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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

       “그럼 현실에서 무술을 배우신 건가요?”

       “무얼. 본인은 천마일세. 하늘 아래에 있는 대개의 무공은 사용할 수 있다 말해두지.”

       

       – 왜 이 말은 컨셉 같지가 않지?

       – 보여 준 게 너무 많아서 진짜로 그럴 것 같다.

       – 천마펀치!천마펀치!천마펀치!천마펀치!

       – 저런 식으로 말하는 거 보면 다른 무협 게임 랭커인 듯?

       

       이후로도 여러 개의 질문이 이어졌고 그 동안 화령의 태도는 한결 같았다.

       

       대부분의 질문에는 정성껏 대답을 해주지만 현실과 관련된 내용에 있어서는 단호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단서조차 제공해주지 않았다.

       

       덕분에 화령의 정체를 어떻게든 캐내고자 하는 이들이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그 채팅을 본 화령은 비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미안하구나. 이래 뵈도 내가 수줍음이 많은 여자라 말이다.”

       

       화령은 흔들리지 않았다.

       

       욕을 듣건. 비난을 듣건. 뭐를 듣건. 그녀는 그저 무덤덤하게 반응할 뿐이었다.

       

       덕분에 시청자 사이에서는 화령이 방송을 하는 데 익숙한 직업을 가지고 있을 거란 추측이 신빙성을 얻었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이 흘렀을 무렵 엔리가 진행하는 인터뷰가 끝을 맞이했다.

       

       여러 질문이 오간 것치고 제대로 밝혀진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대개는 이전에 유저들끼리 추측하던 내용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그나마 새로이 밝혀진 점이라면 화령이 흔히 말하는 무틀딱이었단 것일까.

       

       – 천마님. 왜 무협에선 운기 조식만하고 중식이랑 석식은 안 해요?

       

       “지금 진담으로 말한 것이냐? 그대는 조식이 정말 그 조식이라 생각하는 게야? 진실로?”

       

       무협 관련 방송에 흔히 나오는 드립 중 하나였지만 그걸 읽은 화령의 반응은 격했다.

       

       기가 차다는 듯 한소리를 내뱉곤 미간을 찌푸리며 곰방대를 무는 그녀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어두운 마음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인터뷰 후반 무렵 채팅창에는 온갖 개드립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은강불괴니, 화산의 파이어볼이니, 남궁에선 제우스에게 기도를 올리니 뭐니.

       

       거기에 일일이 대응을 하던 화령이었으나 슬슬 뇌절이 되겠다 싶었던 엔리가 만류하자 애써 채팅창을 무시하는 척 했다.

       

       허나 개소리가 올라올 때마다 눈썹이 들썩이는 걸 감추지는 못했다.

       

       인터뷰 내내 당당하던 화령이 투정을 부리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천마 캐릭터 뒤에 숨겨진 귀여움을 느꼈다.

       

       “자. 인터뷰는 여기까지하고 본 컨텐츠로 들어가 볼까요?

       

       원래 초대석에선 랭크 게임을 하며 캐릭터에 대한 여러 팁을 듣습니다만 오늘은 내용이 좀 달라요.

       

       화령 씨가 혼자서 외신을 잡으러 간다고 하셨거든요.“

       

       – ㄹㅇ?

       – 저번에 졌으면서 또?

       – 그걸 어떻게 혼자 잡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네.

       – 근데 이 사람이면 될 것 같지 않음?

       – 지랄 ㄴ. 즉사 패턴은 어쩌고.

       

       채팅창에 불신이 가득 찼다.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었으니까.

       

       당장 그 말을 듣던 인석도 엔리가 농담을 했겠거니 생각했다.

       

       그는 이전에 아는 지인들과 외신을 잡으려 했던 적이 있었다.

       

       제대로 해보자며 연차까지 써가며 했던 도전이었지만 그들의 용기는 객기가 되었다. 외신 레이드는 3일에 걸친 시도 끝에 처참히 실패했다.

