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18


    ​
    ​
    세상은 리안을 무시했다.
    ​
    ​
    증오하지도 애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무시했다.
    ​
    ​
    그는 신이 선택한 ‘성자’였지만, 어떠한 이유로 신이 소멸해 버렸기에 존재해선 안 되는 버그나 에러 취급받았다.
    ​
    ​
    세상에 거부당한 리안은 살기 위해 소망하고, 소원하고, 빌었다.
    ​
    ​
    ‘세상에 녹아들어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아가게 해주세요.’
    ​
    ​
    그렇게 탄생한 권능은 온갖 혐오와 무관심에서 살아남기 위해 세상에 ‘적응’하고자 노력했다.
    ​
    ​
    그 덕분에 리안은 괴이들로 인해 인류가 멸종해가는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고, 세상이 완전히 멸망하는 와중에도 -… 개그 신의 시선을 끌어 살아남을 수 있었다.
    ​
    ​
    리안에게 ‘적응’의 권능은 심장이나 폐처럼 너무나 당연하고 필수적인 힘이었다.
    ​
    ​
    그 힘을 가장 절실하게 소원하고 원하던 과거의 리안들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애정을 끌어안은 채 미소 지었다.
    ​
    ​
    ‘괜찮아.’
    ​
    ​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을 수도 있다. 잔혹한 현실에 절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괜찮았다.
    ​
    ​
    ‘이젠 혼자가 아니니까.’
    ​
    ​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막 변성기가 온 목소리가, 성숙해진 목소리가 뒤섞여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리안은 알아차렸다.
    ​
    ​
    ‘외로웠구나.’
    ​
    ​
    그저 외로워서, 혼자만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것만 같은 제 삶이 너무 외로워서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은 것이다. 
    ​
    ​
    과거의 아이리스가 마음에 문을 닫은 것처럼, 노아가 잔혹한 현실에서 시선을 돌린 것처럼, 애교로 노예의 비참한 현실을 외면했던 제스처럼, 아득한 힘 앞에 굴복하여 어두운 방 안에서 울기만 했던 엘렌시아처럼.
    ​
    ​
    수많은 이들에게 손을 내밀었던 건 그저 원작 때문이 아니라 -… 외로워 눈물을 흘리던 과거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
    ​
    그런 그의 구원 손길은 돌고 돌아 외롭다는 말조차 못 한 채 그저 괜찮다고 소리치는 과거의 그를 끌어안았다.
    ​
    ​
    자신을 지켜주는 노아의 온기와 언제나 곁을 지켜주는 제스의 애정, 끝없는 사랑을 속삭이는 아이리스의 숨결이 쏟아지자 벅찬 감정과 함께 진실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
    ​
    ‘괜찮지 않았어, 혼자라서 외로웠어.’
    ​
    ​
    누군가에게 꺼내놓으면 천벌이라도 받을 것 같았던 진심이 쏟아져나온다. 그의 외로움을 고통을 아득한 온기가 감싸 안았다.
    ​
    ​
    안온한 온기 속에서 리안은 피투성이가 된 제 심장을 향해 재차 속삭였다.
    ​
    ​
    “이젠 괜찮아.”
    ​
    ​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니까.
    ​
    ​
    새의 알처럼 리안을 보호하던 단단한 ‘권능’이 부서져 내라기 시작했다.
    ​
    ​
    ***
    ​
    ​
    쩌적.
    ​
    ​
    개그의 신이 불어넣은 힘 덕분에 겨우 제 모습을 찾았던 리안의 몸이 전보다 더 심하게 갈라지기 시작했다.
    ​
    ​
    ‘리안’과 ‘적응의 권능’은 두 개의 나무가 겹친 채 자라난 것처럼 뒤섞인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권능이 시들어가니 자연스럽게 권능과 한 몸처럼 달라붙어 있던 리안의 몸도 함께 시들어갔다.
    ​
    ​
    “곤란하네.”
    ​
    ​
    이 상태에선 그녀가 힘을 불어넣어도 별 소용이 없었다. 도리어 영혼이 깨져버릴 수도 있었다. 그녀가 장난스럽게 미소 지으며 “어쩌지?”라고 중얼거리는 순간.
    ​
    ​
    쩌저적,챙캉! 와장창!
    ​
    ​
