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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

       “-저녁이나 먹고 가지 그래, 아이린 생도.”

       “네에?”

       “밤도 늦었으니 그냥 돌려보내기 미안해서 그런다. 이런 것도 얻어먹었는데.”

       “그, 그냥 제가 원해서 준비한 것뿐인데….”

       “사람이 정이 있지. 이대로 돌려보내는 것도 안 될 말이다. 시녀님.”

       “넹!”

       “소고기 스튜랑 빵 좀 데워주십시오.”

       “네, 맡겨만 주세요!”

       “…열심히는 하지 말고, 제발 느릿하게 하시죠.”

       “??”

       “제,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이린은 눈치가 빠른 애였고, 레이라에게 다가가 준비하는 것을 도와주려 했다.

       이에 이한은 흐뭇한 기색을 엿보이며 주섬주섬 벽면에 걸린 손도끼 두 개를 챙기기 시작했다.

         

       “준비되는 동안 나무만 좀 패오겠습니다. 아이린 생도, 시녀님을 잘 부탁하지.”

       “네, 네에!”

         

       어쩐지 얼렁뚱땅 모든 일들이 진행되는 느낌이다.

       본의 아니게 저녁을 얻어먹게 된 상황에 부닥친 아이린이었으나, 그녀는 내심 혼자 밥을 먹지 않게 되는 것은 다행이라 여겼다.

       비록 그녀 안에서 쉼 없이 떠드는 유령이 있지만, 유령에겐 온기가 없으니 말이다.

         

       ‘배려심이 좋으신 분인가?’

         

       아이린은 문을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직시하며, 생긴 것과 달리 세심하고 남을 잘 챙기는 남자가 아닐까 하는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허나, 그런 그녀의 기대감과 달리.

         

       끼익.

         

       “…….”

         

       문을 나서는 그의 얼굴에는 따스한 다정함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삭막함만이 감돌뿐이었다.

         

       * * *

         

       고즈넉한 오두막 주변.

       그야말로 어느 화자가 청자에게 구연동화로 전할 법한 평화로운 풍경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으나, 그러한 풍경 안에서 이한은 어그러짐을 사정없이 느꼈고.

       점차 손도끼 두 개를 쥐며 앞으로 걸어갔다.

         

       “-나와.”

         

       -……….

         

       “참고로 난 경고는 딱 두 번만 한다.”

         

       이한의 눈이 점차 희번덕거려지며 기세가 맺히는 그 순간.

         

       후욱.

         

       ‘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흑의를 입은 수상한 무리.

       대략 서른이 넘을 법한 숫자였고, 흑의무리를 바라보며 이한의 표정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그때.

         

       “진정하도록 하지. 우린 너희를 위협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흑의를 입은 놈들 중 가장 기세가 남다른 놈이 발언하며 변명을 늘어놓았으나.

         

       “하, 위협하러 온 게 아니라면서 그렇게 위험한 기운을 풀풀 풍기고 있냐?”

       “…….”

       “누가 봐도 위험한 집단이구먼.”

         

       변명도 뭔가 말이 되어야 믿어주는 거지.

       피 냄새가 진동하는 주제에 믿어달라고 하면 누가 믿어주랴.

         

       다만.

         

       “그건 너도 마찬가지일 텐데.”

       “뭐?”

       “위험한 것으로 따지면 네놈 또한 만만치 않다, 천민. 네놈 따위가 아가씨 옆에 있는데 어찌 우리가 진정할 수 있을까.”

       “…하, 이놈 보게?”

         

       적반하장이라고.

       도리어 당당하게 나오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반대로 차가워진다.

       대신 그의 심장 박동은 크게 울렸고, 이한은 서서히.

         

       투욱.

         

       “안 되겠다. 다른 놈은 봐줘도 넌 좀 맞자.”

       “헛소리.”

         

       이한은 도끼를 바닥에 내팽개치며 가장 마음에 안 드는 흑의인에게 다가갔고, 이에 맞춰 그 또한.

         

       “죽이진 않도록 하지.”

         

       이한의 제안이 마음에 든 건지, 챙겨온 검을 다른 이에게 건네며 그대로 다가왔다.

         

       다음 순간.

         

       퍼억!

       콰아앙!

         

       두 남자는 여타의 대화 없이 서로에게 주먹질을 시작했다.

         

       ……참으로 뜬금없는 주먹다짐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

         

       이한의 주먹은, 아니 육체는 강하다.

       트롤의 인자를 가진 것만으로도 그 완력의 대단함이 비범한데, 이토록 비범한 육체를 쉴 틈 없이 단련하여 육체 능력 하나만으로도 기사 하나를 떡 바를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증거로 전날 그에게 두들겨 맞은 폴렛 가의 부기사단장이 있었고.

