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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9

   EP.219

     

   아늑했다.

     

   잔잔한 수면 위를 떠다니는 한 잎의 잎사귀가 된 것처럼 편안한 감정이 머릿속을 감쌌다.

     

   ‘꿈인가……’

     

   부드러운 감각이 나의 전신을 기분 좋게 짓눌렀다.

     

   과하게 가벼워진 몸. 어둡고도 고요한 평화.

   내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이 공허라면 평생을 느껴도 아쉬움이 없을 것만 같다.

     

   ‘난 뭘 하고 있었지?’

     

   나는……

     

   나는 싸우고 있었던 것 같다.

     

   검을 휘두르고 신법을 펼치며 거대한 적과 전투를 펼치고 있었던 것 같다.

     

   요란한 웃음과 경박한 움직임.

   바위를 깎아 만든 듯한 가면을 쓴 두 마리의 도깨비.

   놈들 중 하나의 검이 나의 옆구리를 길게 가르고 지나갔었다.

     

   ‘그런데 왜 아무렇지 않을까.’

     

   절벽이 무너지고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격렬한 싸움을 이어갔었다.

   하지만 지금 나의 몸은 지치기는커녕 오히려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기만 했다.

     

   죽음이라는 것.

     

   상처는 깊었다. 아무리 내가 성좌의 격에 오르고 상식을 벗어나는 신체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지만 옆구리의 그것은 감히 인간이 감당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피를 얼마나 많이 흘린 것인지 옆구리가 서늘한 동시에 따뜻하기까지 했다.

   편안함을 벗어나기 위해 꿈틀거리기만 해도 온몸이 욱신거리는 상황.

   몸이 움직임을 거부하는 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나 매몰되어 있는 건가.’

     

   상처로 인한 탈진 외에도 지금 온몸을 짓누르고 있는 흙더미가 한몫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생각하니 그렇게 거대한 절벽이 무너지며 추락했는데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 아닐까 싶다.

   아니, 이미 죽어 가고 있는 중이니 살아 있다고 말하기에도 어폐가 있을까.

     

   ‘살아 있다라……’

     

   산다는 게 무엇인가.

   그저 목숨이 붙어 있다면 그것을 보고 살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옳을까?

     

   그저 하루하루 숨을 쉬고 밥을 먹고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보며 하루를 보냈다고 말한다면 그것 또한 살아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까?

     

   ‘그렇겠지.’

     

   타인이 말하는 살아 있음의 정의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살아 있음은 그저 숨이 붙어 있음을 의미하는 단순한 개념 따위가 아니었다.

     

   나는 탑을 오르겠다는 목표를 가졌었다.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 숨을 쉬었고 나의 모든 걸음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오로지 한 방향만을 보며 움직였다.

     

   나에게는 그것이 ‘살아 있다’의 정의였다.

     

   내가 이루려던 목표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죽음을 기다리는 가짜 평안 따위가 아니었다.

     

   나의 삶에서 일출의 이유는 한 걸음을 더 나아가기 위한 빛을 찾기 위함이었고,

   나의 삶에서 일몰의 이유는 한 발자국을 쉬어 가기 위한 힘을 찾기 위함이었다.

     

   뿌득-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런 곳에서 죽을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나를 업신여기던 성좌 따위에게 무릎을 꿇을 생각도 없었고 가까스로 만나게 된 나의 동료들을 잃을 생각 따위도 없었다.

     

   스윽.

     

   다 부러진 팔을 움직였다.

     

   추락하는 도중, 거대한 돌덩이가 내 위에 안착한 것인지 몸의 왼편이 움직여지지 않았지만 오른팔이 움직인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구겨 넣었다.

     

   ***

     

   -키히히힛-!!

     

   땅으로 기어 나온 이매망량의 날카로운 웃음과 함께 좌중을 압도하는 공포가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5층에서 만났던 가짜 성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진짜 성좌.

   그들 중에서도 특별한 힘을 지닌 성좌의 존재감에 화신들은 압도되고 있었다.