    끝이 안 보이는 새하얀 공간 허공에 실금이 가더니, 와장창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진 유리잔처럼 공간 일부가 깨져버렸다. 벌어진 틈 사이로 기괴한 존재가 나타났다.
    ​
    ​
    [ 찾..았다…크르륵! ]
    ​
    ​
    아이, 어른, 노인 등. 온갖 목소리가 뒤섞인 듯한 불쾌한 목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졌다. 틈에서 흘러들어온 바람이 거칠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흩트렸다.
    ​
    ​
    그녀는 미동 없는 표정으로 흐트러진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
    ​
    콰직,콰드득!
    ​
    ​
    틈 사이로 튀어나온 몬스터의 발톱 같기도 하고, 날개 같기도 한 무언가가 허공에 생긴 틈의 끝을 붙잡아 벌렸다. 유리가 발에 밟히는 듯한 소리와 함께 공간이 깨져나갔다.
    ​
    ​
    어느 정도 공간이 벌어지자 한눈에 다 담기지 않을 만큼 거대한 존재가 하얀 공간 안으로 몸을 우겨넣기 시작했다.
    ​
    ​
    “이야… 생각보다 더 잘 섞였네?”
    ​
    ​
    그녀는 신기하게 생긴 동물을 관람하는 것처럼 감탄 섞인 표정을 지은 채 가볍게 손뼉을 쳤다. 그러자 외신 -.. 정확히는 마신과 다크 판타지 신이 뒤섞여 탄생한 괴상한 존재가 제격을 드러냈다. 
    ​
    ​
    그녀는 태연한 표정으로 리안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툭 두드렸다. 보이지 않는 힘이 바스러져 가는 몸을 보호했다.
    ​
    ​
    [ 가,각,감히 나를,이 꼴로 그그극, 만들어? ]
    ​
    ​
    인간이 직접 들었다면 모든 구멍에서 피를 토해내며 죽을 정도로 끔찍한 목소리가 새하얀 공간을 채웠다.
    ​
    ​
    개그 신의 권능과 그녀조차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적응’의 권능이 입을 벌리고 있는 리안의 정신 속을 파고들었던 두 신은 워낙 커다란 격을 가지고 있어 잡아먹히진 않았지만 끔찍하게 뒤섞이고 말았다.
    ​
    ​
    “본인들이 직접 기어들어 간 게 잘못 아니야? 남을 해칠 생각을 했다면 자신도 다칠 수 있다는 걸 각오해야지.”
    ​
    ​
    그리 말한 개그 신은 씩 만족스럽게 미소 지으며 엄지와 검지를 펼쳐 턱에 척 올렸다.
    ​
    ​
    “방금 대사… 진짜 멋졌다.”
    ​
    ​
    그녀가 자신에게 취해 위엄 따위 개 간식으로 던져준 것 같은 말을 중얼거리자, 괴이한 존재는 분노하여 막대한 힘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
    ​
    [ 죽,구긋..어라. ]
    ​
    ​
    두 신의 힘이 합쳐져 발동된 ‘신언’과 함께, 태양이 눈앞에 나타나기라도 한 것처럼 거대한 힘이 폭음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
    ​
    귀가 멀어버릴 것 같은 소음 속에서.
    ​
    ​
    따악.
    ​
    ​
    가볍게 손을 튕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스슷.
    ​
    ​
    그와 함께 거대한 힘과 아득한 격, 쏟아져 들어오던 붉은 빛의 신언이 먼지처럼 사라져버렸다.
    ​
    ​
    [ 이게..무슨? ]
    ​
    ​
    그녀는 상대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검지를 들어 올려 이리 오라는 것처럼 까딱거렸다.
    ​
    ​
    푸시시식!
    ​
    ​
    마치 거대한 풍선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한눈에 담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존재가 힘없는 소리를 내며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
    ​
    구멍 난 풍선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니던 존재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야구공만큼 크기가 작아진 채 그녀의 손에 붙잡혀 있었다.
    ​
    ​
    “저번에도 말했잖아. 뭔가 일이 쉽게 풀리는 것 같을 땐 상황을 잘 살피라고.”
    ​
    ​
    그녀는 축 늘어진 존재를 들어 올려 시선을 맞춘 채 싱그럽게 웃었다.
    ​
    ​
    “함정일 확률이 매우 ~ 높으니까.”
    [ 끼이잇?! ]
    ​
    ​
