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2

        

         막대한 존엄성 문제와 수상함이 얽힌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용병들과 나를 상대로 브로커가 세부적인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크흠…. 목표는 보다시피 옐로우 섹터, 통칭 밑 동네-빈민가-에 자리잡은 마약 조직 페인킬러(Painkiller)의 보스 더스크를 생포하는 임무일세. 정확히는 생포 후, 놈의 머리에 박힌 저장공간으로부터 빼낸 약물 데이터가 우리 의뢰주님의 관심사라고 해야겠군.”

         

         “”…….””

         

         “어… 음….”

         

         초조한 시선이 오고 간다.

         일당백도 우스워 보이는 오멘까지 눈에 쌍심지를 켠 걸 보면 부족한 설명이 많은 모양인데… 하베스트 플래닛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나로서는 주된 문제점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래…… 페인킬러는 꽤 오래된 골칫거리였지. 그만큼 이룬 세력도 강성하고. 그런데 설마… 우리 넷으로 조직 전체와 전쟁을 벌이라는 건 아니겠지? 응?”

         

         대표로 나선 호레이쇼의 질문에 브로커가 손사래를 쳤다.

         

         “…설명이 부족했네, 미안하군. 이 의뢰를 나눠가진 타 브로커들이 고용한 용병 팀이, 오늘밤 10시에 본격적으로 전쟁을 시작할 거다. 내가 꾸려 오기로 한 팀, 그러니까 너희들이 탈취할 데이터가 핵심일 뿐이지.”

         

         “……알기 쉽군. 그럼 우리는 더스크 새끼를 찢어 놓고, 아이보리를 그 앞까지 안전하게 데려가면 된다는 거군.”

         

         조용히 일어선 인간병기가 손마디를 우두둑 꺾으며 살기등등하게 내용을 간추렸다.

         

         결국 이 팀의 해커. 즉, 나에게 배정된 일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을 동료 뒤만 믿고 얌전히 따라다니다가, 무려 생포된 적의 보스에게서 정보를 무사히 빼낸 다음 살아 돌아와서 파라다이스 사에 제출하기.

         

         ……씨발, 행여나 이런 지랄맞은 현장임무가 걸릴까봐 일부러 전투 인원이 빵빵한 의뢰를 고른 건데 아주 제대로 엿을 먹었다. 생명수당에 전문기술까지 요구하면서 보수는 겨우 천만 크레딧이라니? 메가 코프 이 새끼들의 지출절감 능력은 알아줘야 한다.

         

         “시 경찰이 주변을 통제할 테니, 민간피해는 전혀 걱정할 필요도 없네. 작전구역 안에 있는 건 오직 고용된 용병들과 페인킬러 조직원들뿐일걸세.”

         

         설명을 끝마친 그는 펼쳐 둔 노트북을 덮고 짐을 챙겼다.

         한데 덧붙여진 설명에서는 나도 이상한 점을 느꼈다. 전투경찰이 주변을 통제한다고 민간피해가 없을 수가 있나…? 어떻게?

         

         비슷한 의문점을 느낀 듯, 호레이쇼가 방을 나가는 브로커를 추궁했다.

         

         “…어이. 밑 동네 한복판을 뒤집어 놓는 싸움인 데다, 거기엔 약에 쩔은 애들도 널려 있을 텐데…. 민간피해가 전혀 없을 거라고?”

         

         딸깍….

         

         나가기 직전에 문고리를 잡은 채로 그는 단언했다.

         

         “……파라다이스 사는 비공식적으로. 옐로우 등급 및 하위 그린 등급 시민권자에게는 도시에서 살 권리만 있을 뿐, 일신의 안전이나 사유재산의 보호까지 시스템이 책임질 이유는 없다고 전해왔네. …오히려 마약의 실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몰래 몇 명 잡아와도 된다고 하더군. 그러니… 혹시 추가 보수가 필요하다면….”

         

         쨍그랑!!

         

         있는 힘껏 던져진 빈 병이 문에 맞아서 산산조각 났다.

         

         “꺼져…! 나가는 길에 룸서비스도 불러서 쓰레기도 치우고…!!”

         

         “……실언이었군.”

         

         험악해질대로 험악해진 공기를 느낀 브로커는 고개를 숙여버리고 재빨리 모습을 감췄다.

         

         기업은 정부를 대신했지만, 모든 역할을 이어받지는 않았다. 케이크를 멋대로 잘라먹듯 달콤한 부위만 취하고 맛없는 토핑과 베이스는 여기저기 흩뿌려 놨다.

         한낱 게임의 설정이라고 외면하기엔… 과거 스토리 진행중에 들었던 파라다이스 회장의 말이 귓가를 계속 맴돌았다.

         

         

         크레딧이 없으면 손님이 아니고, 손님이 아니면 인간이 아니다.

         

         

         “…좋은 기회라고 여겨라, 데어데블. 썩은 부위를 도려내는데 모두가 무사하길 바라는 건 욕심이다.”

         “…닉네임이 울겠다. 언제는 니가 그런 걸 따졌다고….”

         

         고개 숙인 호레이쇼의 어깨를 툭툭 친 오멘과 도미노도 나를 힐끔거리고는 방을 빠져나갔다.

         

         ……어라? 어쩌다 나랑 얘 둘만 남았지…?

         

         심지어 마지막 그 시선은 뭔가 위로를 부탁하는 것 같았는데, 나는 그런 걸 할 줄 모른다. 도움받은 게 있으니 어떻게 챙겨주고 싶기는 한데… 뭐 어디 데려가서 술이라도 들이부어야 하나? 임무 시작시간을 고려하면 그건 무리인데…?

         

         “…….”

         

         “…아?”

         

         따스한 온기를 갈구하듯 호레이쇼의 두 팔이 나를 향해 뻗어졌다.