       

       12명이 레이드를 했음에도 그 꼴이 났는데 한 사람이 외신을 상대해서 이긴다니. 아무리 잘해도 무리지.

       

       방송이 여러모로 혼란스러워졌지만 엔리는 그런데 조금도 휘둘리지 않았다.

       

       “농담 아니에요. 화령 씨의 플레이를 설명해 줄 사람이 필요해서 데케이님까지 데려 왔는걸요. 그쵸. 데케이님?”

       “안녕하세요. 여러분. 데케이입니다. 오늘 해설하러 왔습니다.”

       

       지난 번 화령과 악연을 쌓았던 데케이가 방송에 출현하자 시청자들도 방금 엔리가 꺼낸 말이 농담이 아니란 걸 눈치 챘다. 

       

       “자. 그럼 아피스를 켜 볼까요!”

       

       *

       

       “채팅창이 난리네요.”

       

       외신을 불러낼 준비를 끝마친 엔리가 입을 열었다.

       

       “무슨 상관인가. 저들이 무어라 하든 일어날 일은 바뀌지 않을 터인데.”

       “화령 씨. 자신 있어요?”

       “그대도 본인이 실패하리라 생각하는가?”

       “아뇨! 당연히 전 화령 씨를 믿죠! 그렇지만.”

       

       당황했는지 마구잡이로 손을 내젓는 엔리의 모습에 실소가 새 나왔다. 그제야 자신이 놀림받았단 걸 깨달았는지 엔리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걱정 말거라. 여러모로 상대를 해보았으니.”

       “그렇죠?”

       “머릿속으로 말이다.”

       “…네?”

       

       그 날 저 검은 것에게 패한 이후로 나는 계속해서 검은 것과의 싸움을 상상했다.

       

       뇌에서 벌어진 대전의 횟수는 가히 수백에 달했기에. 이젠 검은 것을 떠올리면 반갑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 되었다.

       

       검은 것을 이기기 위한 준비는 오래 전에 끝나 있었다.

       

       “정말 믿어도 되는 거 맞죠?”

       “그럼. 물론이지.”

       “이제 소환할 테니까. 꼭 이겨야 해요?”

       

       엔리의 입에서 불길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콰앙!

       

       그와 동시에 벽에 금이 가기 시작하며 검은 기운들이 흘러 나왔다.

       

       오는가.

       

       내 여러모로 검은 것에 관해 알아보며 알게 된 것이다만 내가 첫 만남에서 느꼈던 감정은 모두 다 만들어진 것이었다.

       

       VR기계가 뇌에다 직접 감정을 새기는 식이었다지. 전혀 공포를 느낄 상황이 아님에도 두려움을 느끼도록.

       

       내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정교한 사술인 셈이었다. 현대의 기술이라는 것은 참으로 놀라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어느새 벽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검은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눈을 본 순간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 느껴졌다.

       

       거짓된 감정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이 공포에 유쾌함을 느끼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이런 부분에 한해서 난 확실히 정신이 나간 인간이었으니까.

       

       “오랜만이구나. 잘 지냈느냐? 저 벽 안은 살기에 쾌적해보이지는 않는다만.”

       

       한 번이나마 내게 패배를 안겨준 이였기에 반갑게 인사를 했으나 검은 것은 입으로 답을 돌려주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촉수를 움직임으로서 반가움을 표할 뿐.

       

       아무래도 저 입은 숨결을 내뿜을 때 밖에 쓰이지 않는 모양이구나.

       

       가뿐하게 촉수를 피하며 흙먼지 사이로 검은 것을 바라보았다.

       

       지난 번 패배를 복기하며 가장 거슬렸던 것은 역시 검은 것의 숨결이었다.

       

       그것을 상쇄하려면 내 전력을 다해야 하는데. 그 이후에 기다리는 것은 패배 뿐이니 말이다.