         

       그러니 주먹다짐으로 가는 순간 이한을 이길 수 있는 이들은 웬만해선 없다.

       아니, 애초에 맨손으로 다투면 안 되는 것이다.

         

       한데.

         

       퍼억! 퍼어억!

       콰앙!

       쿠우웅!

         

       싸움이 되고 있다.

       아니, 싸움이 되는 것 정도가 아니라.

         

       콰직!

         

       “…제법 매운 거 인정.”

       “말로만 싸울 줄 아나 보지?”

       “아마도 아닐 걸.”

         

       콰앙!

         

       이한이 밀리고 있었다.

       육체 싸움으로 돌입하여 한 번도 진적이 없던 이한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밀리고 있었다.

       흑의인의 주먹은 날렵하면서도 완숙했고, 제대로 된 격투기를 배웠음을 알 수 있었다.

         

       기사란 인종 대부분이 무기술에만 치중하는 것을 생각했을 때 특이한 일이었으나, 그런 건 지금 그들에게 아무런 관심사가 돼 주지 못했다.

         

       그도 그럴게.

         

       콰직!

         

       지금 그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상대를 ‘굴복’시키는 데 있었으니까.

         

       이한과 흑의인의 주먹이 맞부딪쳤다.

       묵직한 주먹의 격돌에 일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으나, 부러진 건 그들의 뼈가 아니라 그들의 발밑에 돌아다니는 돌멩이들이었다.

         

       후욱!

         

       이한은 복싱선수처럼 잽을 연달아 날렸는데, 그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여섯 번의 궤적이 그려지는 주먹이었고, 한 번 스치는 것만으로도 살가죽이 터지리라.

         

       다만 흑의인은 이한의 주먹을 모조리 피하고 쳐내며 도리어 품으로 파고들어 그의 종아리를 걷어찼다.

       힘은 부족할지언정 어딘지 뼈를 파고드는 날카로움이 있다.

         

       가끔 이런 놈이 있다.

       타격에 무게를 담는 놈이 있는가 하면, 타격에 ‘칼(劍)’을 담는 놈이.

         

       온몸이 무슨 면도날도 아니고, 타격을 허용할수록 살갗이 붉어진다.

       허나 이한의 타격도 만만치 않았다.

       상대의 타격이 칼날을 담아낸다면, 이한의 타격은 망치질과 같으니.

         

       쿠우웅!

         

       “…그래, 인정해주마, 천민. 다른 건 모르겠으나 주먹이 제법 맵군.”

         

       이한의 타격이 배를 때리자, 흑의인의 입가에서 선혈이 흘렀다.

       속이 진탕이 될 일격이었는데,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다.

       한데 이상하게도 놈은 멀쩡했고, 이한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당장 쓰러지고 싶은 건 아니고?”

       “입만 여전히 놀리는구나.”

         

       콰앙!

         

       긴 말은 필요 없었다.

       다시 타격이 이어졌고, 그때마다 이한과 흑의인은 방어는 도외시 한 채 그저 서로의 주먹과 다리에 대놓고 맞아주거나 튕겨내는 것을 반복했다.

         

       자존심 싸움.

         

       어느 순간 이리 변질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두 남자의 싸움은 이제 방어는 없으며 오직 공격일변도의 투쟁으로 변해갔다.

         

       때리면 맞는다. 대신 맞은 만큼 더 때려 박는다.

         

       타격기에 있어서만큼 분명 어느 누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두 남자의 살벌한 주먹질이었고, 그들의 타격이 마당을 스칠 때마다 파공성과 함께 많은 것들이 부서졌다.

         

       나무가 관통되고, 바위가 두부처럼 으스러지며, 주변에 널브러진 것들이 반파되어 간다.

         

       “…….”

       “…….”

         

       맞으면서 많이 고통스러울 텐데 비명조차 내지르지 않으며 두 남자는 때리고 또 때렸고, 어느 순간 타격기 말고도 많은 것이 섞여갔다.

         

       후욱!

         

       캐치(Catch) 스타일 레슬링.

       관절기와 조르기가 섞여진 레슬링이지만, 품위와 예절을 지키는 신사적이라 알려진 레슬링이다.

       허나 흑의인이 펼치는 캐치 스타일 레슬링은 전혀 신사적이지 않았고, 도리어 뱀이 몸을 휘감는 것처럼 위협스러웠다.

         

       ‘이 새끼, 그래플러(Grappler)였냐!?’

         

       간담이 서늘해지는 오싹한 완성도였다.

         

       이한은 인정했다.

       이놈은 제 육체능력에 뒤지지 않는 수련법을 평생토록 수련했거나, 그도 아니면 미친 재능과 육체능력을 타고난 놈이라고.

