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2

       불편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정원사가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인 듯 내 손을 붙잡은 채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다.

         

         

       거기에 지쳐서 가쁜 호흡을 내쉬는 무연이나, 다른 사람에게는 시체들로 보일 아름다운 꽃들.

         

       그야말로 무아지경이 아닐 수가 없었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정원사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은 내 대답을 기다리는 걸까.

         

         

       하지만 나도 아는 게 없었다.

         

         

       그녀의 추종자는 무슨 소리이며, 게다가 원래는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꽃이 된다니.

         

         

       감시자가 날 덮쳤을 때나, 정원사가 나에게 적의를 띄며 공격했을 때에나 분명 물리적인 작용에는 큰 힘을 쓰지 못했었는데.

         

       혹시 이 겁쟁이 모드에 뭔가 더 숨은 기능 같은 게 있는 걸까.

         

         

       시간이 흐를수록 정원사가 흘리는 기세가 더 날카로워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은 입을 놀리기로 했다.

         

         

       “아, 아냐.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닐 거야.”

         

         

       하지만 정원사는 내 말이 오히려 답답한 듯 인상까지 찡그렸다.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얘기하고 넘어가려는 셈이구나. 보통 자칭 신비학자나, 숭배자라는 녀석들이 그런 식으로 얘기하던데.“

         

         

       너무 애매하게 말한 탓일까, 아무래도 정원사는 내 말을 조금도 믿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내게 무조건 적인 호의를 보였던 감시자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열심히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시간만 끌어봤자 정원사의 의심만 더 깊어질 게 뻔했다.

         

         

       이렇게 된 거, 될 대로 되라지.

         

       “봐봐! 네가 외신이면 이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눈인지 알 수 있을 거 아니야!”

         

         

       외신들이 준만능의 존재라는 요소를 이용해보기로 했다.

         

       그동안 감시자, 소외신들을 생각해본다면 모두 상대방의 정신에 간섭할 수 있는 외신들이었다.

         

       그렇다면 정원사 또한 대상의 생각쯤은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데에서 온 방 안이었다.

         

         

       하지만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정원사의 모습에 식겁할 수밖에 없었다.

         

         

       아, 아니었던 건가?

         

       그러면 큰일인데.

         

         

       “그, 그러니까….”

         

       “…흐응.”

         

         

       뭐라고 변명이라도 해보려고 했는데, 정원사에게서 느껴지던 위협적인 기색이 줄어들고 있는 게 느껴졌다.

         

       당장 뒤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던 무연이 조금 환기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증거였다.

         

         

       아, 아하하.

         

       다행이다.

         

       아무래도 조금 극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다행히 잘 풀린….

         

         

       “…그런데 개 냄새가 좀 지독하게 나네. 거기에 기록쟁이 녀석까지…. 이 정도로 냄새가 짙은 거면 같이 뒹굴었다는 뜻인데.”

         

         

       …줄 알았다.

         

       겨우 정원사를 진정시켰다고 생각했으나, 다시 그 기세가 팍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설마 감시자한테 핥아지고 난 게 문제인가?

         

       아니 이건 너무 억까잖아!

         

       그러면 씻을 시간이라도 주던가!

         

         

       거기에 기록쟁이라니, 기록자를 말하는 거 같은데.

         

       애초에 기록자랑 만난 적도 없는데 대체 무슨…!

         

         

       이렇게 불평불만 해봤자 상대는 알아주지 않는다.

         

         

       그래, 생각을 해 보자.

         

         

       이번 대화를 통해서 정원사는 최소한 자신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인간에게는 공격하지 않는 외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장 영역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만 해도 이를 확실케 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인간에게는 상당히 경계한다.

         

       자신의 집에 멋대로 들어온 누군가에게 누가 호의적이겠냐만, 그 정도가 좀 지나칠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정원사가 했던 말 하나가 떠올랐다.

         

         

       ‘아무도 내 친구를 건드릴 수는 없어.’

         

         

       거기에 자신을 주변으로 펼쳐졌던 무언가까지.

         

         

       잠깐만.

         

       그러고 보니까 왜 원을 펼쳐놓고 정원사 본인은 밖에서 이러고 있는 거지?