     

   “미치겠네……”

   “저딴 괴물을 어떻게 이겨……”

     

   깊은 곳에 잠재워져 있던 공포와 절망이 사람들의 마음을 잠식한다.

     

   결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을 마주하고 있다는 착각.

   하지만 그 와중에도 몰려드는 공포를 꾸역꾸역 밀어내던 사람들이 존재했다.

     

   -히히힉? 재밌는 인간들! 많다!

     

   튜토리얼에서부터 김시인과 함께 생사를 넘나들었던 세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들이 이매망량에게 느끼는 감정은 공포보다는 분노에 더 가까웠다.

     

   아무리 강한 적을 만나게 되더라도 반드시 도움이 되리라 다짐하며 16층으로 왔건만, 오랜만에 만난 김시인은 까마득히 높은 곳에 올라 그들을 감싸 안고 있었다.

     

   또 그의 짐이 되어 버렸음에도 보호를 받았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자신이 싫었다.

     

   동료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어깨를 나란히 하지는 못하더라도 그의 길을 방해하는 방해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시인 씨는 아직 살아계실 겁니다. 그때까지만 버팁시다.”

     

   박조철의 말에 서세영과 남궁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놈이 성좌라고는 하나 칼에 맞고 불에 지져지면 아픈 건 마찬가지였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죽음을 기다릴 바에는 하찮은 발버둥이라도 해 보는 것이 훨씬 더 큰 의미가 있었다.

     

   -히힛. 재밌다. 인간.

     

   4개의 목소리가 뒤섞인 혼잡한 음성이 놈에게서 들려왔다.

     

   격의 차이로 인해 발생한 극도의 공포감.

   날카롭고도 걸걸한 소리에 사람들이 움찔거리며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지만 세 사람은 오히려 앞으로 한 걸음 다가 갔다.

     

   “조철 씨, 지금부터 술법 하나를 준비하겠습니다. 초감각으로 놈의 위치를 브리핑해주세요. 세영 씨는… 죄송하지만 제가 놈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도록 10초만 지켜 주세요.”

     

   10초.

     

   언뜻 듣기에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성좌를 막아 내야 하는 그녀의 입장에서는 싸우다가 죽어 달라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죄송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늘 하던 대로 하면 되죠?”

     

   하지만 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5층 이후 탑을 오르며 한가민을 포함한 네 사람은 각자의 포지션을 지켜가며 전투를 해왔었다.

   그들 중 가장 발이 빨랐던 서세영의 역할은 상대를 유인하는 것.

     

   “상대가 성좌라니 좀 긴장되네요.”

     

   이번이 마지막 협공이 될지도 몰랐지만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전투방식이었기에 믿고 움직이기로 했다.

     

   “갑니다!”

     

   남궁천호가 빠르게 수인을 맺으며 전투가 시작됐다.

   박조철이 감각을 극대화하며 남궁천호의 앞에 섰고 서세영이 이매망량을 향해 도약했다.

     

   하지만 이매망량도 바보가 아니었다.

     

   아무런 흥미도 없다는 듯, 싱글벙글하던 놈이 남궁천호의 수인이 시작되는 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미친!”

     

   박조철은 반응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그의 초감각이 발동되며 놈의 움직임을 가까스로 포착했지만 놈의 움직임을 몸이 쫓아갈 수 없었던 탓이었다.

     

   “조철 씨!!!”

     

   어느새 서세영을 지나친 이매망량이 입을 씰룩거리며 주먹을 뒤로 빼고 있다.

   뻗어지는 놈의 첫 번째 공격. 그곳에는 남궁천호가 있었다.

     

   화아아악!!!

     

   꽉 쥐어진 놈의 주먹이 남궁천호의 얼굴을 노리며 날아든다.

   죽음이라는 글자가 크게 아로새겨진 듯한 놈의 공격.

   하지만 놈의 손에 가장 먼저 닿은 것은 남궁천호의 얼굴이 아니었다.

