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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9

        

       삐융.

         

       진성을 한참 동안 빤히 바라보던 카피바라는 하나둘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곤 장난이라도 치듯 콧김을 세게 불었고, 그에 따라 후- 하는 짙은 콧소리와 함께 물총이라도 쏜 것처럼 물방울이 살짝 튀었다.

       그렇게 수면 위로 가벼운 장난을 치며 제 존재감을 드러낸 카피바라는 몸을 풀 듯 갈퀴가 달린 손으로 첨벙거리며 수영했고, 무리를 지어서 수영장 밖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카피바라들은 자기 몸에 맞게 제작된 적당한 높이의 계단을 한 발씩 움직이며 올라갔고, 그렇게 계단을 올라 밖으로 빠져나온 다음에는 물을 털기라도 하는 듯 몸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리곤 하나둘 수영장 밖에 자리를 잡았고, 아까 전 겪었던 공포 때문에 피로라도 쌓인 것인지 하나둘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몇 마리는 진성에게 다가오기도 했다.

         

       뀽.

         

       동물이 내는 소리라기보다는 영화에서나 볼법한 특수 효과 BGM과 닮은 소리를 내며 다가온 카피바라는 진성이 신기한 듯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도 따뜻한 수영장 밖으로 나와서 추운 듯 몸을 부르르 떨었고, 체온으로 몸을 덥히기라도 할 생각인지 진성의 다리에 바싹 붙었다.

         

       진성은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흠. 생각보다 친화력이 좋구나.”

         

       카피바라라는 동물이 원래 친화력이 좋은 동물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건 너무 사람을 좋아하는 듯 보였다. 심지어 진성의 몸에서 나는 냄새가 동물이 좋아할 만한 냄새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카피바라가 이렇게 망설임 없이 다가온다는 것은, 분명 사람의 손을 탔다는 증거였다.

         

       ‘흠.’

         

       진성은 얼마 전 도축장으로 쓰였던 지하 공간에서 의식을 치렀었다.

       당연하게도 사람의 체취는 환경에 영향을 받는 법.

         

       진성의 몸에는 동물들만이 맡을 수 있는 짙은 죽음의 냄새가 서려 있어야만 했다.

       진성이 그 장소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었기에 그 묻은 양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예민한 육감을 가진 동물. 특히 피식자의 위치에 있는 동물이라면 그 냄새를 맡고 경계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카피바라는 사람들을 너무 잘 따르고 있다.

         

       사람의 손을 탔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사람의 손을 탔다면, 과연 누구의 손을 탔단 말인가?

         

       ‘이세린은 이런 것에 관심이 없을 테니 제외하고. 이아린은 오히려 카피바라들이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는 것을 보면 몇 마리를 잡아먹었거나 잡아먹으려 시도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무공의 성취가 확연하게 올라서 맹수 특유의 기척을 풍겼기에 겁을 먹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고.’

         

       일단 진성의 동생들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양훈과 그 처첩들?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진성의 머릿속에는 그 사람들 대신에,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알비노 특유의 빨간 눈과 백발을 가진, 자그마한 동물을 떠올리게 하는 두 사람의 얼굴.

         

       ‘엘라, 아나스타시아.’

         

       그리고 그 두 명 중 카피바라에게 가장 관심을 보였을 사람은….

         

       “아나스타시아.”

         

       진성은 담비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소녀이자, 한창 이세린과 이아린이 싸울 때부터 느껴졌던 기이한 기척의 주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정답이에용!”

         

       그가 이름을 중얼거리자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깜짝 상자에서 튀어나오는 스프링 달린 광대 인형이 나오는 것처럼 튀는 목소리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고, 자신의 등장이 축복이라도 된다는 듯 환상으로 만들어진 꽃가루를 사방에 휘날리게 했다.

         

       그리고 그 요란한 등장과 함께 아나스타시아는 천장에서 흐느적거리며 나타났다.

       그 옛날 유행했던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새까맣게 물들어가는 천장의 표면에서 말이다.

         

       끼기긱.

         

       새까맣게 물들어가는 표면은 자신의 존재가 공간의 괴리라도 된다는 듯, 혹은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는 공간을 뛰어넘게 만들어주는 구멍이라도 된다는 듯 무저갱같이 빛을 빨아들였다. 방 안에 설치되어 있는 조명의 빛을 한없이 빨아들이며 그 부분만 괴리를 만들어내었고, 그 사이에서 길쭉한 촉수 같은 것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꺼내진 촉수는 나뭇가지의 형태가 되었고, 나뭇가지는 이윽고 곤충의 다리라도 되는 것처럼 관절을 따라 움직이며 천장 곳곳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파고든 다리를 지지대로 삼아 자기 몸을 꺼내 들었고, 나무를 닮은 듯한 거대한 몸체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나무의 몸체 사이, SF영화에 나오는 탈출용 캡슐처럼 되어 있는 공간 속에서 아나스타시아는 방긋 웃고 있었다.

         

       아나스타시아는 진성과 만난 것이 좋은 것인지 환하게 웃고 있었고, 곡선을 그리는 창문 안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캡슐의 위치가 수영장의 절반 정도 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창문을 없애버린 뒤 ‘훗챠-‘하는 기묘한 기합과 함께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곤 진성을 앞까지 다가온 다음 손가락으로 브이(V) 자를 그리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아나스타시아는 활발하게 진성에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진성이 가볍게 반갑다는 듯 손만 흔들어주자 이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그리곤 두 번째 인사에도 제대로 반응해주지 않자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외쳤다.

         

       “안녕하세용!”

       “반갑습니다, 프라우 렌츠.”

         

       아나스타시아는 인사말을 바꾸자마자 자기 인사를 받아주는 것을 보고 ‘이게 정답이었구나.’하는 듯한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정답을 맞혀서 의기양양해 하는 아이처럼 말이다.

