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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

       처음 시작이 순조롭게 시작된 이후, 우리는 몇 개의 가문에 똑같이 작업을 쳤다.

        ​

        제국백, 자작, 남작 등 다양한 이들이 우리에게 정보를 헌납했다. 다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황후 파벌 사람들만 꼬드겼다가는 들킬 위험이 있었기에 다양한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

        “…진짜, 노인네들, 황후가 하는 일엔 척척 돈을 내놓으면서 왜 제게만 이리 엄격한 걸까요.”

        ​

        “고생했다.”

        ​

        오늘도 자선사업(작전과는 별개로 제대로 운영해볼 생각이라고)에 끌어들일 사람들을 만나고 온 마리아가 푹신한 마차 의자에 깊게 기대며 몸을 뉘었다.

        ​

        “이거라도 좀 먹어볼래?”

        ​

        “네?”

        ​

        이번 가문은 딱히 황후와는 상관없는 곳이었기에 작전을 펼치지 않아 시간이 좀 남았었다. 그래서 얌전히 기다리며 사용인들이 내어준 간식을 먹으며 기다렸는데, 그 중 마음에 드는 것들이 좀 있어 몇 개를 챙겨놓았었다.

        ​

        그걸 내어주니 마리아의 눈에 살짝 생기가 돌았다. 딱 저 나이대 여자애들의 반응이었다.

        ​

        이런 걸 보면, 마리아의 나이대를 체감하게 된단 말이지. 평소에는 워낙 진지해서 종종 잊긴 하지만.

        ​

        “좀 특이하더라고. 남부식인 것 같은데, 생각나서 조금 챙겨놨어.”

        ​

        “…고마워요.”

        ​

        냠.

        ​

        마리아는 작게 쿠키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다행히 그녀의 입맛에도 맞는지 한 번 눈을 반짝이고는 순식간에 하나를 다 먹어 치웠다. 그 와중에도 가루 하나 떨어트리지 않고 기품을 지키는 게, 역시 황녀는 황녀다 싶었다.

        ​

        “맛있네요.”

        ​

        “마틸다한테 만들어달라고 하면 나중에 만들어주지 않을까?”

        ​

        지금은 시녀장으로 있긴 하지만, 아직 마리아가 누구도 믿지 못할 때는 온갖 일을 담당해주던 사람이라 그런지 요리 실력도 뛰어났다.

        ​

        마리아도 동감하는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

        마차에는 한동안 마리아가 간식 먹는 소리만이 맴돌았다. 계약을 맺느라 고생한 것 같아 좀 쉴 수 있도록 기다리고 있으니 금방 궁에 도착했다.

        ​

        “어떻게, 오늘은 좀 쉴래?”

        ​

        이미 며칠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이 일을 반복해온 만큼, 나도 나지만 마리아도 많이 지쳤다. 요 며칠 새 계속 달달한 음식을 많이 찾는 것이, 말은 안 해도 수도의 정치꾼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적으로 피곤해하는 걸 알 수 있었다.

        ​

        하지만 마리아는 내 제안에 고개를 저었다.

        ​

        “아뇨, 지금이 딱 좋아요. 머리가 제일 쌩쌩 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

        내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린 그녀는 시녀들과 함께 움직이며 내게 말했다.

        ​

        “있다가 저녁 식사할 때 이야기를 나누죠.”

        ​

        “알았어.”

        ​

        그녀가 방으로 향하는 걸 보고 나는 연무장으로 향했다. 사실 방이 바로 옆에 붙어있으니 같이 움직여도 상관없긴 한데….

        ​

        문제는 마리아가 궁에 도착하면 항상 씻고 옷부터 갈아입는다.

        ​

        무슨 놈의 황궁이 방음도 잘 안돼서 옆방에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다 들리는데,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때 그냥 내 할 일이나 했다.

        ​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라고 해봐야, 주로 단련이었다.

        ​

        “읏차!”

        ​

        적당히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연무장 한켠에 마련된 내 애병을 꺼내 들었다.

