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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9

       오전 5시.

       

       반대편 침대에 곤히 잠들어 있는 클라라가 잘 살아는 있는지 확인한 뒤 본격적으로 채비에 나선다.

       

       클라이스는 칫솔을 물고 거울 앞에 섰다. 일주일 전에 받은 세면도구로 이를 닦고 머리도 빗질하자 제법 볼만한 얼굴이 되었다.

       

       이제 로브만 두르면 출근 준비가 끝난다.

       

       눈앞에 놓인 문고리를 심호흡하며 돌리자 펜을 끄적이고 있는 주인님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눈치를 보던 클라이스가 고개를 숙였다.

       

       “조, 좋은 아침입니다. 주인님.”

       “허어.”

       “오늘도 밤을 새우신 건가요?”

       “…그래.”

       

       연구만 잘 마무리 지으면 집으로 돌려보내 주겠다는 약속을 한 이후.

       

       클라이스의 충성심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시키는 일을 군말 없이 또박또박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전까진 입에 붙지도 않았던 ‘주인님’ 호칭을 스스로 말하기도 했다.

       

       오히려 주인님 소리를 들을 때마다 에테르는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일찍 일어났군. 어제 몇 시에 잤지?”

       “새벽 두 시 넘어서요.”

       “그러면, 세 시간?”

       “네. 그 정도…….”

       

       그렇다.

       

       클라이스는 지금 매우 피곤한 상태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 총 수면 시간은 20시간 남짓. 식사 시간이나 씻는 시간은 합쳐서 5시간이 채 안 된다.

       

       그렇다면 나머지 시간은?

       

       전부 연구하는 데 소모했다. 

       

       “그러다 죽겠군.”

       “괜찮아요.”

       

       평범한 인간이라면 버틸 수 없을 정도의 살인적인 스케줄이었지만 클라이스는 전부 소화해내고 있었다.

       

       이 정도는 되어야 클라라를 거두어 준 것에 대한 감사를 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오려는 하품을 참아내며 주인님의 명령을 기다린다.

       

       “조식은?”

       “먹지 않을게요.”

       “그렇게 하면 몸이 못 버틴다.”

       “버틸 수 있어요.”

       

       클라이스는 애써 끼니까지 걸렀다.

       

       “왜지?”

       “…당신도 그랬으니까요.”

       

       자신이 주인이었던 시절. 에테르는 조식은커녕 점심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니는 경우가 허다했으니까.

       

       “주인님이 한때 그러셨으니까, 저도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해요.”

       

       이건 벌이다.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자 스스로 내리는 벌.

       

       솔직히 말해, 죽을 만큼 배고프기는 하다. 그래도 클라이스는 모든 걸 감내하기로 했다. 이렇게라도 해서 과거에 엎질렀던 물을 조금씩 주워 담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클라이스와는 반대로, 에테르는 멀뚱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커피는?”

       “괜찮아요”

       “일하다 졸면 효율이 안 나온다. 무슨 말 하는지 알지?”

       “…….”

       

       클라이스가 침묵하는 사이.

       

       에테르는 인스턴트 커피 가루를 꺼내 종이컵에 쏟았다.

       

       곧 ‘커피포트’라는 물건을 꺼내 물을 끓이기 시작했는데, 불이 아닌 전기적인 성질로 열을 만들어낸다는 점이 신기했다.

       

       원리가 뭘까? 고민하던 사이에 단내 나는 커피가 완성됐다.

       

       두 사람은 각자 종이컵을 들고 테라스로 나갔다.

       

       맞담과 맞커피를 동시에 하던 중 에테르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오늘부턴 제대로 된 초전도체 생산에 들어간다.”

       “저도 본격적인 연구에 참여하는 건가요?”

       “그래.”

       

       에테르가 클라라를 비호해 주겠다고 선언한 날. 그다음 날부터 곧바로 초전도 연구에 참여한 건 아니다.

       

       클라이스는 그때까지만 해도 초전도가 뭔지 몰랐다. 당연히 BCS 이론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런던 방정식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기껏해야 기초적인 수준의 전자기학 지식만 머릿속에 들어있었다.

       

       연구에 써먹으려면 일단 기본을 알려주어야 했다.

       

       에테르는 초전도의 기초 개념부터 시작해서 임계온도와 마이스너 효과, 동위원소 효과, 쿠퍼 페어, 포논, 엑시온, 자기 양자화, 반도체 이론, 조셉슨 접합, 스핀밀도파와 전하밀도파 이론 등등을 가르쳤다.

       

       그때마다 클라이스는 익힌 개념과 공식을 수험생처럼 받아적으며 복습했다.

