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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9

    “끄흐으으읍.”

     

    [수술]을 발동해서 능숙하게 바늘로 상처를 봉합해간다. 두꺼운 용인의 피부는 일반 봉합용 바늘로는 파고들 수 없었기에 대신 두꺼운 대형 침을 썼다.

     

    “잠깐, 이게 치료가 맞나? 원래 이렇게 아픈가! 뭔가 이상하군!”

     

    “에헤이, 거 튼튼하신 용족께서 엄살이 심하시네. 제국 사람들은 꿰맬 때 숨소리도 안 내.”

     

    “그, 그게 정말인가?”

     

    구경하던 천둥족들이 킬킬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치료받던 용인이 주먹을 불끈 쥐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처치를 완료하고 툭툭, 용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됐어. 챙겨준 약 다들 먹었지? 전수검사 끝냈으니 언데드 될 걱정도 안 해도 돼. 안심해.”

     

    진료를 마친 나는 사탕을 꺼내 물었다. 용인 대장이 팔짱을 끼고 내 앞에 섰다.

     

    “으음. 아무래도 대륙 최고의 의사라는 말이 허세는 아니었던 모양이군.”

     

    “난 그런 말 안 했는데?”

     

    “저 여자가 그랬다.”

     

    대장이 기슈타를 가리켰다. 어느새 그녀는 용인 마을의 창고를 털어 식량을 축내고 있었다.

     

    “불꽃마수를 건조해 놓은 고기인가! 똑똑하군. 우리 창고에도 쟁여놔야겠어.”

     

    내가 용인대장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천룡의 직계 후손이지. 원래 이 중간계에서 살아?”

     

    “그렇다. 우리는 백색 용군단이다. 어머니께서 대륙을 관장하시도록 돕는 것이 사명이다.”

     

    “아, 용군단.”

     

    흠. 용족 혼혈인 소규모 촌락 정도로 생각했는데 스케일이 훨씬 컸네.

     

    “그럼 당신들은 인간 혼혈이 아니라 진짜 드래곤이야?”

     

    “평소에는 마나를 아끼기 위해 이 모습으로 있을 뿐이다. 어머니께서 허가를 내리시면 마나를 빌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아하.”

     

    이들은 기슈타의 친척이 아니라 선조셨다.

    생각해 보면 여기는 중간계였다. 이들이 인간이 아니라 마물인 게 훨씬 설득력이 있었다.

     

    대빵이 싸우라는 명령을 내리기 전에는 용인의 모습으로 마나를 아끼고 있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너무 아끼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아까는 마왕군 선봉대를 상대로도 애를 먹고 있었으니.

     

    흠… 용군단, 생각보다 약한데.

     

    하지만 이들은 천룡처럼 피부가 흰색이다. 아셀라가 불러서 제도를 습격했던 용군단은 붉은색이었다.

     

    “용군단도 여러 분류가 있어?”

     

    “역시 인간은 무지하군. 대륙의 만물과 원소를 창조한 여섯 관장자의 휘하에 속한 용들은 결코 섞이지 않는다. 기억하라.”

     

    어려운 단어가 많이 들어갔지만 쉽게 말하면 드래곤에도 파벌이 있단 소리였다. 이 세상엔 내가 모르는 뒷설정이 꽤 있는 모양이었다.

     

    “오케이. 그래서, 의심이 풀렸으면 이제 천룡에게 안내해줬으면 하는데.”

     

    “…흠.”

     

    용인 대장이 골똘히 고민에 빠졌다.

    한참 혼자 생각하던 그가 내게 물었다.

     

    “그대는 아까 전장에서, 왜 칼렉고르가 부상을 입자마자 그를 치료했는가?”

     

    나는 별생각 없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걔가 다쳤으니까?”

     

    용인 대장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왜.”

     

    “…알겠다. 따라와라.”

     

    그렇게 말하고 그가 나에게 턱짓했다.

     

    “오, 어머니께 가냐?”

     

    기슈타가 육포를 뜯으며 호다닥 쫓아왔다.

     

     

     

    대장이 우리를 안내해 데려간 곳은 마을 뒷문 바깥, 빙산 골짜기 입구였다.

     

    마을을 통하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게 철저하게 격리된 공간이었다.

     

    “잠깐 기다려라.”

     

    자세히 보니 바닥에 동그란 발판 같은 게 있었다. 대장이 그 위에 올라서니 화아악! 하늘에서 빛기둥이 내리쬐며 그의 동공이 세로로 길게 찢어졌다.

