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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

       

       

       

       

       

       22화. 눈의 정수 ( 3 )

       

       

       

       

       

       차가운 눈보라가 하늘을 뒤덮으며 쏟아진다. 종아리까지 쌓여 있는 눈을 푹푹 밟으며 나아간다. 

       성문을 나설 때에는, 가벼운 미풍 정도였던 눈보라는 점점 거세져서 앞을 보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

       

       

       후욱ㅡ

       

       

       내뱉은 숨결은 하얀 구름이 되어 눈바람과 함께 흩어졌다. 프리가가 이끄는 무리는 눈보라를 뚫고 묵묵하게 산을 올랐다. 하지만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과 몸을 무겁게 만드는 눈은 쉽사리 산을 허락하지 않았다.

       거센 눈과 추운 바람에 익숙한 북부의 전사들도 힘든 기색이 뚜렷하게 보인다.

       

       

       “어,어후! 이,이거 부랄 두쪽 전부 얼어서 깨지겠는데!”

       

       “흐흐, 어ㅡ어차피 쓸 곳도 없는데! 이 기회에 떼버리지 그래!”

       

       

       애써 농담을 던지며 태연한 척하지만, 입술이 파랗게 얼어가고 있는 모습.

       

       

       ‘날씨가 너무 안 좋아…!’

       

       

       케니스는 선두에서 모두를 돌아보며 생각했다. 성기사들은 물론이고, 북부 전사들조차 눈보라에 빠르게 체력이 떨어지고 있다. 

       이러다간 군락지에 가기 전에 모두 지칠 것이다.

       

       

       “공녀님! 날씨가 너무 안 좋아요! 근처에 동굴이나, 쉴 만한 곳을 찾아보죠!”

       

       

       프리가가 일행을 훑어보고는 입술을 잘게 깨물었다. 시간이 없지만, 체력 보존도 중요하다.

       빠르게 결정을 내린 프리가가 외쳤다.

       

       

       “그래! 이 근처에 동굴이 하나 있어! 그쪽으로 가자고!”

       

       “예! 알겠습니다! 얼른 가시죠!”

       

       

       성기사와 전사들은 눈보라를 뚫고 커다란 동굴에 도착했다. 짐승이 살던 동굴인지, 군데군데 뼈가 굴러다니고 짐승 누린내가 났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그저 눈보라를 피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으아. 진짜 얼어 죽는 줄 알았네.”

       

       “염병. 뭔 날씨가 이렇게 춥냐? 꼬추털나고 이런 날씨는 진짜 처음이네.”

       

       

       우르르 동굴로 들어오며 투덜거리는 성기사와 전사들. 몸에 묻은 눈을 탁탁 털며 동굴 바닥에 주저앉았다.

       

       

       틱ㅡ틱ㅡ

       

       “이거 왜 안 되는 거냐?”

       

       “등신 진짜. 야, 이리 줘 봐. 누가 부싯돌을 그따구로 쓰냐?”

       

       

       한 구석에선 전사들이 불을 피워 보겠다고 난리를 피웠다. 케니스는 눈에 젖은 머리를 탈탈 털며 프리가에게 다가 갔다.

       프리가는 팔짱을 끼고 몰아치는 눈보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공녀님, 이제 어떡하죠?”

       

       “그러게, 지지리도 재수가 없네.”

       

       

       프리가도 뾰족한 수가 없는지 초조하게 밖을 바라보며 입술을 잘게 깨물었다.

       단장도 몰아치는 눈보라를 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공녀님, 일단 방법이 없으니 푹 쉬시죠. 좀 쉬다가 밖이 잠잠해지면 그때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하아ㅡ 그래야겠네. 여기서 뭐 머리 굴린다고 방법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까.”

       

       

       프리가는 적당한 자리에 풀썩 드러누웠다. 멍하니 밖을 바라보던 프리가가 말했다.

       

       

       “그거 알아, 케니스?”

       

       “예?”

       

       “이렇게 마수의 산에 눈보라가 치는 건 말이지. 산에 사는 용이 화가 나서 그런 거래.”

