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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9

       웃기는 이야기다. ‘팬그리폰’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들이 ‘그리폰’이라는 이름에 긴장하다니.

        

       하긴, 사실 그 팬그리폰이라는 이름도 우리가 달고 싶어서 단 것은 아니니까. 엄밀히 따지자면 팬그리폰이라는 이름은 그 혼돈의 시대에 세상을 정복했던, 그리고 그리폰의 왕으로 군림했던 ‘팬그리폰’의 이름이었다.

        

       그나마도 신화 시대적 사람이니 뭐, 만약 내가 살고 있던 현대에 그런 이야기가 있다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건국 신화’정도로만 받아들였을 것이다. 심지어 이 세계에서도 제국을 아니꼽게 보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고.

        

       하지만, 이 세계는 ‘원작대로’ 굴러간다. 그렇다면 그 신화를 ‘그저 신화’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는 것은 멍청한 짓이겠지.

        

       “솔직히, 조금 어이없지 않아?”

        

       내 이야기를 들은 뒤 아직도 풀리지 않은 긴장감을 조금이나마 풀어보려는 듯, 앨리스가 말했다.

        

       “이렇게 ‘본진 앞’에 이런 회복장치를 가져다두는 거 말이야.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저 안쪽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이래서야 바깥쪽에서 침입한 인간들이 마음 놓고 쉬고 오라는 거나 다름없잖아.”

        

       “입구 근처에 있던 수비대를 위한 것은 아닐까요?”

        

       앨리스의 말에 샤를로트가 나름대로 의견을 내놓았다. 긴장을 풀려는 앨리스의 발버둥에 동참하려는 모양이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역시 안쪽에 있는 것이 낫겠네요. 병력을 ‘보충’하는 식으로 쓰는 것이 바람직할 테니까.”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샤를로트를 보고, 다른 이들의 시선도 그 회복 장치를 향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회복 장치는 효과가 있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문 앞에 잔뜩 있던 마물들을 겨우 해치운 우리가 이렇게 멀쩡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으니까.

        

       옷은 여기저기 찢어져서 거지꼴이었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레오는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미아는 거의 쓰러지기 직전까지 가서 비틀거리고 있었고…… 그 모든 상황이 저 회복 장치 하나로 해결되었다.

        

       “어쩌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레나가 턱에 손을 얹은 채 조용히 의견을 내놓았다.

        

       “이 회복 장치가 적도 회복시킨다는 것 때문에 오히려 배제했을지도 모릅니다. 안쪽에 있으면 싸우는 적도 계속 회복되니…… 차라리 바깥쪽에 설치하여 수비 병력이 사용하도록 하다가, 안쪽에서 확실한 병력으로 해결하려고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작 회복 장치는 마물들에게는 소용이 없는 모양이었지만.

        

       “……여기서 우리끼리 이야기를 나누어봐야 답이 안 나오겠네.”

        

       앨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우리 눈앞에 있는 거대한 문을 손으로 만졌다.

        

       로뎅의 ‘지옥의 문’처럼 세밀한 조각이 새겨진 거대한 황동 문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청동 주조물인 지옥의 문과는 다르게 이 문은 황동으로 주조되었다는 것과 안 그래도 꽤 큰 지옥의 문보다도 훨씬 커 보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 조각도 매우 다르겠지. 내가 지옥의 문이 어떻게 생겼는지 명확하게 떠올리지 못하니 그저 ‘이런 느낌이다’라는 인상을 받았을 뿐.

        

       “이거, 우리가 열 수 있을까?”

        

       “잠겨있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왜?”

        

       그러게.

        

       나에게 향한 앨리스의 시선은 평소와는 다소 달랐다.

        

       평소에 내가 앨리스에게 말해주는 정보는 보통 내가 미래를 겪어보고 알려주는 것이었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앨리스가 내 능력에 대해 알고 있으니 알아서 그렇게 생각해주곤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내가 ‘먼저 와봤다’라고 하기에는 너무 이상한 상황이니까.

