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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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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슬 놈들이 허수아비를 눈치챈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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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보다 눈치가 없는 놈들이었군.”

       ​

       “아무리 눈이 좋다고 한들 어둠을 대낮처럼 꿰뚫어 볼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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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지휘관의 눈이 어깨에 화살을 맞아 실려 가는 병사에게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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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낙 허수아비가 많이 깔려 있었기에 사상자는 저기 실려 가는 병사 하나가 끝이었다. 병사들은 대부분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벽 뒤에 숨어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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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려 숨어있는 병사의 어깨를 맞춘 것에 감탄이 나올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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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상치 못한 부상자가 나오긴 했지만, 이제 곧입니다.”

       ​

       맹주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

       마침내 반격의 시간이 다가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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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주. 순찰대를 부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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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겠습니다. 장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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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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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출정이로군요.”

       ​

       나는 뻐근한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몸을 풀었다.

       ​

       마스터씩이나 되면 이런 과정 필요 없이 오러를 한 번 순환시키기만 하면 충분하지만, 그렇다고 하지 말라는 법은 없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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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분 삼아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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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신이 횡행하는 시대에 이 정도면 나름 양호한 편에 속했다.

       ​

       “이 노구를 끌고 또 고생 좀 해야겠구나.”

       ​

       “이 정도는 고생 축에도 안 든다 이놈아. 에잉…”

       ​

       등에 멘 커다란 도처럼 담력도 커다란 팽 장로가 혀를 차며 말을 내뱉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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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번에 앓는 소리 내던 모습은 어디 가고 허세를 부리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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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지, 허세라고 하긴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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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주님. 지금 바로 출발하면 되겠습니까?”

       ​

       “그렇게 하게. 오랜 시간을 숨어 있어야 하니 벽곡단과 물도 미리 챙겨놨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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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더럽게 맛없는 벽곡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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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라리 굶는 게 나을 것 같은 맛의 벽곡단이지만, 그래도 살려면 먹어야지. 

       ​

       아무리 맛없더라도 반쯤 상한 귀리로 만드는 오트밀보다는 맛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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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맹주 옆에 있던 수행원이 건네주는 식량을 챙겨 품속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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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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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 성히 돌아오게나. 그리고…흠흠, 몸조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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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겠습니다. 선배님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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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배들과 목경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곧장 땅굴의 입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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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굴은 얼추 3명이 나란히 서서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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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는 것만큼 편한 게 없었다. 1명 투입하면 한세월이지만, 1000명을 투입하면 순식간에 작업을 끝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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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예상치 못한 호재도 있었다.

       ​

       무작정 한 방향을 향해 파다 보니 자연적인 동굴과 연결되어버렸으니까. 동굴의 끝은 요새에 살짝 맞닿아 있는 야산의 중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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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꽤 눈에 띄는 자리지만, 동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땅굴의 존재를 눈치채기는 힘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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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굴 입구 앞에서 작전 회의를 하고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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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성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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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공이 그리 말씀하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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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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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동굴에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아 벽곡단을 한 알 입안에 집어넣고 열심히 씹어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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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빵 보다는 덜 딱딱하고 호두 껍질보다는 튼튼한 벽곡단을 씹어먹고 동굴 벽에 등을 기대니, 동굴 입구로 살며시 들어오는 노을빛에 시선이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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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놈들이 활을 쏘는 위치는 이 산 북쪽으로 내려가면 나오는 평야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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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야라면 매복할 곳이 마땅치 않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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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스럽게도 근처에 풀숲과 바위가 없지 않으니, 그곳에 숨어있다 놈들을 덮치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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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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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공, 그러면 조를 나누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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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조로 나눌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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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황보 선배랑 단 선배는 몸이 완치되지 않았으니 같이 붙여두기는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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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당히 남궁 장로님이랑 팽 장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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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 선배랑 황보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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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선배랑 단 선배 이렇게 붙이면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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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경이는 나랑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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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심이 좀 심하게 섞인 것 같은 구성이지만, 아마 반발할 사람은 없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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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조가 짜이든 문제없다는 게 선배들의 자세였으니. 나는 그저 적당히 나누고 성과만 내면 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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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곧장 적당히 짠 조로 인원을 나누고 움직이기로 합의한 뒤에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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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는 다치지 않고 돌아갔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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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허. 너무 걱정하지 말게! 내 손이 하나여도 그놈들 때려잡는 건 일도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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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이구, 여전히 목소리만 크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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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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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선배, 황보 선배. 목소리를 낮추시지요. 메아리가 적들에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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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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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동굴이 조용해졌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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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슬 시간이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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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능하면 빨리 끝내고 돌아갑시다. 포로는…가능하면 좋겠지만, 수틀리면 그냥 목만 가져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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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았네.”

