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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9

    햇빛이 은은하게 비치는 새벽, 무릎을 꿇고 한동안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레니에가 눈을 뜬다.

    루크는 그런 그녀의 곁을 지키다 그녀가 고개를 드는 모습을 보며 손을 건넸다.

     

    “기도는 끝났나?”

    “네, 이제 가죠.”

     

    루크는 그런 레니에의 손을 가볍게 잡아당겨 일으켜 세워주며 묻는다.

     

    “헌데 그 기도는 들어도 전혀 모르겠군. 탑의 말은 아닌 듯한데, 그건 어느 지역의 언어지?”

     

    루크는 레니에가 기도를 할 때 사용하는 그 언어에 흥미가 들었다.

     

    ‘백색의 탑’에서 파생된 지혜로 만들어져 인간을 비롯해 모든 종족이 이해하고 대화할 수 있는 공용어인 탑의 언어.

    태어나는 순간부터 하나의 세계로서, 태어나서 처음 내뱉는 옹알이조차 그 자체에 힘과 의지가 동시에 담기는 용의 언어.

    오랜 정령과의 교류와 스스로의 전통으로 계속 발전해 변형된 엘프의 언어.

     

    이 세계에는 그렇게 세가지의 언어가 있지만, 현재 레니에가 하는 그 언어는 도무지 어떤 특징도 다른 언어와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지고 들자면 탑조차 있기 전 아주 오래 전에 사용되던 ‘고대어’가 있지만, 그런 언어들을 사용하는 자들은 이미 마계 침식의 영향으로 모조리 사라지고 말았기에 이 세계엔 저 세가지 언어만 사용되고 있다고 보면 되었다.

     

    하지만 고대어에 대한 지식 역시 가지고 있는 루크가 보아도 현재 레니에가 하는 언어는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는 그런 말이었다.

    그러니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 있나.

     

    “어머, 들으셨나요? 조금 부끄럽네요.”

     

    레니에는 그렇게 말하며 살짝 얼굴을 붉혔다.

    루크는 그런 레니에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대체 어디가 부끄러운 부분이지?”

    그러자 레니에는 허리에 손을 얹고 설명조로 답한다.

    “기도는 이를 테면 귓속말 같은 거에요. 여신님과 함께 귓속말로 대화를 나누는 거죠. 친한 친구와 조용히 나눈 대화를 다른 남성분께 들키면 조금 부끄러워지는 건 당연하죠.”

     

    루크는 레니에의 말에 조금 납득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럼 다른 성직자들의 기도도 그런 느낌인가?”

    “아뇨, 그렇진 않을 거에요. 그분들은 저처럼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받아낼 수 없으니까요.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보다는 그냥 메세지처럼 들리지 않을까요? 여신님과 그런 식으로 대화를 한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요.”

    “흠, 그렇군.”

     

    지닌 신성력에 따라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인가?

    이것은 마나 감응력에 따라 마법을 다루는 방식이 달라지는 마법사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받아들이면 될까.

     

    “그럼 그 언어는, ‘신의 언어’라고 받아들이면 되겠나?”

    “그렇게 되겠죠!”

    “그럼 대체 그 ‘에레’라는 말은 무엇이지? 들어보니 몇 번 반복되어서 나오는 것 같던데.”

    “어떤 말이요?”

    “에레.”

     

    한번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레니에는 몇 번을 되물었다.

    마침내 루크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깨달은 레니에는 볼을 긁으며 멋쩍게 웃으며 답한다.

     

    “아, 하하. 죄송해요. 이루시님께서는 ‘에레’가 그렇게 들리시는 군요. 기도를 하면서 쓸 때와 느낌이 너무 다르게 들리네요. 한번도 이런 적이 없어서…….”

    “아하. 그런 게로군. 그럼 답해주게. 그대가 말하는 ‘에레’가 무엇이지?”

    “그건 꽤 본질에 가까운 말이에요. 그건 ‘여신’님을 부를 때 사용하고, 여신님께서 절 부를 때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죠.”

    “오호.”

     

    ‘신의 언어’를 해석하는 것에 흥미가 생긴 루크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양 쪽에서 서로를 지칭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말이라면 쉽게 번역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그건 ‘친구’라는 말인가?”

     

    루크의 물음에 레니에는 잠시 고민하는 듯 보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마도 여러분께는 그렇게 되겠네요. 그게 가장 말이 되는 것 같아요.”

    “그건 무슨 뜻이지? 정확한 뜻이 아니라는 건가?”

    “신의 말과 단어는 물질계의 말로는 정확히 표현할 길이 없거든요. 조금 더 정확하게 풀어서 설명드리자면, 친구보다는 조금 더 ‘분신 같은 존재’, ‘운명적으로 얽힌 사람’, 아니면 ‘서로가 너무나 닮아서 결론적으로 같은 길을 걷는 이’를 뜻하죠. 음, 이것도 완전히 맞는 설명은 아닌 것 같지만요.”

     

    레니에는 조금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는다.

    한 단어에 담기는 수십 수백가지의 의미, 그 구조에 루크는 무언가 떠올리듯 말했다.

     

    “오호, 그건 ‘정령어’와도 비슷하지 않은가.”

     

    루크의 말에 레니에는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맞아요! 왜냐하면 정령은…….”

     

    —-

     

    계속 깃펜을 놀리던 루크는 문득 손을 멈췄다.

     

    “정령은……. 그 다음에 레니에가 뭐라고 했더라.”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동안 수십, 수백번의 ‘레니에’를 떠올렸을 적에도 ‘에레’와의 연관성을 도무지 떠올릴 수 없었던 것처럼.