     

    “라스, 저 깨끗한 색을 봐라. 어머니의 마나가 틀림없어!”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는지 기슈타가 격하게 반응했다. 다음 순간.

     

    ―촤악!

    대장의 날개가 커다랗게 펼쳐졌다. 어느새 그는 완연한 드래곤으로 변신해 있었다.

    어떤 원리지. 좀 궁금하네. 마나가 세포분열을 촉진했으려나. 나중에 조사해보고 싶어졌다.

     

    우리에게 눈짓하는 대장. 등에 올라타라는 뜻 같았다.

     

    “와오.”

     

    생전에 드래곤을 다 타보는 날이 오네. 좀 무섭긴 한데 기슈타가 있으니 괜찮겠지.

     

    아니나 다를까 기슈타가 신나서는 뭐라고 말 걸기도 전에 나를 번쩍 들쳐안아 대장 위에 털썩 올라탔다.

     

    펄럭 한 번 날개짓을 했나, 인식하기도 잠시.

     

    ―쐐애애액!!

     

    온몸에 중력가속도가 가해졌다. 순간 피가 머리로 안 가서 눈앞이 새까매졌다. 심장이 멎은 줄만 알았다.

     

    “와하하하! 드래곤도 탑승감이 좋군!”

     

    기슈타의 호탕한 웃음소리. 시야가 돌아왔을 때, 나는 이미 하늘을 날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빙산을 수직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이 시선을 사로잡기도 잠시.

    포옥, 구름 속으로 빠져든다.

     

    물리법칙을 무시한 듯, 자외선이 가득해야 할 구름 위는 오히려 어두컴컴했다. 다른 공간으로 텔레포트라도 한 듯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날개를 펄럭이며 착지하는 대장.

     

    “도착했다.”

     

    대장의 등에서 내려 주변을 살폈다. 재단, 신전 같은 건축물이 우리를 맞이했다.

     

    사방이 캄캄한 와중 한가운데 빛이 내리쬐는 포인트가 보였다.

    대장이 잔뜩 긴장한 태도로 그곳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위대한 분이시여, 무례한 방문을 사과드립니다. 발언을 허가해주시겠나이까.”

     

    쿵, 쿵. 어둠 속에서 커다란 몸집이 걸어 나오는 발소리가 났다.

     

    ―화악!

    한순간에 사방이 환해지며 그녀의 모습이 드러났다.

     

    천룡이었다.

     

    위엄 있게 고개를 치켜든 모습은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그녀가 맞았다.

     

    대장이 한층 머리를 조아리며 내게 말했다.

     

    “뭐 하고 있나, 예의를 갖추어라! 당장…”

     

    ―라스 고트베르크, 금방 찾아왔군.

     

    천룡이 대장의 말을 끊었다. 나는 방긋 미소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잘 지내셨습니까. 건강은 어떠신지요.”

     

    ―어떨 게 있겠는가. 그대의 치료 덕분에 별다른 문제 없이 지내고 있었다.

     

    우리의 스스럼 없는 대화를 들은 대장은 얼이 빠져서 입을 쩍 벌렸다.

     

    “…정말 어머니와 아는 사이였는가. 어머니를 치료했다는 것도 사실이었다고?”

     

    나는 그에게 어깨를 으쓱해서 대답을 대신해주었다.

     

    “반가운 소식이군요. 환자의 사후 관리도 의사의 일 아니겠습니까. 벌써 몇 년이나 지났으니 들러 봐야죠.”

     

    ―고작 몇 년이거늘. 인간의 시간 감각은 빠른 편이군. 고트베르크, 어떤 용건으로 이 불모지를 찾아왔는가.

     

    “다름이 아니라 전에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제가 필요할 때 한 번 도움을 주시겠다고 말입니다.”

     

    ―그랬지. 지상의 역사에 관여하지 않는 게 본래 규칙이지만, 그대에게 진 빚은 내 개인적인 것이니. 무엇을 원하는가. 마족과 싸우는 데 힘을 보태주길 바라는가?

     

    “물론 그래 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도움이 되겠습니다만.”

     

    규칙을 강조하는 걸 보면 천룡에게 할 수 있는 부탁은 철저하게 한 가지로 제한된다고 봐야 한다.

     

    히든엔딩 루트의 나는 천룡을 이용해 마왕군에게 패배하는 엔딩을 삭제했다고 추정된다.