       

       지금도 그렇다.

       

       클라이스가 복잡한 스핀 이론을 줄줄 읽고 있던 사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에테르는 빈 종이컵에 마력초를 털어넣고는 희미하게 웃었다.

       

       “또 다른 나에겐 감사해야겠군.”

       “네?”

       “아무것도 아니다. 들어가자.”

       

       어쨌든, 어제부로 클라이스의 추가 교육이 모두 끝난 셈이다.

       

       지금부터는 연구 노예로 막 부려먹어도 손색이 없는 것이다.

       

       에테르의 입꼬리가 다시 한번 올라갔다.

       

       

       **

       

       

       목적은 영상 수백 도 이상에서도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초고온 초전도체를 만드는 것.

       

       그러나 사실은 ‘상온’이기만 하더라도 충분한 성과였다.

       

       대부분의 초전도체는 아주 낮은 온도에서나 직류 저항이 사라진다. 옛날에 발견된 초전도 물질들은 절대영도 근처까지 가야 비로소 써먹을 수 있었으니 말 다했다. 그나마 BCS 이론을 따르지 않는 고온 초전도체라고 부르는 것들도 영하 200도 근처에서 동작하는 게 고작이다.

       

       그런데 흑주의 첫 번째 목적은 초전도 마법진을 대륙 전역에 적용하여 전류와 자기장을 컨트롤하는 것이었다.

       

       행성 전역의 온도를 그만큼이나 내리기엔 예산이 부족했다. 

       

       무엇보다 에테르가 만들고 싶은 건 핵겨울이지, 단순한 빙하기가 아니었고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세상 평균 기온인 섭씨 18도 언저리만 되어도 대성공이라 할 수 있었다.

       

       “네가 해야 하는 건 두 가지다.”

       

       에테르는 손가락을 V자로 만들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클라이스에게 맡겨진 일을 두 줄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첫째. 못해도 섭씨 0도 이상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물질을 발견할 것.

       둘째. 해당 물질을 스크롤마도학에 접목할 수 있도록 표준화 과정을 거칠 것.

       

       어느 쪽이든 쉽지 않았다.

       

       “저기, 기한은…….”

       “기한은 3주 주겠다. 그 안에 못 하면, 뭐.”

       

       에테르의 마지막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머릿속이 하얘진다.

       

       3주 안에 상온 초전도체가 될 법한 물질을 만들어 내라는 소리인가?

       

       이제 막 초전도 걸음마를 뗀 클라이스에게는 가혹한 명령이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자신도 에테르에게 비슷한 짓을 한 적이 있었기에 무어라 말하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왜 그러지? 벌써 의욕이 떨어졌나?”

       “아, 아니에요.”

       

       막막하다.

       

       기한이 너무 짧았다. 사실상 불가능할 것 같았다.

       

       클라이스는 에테르만큼 똑똑하진 않았다. 천재의 반열에 든 건 맞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 기준이었다.

       

       대전쟁 시대부터 살아있었다는 마수를 상대로는 지식 격차가 무려 1천 년이나 차이가 난다.

       

       결국 그 차이를 메꾸려면 막대한 노력과 운이 필요하다.

       

       특히 운.

       

       상온 초전도체를 제시간 내에 합성하려면 운이 최대한으로 필요했다.

       

       “…해 볼게요. 아니, 할게요.”

       

       클라이스의 결의와 함께 두 사람의 본격적인 연구생활이 시작되었다.

       

       외부에서 온 마수들이 재료를 가져오면, 클라이스는 그 재료들을 분류하여 박스에 나누어 담는다.

       

       곧 열과 압력을 주어 결정으로 만들고, 액화 질소를 담은 탱크를 가져와 온도를 천천히 낮춘다.

       

       임계온도를 측정하고 기록하는 것이 첫 단계. 일단 이런 식으로 실험 데이터를 쌓고 조금씩 변형을 주어 경과를 관찰한다.

       

       두 고체를 섞어보거나, 화학적 구조를 달리해 보거나, 다른 여러 변수를 조절해 보기도 하였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넘은 오후 1시.

       

       예상은 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손목시계를 확인한 에테르가 플레어 절삭기를 내려놓으며 마력초를 물었다.

       

       “여기서 10분 휴식한다.”

       “피곤하신가요?”

       “……뭐.”

       

       에테르는 노곤한 몸을 소파에 파묻었다.

       

       기계라고는 해도 오랫동안 연구하다 보면 머리에 불이 나는 법이다.

       

       시원한 냉각기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건 없고, 대신 창문을 열어놓고 공기를 쐬면 조금 괜찮아진다.