     

     

    그것은 마치 의도적으로 지워진 것만 같았다.

     

    단순히 후유증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던 것인가?

    아니면, 이 기억은 아직은 자신에게 이르기 때문에 떠올릴 수 없는 것인가?

     

    그 메일을 보냈다는 제라드의 친구와 만나 대화라도 해보면 어떻게 기억이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결국 루크는 그를 만날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이야기를 쓰기 위해 세상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중이라 지금은 연락조차 잘 되지 않았기에.

     

    솔직히 말하자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신에겐 굉장히 중요한 일이지만, 그에겐 아이와 이야기하는 별 것 아닌 일인 것이니까.

    고작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기 위해 그가 생업을 포기하고 달려와주기를 바랄 수도 없는 노릇.

     

    정말 크게 아쉬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메일 주소 정도는 받을 수 있었다.

    이 쪽으로 연락을 취하면 적어도 이야기는 나눌 수 있게 되겠지.

     

    그렇게 수업이 끝난 후, 점심시간.

    루크는 옆자리에서 책상을 정리하고 있던 시루드를 불렀다.

     

    “저기, 시루드. 할 말이 있다만.”

    “왜.”

    “이따가 학교가 끝나면 ‘회원가입’하는 것 좀 도와주겠느냐, 메일을 좀 보내야 할 곳이 있어서…….”

     

    루크의 말에 시루드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런 건 딱히 내가 아니어도 되잖아, 다른 사람한테 해달라고 해. 직접 해도 되고.”

    “뭐, 뭐라고?”

     

    어쩐지 시루드의 대답과 표정이 조금 싸늘하다.

    그동안 이 아이가 자신에게 이런 반응을 보인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꽤 당황스럽다.

    기분이 좋지 않은 걸까?

     

    “표정이 왜 그러느냐, 뭔가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는 겐가?”

    “아니, 별로.”

    “흐음……. 눈에 힘이 풀려 있는 것 같다만. 정말 어디 아픈 거 아닌가?”

    “신경 쓰지 마, 괜찮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대는 굉장히…….”

     

    마법사 같다.

    심지어 저 빛을 잃은 심연과 같은 눈동자는 그냥 마법사도 아니고 6서클 이상의 고위급 마법사의 평소 눈빛과 비슷하다.

     

    ‘음, 내가 이런 표현을 떠올릴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이럴 때는 제자의 성장에 기뻐해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도무지 기쁘지 않다.

     

    과거, 마법사가 아닌 자들에게 ‘마법사 같다’라는 말은 ‘냉혈한’이라는 말로 쓰였다.

    그런데 실제로 마법사인 시루드에게 마법사 같다는 것은 딱히 욕은 아님에도 왠지 굉장히 부정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항상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던 것은 바로 자신이긴 했지만, 너무나 갑작스러운 변화에 그 아이의 정신이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고민이 있다면 말해주거라. 내가 성심성의껏 도와줄 터이니…….”

    “딱히? 그런 거 없는데. 그냥 내버려 두면 좋겠어, 어차피 우린 별로 친하지도 않잖아.”

    “응……?”

     

    여전한 무표정으로 가방을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시루드의 말에 루크는 꽤나 충격을 받았다.

    예르나도 항상 ‘친구와 친하게 지내’라고 했고, 시루드의 어머니이자 자신의 후원자인 세레나 역시 시루드와 친하게 지내달라며 항상 부탁을 하곤 했다.

    그런데 대체 무엇이 서운했던 것인지, 시루드는 자신과 별로 친하지 않다며 자릴 일어난 것이다.

    루크는 그런 시루드와 동시에 일어나면서 묻는다.

     

    “별로 친하지 않다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말 그대로야. 그럼 난 간다.”

    “잠까…….”

     

    시루드는 그렇게 휑하니 교실에서 벗어났다.

     

    일시적으로 삐쳐서 그런 것이라고 보기엔 감정을 읽어보았을 때 느껴지는 어둠의 깊이가 꽤 된다.

    정말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이라도 당한 것이 아니라면 이 정도의 감정의 골은 쉽게 지지 않을 텐데…….

     

    “내가 대체 뭘 잘못한 게지……?”

     

    떠올려봐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동안 계속 친하게 지내온 기억 밖에 없는데…….

     

    ‘아, 혹시 내가 그때 그 ‘내기’를 이행하지 않아서 화가 난 것인가?’

     

    낚시를 마치면 들어주기로 한 ‘소원’.

    그것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루드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은 그 사건 이후라고 생각되니까.

     

    집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는 역시 ‘소원’이 될 수 없지.

    그렇다면 배신이라고 생각할 법도 하다.

     

    게다가 그 때 시루드는 엄청난 충격을 받아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고…….

    그건 루크가 이 시대의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자극을 생각하지 못해서 벌어진 사태였다.

    그저 커다란 물고기를 낚으면 다 좋아하지 않을까 하고 단순하게 생각한 거지만, 평화로운 일상속에서 쭈욱 성장해온 시루드에게는 ‘목숨의 위협’이 굉장히 크게 다가왔던 것이다.

     

    또 인식이 범위가 달랐던 건가, 이 시대에 많이 적응하고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이건 아무래도 찾아가서 사과를 해야 겠군.’

     

    “루크! 뭘 그렇게 꾸물거리고 있어! 빨리 밥 먹으러 가자! 늦으면 꽤 오래 기다려야 할 지도 몰라!”

    “아, 그래. 얼른 가자꾸나, 메리.”

     

    일단 점심식사는 마치고 나서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금강산도 식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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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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