       ​

       결전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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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비장한 얼굴로 동굴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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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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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바람이 얌전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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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을 쏘기 좋은 날씨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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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번을 두른 두 명의 무사가 끄트머리만 살짝 보이는 성벽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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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쪽에 대제국이 있어 강력한 군사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심심한 녀석들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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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더 상대하기 까다로운 놈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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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쪽이든, 우리가 이길 테니 상관없는 일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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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무사는 잡담을 나누며 화살을 꺼내 시위에 매겼다. 오러가 담겨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힘이 담긴 팔이 활시위를 한계까지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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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쏘기만 하면 오늘도 그들의 적은 목숨을 잃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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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화살 깃을 잡고 있던 손가락을 펼치기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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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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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의 허리가 순식간에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돌아갔다. 일사불란한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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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즉시 화살을 쏘고는 다음 화살을 시위에 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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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갑작스럽게 쏜 화살이 목표물을 맞힐 수 있을 리가. 두 맘루크는 수풀 속에서 튀어나온 금발을 보곤 경악하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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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놈이 어떻게 여길! 정찰병들이 철저하게 주변을 감시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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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알 거 없고, 목이나 내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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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은 오러를 가득 싣은 발로 땅을 박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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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난 황소처럼 빠르고 신속한 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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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핏 보면 말에 탄 무사에게 달려드는 정신 나간 행동이었지만, 맘루크들이 충돌의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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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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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맘루크들의 말이 급하게 땅을 박차 윌리엄의 돌진 경로에서 벗어났다. 워낙에 직선으로 움직였기에 가능한 일. 윌리엄은 경로에 있던 바위를 통째로 부숴버린 뒤에야 멈추어 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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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 무식한 건 여전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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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다들 그런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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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고 나발이고 곧 죽을 놈들이 입만 살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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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번쟁이들이 알라흐 아크바르 뭐시기를 외치며 달려드는 걸 질리도록 본 그였기에, 적당한 말로 대충 응수하곤 다시 땅을 박찼다.

       ​

       “목경아!”

       ​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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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대 2.

       ​

       하지만 기병과 땅개의 싸움이었기에 근본적으로는 기병 측이 유리했다. 

       ​

       무인이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속력을 낼 수 있다고 한들, 말보다 빠르지는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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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간적인 속력으로 잠시 말의 속도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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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기에, 맘루크들을 잡으려면 조력자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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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바위를 무너트리는 소리를 듣고 나타날 조력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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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드, 후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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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았다.”

       ​

       둘은 망설임 없이 도주를 택했다. 

       ​

       정면 대결을 하면 윌리엄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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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이 죽으면 정보를 전달할 사람이 없어진다는 것도 문제였다.

       ​

       “목경아, 계속 쫒아라. 가능하면 말은 상처 입히지 말고.”

       ​

       “예. 은공!”

       ​

       달만을 심판 삼아 달리는 죽음의 달리기 시합.

       ​

       윌리엄과 목경은 끊임없이 발을 놀려 두 맘루크를 추적했다. 따라잡을 듯 말 듯 한 미묘한 속도였다.

       ​

       전력을 내면 따라잡을 수야 있겠지만, 방향 조절이 어려워진다. 목경은 어쨌든 윌리엄은 그랬으니, 둘은 자연스럽게 두 무사의 뒤꽁무니를 잡는 구도로 계속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

       하지만 두 사람의 얼굴에는 조급함이 없었다.

       ​

       그도 그럴 게,

       ​

       “이리 오너라!”

       ​

       정면에서 맘루크들을 향해 검강이 날아들었으니까.

       ​

       맘루크들은 급하게 말을 몰아 피하려 했지만, 작정하고 피하지 말라고 쏘아낸 탄검강을 피해내기에는 경지가 부족했다.

       ​

       “으윽…!”

       ​

       두 명의 무사가 말에서 떨어졌다.

       ​

       몸이 반으로 잘려 숨이 끊어진 채였다.

       ​

       윌리엄은 쓰러진 두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재빠르게 말의 고삐를 잡고 놀란 말을 얌전하게 만들었다.

       ​

       “목경아. 놈들 투구 좀 벗겨라. 활도 좀 주고.”

       ​

       “은공? 갑자기 말은 왜…”

       ​

       윌리엄은 얌전해진 말 위에 올라탄 채로 목경을 내려다보았다.

       ​

       “터번 줘. 적진 시찰 좀 하고 올게.”

       ​

       인간이 향수병을 느끼듯이, 말에게도 귀소 본능이 있는 법. 

       ​

       윌리엄은 터번을 뒤집어쓰고 말의 배를 찼다.

       ​

       “네가 머물던 곳으로 가자!”

       ​

       깜짝 놀란 말은 본능적인 공포에 휩싸여 무작정 달려 나갔다.

       ​

       자신이 머물던 곳으로.

       ​

       ———-

       ​

       여긴가.

       ​

       윌리엄은 마침내 찾아낸 진짜 전진기지를 발견하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보아하니 하루 정도만 더 있어도 완성되게 생겼는데.”

       ​

       기지 내부를 휘젓고 다닐 수 있다면 부수고 오는 거야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건 자살행위에 가까웠기에 윌리엄은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

       “가자.”

       ​

       “이히힝…”

       ​

       

       말은 저항했지만 지금 고삐를 잡은 건 어디까지나 윌리엄이었기에, 말은 저항하지 못하고 윌리엄의 인도를 따라 청해성으로 향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5월이 벌써 3분의 1이나…

    시간 너무 빠릅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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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two years of being reincarnated as a medieval knight, he finally realizes that he's been reincarnated into a martial arts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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