       

       “하하! 공녀님. 용이요? 애들 동화에나 나오는 거 아닙니까.”

       

       “뭐, 그렇지. 애들 겁주는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 나도 크고 나서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눈보라 치는 거 보니까 정말 용이 화난 것처럼 살벌하게 몰아치네.”

       

       

       프리가는 밖에 몰아치는 눈보라를 보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눈보라는 분노한 용처럼 정신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휘오오오ㅡ

       

       

       눈보라는 하루 밤새도록 몰아치다가, 이른 아침이 돼서야 잦아들었다.

       

       

       뽀득ㅡ뽀드득 

       

       

       전사들과 성기사들은 눈보라가 잦아들자, 서둘러 산을 올랐다. 

       전사들 사이에서 애꾸눈이 산을 오르며 중얼거렸다.

       

       

       “어제 하루 종일 눈보라가 쳤으니, 마수새끼들이 배고파서 발광을 할 텐데… 재수 없으면, 늑대 새끼들을 만날 수도 있겠구먼.”

       

       “니미! 재수 없는 소리 하지마, 애꾸눈새꺄!”

       

       “아니,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맞는 말 했구만.”

       

       

       옆에 있던 전사가 재수 없다면서 애꾸눈을 두들겼다.

       단장은 그 말을 듣고 프리가에게 다가 갔다. 마수떼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말이 신경 쓰이는 모양.

       

       

       “공녀님… 저 말이 정말입니까?”

       

       “아? 아, 마수떼? 맞아, 어제 하루 종일 눈보라 때문에 사냥을 못 했을 테니. 배고파서 눈이 돌아갔겠지.”

       

       “…그렇다면 조심해야겠군요.”

       

       

       단장의 굳은 표정에 프리가가 피식 웃었다.

       

       

       “걱정하지 마, 아직 산의 초입이라서 잔챙이들 뿐이니까. 저 앞에 돌탑 보여? 저기부터 조심하면 돼.”

       

       

       프리가는 턱짓으로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돌탑을 가리켰다. 산의 중턱 정도에 위치한 돌탑이 쌀톨만큼 작게 보였다.

       사람의 손으로 쌓은 것이 분명한 돌탑은 주변에 여기저기 짐승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어… 전사분들이 직접 만든 탑입니까?”

       

       “아니. 저거 마수 새끼들이 쌓아둔 거야.”

       

       “마수가요?”

       

       

       단장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마수라면 짐승이나 다름없는 것들인데, 탑을 쌓고 영역 표시를 할 정도의 지능이 있단 말인가?

       케넬름이 도끼 손잡이를 쓱쓱 만지며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여기 산에는 늑대 새끼들이 살고 있거든. 그 새끼들이 여기부턴 자기들 땅이라고 표시해둔 거지.”

       

       “늑대 새끼들…?”

       

       “그 왜. 두 발로 걷는 늑대 새끼들 있잖아. 기분 나쁘게 으르렁거리는 놈들.”

       

       “웨어울프?! 웨어울프가 마수의 산에 있단 말입니까?!”

       

       

       단장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어. 왜 그렇게 놀라? 내가 말 안 해줬나?”

       

       “예! 한 번도! 안 해줬습니다!”

       

       “아ㅡ 그래? 그랬구나? 미안. 저기부터 걔네들 땅이야.” 

       

       

       프리가는 도끼들 쓱쓱 만지면서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얼빠진 표정을 짓는 단장의 뒤에서 애꾸눈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 너무 겁먹지 마쇼. 우리도 그렇고, 그 늑대 새끼들도 그렇고. 서로 건드릴 때마다 피를 봤거든. 그 똥개들이 대가리가 있다면 이번엔 조용히 지나가겠지.”

       

       “새꺄, 똥개들이 그런 걸 배울 대가리가 됐으면. 네 눈도 멀쩡했겠지!”

       

       “흐, 그것도 그런가?”

