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19

        

         잠깐, 영 좋지 못한 것 같은 조짐이 느껴지는 현재 상황에 대해 더 고찰하기 전에.

         시간을 좀 거슬러올라… 우리 쪽 기계들이 다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해킹 견적은 잘 나오는지 살펴보느라 바쁘던 시기로 되돌아가보자.

         

         레오나르는 내 가볍다 못해, 나들이 가는 것과 별반 차이도 없어 보이는 무장에 대해 아무런 소리도 하지 않았다. 좋게 손을 맞잡았던 만큼 신뢰했다고 해야 하나? 그냥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거니~ 한 거라 볼 수도 있을지도.

         

         하여간 내가 창고 구석 사무실에서 지나치게 밝은 조명과 신품이란 그런지 조금 빡빡한 키보드에 눈살을 찌푸린 채로 시설망을 쿡쿡 찔러보고 있을 때.

         

         차마 이목을 끌만한 시험 사격까지는 할 수 없었는지 드론에 달린 중화기는 총열과 탄약만 확인하되, 그 외에는 꼼꼼하게 배터리 잔량과 날개부터 시작해서 사냥개들의 실구동 성능이나 동시 제어력 또한 쭉 살핀 그가 담담하게 선불(?)로 넣어준 게 있다.

         

         다름이 아니라 방금 막 정비를 끝마친 하운드로이드를 둘씩이나, 거기에 다소 동력부의 수명이 걱정되는 마개조 드론을 여덟 기나 창고와 인근에 두고 가겠다고 한 것이다.

         

         ……아무래도.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벌써 여러 차례 만나본 호위 드로이드도 어디다 두고 온 모습에 레오나르는 책임감을 느낀 것 같았고, 나도 이제는 뒤에서 당연히 느껴져야 할 케어봇의 묵직한 존재감이 있다 없으니까 살짝 쎄한 감각이 가시질 않던 참이라 사양하지 않고 넙죽 받았다.

         

         고작해야 준비한 병력의 5% 내외라고 쉽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직후에 목숨이 아홉 개는 되는 것 마냥 극강의 방어 시설을 자랑하는 엑사테크 부지로 뛰어들어야 했던 일정을 고려하면 그가 꽤 신경을 써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나도 마땅히. 기대에 부응하고자 거의 전력을 다해 저쪽 친구들을 탈탈 털고… 괴롭혀주었고 여태까지는 그도 이쪽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꽤 만족하고 있었다 본다.

         

         한데… 그런 레오나르가 뜬금없이 드론을 건드린 게 아니라면.

         사주경계를 위해 잘 주차되어 있던 녀석의 카메라가 난데없이 꺼질 이유가 뭐가 있을까?

         

         투쾅—!!

         우르릉…!

         

         “!!”

         

         전자 세계의 전능감보단 육신의 피드백이 필요하다 여겨서 연결을 느슨하게 하자마자.

         고막을 흔드는 이명, 안 그래도 연구소 포탑이 불을 뿜기 시작함과 동시에 뭔가 사건이 벌어졌음을 직감하고 지나가던 행인마저 자취를 감춘 근방에 공기 터지는 소음이 귓전을 후려갈겼다.

         

         내가 고새를 못 참고 시설에 또 위협 사격을 가했냐고? 에이 설마, 누가 무슨 트리거 해피(Trigger-Happy; 방아쇠를 당기는 것에 행복감을 느끼는 증세)도 아닐진대.

         게다가, 만약 그랬다면 바람 찢어지는 소리와 동시에 드론 화면이 하나 더 나간 게 우연의 일치라는 건데 그건 지나치게 희망적인 관측이 아닌가?

         

         심지어 혹시라도 폐기장 근처로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의심자를 대비한 용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막 수상쩍게 날아다니면 괜한 의심을 살라 눈에 잘 띄지 않게 고철더미로 잘 위장해서 주차까지 해 놨는데….

         

         “……아, 지랄.”

         

         드득, 드드득. 지면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흡사 콘서트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발을 구르는 것처럼… 아니, 아니다. 그것보다 조금 더 각 잡히고 규칙적인 진동이다. 박자를 맞춰서 육중하게 움직이는 이건… 굳이 맞는 단어를 억지로 끄집어내자면 연병장…? 군대?