       

       위협적인 것은 숨결 하나 뿐인데 그 숨결 하나가 승리로 가는 길목을 틀어막고 있는 셈이었다.

       

       때로는 다양한 무공보다 하나의 절기가 더 효율적일 때가 있음을 안다만 이건 좀 심하지 않느냐.

       

       어떻게 하면 숨결을 파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나는 한 가지 방안을 떠올렸다.

       

       숨결이 문제가 된다면 애초에 숨결을 쓰지 못하게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

       

       “저게 나랑 똑같은 인간이란 게 믿기지가 않네요.”

       

       오랜만에 보는 화령은 여전히 압도적인 무력을 뽐냈다.

       

       외신의 촉수 중 그 어떤 것도 화령의 몸에 닿지 못했고. 외신이 휘두르는 주먹이나 발길질도 흙먼지만을 일으킬 뿐이었다.

       

       “해설. 기껏 불러왔는데 감탄만 하고 있으면 어떡해요.”

       “죄송합니다. 화령님을 보다 보면 넋이 나가서.”

       

       엔리의 타박에 데케이가 헛기침을 했다.

       

       그치만 아피스 유저로서 저런 광경을 보고 어찌 빠져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도 봐라. 살짝 몸을 틀어서 연속으로 날아오는 촉수를 스치듯 피하는 모습을. 

       

       흙먼지 속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모습은 천마의 호칭이 자칭에서 타칭이 될 정도로 멋졌다.

       

       “빨리 왜 넋이 나갔는지 설명해 주세요. 전 지금 멋있다는 거 말고는 하나도 이해 못 했단 말이에요!”

       “그거만 이해했으면 충분하죠.”

       “저기요.”

       “농담입니다. 엔리 씨. 외신을 상대해보신 적 있나요?”

       “뉴비 시절에 농락당한 적은 있어요.”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이라는 소리는 그만큼 인성이 파탄난 자들이 많이 모인다는 소리였다.

       

       개 중에는 자기보다 약한 뉴비를 골리며 그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즐기는 사람도 존재했다.

       

       과거 엔리는 막 아피스에 발을 들였을 무렵 그런 녀석에게 걸린 적이 있었다.

       

       그는 일부러 엔리를 가지고 놀다가 기어코 외신까지 소환해서 엔리를 괴롭혔다.

       

       처음 외신을 본 그 날 엔리는 바닥에 주저 앉아 눈물을 터트렸다. 오죽 무서웠으면 그날 밤에 잠을 못 이루다 악몽까지 꿨을까.

       

       “공략해본 적은 없겠네요?”

       “당연하죠. 보기만 해도 무서운데 저걸 어떻게 잡아요.”

       “아마 대부분의 시청자들도 비슷하실 거에요. 외신을 잡을 생각을 해 본 분은 없겠죠. 그러니까 제가 외신의 스펙에 대해 설명을 해드릴 게요.”

       

       이전에 공략을 하던 당시 지겹도록 들었던 것이기에 시간이 꽤 많이 흐른 지금도 데케이의 말엔 망설임이 없었다.

       

       “일단 공격의 종류는 많지 않습니다. 먼저 저 촉수를 이용한 공격. 이게 주력입니다.”

       

       찌르고. 휘두르고. 묶으려 들고. 가끔은 페이크까지 넣어가며 사람을 괴롭힌다.

       

       데미지도 강해서 스치면 빈사. 제대로 맞으면 사망이다.

       

       촉수의 숫자가 수십에 달하는 데 그 중 하나라도 시선에서 놓치는 순간 그대로 죽는 셈이었다.

       

       화령이 하는 걸 보면 피하는 게 어렵지 않아 보이지만 저걸 눈앞에서 보면 느낌이 다르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보이질 않거든. 촉수의 전조를 파악해야 겨우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다.

