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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9

       “정말 이쪽으로 가는 게 맞는 거야?”

         

       엘라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안내하는 두 사람을 노려봤다.

         

       그들이 걷기 시작한 지 벌써 30분이 지났다.

       오즈와 루미는 아치문을 통과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면서 그녀를 점점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카드순의 전체적인 모습은 밖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커스 천막과 비슷했다. 세숫대야를 엎어놓은 것 같은 형태 위에 빨간색과 하얀색이 반복되는 줄무늬가 나타나 있었다.

         

       거기서 빨간색 줄은 층층이 쌓인 붉은색의 건물들이었고, 하얀색 줄은 일렁이는 빛의 커튼이었다.

         

       엘라는 처음에 그들에게 방법이 있다고 하길래 당연히 위장 신분이나 모습을 바꿀 도구 같은 것으로 검문을 통과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들은 대뜸 자신들을 따라오라고 하더니, 아치문 으로 가지 않고 카드순의 외곽을 돌기 시작했다.

         

       혹시 저기 어딘가에 안으로 들어가는 개구멍이라도 있는 것일까?

       엘라는 두 사람의 뒤를 따르면서 계속 벽을 살폈다.

         

       지역과 시대의 구별 없이 온갖 양식의 건축물들을 두서없이 쌓아놓고, 그 위에 붉은색의 시멘트를 덕지덕지 발라 굳힌 것 같았다.

         

       그러나 어수선한 외관과 달리 아무리 살펴봐도 그곳에는 들어갈 만한 구멍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허술하게 쌓은 듯하면서도 빈틈이 없었다.

         

       “이봐, 아저씨, 언니, 언제까지 걸을 거야?”

         

       벽을 따라 걸으면 걸을수록 입구에서는 점점 멀어졌다.

       그에 비례해 주변에 보이는 사람들의 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엘라는 불안한 듯 주변을 둘러봤다.

         

       이 사람들을 정말로 믿어도 되는 걸까?

       휘청거리면서 걷는 꺽다리 허수아비에 날개 없는 요정이라니.

       어딘가 믿음직스럽지 못한 조합이었다.

         

       둘은 그녀가 질문을 던졌는데도 기다리라는 말만 하며 이쪽을 쳐다보고 서로 쑥덕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첫 번째 붉은색 구역이 끝나는 지점까지 왔다.

       이제 그들이 걷는 길옆에는 붉은색의 단단한 벽 대신 하얀색의 일렁이는 커튼이 나타났다.

         

       그동안 따라오라는 말 외에는 하지 않던 허수아비가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봤다.

         

       “엘피 양, 혹시 ‘고양이 동냥질’을 해본 적 있습니까?”

       “엥? 갑자기 그건 왜?”

         

       고양이 동냥질이란 서커스 업계 은어로 ‘몰래 천막 안에 몸을 비집어 넣어 공연을 훔쳐보는 행위’를 의미했다. 천막 아래로 상반신을 집어넣고 엉덩이는 밖으로 뺀 엎드린 자세가 마치 고양이가 기지개를 켜는 자세와 비슷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주로 서커스 입장료를 낼 돈이 없는 아이들이 잘하곤 하는 짓이었다.

         

       “우린 꽤 가난했으니까. 다들 한 번씩은 해봤지? 물론 들키면 붙잡혀서 밖으로 내던져졌지만……. 근데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인데? 아……잠깐, 설마……?”

         

       그녀는 눈앞에 있는 빛의 장막을 바라봤다. 그녀는 그것이 바닥과 맞닿는 지점을 자세히 살폈다. 그곳 아래로 작은 틈이 나 있었다.

         

       “여기로 들어갈 수 있단 말이야?”

       “네. 들어가려는 대상의 몸에 맞춰 크기가 변합니다.”

         

       그녀는 하얀색 장막 바로 앞까지 다가가 엎드렸다. 그러자 과연 커튼이 펄럭이며 그녀가 딱 기어가기 좋은 크기로 그 틈을 벌렸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그곳을 들여다봤지만, 장막이 내뿜는 빛의 역광 때문인지 건너편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쪽으로는 왜 아무도 출입을 안 하는데?”

         

       그녀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루미였다.

         

       “이곳에는 ‘바운서’라고 해서 강력한 수호 정령이 있어. 무단으로 카드순에 들어가려고 한다면 0.1초도 안 되는 시간에 달려와서 침입자를 쫓아내 버리지.”

         

       그녀는 어렸을 적에 요정 친구들과 이곳으로 들어가려 한 적이 있었다.

       선생님에게 이미 주의를 받았지만 바운서에게 내동댕이를 당해보고 싶었던 그들은 일부러 고양이 동냥질을 시도했다.

         

       -손님, 여기는 들어오는 곳이 아닙니다!

         

       소문대로 무시무시한 돌풍이 일어나더니 거대한 거인이 달려와 투박한 손으로 그녀와 친구들을 붙잡고 밖으로 내던져 버렸다.

       물경 수 km를 날아간 그들은 카드순을 둘러싸고 있는 외곽의 민둥산에 처박혔고, 순찰대에게 체포되어 아치문 앞으로 강제 송환되었다.