         강한 비바람에 정처없이 흔들리는 조각배,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용병의 상태에 요동치던 내 마음도 각오를 다졌다. …그래, 이런 때 타인의 존재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많이 겪어보지 않았나? 조금… 빈약한 이 가슴팍이라도 빌려줘서 누군가 안심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

         

         찰싹!!

         

         “으헉?!”

         

         삐죽한 모히칸을 피해서 정수리를 후려친다.

         숙인 호레이쇼의 머리를 끌어안아 주려고 했는데… 최후의 순간에 그의 입가에 걸린 썩은 미소를 봐 버렸다. 미친 새끼…!!

         

         “씨발! 너는 머리속에 그런 생각밖에 없냐?! 사람이 은혜 좀 갚아주려고 했더니 무슨 연기를 하는 거야!”

         

         “…으하하하핫!! 역시 아이보리 누님에게는 못 당하겠네! 철벽이셔 아주!”

         

         씩씩거리면서 변태로부터 물러나 안전거리를 확보했다.

         손바닥 자국 난 머리를 부여잡고 폭소하는 그가 너무 꼴 보기 싫었다. 단순히 음습한 욕망이 싫어서 가 아니라, 진짜로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데 그걸 모면하려고 수를 쓴 것 같아서 더더욱 짜증났다.

         

         “…빈민가 출신이야? 옐로우 등급?”

         

         “……뭐 흔한 일이지. 세상 무서운 줄 좆도 모르는 꼬마들이 잔뜩 뭉쳐서,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아보겠다고 크레딧만 뒤쫓는 거. 옛날에는 족히 오십 명은 넘었는데… 이제는 셋만 남았네.”

         

         …아무런 돈도, 아무런 뒷배도 없던 어린애 50명 중 셋이 그럴싸한 용병이 되었다면 세간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박수를 칠 것이다.

         하지만 호레이쇼의 입가에 걸린 쓴웃음을 본 나는 그들의 성공보다는 도중에 겪었을 슬픔이 연상되어서 가슴이 욱신거렸다.

         

         “아무튼…! 그래서 난 누님이 존나 마음에 들었어! 내 방화벽을 그냥 무시해버린 솜씨도 솜씨지만…. 크레딧의 중요함을 알면서도 전혀 잡아 먹히지 않은 고고함! 다가온 상대를 경계하면서도 염려하는 그 눈빛…!! 너무 눈부신 거 아니야? 응?”

         

         “……그냥 단순히 성욕에 미친 건 아니고?”

         

         갑자기 직구로 들어온 얼토당토않은 칭찬에 얼굴에 열이 확 올랐다.

         …마음대로 사람 평가를 올려 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그냥… 아부다. 음, 아부에 불과하다.

         

         반사적으로 튀어나간 독설에 호레이쇼는 무릎을 팡팡 치면서 웃었다.

         

         “푸하핫!! 누님! 나는 성욕에 미친 게 아니라, 운명에 미친 거야!”

         

         “……운명?”

         

         “그래! 운명…!!”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나와 눈을 맞췄다.

         

         “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정, 세상만사가 화학작용의 결과라지만…. 난 그것보다 더한 게 존재하기 때문에 나나 도미노나 오멘이 살아남았다고 믿어. 봐…! 기어이 페인킬러 새끼들을 쳐죽이는 날이 왔는데. 우연히 누님과 어제 마주쳤고, 우연히 이 의뢰를 같이하게 됐다고…?”

         

         “…….”

         

         당장 몸에서 전기신호를 방출해서 먹고사는 나에게, 세상의 진리를 부정해도 딱히 할 말은 없었다.

         그렇지만 사이비 종교와는 조금 다른 그의 믿음은… 나 또한 최근에 체감한 적이 있다. …하긴 과학을 넘어선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내가 이런 미래세계에서 살아 있을까.

         

         “그러니까… 아이보리 누님!”

         

         “…왜?”

         

         호레이쇼는 다짜고짜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손을 내밀었다.

         

         “부디 이 데어데블 호레이쇼와 결혼해주세…!!”

         

         파지지지지직—!!

         

         “당장 꺼져버려!!”

         

         내밀어진 손을 붙잡고, 신호방출이나 해킹이 아니라 순수하게 모든 힘을 집중해서 이 희대의 변태를 감전시켰다.

         

         전기계통 공격에 나름 대비를 해 놨는지, 감전된 상태로도 헤실헤실 웃으며 손이 부드러우면서도 짜릿하다고 소감을 말하는 양배추를 열심히 발로 걷어찼다.

         브로커의 전력을 다한 발버둥질에도 끄떡도 않던 인간이 내 매질에는 엄살을 부리는데… 아주 괘씸해 죽겠다. 이런 약한 폭력으로는 이 괴상한 인연을 끊기 힘든 모양이다.

         

         

         

         “…저기, 죄송합니다…. 방 청소를 하러 왔는데 혹시 그런 플레이 중이시라면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음…! 호텔리어 아가씨, 지금 누님과 나는 뜨거운 시간을 보내는 와중이라… 클리닝 서비스는 뒤로 미루지!”

         “?! 오해에요!! 이 쓰레기도 빨리 좀 치워주세요!”

         

         기어이 종업원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행위를 발각된 나는 호레이쇼를 내팽개쳐 두고 내 방으로 도망쳤다.

         

         …임무 시작까지 6시간. 세부적인 지시사항과 수칙을 외우기엔 차고 넘치는 시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batch 님 50코인…!
    Jack Pen 님 30코인…!
    아우쿠소 님 100코인 후원에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그… 필사적인 연참이 모두의 마음에 드셨다면 좋겠습니다. 사실 내용적으로 보면 한 편이나 다름없지만….
    불민한 작가를 욕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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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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