       

       “가끔가다 하는 주먹질이나 발길질은 반갑죠. 그건 보고 피하는 게 가능하니까.”

       

       다만 조금이라도 망설이면 그대로 여파에 휘말려서 죽는다.

       

       외신이 모션을 취하자마자 죽어라 달려야 공격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화령이 하는 것처럼 가뿐하게 피하곤 굳은 외신의 몸에 달려들어 공격하는 건 불가능하단 소리다.

       

       “제일 악질인건 체력이 50퍼센트 이하로 떨어졌을 때 나오는 즉사기에요.”

       

       외신의 브레스.

       

       이건 어떻게 대처할 방법이 없다.

       

       공략 인원들은 산개시켜서 피해를 한 명으로 줄이는 게 그나마 최선의 행동이었다.

       

       화령처럼 주먹을 휘둘러서 브레스를 상쇄시키는 건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방어력은 더럽게 높고 체력도 많아서 최선을 다해 때려도 잡는데 삼십분 가까운 시간이 걸려요. 그런데 3분 마다 즉사기가 날아오죠.”

       “그걸 어떻게 깨요?”

       “프로급 실력을 가진 사람 12명을 모아서 시간을 들이박다 보면 운 좋을 때 깰 수 있어요.”

       

       현역에서 뛸 수 있을 만한 사람 12명을 모아도 그 꼴이 나는데 혼자서 공략을 한다? 불가능한 이야기다.

       

       개인의 실력이 엄청나게 좋아서 외신의 모든 공격을 피하고 때린다 한들 결국 즉사기 앞에 가로 막힌다.

       

       지난 번 화령도 즉사기를 한 번 막아내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그 주먹 한 번에 힘을 다 써버려서 패하지 않았는가.

       

       “화령님 본인도 알겠죠. 즉사기를 어떻게 못 하면 진다는 걸요. 궁금하네요. 어떤 대응책이 존재하기에 이런 컨텐츠를 제안하신 건지.”

       

       전투의 양상은 지난번과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여태까지 단 한번도 외신이 바닥을 구르지 않았다는 것일까.

       

       화령은 의도적으로 힘을 조절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기의 배분을 신경쓰시는 모양이네요. 즉사기를 한 번 막아낸 후에도 여력을 남기시려 그러는 걸까요.”

       

       그걸로는 안 될 텐데.

       

       천마의 내기는 계속해서 회복되겠지만 그 속도에는 한계가 있다.

       

       한번의 즉사기를 막아내고. 그 다음 것을 또 막아낸다고 쳐도 세 번째는. 네 번째는 어찌한단 말인가.

       

       지난번처럼 즉사기를 상쇄할 생각이라면 화령은 결국 패배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십 분 가량 전투가 이어지던 중 외신이 입을 벌렸다.

       

       즉사기의 발동.

       

       그 전조를 보자마자 화령이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외신은 그걸 보고 가만있지 않았다. 외신의 뒤에 있는 촉수들이 모두 쏘아지며 화령을 막아서려고 했다.

       

       쏘아지는 촉수들 사이에서도 화령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얼핏 보면 자살행위처럼 보이는 행동이었지만 달랐다.

       

       그 어떤 촉수도 화령에게 닿지 않은 것이다.

       

       그 광경을 마치 촉수들이 화령을 알아서 피해가는 것처럼 보였다.

       

       “데미지를 박아서 패턴을 끊을 생각인 걸까요.”

       “맞네요. 그럼 되잖아요! 즉사기를 막을 수 없다면 못 쓰게 만들면 되죠!”

       “안 돼요.”

       

       엔리의 들뜬 목소리에 데케이가 찬물을 끼얹었다.

       

       “즉사기 패턴은 아무리 큰 데미지를 넣어도 취소되지 않아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읽으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성 기준으로 19금을 필터링하면 이 작품이 in100안에 드네요!
    작은 기쁨이지만 기쁜 건 기쁜 거니까요.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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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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