         

       “나가는 것도 마찬가지야. 이곳으로 나가려는 순간 뒷덜미를 붙들려서 안으로 끌려 들어가지. 출입은 오직 아치문을 통해서만 하라는 거야.”

         

       오즈가 고양이 동냥질 이야기를 꺼냈을 때, 루미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바운서는 어지간한 마귀들조차 어린애처럼 가지고 놀 수 있는 강력한 존재였다. 자신들로서는 그의 감시를 피하거나 그 힘에 저항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오즈는 ‘가능하다’라고 답했다.

       그가 제시한 방법은 상식의 허를 찌르는 것이었다.

         

       “그런 곳을 어떻게 들어가란 말이야?”

         

       엘라 역시 아까 전의 루미처럼 놀라서 외쳤다.

         

       “하하, 방금 루미 씨가 힌트를 줬는데요?”

       “힌트?”

         

       그의 말을 들은 엘라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방금 그녀와의 대화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한 언급은 한 번밖에 없었다.

         

       “나가려고 하면 끌려 들어간다?”

       “딩동댕! 치킨 쿠폰 드리겠습니다. 주소 불러주세요.”

       “뭐?”

       “아, 아뇨. 말이 헛나왔네요! 어쨌든 엘피 양이 방금 말한 그 부분이 맞습니다! 요컨대 바운서는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대상을 안으로 잡아당긴다는 거지요.”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엘라는 뭔가 감을 잡힌다는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구체적인 결론을 내지는 못했다. 오즈는 그녀에게 한 가지 힌트를 더 주었다.

         

       “고양이 동냥질을 시도한 사람들의 실수는 머리를 밀어 넣었다는 겁니다.”

         

       여기까지 말했는데 눈치 못 채면 바보였다.

       엘라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엉덩이부터 넣으라고?”

       “네.”

         

       엘라는 일렁이는 장막의 아래 틈을 쳐다봤다.

       저 알 수 없는 공간에 엉덩이를 넣는다는 행위도 뭔가 껄끄럽지만, 행여나 일이 잘못되어 수 km를 던져진다면 자신이 무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허수아비는 밀짚모자를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낄낄거렸다.

         

       “못 믿겠다는 눈치군요. 좋습니다. 일단 그럼 제가 먼저 시범을 보이죠. 루미 씨는 엘피 양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들어와 주세요.”

         

       오즈는 헛기침을 한 번 한 뒤 빛의 장막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엉덩이를 쭉 뺀 채 엉금엉금 뒤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뒷걸음질을 치고 1초 정도 흘렀을까.

       간질간질한 것이 그의 등을 쓸고 지나갔고, 동시에 뒤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손님, 여기는 나가는 곳이 아닙니다!”

       “우왁!”

         

       어떤 강력한 힘이 그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저항할 틈도 없이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그를 붙잡은 것은 중절모를 쓰고 정장을 입은 5m 높이의 커다란 영체였다.

       쩍 벌어진 어깨와 가슴은 우몬의 것 이상이었다.

         

       허수아비는 그의 모습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이것이 바로 바운서.

       원더랜드의 수호자였다.

         

       이들은 TT3의 최종 스테이지 곳곳에서 원더스타인의 군단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고작 한 스테이지밖에 등장하지 않고, 별 대사도 없는 녀석들이었지만, 군단을 종횡무진 휩쓰는 활약으로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바운서는 “아치문으로 가십시오.”라는 기계적인 대사를 말하고는 그를 바닥에 내려주었다. 그리고 다시 주위를 둘러보며 침입자가 없는지 경계했다.

         

       그는 엘라와 루미가 차례로 엉덩이를 들이밀 때마다 번개처럼 움직였다.

         

       “손님, 여기는 나가는 곳이 아닙니다!”

       “아치문으로 가십시오.”

         

       그는 예의 대사를 똑같이 외치며 그들을 낚아채고 내려놓는 일을 반복했다.

         

       엘라는 바닥에 내려선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외곽이라 그런지 어지럽게 얽힌 건물들의 외벽과 그들 머리 위를 흐르는 하얀 빛의 물결 외에는 딱히 보이는 게 없었지만, 분명 카드순 안으로 들어온 게 확실했다.

         

       “자, 어떻습니까? 우리 여행사의 첫 번째 코스는?”

       “만족했어?”

         

       원더 투어의 사장과 부사장의 물음에 엘라는 그들을 향해 웃으며 엄지를 척 올려 보였다.

         

       “최고야! 아저씨도 그렇고 언니도 생각보다 믿음직스럽네!”

         

       그러나 두 사람은 그녀의 칭찬에 기쁨을 표현하는 대신 서로를 바라보며 무언의 눈빛을 교환했다. 한 명은 좀 화가 난 듯했고, 한 명은 웃음을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엘라는 그제야 아까도 여기로 걸어오는 동안 둘이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어, 내가 뭘 잘못 했어? 갑자기 또 왜 그래?

         

       그녀의 물음에 허수아비는 이를 악무는 소리를 내며 중얼거렸다.