         

       그렇게 인사를 건넨 아나스타시아는 배시시 웃더니 진성의 캐리어에 시선을 돌렸다.

       그리곤 근질거린다는 듯 들썩거리는 몸을 억누르며, 진성에게 물었다.

         

       “은인? 그 캐리어에 뭐 들었는지 볼 수 있을까요?”

         

       얼핏 레이디가 고상한 말투로 부탁하는 듯한 말투.

       하지만 그녀의 태도는 사냥감을 눈앞에 둔 맹수와 한없이 닮아있었다.

         

       진성은 아나스타시아의 그러한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고, 손을 움직여 잠금장치를 풀었다.

       그리고 마침내 캐리어가 전부 열렸을 때 모습을 드러낸 것은, 목검이었다.

         

       “오오오오.”

         

       일본의 수학여행 지역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싸구려 목검.

       흔하다 못해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아무짝에도 가치가 없는 기념품에 불과한 물건.

       심지어 싸구려 같은 외형과 균형이 맞지 않게 그냥 멋만을 강조해서 깎은 듯한 모습을 보고 있자면, 실전성도 거의 없어 보이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아나스타시아는 그 볼품없는 외형에도 풍부한 반응을 보였다.

       이런 물건을 처음 본다는 듯 눈을 크게 치켜떴으며, 감탄이 흘러나오는 입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고 강조라도 하듯 천천히 벌어졌다. 그리고 얼굴에는 놀람과 탐욕이 서렸고, 흥미 때문인지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이것은, 아주 귀한 물건이네요…!”

         

       그녀는 자그마한 손을 뻗어서 목검을 두 손으로 조심스레 들었고, 아주 귀중한 유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무릎을 꿇고 조명에 더 잘 보이게 하려는 것인지 목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위로 치켜뜨고 목검에 시선을 계속해서 유지한 채, 한참을 그것을 살펴보았다.

         

       그러기를 한참.

         

       아나스타시아는 목검을 살펴보는 것을 그만두고 그것을 진성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대단하다는 얼굴로 진성에게 질문을 던졌다.

         

       “은인은 정말 대단하네요! 어떻게 이런 걸 구하셨나요?”

         

       그 질문은 평범한 질문이라기에는 다른 뜻이 담겨있었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는 마녀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이며, 꿈에서 온갖 것을 겪으며 목검 안에 들어있는 것을 눈치챌 수 있는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질문.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그러면서도 은인에게 친화적인 에너지라니! 대단해요!”

         

       목검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질문이었다.

         

       진성은 그 질문을 듣고 시선을 살짝 옮겼다.

       그리곤 아나스타시아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보석을 연상시키는 새빨간 빛을 품고 있는, 그리고 그 보석의 표면에 넘실거리는 푸른빛의 에너지를 갈무리한 목검의 이미지를 띄우고 있는 아나스타시아의 눈을 말이다.

         

       “각막과 망막. 중간에 필터를 두지 않고 시각 그 자체로 본질을 꿰뚫어 보시는군요.”

         

       진성은 미소를 지었다.

         

       “마음으로 볼 수 없다면 순수하게 육체로 보는 것이 더 효율적인 법. 프라우 렌츠께서는 아주 훌륭한 눈을 가지셨습니다.”

       “감사해요.”

         

       아나스타시아는 진성에게 칭찬을 들은 것이 기쁘다는 듯 배시시 웃었다.

         

       “은인 눈도 훌륭하답니다.”

         

       그리고는 진성에게 받은 칭찬을 돌려주었다.

       의례적으로 하는 답장이 아닌,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으로 본 사실을 넣어서 말이다.

         

       “뜨거움과 차가움이 공존하고, 불씨가 언제든 불이 붙을 수 있도록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기도 하고…. 꿈에서 본 할아버지와 비슷한 눈이에용.”

         

       아나스타시아는 그렇게 말하다가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음, 하지만 그 할아버지는 조금 달랐던 것 같은데. 어쨌든 깊이는 비슷한가?”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금방 변덕이라도 생긴 듯 다른 곳으로 관심을 옮겼다.

         

       “아 참, 은인. 저도 카피바라 구워주세요. 그럼 세 마리에…. 동생도 먹이고 싶은데. 그럼 네 마리! 네 마리 구워주실 수 있나요?”

         

       아나스타시아는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천장에 매달려있던 악몽 같은 무언가는 기다랗게 검은 팔을 하나 뽑아내었고, 그 팔의 끝부분이 집게처럼 여러 갈래로 갈라지며 카피바라 한 마리를 집었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검은 팔이 네 개가 더 생겨나며 인형 뽑기의 기계처럼 카피바라를 포획했다.

         

       그렇게 잡힌 카피바라는 총 다섯 마리.

         

       아나스타시아는 잡힌 카피바라를 보고 있는 진성의 시선을 따라가더니 배시시 웃었다.

         

       “한 마리는 저 아이의 몫이랍니다.”

         

       그녀는 진성에게 자랑이라도 하듯 설명했고, 그 설명을 직접 보여주겠다는 듯 악몽과도 같은 무언가를 움직였다. 그러자 새까만 나무 같았던 몸통에 쩍 벌어지는 틈새가 만들어졌고, 팔이 움직여 카피바라 한 마리를 그 안에 쑤욱 집어넣었다.

         

       꿀꺽.

         

       카피바라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멍청한 얼굴로 틈새 사이로 사라졌고, 알 수 없는 무언가는 그대로 틈새를 없애버리고 무언가를 삼키는 듯한 커다란 소리를 내고는 만족스럽다는 듯 몸을 떨었다.

         

       악몽에서나 볼 법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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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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