       

       

       애꾸눈이 흐흐 웃으면서 안대를 쓸었다. 괜스레 시큰거리는 텅 빈 안구. 애꾸눈은 한 손으로 안대를 만지며 돌탑을 바라봤다.

       단장이 아연한 눈빛으로 프리가를 바라봤다. 

       

       

       “무조건 싸움이 일어난다는 소리 아닙니까…”

       

       

       제발 아니라고 말해 달라는 표정.

       프리가는 단장에게 씨익 웃으며 말했다.

       

       

       “뭐 해? 얼른 가야지.”

       

       “아…”

       

       

       프리가에게 끌려가는 단장의 표정.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의 표정이 저랬을까? 케니스는 속으로 단장에게 왜인지 모를 미안 함이 생겼다.

       

       

       

       –

       

       

       

       단단하게 굳은 눈을 밟으며 전진하던 일행은 기묘한 돌탑의 앞에 도착했다.

       프리가는 도끼를 치켜올리며 뒤를 돌아봤다.

       

       

       “자ㅡ! 여기부턴 그 똥개들 집이다! 다들 개새끼 한테 물려서 광견병 걸리기 싫으면! 알아서 잘 처신해!”

       

       “들었지 애꾸눈? 남은 눈 잘 간수하라고.”

       

       “닥쳐, 네 눈깔도 뽑아버리기전에.”

       

       

       애꾸눈은 옆에서 킬킬거리는 전사의 대가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스윽ㅡ

       

       

       손으로 안대를 쓸자 느껴지는 안쪽의 텅 빈 공간. 애꾸눈은 안대를 쓸며 저 설산을 바라봤다.

       어쩐지 이번에는. 

       

       제 한쪽 눈의 원수를 갚아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애꾸눈은 한 손으로 손도끼를 꽉 쥐며 걸음을 옮겼다.

       

       

       

       뽀득ㅡ뽀드득ㅡ

       

       

       

       설산을 오른 지 며칠이나 지났을까.

       

       

       처음의 그 각오가 무색하게 일행은 며칠 동안 드넓은 설산을 오르며 단 한 마리의 마수도 만나지 못했다. 프리가와 북부 전사들의 얼굴이 점점 심각해졌다.

       단장이 프리가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케니스에게 다가 갔다.

       

       

       “케니스. 공녀님 표정이 왜 저렇게 안 좋은 거지?”

       

       “아마 마수가 안 나와서 그런 거 같습니다.”

       

       “음? 마수가 안 나오면 좋은거 아닌가?”

       

       

       단장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수를 마주치지 않는다면, 전투도 피하고 체력도 보존되니 좋은 게 아닌가?

       케니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뇨. 안 좋은 상황입니다. 마수의 산에 마수가 없다뇨. 그것도 이렇게 높이 올라오는 동안 흔적도 안 보였습니다.”

       

       “그건…”

       

       “거기에 저번의 눈보라 때문에 굶주렸을 녀석들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는 건…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기고 있다는 거겠죠.”

       

       “그렇군… ”

       

       

       단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설산을 바라보았다. 

       고고하게 솟은 설산의 정상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ㅡ

       

       

       발걸음을 재촉하던 그때, 설산의 정상 부근에서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

       

       

       온 세상이 뒤흔들리는 듯 거대한 괴성.

       

       

       “큭!”

       

       “내, 내 귀!”

       

       

       정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전사들과 성기사들은 일제히 귀를 막고 휘청거렸다. 머릿속을 울리는 거대한 괴성이 뇌를 뒤흔들었다.

       전설 속에 나오는 용의 괴성이 이러할까?

       

       

       삐이이ㅡ

       

       

       단장은 이명이 들리는 귀를 막고 비틀거리다가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다들 정신 차려라! 정신 차려!”

       

       

       단장의 고함에 비틀거리며 주저앉은 성기사와 전사들이 이내 똑바로 섰다. 프리가는 입술을 잘게 씹으며 정상을 바라봤다.

       

       

       “젠장… 도대체 이게 뭔 거지 같은…”

       

       

       흔적도 없는 마수들. 정상부근에서 들리는 괴성과 거대한 불꽃. 프리가의 머릿속에서 불길한 신호라며 연신 경종을 울려댔다.