         

         …쓰읍, 지금 타이밍에 찾아올만한 군대식 손님이라 하면 더럽게 안 좋은 예감밖에 안 드는뎁쇼.

         

         “왜 그러나? 무슨 변수라도 생겼나?”

         “그걸 지금부터 알아볼 예정이…!”

         

         파캉!!

         

         이번에는 훨씬 맑고 청아한 파열음이, 조금 더 가까운 위치로부터 들렸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아까는 위장째로 박살 나면서 쌓여 있던 철더미가 무너졌다면 방금은 주변을 촬영하기위해 날린 드론이 가까스로 카메라를 돌리자마자 공중에서 격추당했으니까.

         

         너무 빠르게 요격당해서 장비한 화기로 어떻게 요러케저렇게 저항해볼 틈도 없었다.

         

         날개, 그리고 제어 장치가 정확히 부서져서 나선을 그리며 추락하는 와중의 최후의 단말마. 충실한 무인기가 간신히 보내온 건 아주 미래지향적이고 날카로운 느낌을 물씬 풍기는 드로이드 병사의 형상이었으니.

         

         직전까지 남의 눈을 빌려서 보던 시설 부지 내의 겹장갑 중보병과는 그 모델이 많이 차이나는 것 같았지만… 어깨에 견장처럼 새겨진 육각형(Hexagon)과 톱니바퀴 문양이 저들의 소속을 확실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엑사(Exa)라는 단위 자체가 6을 뜻하는 그리스어 헥스(ἕξ)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망각하지 않은 듯, 화질이 뭉개진 영상에서도 그 회사 상징(Compony Logo)의 생김새를 형형하게 드러내는 게… 아이씨 조졌네 이거!

         

         “레오나르으으!? 여태까지 안 들키고 무사히 잘 넘어갔대매! 이게 무슨 경우…… 아니, 애당초! 분명 개미 한 마리도 못 빠져나오게 출입구를 전부 틀어막고 있었는데. 비상 대피로 같은 건 없다 하지 않았어?!”

         

         “……다른 해커였다면 역추적 당했을 가능성부터 따졌겠지만. 그대의 경우엔 그쪽이 더 현실성이 없다는 게 우습군.”

         

         외벽을 모조리 점거해버리면 뻗어 나올 위협이 없을 거라는 정보를 믿고 호쾌하게 대규모 침공을 개시했거늘.

         안전해야 할 후방 거점이 -그래봐야 나밖에 안 남아있기는 한데!- 공격당한 상황이 발생하자, 그 또한 이변을 알아채고는 급하게 역방향 추론을 더듬었다.

         

         “저것들은 외부 순찰조에서 쓰는 급습형 드로이드다. 우리가 펼친 게 전파 봉쇄가 아니라 네트워크 봉쇄였다는 걸 감안하면…… 아무래도 연구소 내부에 있는 누군가가 특수 통신을 이용해서 인근 엑사테크 제조 공장에 지원 병력을 요청한 모양이군. 보통 좀도둑들이 물류 창고를 노리는 일이 잦다 보니 거긴 부지 바깥쪽도 경비하는 편이라.”

         

         거기까지 중얼거린 레오나르가 잠시 입을 닫았다.

         외부 순찰조의 급습형 드로이드 독립 부대, 오케이. 그걸 안다고 내가 특별히 대응법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정체를 빠르게 파악한 건 좋았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의문점인 ‘대체 어떻게 이곳의 위치를 알고 반격하러 왔느냐’에 대한 답은 뭘까?

         짧은 회상, 고민 한 스푼, 거기에 본인 특유의 논리적 귀납법까지 첨가하자 빠르게 뭔가의 진실에 도달한 그가 면목없다는 듯이 끓어오르는 증오를 억누르며 작전을 변경했다.

         

         “마침. 특수 통신기를 가졌으면서 이곳에 대해 어렴풋이 아는 놈에 대해선 짐작이 간다. …미안하군, 이쪽의 치명적인 실수다. 지금이라도 탈출해서 맨홀로 다시 대피할 수 있겠나? 그 년놈들이 원하는 건 나일 테니 그대가 일단 자리를 벗어날 수만 있다면 굳이 더 쫓지는 않을 거다.”