    저 말은 다크 판타지 신이 개그 신이 파놓은 함정에 빠졌을 때 들었던 말과 똑같았다. (리안을 다크 판타지라는 뷔페에 보내기 위해 개그 신이 파놓았던 함정.)
    ​
    ​
    작아진 신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빠르게 눈을 굴렸다. 호기롭게 부수며 들어온 차원의 구멍은 어느새 사라진 상태였다.
    ​
    ​
    쉽게 부서지던 입구 자체가 그들을 잡기 위한 미끼였던 것이다.
    ​
    ​
    “마침 필요했는데 잘됐다.”
    ​
    ​
    그녀는 상큼하게 웃으며 먹기 좋게 작아진 신을 리안에게 먹이기 시작했다. 신이 살기 위해 버둥거렸지만 어림도 없었다.
    ​
    ​
    작아진 신을 쥔 손이 투명한 벽을 통과하듯 리안의 가슴팍 가운데를 파고들었다. ‘적응’의 권능을 통해 자리 잡은 ‘폭식’의 권능이 게걸스럽게 야들야들한 신을 꿀꺽 삼켜버렸다.
    ​
    ​
    스스슷!
    ​
    ​
    메마른 나무처럼 쩍쩍 갈라졌던 리안의 영혼 사이로 신의 격이 빠르게 채워졌다. 그와 함께 금이 갔던 몸도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
    ​
    “아아 -… 리안이 사랑 때문에 인간에 머물고 싶어 할 땐 앞으로 어쩌나 했는데.”
    ​
    ​
    리안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시선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제힘을 아낌없이 소모하고, 권능까지 뜯어내려 했다. 그 끝이 죽음이더라도 그는 인간인 채 죽고 싶었던 것이다.
    ​
    ​
    리안을 자신과 동격의 신으로 만들고자 했던 개그 신의 계획이 망했다는 말과 같았다. 그런 개그 신을 구원한 한 줄기 빛은 리안이 신이 되었을 때 먹이고자 했던 보양식(외신들)이었다.
    ​
    ​
    쩍쩍 갈라져 위태로운 영혼에 신의 격이 녹아들어, 리안은 강제로 신이 되어버렸다. 
    ​
    ​
    “….”
    ​
    ​
    과거의 그녀가 강제로 신의 자리에 앉았던 것처럼, 리안 또한 강제로 신격을 가지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 ‘진짜 가족’이 탄생한다는 사실에 환희를 느꼈고, 동시에 마음 깊숙한 곳에서 타오르는 불쾌감을 느꼈다.
    ​
    ​
    파앗 -..
    ​
    ​
    그녀가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리안의 몸에 시각적인 변화가 진행되었다. 등 뒤로 새하얀 깃털로 이루어진 세 쌍의 날개가 찬란하게 뻗어 나왔다.
    ​
    ​
    첫 번째 날개 쌍은 어깨 근처에서 우아하게 펼쳐졌고, 두 번째 날개 쌍은 등 중간 부분에서 뻗어 나왔으며, 마지막 날개 쌍은 허리 아래쪽에서 뻗어 나왔다. 별들이 날개 끝에 매달려 춤을 추는 것처럼 은빛 광채가 흘러나왔다.
    ​
    ​
    그의 머리 위에는 찬란하게 빛나는 헤일로가 떠 있었다. 헤일로는 원형을 중심으로 길쭉한 선들이 우아하게 뻗어 나온 형태였다. 자세히 살펴보면 은하수의 일부분을 잘라낸 것처럼 황홀한 빛의 흐름이 보였다.
    ​
    ​
    헤일로에서 흘러나온 빛은 리안의 새하얀 머리카락을 은은하게 밝혀, 그를 더욱 신성한 존재로 보이게 했고 눈을 떼기 힘들게 했다. 
    ​
    ​
    드디어 그녀의 가족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
    ​
    “리안.”
    ​
    ​
    그녀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걸자, 리안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천천히 눈이 떠졌다. 태양의 한 조각을 담은 듯 찬란하면서도 맑은 빛이 눈동자 속에서 일렁거렸다. 그 어떤 보석보다도 황홀하게 빛나는 눈동자가 그녀의 눈과 마주쳤다.
    ​
    ​
    “…”
    ​
    ​
    그 속에는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았다. 개그 신의 희미한 미소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새롭게 탄생한 신은 더 이상 그녀가 알던 ‘리안’이 아니었다.
    ​
    ​
    그 사실을 자각하자 그녀는 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이젠 잊었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상처가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
    ​
    ‘…원망을 받더라도 리안, 네가 내 가족이 되길 원했는데.’
    ​
    ​
    ​
   