       프리가는 의도적으로 그 신호를 무시하며, 전사들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야, 머저리들! 지금부터 저 거지 같은 소리가 들린 곳에 갈 건데, 오기 싫은 새끼들은 안 와도 된다! 아마 오면 뭐가 있을지는 몰라도, 팔 한 짝 정도는 두고 와야될 것 같으니까! 겁나는 새끼들은 지금 여기서 말해라!”

       

       

       멀뚱멀뚱 프리가의 말을 듣던 북부 전사들이 피식피식 웃었다.

       

       

       “거, 내가 평소에 팔 한쪽 들기 무거워하는 거 어떻게 알았수?”

       

       “병신, 내가 잘라준다니깐.”

       

       “하하, 대장. 그건 됐고 술 한 병만 먹고 갑시다!”

       

       

       프리가는 머저리들의 말을 듣고 씨익 웃었다.

       

       

       “하여튼 등신 새끼들.”

       

       “거, 말이 좀 심하네.”

       

       “넌 조용히 해. 눈도 한 짝 밖에 없는 게.”

       

       “끄응…”

       

       

       성기사들을 다독이던 단장이 프리가에게 다가왔다.

       

       

       “공녀님. 저희 성기사들은 모두 준비됐습니다.”

       

       “그래? 우리 쪽 바보들도 전부 준비됐어. 어서 가자고!”

       

       

       단장과 프리가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정상을 향해서, 빠르게 올라갔다.

       

       

       

       –

       

       

       

       후욱ㅡ후읍ㅡ

       

       

       쉴 새 없이 눈을 박차고 정상을 향해 달린 성기사와 전사들. 빠르게 달린 탓에 괴성이 들린 곳에서 가까운 넓찍한 공터에 도착했다.

       

       

       “후우ㅡ 여기서 잠깐 쉬고 올라갈까?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하ㅡ하아. 예, 여기서 잠깐 쉬고 가죠.”

       

       “그래. 야ㅡ! 여기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올라간다! 물 마시고 숨 좀 돌려!”

       

       

       프리가의 말에 여기저기 주저앉아 숨을 고르는 일행들. 물을 마시며 거친 숨을 달랜다.

       케니스도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숨을 내쉬었다.

       

       

       후우ㅡ

       

       

       ‘물 마셔야겠다.’

       

       

       케니스는 허리춤에서 물병을 꺼내 마시려다가, 무언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을 눈치챘다.

       

       

       ㅡ쩌적

       

       

       ’…어?’

       

       

       무언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

       

       

       ㅡ쩌저저적!

       

       

       단단한 얼음이 강제로 쪼개지면서 나는 소리가.

       

       

       ㅡ콰지지직!!

       

       

       그들의 발밑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다들 올라가라! 여기서 피해!”

       

       “어물쩍거리지 말고 빨리 도망가! 갈라진다!!”

       

       

       단단한 땅에 거미줄처럼 금이 가면서 들썩거린다. 두꺼운 얼음들이 땅을 거스르며 솟아오르고, 쉴 새 없이 갈라지고 쪼개진다.

       

       

       ㅡ콰아아앙!

       

       

       거대한 뿔이 땅을 뚫고 솟아오르고.

       

       

       ㅡ콰직!

       

       

       파랗게 불타오르는 뼈의 발톱이 땅을 꿰뚫고, 그 거대한 몸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서서히 땅에서 솟구쳐 오르는 거대한 무언가. 죽음이 형상화된다면 이런 모습일까?

       

       

       “시,시발… 저게 도대체 뭐야…”

       

       

       프리가는 두려움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푸른 귀화가 타오르는 거대한 용. 

       뼈로 이루어진 거대한 괴수가 일행을 똑바로 내려다보았다.

       

       

       ——————!!!

       

       

       이윽고 지축을 뒤흔드는 괴성이 괴물의 아가리를 타고 터져나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나 어색한 부분에 대한 지적은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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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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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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