        ​

        지난번 욤과의 대련에서 썼던 검과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른, 도축과 사냥에 특화된 모양으로 제작된 검이었다.

        ​

        아니, 검이라고 해야 할까.

        ​

        굳이 따지자면, 이건 태도(太刀)였다.

        ​

        두껍고 단단한 몬스터의 가죽을 파고들기 위한 육중한 검신, 베어내는 것으로는 부족해 근골을 갈아내기 위해 톱날처럼 제작된 칼날, 칼이 박힌 몬스터가 날뛸수록 더 피해를 주기 위해 불규칙하고 거칠게 튀어나온 칼등과 검면까지.

        ​

        만일 장인이 보면 이딴 것도 칼이랍시고 만든 거냐며 욕할 형태지만, 내게는 역시 이게 제일이었다.

        ​

        훙-!

        ​

        마력 없이 근력으로만 검을 휘두르니 바람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근처의 가죽과 천 조각이 팔랑거렸다.

        ​

        “역시, 이 손맛이지.”

        ​

        어디 하나 대칭적이지도 않고 마감도 대충 처리한 것 같은 외형 탓에, 이 검은 무게중심이 굉장히 이상했다. 그 탓에 같은 무게의 검에 비해 휘두르는 데 드는 힘도 훨씬 많았고.

        ​

        하지만, 그건 내가 의도한 것이었다.

        ​

        괴악한 외형과 무게로 유연한 움직임을 다소 희생한 대신, 파괴력만큼은 발군이었다. 무게중심이 이상해 다루기 힘든 대신, 몬스터에게 입히는 피해도 파괴적이었고.

        ​

        한 번 휘두를 때 나는 소리부터가 달랐다.

        ​

        특히 마력을 담아 휘두르면, 더더욱.

        ​

        “흡!”

        ​

        검과 몸에 마력을 두르고, 전력으로 한 번 검을 휘둘렀다.

        ​

        찌지직!

        ​

        무언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허수아비가 갈려 나갔다.

        ​

        역시, 이 맛에 이 번거로운 놈을 쓰는 거다.

        ​

        톱날처럼 생긴 검날과 울퉁불퉁한 검면, 익스퍼트의 검기와 마력을 담은 근력이 합쳐지면, 검신을 타고 흐르는 기류가 이상하게 꼬였다. 여기에 공기가 휘말리는 것만으로도 약간 떨어진 지푸라기 더미가 찢어지는 정도인데, 사람이 걸리면 어떨까.

        ​

        괜히 욤과의 대련에서 마리아가 일반 검을 들고 가라고 한 게 아니다.

        ​

        하지만, 몇 번 검을 휘두르며 약간의 불만이 생기긴 했다.

        ​

        “…씁, 살짝 감이 떨어진 것 같은데.”

        ​

        뭔가, 전보다 검을 휘두르고 나서 차오르는 만족감이 조금 줄어든 것 같았다. 몇 번이고 다양한 자세로 칼을 휘둘렀지만, 완벽한 한 번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

        한참을 검을 휘두르고 나서야 무엇이 부족한지 알 수 있었다.

        ​

        “상대가 없네.”

        ​

        생각해보면, 내가 이렇게 오래 제대로 된 상대도 없이 돌아다닌 적이 거의 없었다.

        ​

        항상 일부러 험한 길로 돌아다니며 몬스터를 찾아다니기도 했고, 정 상대가 없으면 산적을 꾀어내기도 했다.

        ​

        봉건제가 돌아가는 세상인 만큼, 이게 또 은근히 산적이나 유민이 많았다. 나라가 태평한 것과는 별개로, 영주가 누구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는 농노와 농민들의 비애라고나 할까.

        ​

        물론 대부분은 자유시나 이웃 영주의 도시로 도망치긴 했지만, 세상엔 언제나 별종이 있기 마련이었다. 너무 심한 죄를 저지르지 않은 이들은 계도하고, 선을 넘은 이들은 주님이 심판하시는 재판장에 보내다 보면 또 다음 도시가 나오기 마련이었다.