        

       먼저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도움을 요청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고, 길을 전부 알고 있는 것도 불가능하다. 애초에 열 사람이 뭉쳐 들어왔는데도 여기까지 오는 게 그렇게 힘들었는데, 나 혼자 여기까지 들어와 저 안쪽까지 다 보고 다시 시간을 돌려서 아이들을 전부 이끌고 들어왔다는 소리가 되니까.

        

       앨리스 말고 다른 아이들도 여기까지 오는 내내 이따금 나에게 그런 시선을 보냈지만, 앨리스가 보내는 시선은 사뭇 다른 것이었다.

        

       앨리스의 표정을 조금 더 잘 읽을 수 있게 되었는데도, 지금 앨리스가 느끼는 그 감정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

        

       내가 침묵하자, 앨리스는 더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저 숨을 길게 내쉬었을 뿐.

        

       “뭐, 좋아.”

        

       앨리스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샤를로트 쪽을 보았다.

        

       “그럼…… 준비됐어?”

        

       “예, 사실 아까부터 쭉 준비되어 있었어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샤를로트가 뒤쪽을 돌아보며 말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제일 마지막에 끄덕이긴 했지만, 그리고 다소 어두운 표정이긴 했지만, 소피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여기 오기 전에 미리 말했던 대로 행동하도록 하죠. 물론 무조건 정해진 대로만 움직이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상황은 얼마든 달라질 수 있으니까.”

        

       “뭐, 사실 그리폰이 아니라 드래곤이 있다고 하더라도 작전을 바꿀 시간도 없겠지만.”

        

       앨리스의 그 말에 샤를로트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양쪽 다 날개 달린 짐승인 건 맞으니, 어떻게든 되겠죠.”

        

       누군가 마른 웃음소리를 냈다.

        

       “…….”

        

       그리고 잠깐, 아무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앨리스는 나를 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어차피 아무도 죽지 않을 테니까.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다.

        

       애초에 내가 여기 있는 이유가 그것뿐이니까.

        

       *

        

       “…….”

        

       놀랍다고 해야 할지, 예상대로라고 해야 할지.

        

       상대는 정말로 그리폰이었다.

        

       다만 그냥 그리폰은 아니었다. 아마도 ‘조종하기 쉽게’ 가공된 그리폰이었다.

        

       흰머리수리를 연상하게 하는 머리 부분은 검은 먹물 같은 것을 뒤집어쓰고 있었고, 노란색이어야 했을 눈은 붉게 물들어있었다.

        

       몸쪽에는 듬성듬성 깃털이 빠지고 종양 같은 것이 튀어나와 있는 것이 보여서, 뭐랄까, 그리폰에게 이런 말을 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누가 키우다가 유기시킨 애완동물 같은 모습이었다. 그것도 길에서 어마어마하게 고생한 애완동물.

        

       하지만 그런데도 짐승의 왕이라는 듯한 고고한 자세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채 고개를 치켜들고 붉은 눈으로 우리를 내려다보는 그 모습에는 나도 모르게 경외심을 품었을 정도였다.

        

       다만, 문제는…….

        

       “역시 혼자가 아니었네.”

        

       그러게.

        

       그리폰 근처에는 중무장한 기사가 몇 명이나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내내 사람이라는 것을 본 적이 없었는데.

        

       기사 병력은 저것이 전부인 걸까? 그렇다면 이유가 뭘지.

        

       기사들 모두 얼굴에 투구를 뒤집어쓰고 있었기에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한순간 앨리스, 나, 그리고 샤를로트를 향해 고개가 움직이는 것은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그 직후에는 서로 조금 눈치를 보듯 고개를 돌렸다. 당황하기라도 한 것일까?

        

       나와 앨리스라면 몰라도, 샤를로트가 여기서 죽는다는 건 법국도 바라지 않는 일일 테니까.