다음화 보기

세상은 리안을 무시했다.

증오하지도 애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무시했다.

그는 신이 선택한 ‘성자’였지만, 어떠한 이유로 신이 소멸해 버렸기에 존재해선 안 되는 버그나 에러 취급받았다.

세상에 거부당한 리안은 살기 위해 소망하고, 소원하고, 빌었다.

‘세상에 녹아들어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아가게 해주세요.’

그렇게 탄생한 권능은 온갖 혐오와 무관심에서 살아남기 위해 세상에 ‘적응’하고자 노력했다.

그 덕분에 리안은 괴이들로 인해 인류가 멸종해가는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고, 세상이 완전히 멸망하는 와중에도 -… 개그 신의 시선을 끌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리안에게 ‘적응’의 권능은 심장이나 폐처럼 너무나 당연하고 필수적인 힘이었다.

그 힘을 가장 절실하게 소원하고 원하던 과거의 리안들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애정을 끌어안은 채 미소 지었다.

‘괜찮아.’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을 수도 있다. 잔혹한 현실에 절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괜찮았다.

‘이젠 혼자가 아니니까.’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막 변성기가 온 목소리가, 성숙해진 목소리가 뒤섞여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리안은 알아차렸다.

‘외로웠구나.’

그저 외로워서, 혼자만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것만 같은 제 삶이 너무 외로워서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은 것이다.

과거의 아이리스가 마음에 문을 닫은 것처럼, 노아가 잔혹한 현실에서 시선을 돌린 것처럼, 애교로 노예의 비참한 현실을 외면했던 제스처럼, 아득한 힘 앞에 굴복하여 어두운 방 안에서 울기만 했던 엘렌시아처럼.

수많은 이들에게 손을 내밀었던 건 그저 원작 때문이 아니라 -… 외로워 눈물을 흘리던 과거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그의 구원 손길은 돌고 돌아 외롭다는 말조차 못 한 채 그저 괜찮다고 소리치는 과거의 그를 끌어안았다.

자신을 지켜주는 노아의 온기와 언제나 곁을 지켜주는 제스의 애정, 끝없는 사랑을 속삭이는 아이리스의 숨결이 쏟아지자 벅찬 감정과 함께 진실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괜찮지 않았어, 혼자라서 외로웠어.’

누군가에게 꺼내놓으면 천벌이라도 받을 것 같았던 진심이 쏟아져나온다. 그의 외로움을 고통을 아득한 온기가 감싸 안았다.

안온한 온기 속에서 리안은 피투성이가 된 제 심장을 향해 재차 속삭였다.

“이젠 괜찮아.”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니까.

새의 알처럼 리안을 보호하던 단단한 ‘권능’이 부서져 내라기 시작했다.

***

쩌적.

개그의 신이 불어넣은 힘 덕분에 겨우 제 모습을 찾았던 리안의 몸이 전보다 더 심하게 갈라지기 시작했다.