        ​

        하여튼, 이렇게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한 도시에 가만히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는 뜻이었다.

        ​

        ‘마음 같아서는 철십자 기사단과 대련이라도 해보고 싶지만….’

        ​

        아쉽게도 전과는 달리 이들도 이제는 다들 할 일이 있는 직장인이었다. 전처럼 내가 1대1로, 혹은 1 대 다수로 상대하며 훈수를 둘 여유가 없었다.

        ​

        아쉽게도, 지금은 이걸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

        마지막으로 마력을 운용하는 자세를 취하지 않고 순수한 근력만으로 검을 잡고 휘둘렀다. 다리에 힘을 주고 땅에 발을 단단히 디딘 채, 어깨에 반동을 주어 미리 걸쳐둔 검을 띄우고 강하게 팔을 휘둘렀다.

        ​

        일격에 미리 세워둔 허수아비들을 전부 베어버리고 다시 검을 걸어두었다.

        ​

        “이제 슬슬 마리아도 다 씻었겠지?”

        ​

        저녁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나도 씻고 준비해야 했다.

        ​

        -―

        ​

        저녁은 굉장히 간소하게 차려졌다. 보통 이런 자리는 화려하게 차려진다는 편견이 있지만, 황족이나 귀족도 사람인지라 모든 식사가 그렇게 화려하진 않았다.

        ​

        특히 마리아는 음식에 그리 대단한 열정을 갖고 있진 않았다.

        ​

        나야 이 세상의 독특한 음식이면 무엇이 됐든 좋다고 먹었지만, 마리아에게 식사는 딱 제 배를 채우고 굶주림을 면할 정도면 충분한 그런 행위였다.

        ​

        어려서부터 먹을 것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을 갖고 있던 탓이었다.

        ​

        “오늘도 또 검을 휘두르고 온 거예요?”

        ​

        “기사가 매일 검을 휘두르는 건 당연한 거지.”

        ​

        “…흐응, 그렇다는데요.”

        ​

        마리아가 뒤에 기립해 있는 철십자 기사단을 슬쩍 곁눈질했다. 단장 조피가 눈을 돌려 마리아와 눈을 마주치는 걸 피했다.

        ​

        “저희도 단련을 소홀히 하고 있진 않습니다. 빌헬름 경께서 특이하신 겁니다.”

        ​

        “이미 더 경지가 높은 사람이 더 열심히 수련하는데, 대체 언제쯤 따라잡을 생각인 건가요?”

        ​

        “아니, 전하, 저도 나름 익스퍼트입니다….”

        ​

        두 사람은 개인적으로도 친한 건지, 마리아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살짝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

        역시, 단장이 여자인 기사단을 추천해준 건 나름 좋은 선택인 것 같았다.

        ​

        “뭐, 황족 호위를 맡은 사람이 매일같이 단련하고 있으면 그게 오히려 직무유기 아닐까.”

        ​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

        “감사합니다….”

        ​

        마리아의 구박에 시달리던 조피가 내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마리아는 그녀를 보며 살짝 실소를 흘렸다.

        ​

        “풋.”

        ​

        그렇게 웃고 떠들며 식사를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식사가 마무리되어갔다. 마무리로 차가 나오자, 그녀는 조피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조피는 그걸 확인하고 기사들을 움직여 시종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냈다.

        ​

        “그럼, 이제 슬슬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

        “좋아.”

        ​

        시종들이 그릇을 모두 치우고 테이블보까지 전부 갈아놓아 깨끗한 식탁 위로, 마리아가 종이를 펼쳤다. 미리 마법을 걸어둔 종이인지, 펼치기 무섭게 먹이 움직이며 글자를 이뤘다.

        ​

        “그간 총 6개의 가문을 털어서 수집한 정보들을 제 나름대로 정리해봤어요.”

        ​

        글자를 이루고 남는 먹은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움직였다. 그 먹의 원을 종이 위에서 빙빙 굴리며, 마리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

        “황후, 정말 주도면밀하더군요.”

        ​

        그녀는 손가락으로 종이를 툭 찍었다.