    아마 리셰만으로 대응 못 할 사건이 터져서 [마왕군 승리] 확률이 튀었다든지.

     

    그때까지 연금술을 올리지도 못해 엘릭서의 재료도 파악하지 못했겠지. 소원권이 필요하다고 인지했다면 낭비할 리가 없다.

     

    ‘황실에 남았으니 연금술을 올릴 기회가 적어졌을 게 분명해.’

     

    아셀라에게 붙잡혀서 주치의 일을 하느라 연금술은 뒷전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후국으로 나와 제약공장에서 신약 개발에 관여하고, 중간계로 모험도 나온 지금이 경험치를 올릴 기회는 훨씬 많다.

     

    이 소원권은 엘릭서의 재료를 위해 사용한다.

    이건 확정이다.

     

     

    더 고민할 필요도 없겠다, 나는 천룡에게 용건을 말했다.

     

    “고대룡의 역린을 받고 싶습니다.”

     

    “뭐라고!”

     

    내 요구에 천룡보다 용인 대장이 먼저 펄쩍 뛰었다.

    그의 반응을 이해할 순 있었다. 역린이라고 하면 드래곤에게 평생 한 개밖에 나지 않는 비늘을 가리킨다. 소중한 물건임이 틀림없었다.

     

    “역린을 달라니? 고대룡이라면 어머니를 가리키는 게 아닌가. 네놈, 제정신이냐!”

     

    “반응이 격한 걸 보니 무리한 요구였나 보군요. 힘들겠습니까?”

     

    천룡은 지긋이 눈을 감았다. 그녀가 생각을 마친 후 대답했다.

     

    ―힘들지도 모르겠군.

     

    “그렇습니까.”

     

    아무리 만능 소원권이라도 역린은 약속을 어겨야 할 정도로 중요한 물건인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나 고민이 됐다. 천룡 같은 만물의 관장자는 또 있겠지. 용군단의 수장 하나를 쓰러트리려면 빡세려나.

     

    “잠깐, 사룡도 용군단의 수장 아닌가?”

     

    “사룡이라면 어머니가 쓰러트렸던 전설 속의 용 말이냐? 벌써 몇백 년 전의 일이야. 사체가 남아 있을 리가 없어.”

     

    기슈타가 대답했다. 생각해 보면 시모어가 마셨던 엘릭서의 재료가 그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토벌했던 2대 사룡은 아직 어렸으니 고대룡이라고 보긴 힘들고.

     

    그런데, 천룡이 이어서 의외의 발언을 했다.

     

    ―그대가 힘들 것이란 의미였다, 라스 고트베르크. 본좌의 역린을 건네주는 건 어렵지 않다. 당장에라도 넘겨줄 수 있지.

     

    “어머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나 밖에 없는 역린을 필멸자에게 넘겨주신다니요!”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그가 없었으면 본좌가 이 자리에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어차피 역린 정도야 백 년쯤 있으면 다시 자라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빚을 갚기에는 충분하다.

     

    과연 천룡이다. 통이 크셨다.

     

    “그럼 제가 힘들다는 의미는 무엇인지요?”

     

    ―역린을 제거하면 본좌는 이성을 잃고 폭주하게 된다. 적어도 일주일은 공격성을 드러내게 되겠지. 그대가 본좌에게서 도망쳐 살아 나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아하.”

     

    그 얘기였구나.

    필멸자의 신변까지 걱정해주고, 성격이 너무 좋으신데.

     

    이렇게 유순하니 대악마에게 습격을 받을 법도 했나. 본래 이렇게 하늘에서 유유자적하게 세상을 지켜보는 게 일이니 전투는 특기가 아니겠지.

     

    “으음, 어머니에게 역린을 받고 내가 후다닥 도망치면 안 되나?”

     

    기슈타가 머리를 긁적였다. 기세는 좋지만 그다지 현실성은 없을 듯했다.

     

    “어디.”

     

    생각나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상태창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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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시드 드림 포션 = 안정제 + 요정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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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 동안 푹 주무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때 이후로 수면을 취하신 적 없는 것 같은데, 피로도 푸시고요.”

     

    내 질문에 천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드는 제안이군.

     

    “정해졌군요. 금방 만들어 오죠. 마음에 드실 겁니다.”

     

    나는 기슈타와 함께 천룡의 침소를 나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CarPEDlEM님 응원 감사해요! 화이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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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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