‘리안’과 ‘적응의 권능’은 두 개의 나무가 겹친 채 자라난 것처럼 뒤섞인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권능이 시들어가니 자연스럽게 권능과 한 몸처럼 달라붙어 있던 리안의 몸도 함께 시들어갔다.

“곤란하네.”

이 상태에선 그녀가 힘을 불어넣어도 별 소용이 없었다. 도리어 영혼이 깨져버릴 수도 있었다. 그녀가 장난스럽게 미소 지으며 “어쩌지?”라고 중얼거리는 순간.

쩌저적,챙캉! 와장창!

끝이 안 보이는 새하얀 공간 허공에 실금이 가더니, 와장창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진 유리잔처럼 공간 일부가 깨져버렸다. 벌어진 틈 사이로 기괴한 존재가 나타났다.

[ 찾..았다…크르륵! ]

아이, 어른, 노인 등. 온갖 목소리가 뒤섞인 듯한 불쾌한 목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졌다. 틈에서 흘러들어온 바람이 거칠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흩트렸다.

그녀는 미동 없는 표정으로 흐트러진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콰직,콰드득!

틈 사이로 튀어나온 몬스터의 발톱 같기도 하고, 날개 같기도 한 무언가가 허공에 생긴 틈의 끝을 붙잡아 벌렸다. 유리가 발에 밟히는 듯한 소리와 함께 공간이 깨져나갔다.

어느 정도 공간이 벌어지자 한눈에 다 담기지 않을 만큼 거대한 존재가 하얀 공간 안으로 몸을 우겨넣기 시작했다.

“이야… 생각보다 더 잘 섞였네?”

그녀는 신기하게 생긴 동물을 관람하는 것처럼 감탄 섞인 표정을 지은 채 가볍게 손뼉을 쳤다. 그러자 외신 -.. 정확히는 마신과 다크 판타지 신이 뒤섞여 탄생한 괴상한 존재가 제격을 드러냈다.

그녀는 태연한 표정으로 리안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툭 두드렸다. 보이지 않는 힘이 바스러져 가는 몸을 보호했다.

[ 가,각,감히 나를,이 꼴로 그그극, 만들어? ]

인간이 직접 들었다면 모든 구멍에서 피를 토해내며 죽을 정도로 끔찍한 목소리가 새하얀 공간을 채웠다.

개그 신의 권능과 그녀조차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적응’의 권능이 입을 벌리고 있는 리안의 정신 속을 파고들었던 두 신은 워낙 커다란 격을 가지고 있어 잡아먹히진 않았지만 끔찍하게 뒤섞이고 말았다.

“본인들이 직접 기어들어 간 게 잘못 아니야? 남을 해칠 생각을 했다면 자신도 다칠 수 있다는 걸 각오해야지.”

그리 말한 개그 신은 씩 만족스럽게 미소 지으며 엄지와 검지를 펼쳐 턱에 척 올렸다.

“방금 대사… 진짜 멋졌다.”

그녀가 자신에게 취해 위엄 따위 개 간식으로 던져준 것 같은 말을 중얼거리자, 괴이한 존재는 분노하여 막대한 힘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 죽,구긋..어라. ]

두 신의 힘이 합쳐져 발동된 ‘신언’과 함께, 태양이 눈앞에 나타나기라도 한 것처럼 거대한 힘이 폭음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귀가 멀어버릴 것 같은 소음 속에서.

따악.

가볍게 손을 튕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슷.

그와 함께 거대한 힘과 아득한 격, 쏟아져 들어오던 붉은 빛의 신언이 먼지처럼 사라져버렸다.

[ 이게..무슨? ]

그녀는 상대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검지를 들어 올려 이리 오라는 것처럼 까딱거렸다.

푸시시식!

마치 거대한 풍선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한눈에 담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존재가 힘없는 소리를 내며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구멍 난 풍선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니던 존재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야구공만큼 크기가 작아진 채 그녀의 손에 붙잡혀 있었다.

“저번에도 말했잖아. 뭔가 일이 쉽게 풀리는 것 같을 땐 상황을 잘 살피라고.”

그녀는 축 늘어진 존재를 들어 올려 시선을 맞춘 채 싱그럽게 웃었다.

