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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

       천마신교의 근거지, 십만대산.

         

        교주가 돌아왔다.

         

        장로들은 백연영에게 보고를 올렸다.

         

        내용은 평소와 다를 거 없었다.

         

        침입자가 있었는지, 신도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세는 또 어떤지.

         

        백연영의 측근을 제외한 그 누구도 그녀가 외출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그녀는 평소와 같은 무표정을 유지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지루한 이야기뿐이었다.

         

        그녀는 어느샌가 천장의 무늬를 보고 있었다.

         

        수많은 용을 수놓은 듯한 화려한 무늬들.

         

        저기는 삐뚤어져 있네.

         

        괜히 어긋난 부분을 발견해 신경이 쓰인 백연영이었지만, 저 모습이 어쩐지 아까 보았던 도마뱀과 닮아 기분이 좋아졌다.

         

        “이상으로 보고를 마칩니다.”

         

        장로들의 보고가 끝났다.

       

        “그래.”

         

        장로들이 모두 퇴실한 후, 호법들의 개인적인 보고가 이어졌다.

         

        좌호법이 눈치를 살살 보는 것만 빼면 이 역시 특별한 일은 없었다.

         

        어쩐 일인지, 호법들도 빠르게 물러갔다.

         

        그녀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이제 백연영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하품을 잠깐 한 그녀는 기지개를 켰다.

         

        “흐암….”

         

        기지개를 켜면서, 자신과 똑 닮은 눈동자를 보고 말았다.

         

        “…놀랐구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까 하지. 왜 아직 남아 있느냐.”

         

        백설화, 천마신교의 신녀가 백연영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제가 어찌 감히 천마신교의 교주께 싫은 소리를 하겠나요?”

         

        백연영은 싫은 소리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신녀가 본인에게 싫은 소리를 하려고 왔구나.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백연영은 골똘히 생각했다.

         

        싫은 소리라, 대체 무엇이 있을까.

         

        지난번에 건시를 훔쳐 먹은 걸 들킨 걸까. 그게 아니면 빙당호로를 몰래 가져간 걸 들킨 걸까.

         

        하도 많이 저질러 이제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래? 그러면 이만 물러 가거라. 이제 좀 쉬고 싶구나.”

        “천마신교의 교주님이 그런 명령을 내리면, 소녀는 따를 수밖에 없답니다.”

         

        신녀는 우아한 자세로 절을 올렸다.

         

        그리고 그 자세 그대로 고개만을 들어 올렸다.

         

        눈빛은 이글이글 타올랐다.

         

        “신녀가 교주께 청하는 것이 아니라, 설화가 연영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사온데, 들으시겠습니까?”

        “듣기 싫다.”

        “들으시겠습니까?

        “듣기 싫대도.”

         

        불길이 거세졌다.

         

        “교주님. 설화가 이르길, 지금이 아니면 두 배로 화를 낼 거랍니다.”

        “그런가.”

        “설화가 연영에게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어차피 그냥은 못 돌려보낸다.

         

        백연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한다.”

         

        스읍.

         

        백설화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안 그래도 커다란 그녀의 흉부가 웅장해졌다.

         

        “야 이 미친 새끼야!”

         

        갈!

         

        평소의 신녀에게서 나올 수 있는 크기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호법들과 교주를 제외하고선, 정말로 신녀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행실을 보여준 백설화였다. 나긋나긋하고 항상 친절하게.

         

        그러나 지금의 모습은 마치 전장에 나온 장수. 화가 잔뜩 난 맹수와 다름없는 모양이었다.

         

        “내가 어디 갈 거면 말하라고 했어, 안 했어?”

         

        고작 이런 일로 유난인가.

         

        “나는 분명 말했다.”

         

        백연영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좌호법, 우호법에게 말하면 뭐 해. 네 눈치 보느라 나한테 숨기려고 하잖아.”

        “신녀의 행실이 얼마나 좋지 않으면 그런 걸 숨기겠나. 둘 다 갸륵한지고.”

        “너, 너….”

         

        실전되었다고 알려지는 전설의 무공, 사자후.

         

        그 무공이 지금 이 순간 백설화의 입으로 재현되고 있었다.

         

        쩌렁쩌렁!

         

        백설화의 음공 같은 잔소리가 이어졌다.

         

        교주가 자리를 비우면 안 되는 이유 101가지와 평소에 잘못 했던 것, 그리고 제일 중요한 옥봉의 꿀을 얼마나 힘들게 구했는지까지.

         

        “허억… 헉….”

         

        초절정의 경지를 이미 한참 전에 넘은 백연영에게도 백설화의 음공 아닌 음공은 꽤나 거슬리는 것이었다.

         

        “…다 끝났느냐?”

         

        그깟 벌꿀 하나 훔쳤다고 뭐가 그리 유난인지.

         

        벌꿀.

         

        백연영은 작은 도마뱀이 벽곡단과 벌꿀을 정신없이 삼키는 모습을 생각하고 작게 미소 지었다. 잠깐 흘린 물건이었지만 다시 주울 수가 없었다.