         

         “…나만 훌쩍 도망가라고? 그럼 안에 있는 너는 어쩌게??”

         

         “…….”

         

         대답은 없었다.

         내가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거의 기백에 달하는 적대 엔지니어들과 전자전을 벌이고 있는 걸 알긴 하는지, 벌어질 일은 알아서 책임지겠다는 태도로 그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설마 진짜 억제하고 있던 시설 가용 병력이 모조리 풀려나면 어떤 답 없는 전투를 치러야 하는지, 산적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더라도 탈출하는 도중에 저 든든하던 고화력 터렛들이 자신을 노리게 되면 어찌될 지 모르는 건 아닐 테고.

         

         어차피 일이 꼬인 거 억지로 남아있다가 나까지 괜히 피 볼 게 아니라 몸부터 내빼라는 뜻이렸다.

         

         문제는… 그걸 아직 전직 한복판에 고립되어 있는 당사자가 말했다는 건데. 이 인간 왜 이렇게 비장미가 쩔어? 그룹 프로젝트에서 뭔가 좆 됐으면 힘을 합쳐서 해결부터 해야지 왜 덤터기를 쓰려고 해. 괜한 손해보면서 사는 타입이네.

         

         물론 내가 프로 정신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코스프레 용병이기는 해도, 하겠다고 마음먹은 의뢰가 어떤 식으로든 결판나기도 전에 혼자서 무책임하게 내뺄 생각은 없었다.

         

         게임에서 레오나르가 비록 배배 꼬인 정신 상태를 가지게 되고도 일단 살아남긴 했던 걸 보면.

         원래는 이렇게 전병력을 끌고 다 때려부수면서 들이박는 게 아니라 훨씬 신중하게 접근하다가 잘못되었다 보는데… 이제 와서 위험하다고 내빼면 사실상 내가 죽인 셈이 아닌가?

         

         당연히 과한 상상이고 억측이다. 그는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를 알 방법이 없으니. …하지만 이것 또한 남들보다 너무 많이 아는 사람이 겪는 고통의 일부로 감수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하, 진짜 이런 때 쓰는 말이 아니었던 것 같긴 한데. 앓으니 죽고 말지.”

         

         “잠깐, 무리하지 말고…!”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잠시 사이버웨어를 수신 거부 상태로 돌렸다.

         다소 부끄러운 건 몰라도 비위가 약해서 역겨운 건 잘 못 참는 편이다. 나라고 총맞는 걸 즐기지는 않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도와줘야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맨홀로 대피하려는 건 하책, 다시 한 번 잠수해서 이번에는 이 기동대를 조종하는 오퍼레이터들을 찾아서 쓸어버리는 게 상책.

         

         그런데 둘 중 어느 한 쪽을 고를 시간적 여유가 있을까? 포위는 완성됐나? 적들은 얼마나 가까이 왔지? 분명 아까 ‘급습형’ 드로이드라고 하지 않았었나?

         

         픽—!

         

         “후우…!”

         

         어떤 형태로든 전기가 통하던 소중한 실내 광원들이 일시에 사라지고.

         순식간에 시계視界가 어둠에 휩싸였기에 과장된 심호흡으로 긴장을 살짝 풀어주었다.

         

         그래 씹, 건물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전력부터 차단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지. 이쯤은 미리 예상하고 컴퓨터가 감당하던 해킹 프로세스의 주체를 나 자신으로 바꿔 놨었다. 그런고로 레오나르 쪽에는 당장은 아무런 지장이 없다. 덕분에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긴 하다만.

         

         수중에 남은 건 하운드로이드 두 마리에 드론 다섯 대가 전부, 적의 규모는 알 수 없음. 그러나 나에겐 손자병법에도 적히지 않은 필승법이 존재하니.

         

         아군이 너무 적다면… 조금씩, 차근차근 늘려 나가면 되는 법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너, 동료가 되어라.

    본래는 이번 화에 전투 종료까지 다 포함되었어야 하는데, 분명 간략하게 결만 잡았을 때는 얼마 안 됐던 파트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네요.
    제 욕심이 그만… 죄송합니다. 그리고 항상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후기 쓰느라 또 10시 연재 예약 거는 걸 잊고 또 그냥 쌩으로 올렸네요. 세상에 이런 허접이 다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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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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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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