        

       게다가 우리가 여기까지 오면서 법국이 기껏 준비한 ‘병력’들도 상당히 없애버렸고. ‘이곳’이 뚫리지 않는다면 다시 만들면 그만이고, 아직도 우리가 가보지 않은 방면에는 득시글거리긴 하겠지만.

        

       “……이 땅의 주인은 벨부르 왕국이라는 것을,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텐데요.”

        

       샤를로트가 입을 열었다.

        

       “설령 이 성당에 법국의 성직자가 와 있다고 하더라도, 이곳이 ‘벨부르 땅’이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 협의가 끝난 사항일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째서 이곳 아래에서 이런 짓을 벌이고 있는 걸까요?”

        

       “…….”

        

       그리폰은 그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다.

        

       기사들 모두 입을 다문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왕녀님.”

        

       대신, 위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인자한 노인의 목소리였다.

        

       “……추기경.”

        

       벨부르의 추기경. 이미 나와는 한 번 본 적이 있는 사이였다.

        

       “황녀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런 자리에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만.”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추기경은 그런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더니, 다시 샤를로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앨리스에게는 관심도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저희가 이런 짓을 벌인 이유에 관해서 물어보셨습니까.”

        

       “그래요. 당신들이 어째서 이런 짓을, 그것도 벨부르의 아래에서 하고 있는 것인지.”

        

       “그렇다면 이유는 단 하나뿐입니다. 평화지요.”

        

       “……평화.”

        

       “그렇습니다. 여신님의 가호 아래에서, 완벽한 세상에서 우리가 누릴 평화. ……오래전 팬그리폰 황가가 짓밟은 ‘완벽한 세상’을, 우리는 여신님의 바람대로 완성해나갈 뿐입니다.”

        

       “그 시절의 세상은 혼돈 그 자체였을 텐데.”

        

       앨리스가 이야기에 끼어들자, 추기경의 시선이 드디어 앨리스에게 향했다.

        

       “세상을 다시 만들어내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완벽하기 위해서는 덜어낼 것을 덜어내야 하니까요.”

        

       허.

        

       그걸 그렇게도 해석하는구나.

        

       하긴, 원래 광신도들이 하는 말은 보통 헛소리가 많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당신에게는 실망했습니다, 소피아.”

        

       추기경의 말에 아이들의 시선이 한순간 소피아에게 향했다.

        

       소피아의 얼굴은 창백했다.

        

       “실비아 황녀님을 제대로 감시하라고 보냈는데, 이렇게 협조하여 여기까지 들어오기까지 하다니요.”

        

       “저를 굳이 감시하려고 했던 것은.”

        

       나는 그 말을 막듯이 말했다.

        

       “그저 저의 능력 때문이었습니까?”

        

       “아.”

        

       추기경은 나의 이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말했다.

        

       “글쎄요. 저희는 당신에 대해서 아직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말도 안 되는 능력을 갖춘 인간이었고, 그다음에는 어쩌면 여신님의 사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했지요.”

        

       “제가 여신의 사자였다면, 지금 당신과 이렇게 마주하고 있을 리가 없을 텐데요.”

        

       “여신님의 생각을 우리가 감히 따를 수는 없지요. 결국에는 여신님의 뜻대로 될 세상입니다. 우리는 그저 그 안에서 그 뜻을 이해하려 노력하며 우리대로 발버둥을 칠 뿐.”

        

       “…….”

        

       음.

        

       어쩌면 법국도 상당히 망가져 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라는 존재 때문에 황제가 더 알 수 없고 의문스러운 존재가 되었듯, 법국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망가져 버렸는지도 모르지.

        

       뭐, 좋아.

        

       의도를 숨기느라 모순되는 대답을 한 것이건, 아니면 정말로 본인들도 그런 혼란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건, 직접 멱살 잡고 물어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미아!”

        

       “네? 아, 네!”

        

       내가 외치자, 미아는 한순간 당황했다가, 곧장 지팡이를 휘둘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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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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