         

       발타르와 같은 규격 외를 제외하곤 지금껏 만난 어떤 놈들보다 강했다.

         

       그리고 그건.

         

       ‘…시발, 왜 재밌냐?’

         

       이한은 순수하게 이 상황이 재밌어서 흥분되기 시작했다.

       강자를 만났다고 좋아하는 변태가 아닐 그였음에도.

         

       그리고 그게.

         

       후우욱!

         

       그의 고삐를 풀게 만들었다.

         

         

         

       ‘뭐 저런 놈이 다 있지?’

       ‘라크 경과 정면대결 하는 놈이 있다고…?’

       ‘…어처구니가 없군.’

         

       한편 두 남자의 대결을 관람하던 다른 흑의인들은 소리 없는 경악성을 내뱉었다.

       라크 경이 누구던가.

       어릴 적부터 훈련소에서 두각을 보이며, 기어이 그 실력을 인정받아 갈라하드 공작마저 터무니없다고 말한 괴물이다.

       그 때문에 갈라하드 가문 최고의 기사에게만 주어지는 ‘라크(Lake)’의 이름을 하사받은 자가 아니던가.

         

       한데 그런 라크가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기사와의 대결에서 밀리고 있다.

         

       잘 싸우고 있는데 왜 밀리고 있느냔 소리가 나오냐고?

         

       ‘경이 기술을 쓰기 시작했다.’

         

       그래플링 기술을 쓴다.

       저건 기사단장이나 혹은 그들이 존경하는 주군 갈라하드 공작과 대련하던 중 체력이 부치다 싶으면 쓰는 수법이었다.

         

       그렇기에 흑의인들은 끝났다 여겼다.

       그의 기술들이 얼마나 완성도가 높은지 알고, 얼마나 끔찍한지 알기에.

         

       …한데.

         

       “…저 미친놈?”

         

       그들은 다시금 경악했다.

       방금 전 라크와 맞먹는 타격을 보여준 것도 그랬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의미로 놀랐다.

         

       뿌드드득!!

         

       “지금 저 상태에서 몸을 일으킨 거야? …힘만으로?”

         

       기술이 걸린 그 상태에서 그가, 이한이라 불리는 기사가 몸을 일으켰다.

       팔과 어깨가 동시에 부러질 우려가 있었고, 목조차 졸리고 있는데 이를 참아내며 몸을 일으킨 것이다.

       팔과 어깨에서 부서지는 소리를 내면서.

         

       “…미친놈이군.”

       “어차피 시간 지나면 나아.”

       “시험해 줄까?”

       “해보든가.”

         

       빠드득-!

         

       부서지는 소리가 더 심하게 울렸지만, 이한은 도리어 놈이 벗어나지 못하게 더욱 힘껏 몸을 우겨 잡았다.

       절대 벗어나지 못하도록.

         

       “놓지 마라, 그대로 끝장내 줄 테니까.”

       “해 봐.”

         

       이한이나 라크나.

       둘 다 질 생각은 추호도 없는지 더욱 기세를 높였다.

         

       육참골단.

       살을 내어주고 뼈를 취한다.

         

       이한은 목이 막히고 어깨가 부서져 가는 와중에도 상대를 내려찍을 준비에 들어갔고, 라크는 반대로 어떻게든 이한의 어깨를 부수기 위해 힘을 주었지만, 더 이상 부서지지 않는 이상한 상황에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그렇게 사생결단을 내려는 두 남자의 자존심 대결의 결착이 다가오려던 순간.

         

       [-그만.]

       

     

       “…….”

       “…….”

         

       ‘거역할 수 없는 제3자’가 그들의 자존심을 내려놔라 명령했다.

         

       [그만하도록 해라. 라크 팔을 놓아라, 자네도 그만하게.]

         

       “…이놈이 먼저 놓으면, 뭐.”

       “천민이 패배를 인정한다면 그만하겠습니다.”

         

       [……내가 부탁하는 것 같은가?]

         

       “…….”

       “…….”

         

       [셋, 셋 하면 서로 놓는 것이네, 하나, 둘, 셋-.]

         

       빠득!

       쿠웅!

         

       “…안 놓냐?”

       “너야말로.”

         

       [……하아.]

         

       그들은 끝내 말을 듣지 않았고, 다시금 피를 보았다.

       한데도 그놈의 자존심이 뭔지 싸움을 끝내지 않는 두 남자였고, 이를 보며 상대는 한숨을 쉬었다.

         

       이한이 본 자료에 적힌 것과 달리, 광증이 다소 없어 보이는 정상적인 남성.

         

       당대 갈라하드의 주인.

         

       ‘블레이크 비비안 드 갈라하드’

    는 한숨을 푹 쉬었다.

         

       

       못 말리는 두 젊은이를 보자니 골이 아픈지.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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