       

       사실 마왕군이 행성 최북단에 둥지를 튼 것에는 이런 이유도 없었다.

       

       적도 근처는 너무 더우니까.

       

       “뭐 해? 안 쉬고.”

       

       휴식 시간이 되었음에도 클라이스는 쉬지 않았다.

       

       당장 쉬지 못해서 얻는 고통보다는, 마감 기한을 맞추지 못했을 때 다가올 고통이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에테르가 밥 먹자고 제지할 때까지 마석을 만지작거리던 클라이스.

       

       초면인 금안족 시종에게 샌드위치를 받아들고 나서야 겨우 허기를 달랠 수 있었다.

       

       “빨리 먹어야….”

       

       그래도 급박한 건 그대로였다.

       

       클라이스는 삼각 샌드위치를 한 입만으로 절반 가까이 삼켰다.

       

       햄, 치즈, 양상추, 양파, 토마토. 다양한 재료가 들어있었음에도 전부 맛볼 겨를은 없었다. 먹이를 삼키는 뱀처럼 몇 번 씹지도 않고 그대로 꿀꺽 삼켜버린다.

       

       덕분에 식도가 턱, 하고 막히는 감각이 들었다.

       

       컥컥거리는 클라이스. 보다 못한 에테르가 물을 따라주었다.

       

       “천천히 먹어라. 사레들려서 죽을 생각 하지 말고.”

       “하지만…….”

       “하지만 뭐.”

       

       물조차도 공기 마시듯이 단숨에 마셔버리는 클라이스. 그녀는 에테르가 지적할 새도 없이 말을 이었다.

       

       “빨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식사 시간까지 줄이라고는 하지 않았어.”

       “하지만 전 그랬는걸요.”

       “뭐?”

       “기억 안 나시나요?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아, 그제야 에테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황태자에게 팔아먹으려 했던 게 임팩트가 컸기 때문에 노예 시절 식사 몇 번 주지 않은 것 정도는 기억에 남지도 않은 것이다.

       

       “…바보 같은 말이겠지만, 굶은 채로 연구만 하는 게 이렇게나 힘든 일인 줄 몰랐어요.”

       

       클라이스는 샌드위치에 시선을 고정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사실, 드리고 싶은 말이 있는데…….”

       

       못해도 최근 일주일간.

       

       클라라를 거두어 준 에테르를 보며, 마수이면서도 이상하리만치 나에게 잘 대해주는 당신을 보며, 그리고 그런 당신에게 한때 모질게 구했던 나를 되돌아보며.

       

       반드시 꺼내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클라이스는 심호흡했다.

       

       “죄, 죄…….”

       

       태어나서 한 번도 내뱉어 본 적 없었던 단어.

       

       자존심을 챙기느라. 연구에 매진하느라. 애초에 인간관계가 협소했던 탓에.

       

       전혀 내뱉지 않았던, 그리고 못했던 한 마디를.

       

       “죄송합니다….”

       

       말했다.

       

       언젠가, 당신에게 이 한 마디를 전하고 싶었다.

       

       플레어라는 대목표가 사라지고, 마수에게 붙잡혀 살아남을 가능성조차 완전히 박살 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이런 몰골이 된 뒤에야 더럽혀진 자신의 길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당신에게 못되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식사를 제때 챙겨주지 못한 것. 더럽고 냄새나는 축사에서 지내게 한 것. 매일 아침 아카데미 회랑을 쓸게 시킨 것. 생활비로 매일 동화 두 닢만 주던 것. 

       

       노예라고 깔보던 것.

       

       열심히 연구해도 이게 뭐냐고 핀잔만 주던 것.

       

       재능이 있었음에도 손을 잡아주지 않았던 것. 

       

       그리고, 그깟 플레어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내치려고 했던 것까지.

       

       전부.

       

       “정말 미안해요. 용서를 구하지도 않을게요. 그러니까…. 여기서 죽을 때까지 일하게 해 주세요….”

       

       사과하고 싶었다.

       

       클라이스는 나오려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여기서 자신은 울을 자격조차도 없다.

       

       인간과 함께 섞여 살고 싶었던 금안의 소녀가, 결국 자신 때문에 마왕군에 다시금 몸을 담게 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그 때문에 인류를 욕보이고, 이 소녀의 마음에 상처를 남겼으니.

       

       자신 따위가 결코 눈물을 보여선 안 된다.

       

       “…….”

       

       클라이스가 담백하게 의사를 전했음에도 에테르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때마침 휴식하기로 정했던 10분도 지났겠다. 클라이스는 남은 샌드위치를 내려놓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 뒤로 하루가 다 지날 때까지 연구실에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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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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