       

       그리 열심히도 먹고 있는데 어떻게 건들겠나.

         

        “웃음이 나와? …어휴, 됐다. 됐어.”

         

        백설화는 고개를 저었다.

         

        “교주님.”

         

        그렇게 말투가 또 바뀌었다.

         

       이번엔 무슨 기행을 저지르려고 하나.

         

        백연영은 고개를 들어 신녀를 쳐다봤다.

         

        “회의 때 보고드리지 않은 게 하나 있어요.”

        “말하거라.”

        “이곳 십만대산을 향한 이상한 정황이 포착됐어요.”

        “이상한 정황이라.”

        “그곳에 영물들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몰래 잠입하려는 모양이에요.”

         

        이걸 왜 지금 말하는 걸까.

         

        그걸 따진다면 ‘교주가 자리를 비워서 개인적으로 말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겠죠?’라는 말과 함께 사자후가 날아들 거 같았다.

         

        “몰래 잠입한다는 건 전면전은 아니겠구나.”

        “일단은 말이에요. 오대세가나 구파일방이 명분 없이 쳐들어오진 않을 테니까요. 그들의 이름을 걸지 않겠죠. 하지만 관심을 아예 두지 않는 것도 아니에요.”

         

        요는, 십만대산을 목적으로 하는 토벌대가 결성되고 있다는 거다.

         

        주동자는 불명. 고고한 척하는 정파들은 관심 없는 척하고 있지만, 각자 소수의 병력을 몰래 붙였다. 그리고 그들이 조만간 십만대산에 침공할 거다.

         

        정확히 말한다면, 목표는 평원에 있는 영물들이고.

         

        백연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라 그래라.”

        “네?”

        “시련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는 법이지.”

         

        백연영은 자신의 손가락 끝을 바라보았다.

         

        자국은 없지만, 누군가가 깨물었던 감촉은 기억한다.

         

        “물론 가지 정도는 쳐줘야겠지만 말이야.”

         

        백연영은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이번에 몰려온 건 그리마 군단이었다.

         

        저 징그러운 생김새에 혐오감이 들었다.

         

        아직 정신이 인간이라는 증거이므로 감사히 여기자.

         

        나를 적으로 인식한 건 다섯 마리뿐이고 나머지 그리마들은 다른 곳으로 기어갔다.

         

        다섯 마리라 하더라도 나보다 수가 많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예전의 나라면 도망쳤겠지.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질주를 활성화.

         

        내 특기는 역시나 속도였다.

         

        이 점을 최대한 활용하자.

         

        안 그래도 빠른 속도에 보법을 더해 놈들이 감히 따라올 수 없을 속도를 내었다.

         

        촤악!

         

        그리고 이어지는 용조수.

         

        용조수란 용의 발톱과 같은 손으로 적을 잡아채는 무공이다.

         

        그리마의 몸체에 내 발톱이 닿았다.

         

        그리고 그 순간.

         

        투둑.

         

        놈의 몸이 반으로 끊어졌다.

         

        확인 사살을 위해 양손을 교차하며 다시 한번 베어냈다.

         

        투두둑.

         

        그리마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개 멋있다.

         

        이게 나?

         

        단 한 번에 저 흉측한 괴물을 죽이다니.

         

        백연영의 경지까지 얼마 남지 않은 게 분명하다.

         

        사실 이렇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내 압도적인 속도에, 하나하나가 살초인 용조수를 사용했기도 했지만 또 다른 부가 요소가 있었다.

         

        그건 바로 내 칭호다.

         

        【칭호】

        「거미에게 사랑받는 자」

        거미목에 속한 동물에게 선공 당하지 않습니다.

        곤충을 상대할시, 근력과 속도에 보정을 받습니다.

         

        곤충을 상대할 시 근력과 속도에 보정을 받는다.

         

        그리마는 엄밀히 따지자면 절지동물이겠지만, 적용이 되는 거 같았다.

         

        고맙다, 네필라 쥐라시카야.

         

        넌 아낌 없이 주는 아이였구나.

         

        그렇게 한 마리를 처치하니, 다른 네 마리의 그리마가 당황한 듯 보였다.

         

        “치이이익!”

         

        서로 대화하고 있겠지.

         

        덩치도 작은 도마뱀이 어떻게 이런 힘을?

         

        이 정도 뉘앙스가 아니려나.

         

        놈들은 머뭇거렸다.

         

        본래라면 바로 공격 했을 텐데, 내 힘을 경계하는 듯했다.

         

        오히려 내게 악수로 다가왔다.

         

        네 마리의 그리마가 모여 하나의 방진을 이루는 형태가 되었으니까.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겐 더 까다로워진 상황이었다.

         

        양손을 이용해 두 놈을 한 번에 끝장낸다고 해도, 남은 녀석들에게 공격받을 가능성이 컸다.

         

        이럴 때 쓰는 방법이 있지.

         

        긴 꼬리를 펼쳤다.

         

        까딱.

         

        사권의 고수에게 배운 기술.

         

        까딱까딱.