“함정일 확률이 매우 ~ 높으니까.”

[ 끼이잇?! ]

저 말은 다크 판타지 신이 개그 신이 파놓은 함정에 빠졌을 때 들었던 말과 똑같았다. (리안을 다크 판타지라는 뷔페에 보내기 위해 개그 신이 파놓았던 함정.)

작아진 신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빠르게 눈을 굴렸다. 호기롭게 부수며 들어온 차원의 구멍은 어느새 사라진 상태였다.

쉽게 부서지던 입구 자체가 그들을 잡기 위한 미끼였던 것이다.

“마침 필요했는데 잘됐다.”

그녀는 상큼하게 웃으며 먹기 좋게 작아진 신을 리안에게 먹이기 시작했다. 신이 살기 위해 버둥거렸지만 어림도 없었다.

작아진 신을 쥔 손이 투명한 벽을 통과하듯 리안의 가슴팍 가운데를 파고들었다. ‘적응’의 권능을 통해 자리 잡은 ‘폭식’의 권능이 게걸스럽게 야들야들한 신을 꿀꺽 삼켜버렸다.

스스슷!

메마른 나무처럼 쩍쩍 갈라졌던 리안의 영혼 사이로 신의 격이 빠르게 채워졌다. 그와 함께 금이 갔던 몸도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아아 -… 리안이 사랑 때문에 인간에 머물고 싶어 할 땐 앞으로 어쩌나 했는데.”

리안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시선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제힘을 아낌없이 소모하고, 권능까지 뜯어내려 했다. 그 끝이 죽음이더라도 그는 인간인 채 죽고 싶었던 것이다.

리안을 자신과 동격의 신으로 만들고자 했던 개그 신의 계획이 망했다는 말과 같았다. 그런 개그 신을 구원한 한 줄기 빛은 리안이 신이 되었을 때 먹이고자 했던 보양식(외신들)이었다.

쩍쩍 갈라져 위태로운 영혼에 신의 격이 녹아들어, 리안은 강제로 신이 되어버렸다.

“….”

과거의 그녀가 강제로 신의 자리에 앉았던 것처럼, 리안 또한 강제로 신격을 가지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 ‘진짜 가족’이 탄생한다는 사실에 환희를 느꼈고, 동시에 마음 깊숙한 곳에서 타오르는 불쾌감을 느꼈다.

파앗 -..

그녀가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리안의 몸에 시각적인 변화가 진행되었다. 등 뒤로 새하얀 깃털로 이루어진 세 쌍의 날개가 찬란하게 뻗어 나왔다.

첫 번째 날개 쌍은 어깨 근처에서 우아하게 펼쳐졌고, 두 번째 날개 쌍은 등 중간 부분에서 뻗어 나왔으며, 마지막 날개 쌍은 허리 아래쪽에서 뻗어 나왔다. 별들이 날개 끝에 매달려 춤을 추는 것처럼 은빛 광채가 흘러나왔다.

그의 머리 위에는 찬란하게 빛나는 헤일로가 떠 있었다. 헤일로는 원형을 중심으로 길쭉한 선들이 우아하게 뻗어 나온 형태였다. 자세히 살펴보면 은하수의 일부분을 잘라낸 것처럼 황홀한 빛의 흐름이 보였다.

헤일로에서 흘러나온 빛은 리안의 새하얀 머리카락을 은은하게 밝혀, 그를 더욱 신성한 존재로 보이게 했고 눈을 떼기 힘들게 했다.

드디어 그녀의 가족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리안.”

그녀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걸자, 리안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천천히 눈이 떠졌다. 태양의 한 조각을 담은 듯 찬란하면서도 맑은 빛이 눈동자 속에서 일렁거렸다. 그 어떤 보석보다도 황홀하게 빛나는 눈동자가 그녀의 눈과 마주쳤다.

“…”

그 속에는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았다. 개그 신의 희미한 미소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새롭게 탄생한 신은 더 이상 그녀가 알던 ‘리안’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자각하자 그녀는 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이젠 잊었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상처가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원망을 받더라도 리안, 네가 내 가족이 되길 원했는데.’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