 아니면 적.

     중립은 없다.

     면검부를 안 사면 바르셀 후작가의 동맹으로서, 여전히 우리와 전쟁을 치를 각오가 된 자들이라는 모종의 협박이다.

     “좋아. 검신에 산성 물질을 뿌려서 문구 부분만큼 녹아내리도록 하거나 뭐 방법은 생각해볼 테니까, 그건 나중으로 미뤄두자고.”

     “면검부를 미뤄두고 할 일이 있습니까?”

     “응, 있어. 이게 제일 중요한 거지. 빠르게 전쟁을 끝내는 거.”

     바토리 소장이 바깥을 엄지로 가리켰다.

     “황제 폐하께서 네 얼굴 보고 사과하러 오고 싶으시다는데, 전쟁이 빨리 끝나지 않으면 폐하께서 직접 오시지도 못하시잖아. 안 그래?”

     “…….”

     “내가 괜히 왔겠니? 다 그러려고 온 거지.”

     “…….”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데.

     “전쟁이 장기화되기라도 한다면 황제 폐하께서 애달픈 나머지 여기로 달려오시기라도 한다는 겁니까?”

     “모르지? 왕국 내전에 개입할 생각은 없었지만,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놔둘 수 없는 자애로운 군주가 되어서 나타나실지도. 이 내전을 끝내러 왔다, 막 그러시면서.”

     “……대충, 언제쯤?”

     “한 달?”

     “인내심이 한 달 밖에 안 되는 겁니까?”

     “한 달이면 많이 참았지. 이번에 빈정 상해서 그레이 지브롤터가 자기 후계자가 되지 않겠다고 막 그러면 황제 기분이 어떻겠어?”

     “……하.”

     정말이지.

     “좋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전쟁을 빨리 끝내러 간다는 겁니까?”

     “면검부로 얻을 예산까지 포함한다면, 이 정도 예산은 써도 되겠다 싶어서.”

     바토리 소장이 주먹을 움켜쥔 다음, 앞으로 쭉 뻗었다.

     “정면타격.”

     “그러니까, 그 정면타격은….”

     “바이크 말고, 좀 더 확실하게.”

     바토리 소장이 씩 웃으며, 주먹을 마치 무언가가 ‘뛰어넘는’ 것처럼 움직였다.

     “지브롤터 기사단 있잖아. 바이크에 태울 필요 없이, 마도자동선 하나에 전부 다 탄 다음 적진을 향해 그대로 달리는 건 어때?”

     “……그냥 달리면 적의 마법에 열차처럼 불타버릴 겁니다.”

     “흐흐흐흐.”

     바토리 소장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소리보다 빠르다면 어떨까.”

     “……예?”

     “때려박는 거야. 정면으로. 현재 풍석엔진이 낼 수 있는 최대 출력으로.”

     “…….”

     “후작성을 향해.”

     이 여자.

     “안전은 생각 안 하십니까?”

     “안에 마스터랑 상급기사들 태우면 문제 없지 않아?”

     “때려박고 나면 마도자동선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망가지겠지. 하지만, 적진 한 복판에 떨어진다는 임무는 클리어했잖아?”

     엄지를 척 들며 씩 웃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미친 생각이군요. 풍석엔진을 달아서 마도자동선이 열차보다 더 빠르게 땅을 달리게 한 다음, 적이 반응하지 못하는 속도로 적진에 침투한다?”

     “그렇지.”

     “그 안에는 그 출력을 사람의 몸으로 감당할 수 있는 상급 기사와 마스터를 심어둔다?”

     “어때?”

     바토리 소장의 눈이 반짝인다.

     “미친 생각이라니까요.”

     미친 생각이지만.

     “당장, 하죠.”

     가능하다.

     가능하다는 건, 불가능하지 않다는 뜻.

     * * *

     잠시 뒤.

     “그러니까…기사단을 배에 싣고 브레이크 없이 후작성에 때려박는다고?”

     “예.”

     “그렇군.”

     나는 아버지에게 바토리 소장과 논의한 바를 바탕으로 작전의 초안을 제출했다.

     “통과.”

     승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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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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