     

   콰아아앙!!!!!

     

   “어딜!!!”

   -우와 이걸 막았어! 인간! 너 싸울 줄 아는 구나?

     

   박조철은 자신의 팔꿈치에서 느껴지는 얼얼한 감각을 느끼며 이매망량을 노려봤다.

     

   본능적으로 휘두른 엘보우에 놈의 공격이 아슬아슬하게 쳐 낸 상황.

   초감각에 걸린 놈의 공격로에 그가 팔을 뻗었고 운이 좋게 놈의 주먹을 후려친 덕분이었다.

     

   “넌 못 지나간다!”

     

   하지만 박조철이 감당할 수 있는 공격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럼 이것도 한 번!

     

   첫 번째 공격이 빗나간 이후, 놈의 손이 재차 뻗어졌다.

     

   쩌어억-!

     

   양팔을 들어 막았으나 박조철을 그대로 후려갈긴 두꺼운 손바닥.

   그의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저만치 날아가 흙더미에 처박혔다.

     

   그때 서세영이 달려들어 놈의 등에 검을 찔러 넣었다.

   하지만 효과는 미미했을 뿐. 이매망량은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린 듯, 그녀를 보지도 않고 손등을 휘둘러 그녀를 후려치려 했다.

     

   “흐읍!!”

     

   그녀가 날아들던 손을 짚으며 공중제비를 돈다.

   그리고는 놈의 손을 박차며 높게 뛰어올라 허리춤에 있던 단검 두 자루를 놈에게 투척했다.

     

   -가소롭군.

     

   하지만 이매망량의 눈을 노리고 날아들던 단검은 끝내 놈에게 닿을 수 없었다.

     

   놈이 손을 뒤로 가져가는가 싶더니 서세영을 향해 한 차례 박수를 친다.

   그러자 손에서 시작된 돌풍이 주변의 공기를 빨아들였고 이내 발출되며 서세영을 향해 쏘아졌다.

     

   콰아앙!!!

     

   바람에 맞았지만 마치 돌덩이에 가격당한 듯한 둔탁한 소리가 천지를 울렸다.

     

   피를 토하며 저만치 튕겨진 서세영.

   순식간에 두 사람이 리타이어 된 상황에도 남궁천호는 이를 악물며 술법을 이어갔다.

     

   ‘더 빨리…!’

     

   남궁천호를 향해 놈의 주먹이 날아든다.

     

   두 사람이 버텨낸 시간은 고작해야 7초 남짓. 놈의 공격을 맞는 순간 이 싸움은 끝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쐐액!

     

   남궁천호는 끝까지 놈의 얼굴을 응시했다.

   지금 놈의 공격에 맞아 죽게 되더라도 저 면상에 제대로 된 공격 한 방은 먹이고 가겠다는 하나의 오기였다.

     

   남은 시간은 단 3초.

     

   콰아아앙!!!

     

   -……엥?

     

   하지만 그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던 주먹이 무언가에 막힌 듯, 공중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남궁천호의 얼굴과 놈의 주먹 사이를 막아 낸 투명한 막.

   멀리서 보니 정신을 차린 몇몇 마법사들이 눈을 까뒤집어가며 그를 향해 마력을 쏘아 내고 있었다.

     

   그의 주변으로 결계.

   물론 성좌의 진심 어린 공격을 막아 낼 수준은 아니겠지만 그가 술법을 펼칠 몇 초를 벌어 주기에는 아쉬움이 없었다.

     

   “흐으읍!!!”

     

   남궁천호가 손가락 총을 쏘듯 손을 말아 쥐며 기합을 넣었다.

     

   파직, 파지직-!

     

   그가 펼칠 수 있는 단일 기술 중 가장 파괴력이 높은 술법.

     

   선법 仙法

   제1형

   멸살진천뢰 滅殺震天雷

     

   손가락 끝에서 스파크가 튀며 그의 선천진기가 담긴 술법이 이매망량을 향해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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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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