         

       ”아저씨 아닙니다.“

       ”응?“

       ”아저씨 아니라고요! 저는 20대란 말입니다! 그리고 언니라고요? 루미 씨가 요정이라 어려 보이지만 사실 50대……느어억!”

         

       갑자기 허공에서 밧줄이 생겨나 그의 팔과 다리를 붙잡아 당겼다.

       그는 순식간에 새우 꺾기 자세가 되어 바닥을 뒹굴었다.

         

       엘라는 그제야 그가 왜 꽁해 있었는지 깨닫고 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그래서 삐쳤던 거였어? 칫, 20대면 충분히 아저씨지. 그리고 그 나이라는 것도 어차피 죽었을 때 기준 아니야? 사실 할아버지라 불릴 세대일 수도 있잖아.”

       “그, 그럼 루미 씨는 왜……흐어억!”

         

       밧줄이 그의 몸을 더 강하게 조였다.

       루미는 허리에 손을 척 올리고 뾰로통한 얼굴로 그를 노려봤다.

         

       “숙녀의 나이 얘기를 함부로 해?”

         

       엘라는 그녀에게 조금 진정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고 바닥에 엎드려 숨을 간신히 내쉬고 있는 허수아비에게 말했다.

         

       “루미 언니는 젊게 사는 티가 나잖아. 그러니까 젊은 대접을 해줘야지.”

       “끙, 그럼 저는 늙게 삽니까?”

       “응. 솔직히 좀 고리타분한 스타일의 광대 같아.”

         

       허수아비는 멍하니 그녀를 올려다봤고, 엘라는 그의 표정을 보고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자꾸 그에게 휘둘리기만 했던 루미도 그가 한 방 먹은 게 고소했던지 함께 웃었다.

         

       “아하하, 너 정말 똑똑하네! 너 같은 부단장을 둔 단장은 아주 복 받은 사람이겠는걸?”

       “그렇지? 우리 단장도 그걸 알아야 하는데.”

         

       밧줄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오즈는 작게 투덜거리는 소리를 내며 어깨를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단장이라는 분도 엘피 양 때문에 분명 마음고생 꽤 했을 거예요.”

       “아닌데? 매일 밤 내 방에 와서 ‘엘피 양이 없으면 안 돼요!’ 하고 내 품에 안겨 있다 가는데?”

         

       이 대목에서 루미가 무시무시한 얼굴로 오즈를 노려봤다.

       그는 근엄한 표정을 지으려 애쓰며 고개를 저었다.

       어디서 저런 유언비어를.

         

       그가 어떻게든 화제를 바꿔보려고 말을 꺼내려는 순간, 그녀가 애틋한 감정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농담이고. 사실 내가 단장에게 더 의지하는 편이지. 그 사람만큼 좋은 사람도 없을 거야.”

         

       그녀의 말에 오즈는 조금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런가요?”

       “응. 예전에 나한테 몹쓸 짓을 저질러서 그를 많이 원망했다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가 나쁜 마음에 그런 건 아닐 거야. 분명 나를 위해서…….”

         

       루미의 얼굴이 한층 더 험악해졌다. 그녀는 ‘애한테 무슨 짓을?’이라는 눈빛으로 그를 쏘아봤다.

         

       허수아비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하지만 그렇다고 뭐라고 변명할 수도 없었다.

       진실은 그보다 더 끔찍했으니까.

         

       엘라는 루미의 험악한 표정을 보고는 자신의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음을 깨닫고 그녀의 오해를 정정해주었다.

         

       그녀는 장미 풍차 카바레에서 단장이 자신을 엄청 부려 먹어서 쓰러진 일로 설명을 갈음했다.

         

       루미는 ‘어린 부단장에게 경험을 쌓게 해주고 싶었을 거다’라는 결론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허수아비는 엘라가 그런 걸 말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마냥 웃기는 힘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조금 더 화기애애해진 세 사람은 바운서가 지키는 곳을 떠났다.

       그들은 폐허가 된 건물들 사이를 지나 중심부로 향했다.

         

       길은 상당히 가팔랐다. 엘라와 루미는 이미 오늘 몇 시간이나 걸었기에 건물 잔해를 오르는 것을 버거워했다.

         

       그래서 허수아비가 두 사람을 양쪽 어깨에 앉히고 유적을 올랐다.

       두 사람의 무게 때문에 작대기 다리가 불안정하게 흔들리긴 했지만, 페르소나는 육체적 피로를 몰랐기에 힘들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오른 끝에 그들은 겨우 어두운 골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무거운 공기와 그림자를 벗어던지는 순간, 시원한 바람이 밀어닥치며 거대한 공동이 나타났다.

       그들이 선 곳은 높이가 수백 미터는 되어 보이는 어느 건물의 옥상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qlqh**** 님, 100코인 후원! 최신화까지 따라 와주신 게 기쁩니다!

    -도로시 님, 10코인 후원! 꾸준한 관심과 응원 감사합니다!

    -몽디 님, 214코인 후원! 이렇게나 연속해서 금융치료를…!! 저도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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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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