         

        너희 개 약하잖아.

         

        “게게겍.”

         

        그리마 중 하나가 격분하며 덤벼들었다.

         

        “치에에엑!”

         

        단순한 녀석.

         

        오른손으로 그리마의 몸통을 잡았다.

         

        그린 바실리스크류 용조수, 제3식.

         

        쫘아아악!

         

        반갈죽!

         

        말 그대로 반으로 갈라져서 죽었다.

         

        이제 남은 수는 세 마리다.

         

        방진은 이미 해제된 지 오래였다.

         

        이제 나만의 용조수 4식과 5식을 완성할 때가 찾아왔다.

         

        “게게겍!”

         

        녹색 거룡의 용맹한 포효를 내며 놈들에게 돌진했다.

         

         

        *

         

         

        【그린 바실리스크 LV8】

        HP:80/80

        MP:30/30

        【칭호】

        「거미에게 사랑받는 자」

         

        몰려오는 적들을 사냥하며 힘을 착실히 키워 나갔다. 남는 시간엔 벽화 위에 올라가 운기조식을 했고 아직 배우지 못한 무공들을 훑어봤다.

         

        땡기는 무공은 없었지만, 그래도 봐두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인 거 같다.

         

        나만 무공을 사용한다는 보장이 없었으니까.

         

        꼭 인간형이 아니더라도 무공을 사용하는 동물이 나올 수도 있다는 거다.

         

        왜, 티타노보아의 새끼도 뱀치고 이상한 공격을 하지 않았나.

         

        놈의 부모도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무공들을 열심히 살펴봤는데, 아직도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었다.

         

        벽화 옆에 있는 흔적.

         

        검흔이라고 불러야 할까.

         

        알 수 없는 흔적들이 놓여 있었다.

         

        눈치껏 보자면, 무공과 관련이 있는 것일 거다.

         

        마음만 같아선 저게 무엇인지 깨달을 때까지 이 자리에서 운기조식을 하고 싶었지만, 그건 또 불가능했다.

         

        일단 그리마들과 거미조무사들을 사냥하고 다니면서 깨달은 게 몇 가지 있었다.

         

        은룡굴.

         

        이 동굴은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든 장소고 이 안에는 수많은 짐승과 벌레가 들어 있다는 거다.

         

        놈들 중 우두머리는 바로 백연영이 처리한 티타노보아였고.

         

        그 우두머리가 죽은 순간, 이 짐승들이 할 건 단 하나였다.

         

        은룡굴의 주인이 누구인지 정하는 것.

         

        진짜 박터지게 싸워댔다.

         

        서로 중립을 유지하던 벌레들도 마구잡이로 싸웠다.

         

        몰래 지켜보고 있다가 한 마리씩 잡는 게 쏠쏠하긴 했지.

         

        싸움에 미쳐버린 이 은룡굴.

         

        그리고 난 가녀린 도마뱀 한 마리.

         

        그렇다고 모두가 호전적인 건 아니었다.

         

        마침 내 밑을 지나가는 지네 한 마리가 보였다.

         

        “치이익.”

         

        일부러 소리를 내는 걸 보면 날 발견하고 인사를 하는 듯했다.

         

        “겍겍.”

         

        안녕하세요, 지네 씨.

         

        “치익.”

        “게겍.”

         

        오늘 하루 소득이 좀 있나요?

         

        내 홀쭉한 배를 톡톡 건드렸다.

         

        지네는 멀리서 갸우뚱거리더니, 이내 가까이 다가와 한 손에 잡고 있던 작은 귀뚜라미를 땅에 놓고 갔다.

         

        “게게겍!”

         

        역시 친절하셔.

         

        이 지네는 뭐라고 해야 할까, 좀 착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날 공격하지 않았다.

         

        그리마의 체액을 뒤집어쓰고 있어서 쫄은 건지 모르겠지만, 공격하지 않으면 장땡인 거다.

         

        그리마를 아무리 많이 사냥해도 난 차마 그것들을 먹을 수 없었다.

         

        내 인간성의 마지노선이 그리마를 먹는 거였다.

         

        그렇게 먹지도 못하는 걸 저 지네에게 양보했더니 이런 관계가 되고 말았다.

         

        귀뚜라미 정도는 미식이지, 미식이야.

         

        “게겍!”

         

        고마워요, 지네 씨.

         

        그렇게 지네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귀뚜라미를 한입 베어 문 순간이었다.

         

        투쾅!

         

        “사아아아악!”

         

        지네가 사라졌다.

         

        땅에서 튀어나온 거대 노래기가 친절한 이웃을 삼켰다.

         

        “게게게겍!”

         

        지네야!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진화하는 도마뱀이 되었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reincarnated as a lizard in a martial arts world. “Roar!” “He’s using the lion’s roar!” “To deflect the Ten-Star Power Plum Blossom Sword Technique! Truly indestructible as they say!” “This is… the Heavenly Demon Overlord Technique! It’s a Heavenly Demon, the Heavenly Demon has appeared!” It seems they’re mistaking me for something 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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