        ​

        “처음에는 각각의 가문을 흩어서 보다 더 많은 손님을 받아들이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

        “뭐?”

        ​

        “이 여섯 가문이 맞이한 손님의 목록이 모두 똑같아요.”

        ​

        “…그럼 왜 6가문이나 필요한 거야?”

        ​

        그녀는 내 질문에 손가락으로 가문을 하나씩 가리켰다.

        ​

        “다들 역할이 달라요.”

        ​

        “역할?”

        ​

        마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

        “슈페 제국백은, 대외적인 얼굴마담으로 청탁 넣을 예비 후보들을 선별해 그들을 꼬드겨요. 그럼 튀넨 자작이 실제 의뢰인들을 맞이해 이름을 적고, 그들에게 다음에 찾아갈 사람의 명단을 건네요. 그럼 의뢰인이 브라우 남작가를 찾아가 의뢰 내용을 확인하고. 이런 식으로 단계를 나눠서 여섯 가문의 수장들이 각 절차를 나눠서 청탁을 받아요.”

        ​

        “그렇게 귀찮은 과정을 거치는데도 청탁을 넣는 사람이 있다고?”

        ​

        “중앙의 강력한 귀족 파벌이라는 이름값이 있으니까요. 아바마마께서 직접 나서지 않는 이상, 이들보다 이 방면에서 더 뛰어난 이들은 없어요.”

        ​

        하긴, 그것도 그랬다. 이들이 을의 입장이었다면 대주교를 비롯해 보다 더 쉽고 간편한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귀찮은 작업을 요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

        수요는 있지만 공급이 부족하니 이들이 이렇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

        “이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의 역할을 함구하면서 서로 어떤 정보를 갖고 있는지 비밀에 부쳐왔어요. 보안의 이유도 있지만, 만약 들켰을 때 쉽게 꼬리 자르기 위함도 있겠죠.”

        ​

        “그런데, 이렇게 정보를 파편화해서 움직이면, 청탁을 넣는 의미가 있어?”

        ​

        마리아도 내 말에 공감했다.

        ​

        “맞아요. 이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죠. 그래서 이들은 정말 청탁을 받기만 했을 뿐, 실제로 이 정보를 취합해 실행에 옮긴 건 다른 사람들이라 이 정보만으로는 아무 처벌도 할 수 없어요. 세상에 청탁을 받기만 한 걸로 처벌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

        …하긴, 뇌물을 받아놓고 아무것도 해준 게 없으면 그게 청탁이 아니게 되긴 하지. 그건 그냥 돈을 뜯은 것과 마찬가지니까. 물론 법체계가 발전하면 헛소리 말라는 식으로 법의 몽둥이가 뒤통수를 후려치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그게 오늘은 아니었다.

        ​

        “하지만 단서는 있어요.”

        ​

        “단서?”

        ​

        “이들은 각자가 얻은 정보를 모두 같은 사람에게 보내요.”

        ​

        아하.

        ​

        “그럼, 그 사람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증거를 얻어내면 되겠네.”

        ​

        이미 몇 차례 한 일을 또 못 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나만 믿으라며 가슴을 퉁퉁 두드리며 말해봤지만, 마리아의 표정이 영 좋지 못했다.

        ​

        “뭔가 문제라도 있어?”

        ​

        “그게, 그 정보를 취합하는 사람 말이에요….”

        ​

        마리아는 내게 먹을 움직여 종이 위에 이름을 적었다.

        ​

        노만 폰 울름.

        ​

        “아무래도, 지금까지의 방법으로는 조금 곤란할 것 같아요.”

        ​

        하필 이미 우리와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I Wished for Romance, but it Turned Out to be a Romance Fantasy

I Wished for Romance, but it Turned Out to be a Romance Fantasy

낭만 판타지를 꿈꿨는데 로맨스 판타지였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dreamed of a life filled with romance¹ and romanticism, but I didn’t dream of a romance fantasy… —- ¹ The “Romance” here means a feeling or atmosphere of something new, special and exciting, e.g., a hero’s adven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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