         

         

       그렇다는 것은….

         

         

       “내가….”

         

       “…?”

         

       “내가 네 친구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어!”

         

         

       정원사의 행동 모든 것이 그녀 스스로 말했던 그 ‘친구’라고 하는 존재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치 부상 당한 새끼를 지키기 위해서 곰에게도 덤비는 치타 어미처럼.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내가 지금까지 만난 외신들 성격을 생각한다면 인간에게 이토록 적대적일 리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내 말이 정답인 듯.

         

         

       “…네가 그걸 어떻게 안 거야?”

         

         

       침착한 어조와는 다르게, 정원사의 동공이 사시나무 떨리듯 흔들렸다.

         

       동시에 정원사의 기분을 대변하듯 주변 무성한 나무들이 급격하게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히, 히이익…!”

         

         

       무연한테는 지금 이 소리가 소름 끼치는 소리로 들리는 걸까.

         

         

       하지만 내 눈에는 공간이 변하며 나무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귀여운 꽃동산으로 변하는 걸로 보일 뿐이었다.

         

       다행히 공격할 의도는 아니었는지, 정원사는 그대로 뒤돌아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따라와.”

         

         

       내 말을 믿어주기로 한 걸까.

         

         

       후우.

         

       진짜 십 년 감수했네.

         

         

       그러면 지금 모습이 경계하지 않는 상태라는 뜻인데, 무연도 이제 손수건을 없애도 되지 않을까?

         

         

       “무연 씨.”

         

       “…네?”

         

       “이리와 봐요.”

         

         

       내 목소리를 따라 내게 다가온 무연의 손수건을 치워주자, 무연이 곧 눈을 떴다.

         

       그리고 곧장 그녀가 보이려고 했던 반응을 읽고 바로 손수건으로 눈을 덮어주었다.

         

         

       “…끼!… 야아악? 어, 어라? 방금 뭔가… 촉수 같은 게…. 어라라?”

         

       “…그, 그래요. 그냥 덮고 있어요.”

         

       “역시 듣던 대로야, 인간들은 모두 쓰레기들 뿐이구나.”

         

         

       역시 내 눈에만 괜찮은 거였구나.

         

       상당히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

         

         

         

         

       정원사의 안내에 따라 걸어갔다.

         

       주변이 식물로 이루어진 카타콤을 지나가고 있었다.

         

         

       겁쟁이 모드가 있음에도 살짝 습지면서도 으슥한 기운이 도는 것이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미, 미안해요.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무연의 손을 잡고 이끌어 주고 있으니, 무연이 그렇게 말했다.

         

         

       “괜찮아요. 무연 씨 아니었으면 애초에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어요.

         

       고마워요.”

         

         

       내 말에 무연이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살짝 기쁜 듯해 보여서 다행이었다.

         

         

       “여기가 안전한 길이었어. 네가 온 길은 일반적인 인간은 오지 못하는 길이고.”

         

       “아, 아. 그렇구나.”

         

         

       아, 처음 들어오기 전에 글귀로 적혀 있던 ‘정원사의 정원’이 여기서부터를 말하는 건가.

         

       어쩐지 소외신이 안내해주던 길에는 새빨간 꽃밖에 없더라니,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소외신이 아무래도 내가 정신 계열에는 면역이라는 점을 이용해서 간 모양이었다.

         

         

       걸어가는 정원사의 뒷모습을 보니 괜히 내가 뻘쭘한 기분이 들었다.

         

         

       “그, 예쁘게 잘 꾸며 놓은 것 같아. 운치 있고, 좋네.”

         

         

       먼저 말을 꺼내 보았지만, 정원사는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머쓱하게 헛웃음을 흘리니, 정원사가 그제야 고개를 살짝 뒤로 돌리며 말했다.

         

         

       “…아직 너를 완전히 믿는 게 아니야. 그저…. 됐어, 따라오기나 해.”

         

       “네, 넵.”

         

         

       하긴 애초에 아직 적이라고 생각하는 상대에게 어떻게 호의를 베풀 수 있겠어.

         

       일단 일을 해결하고 나서 생각해야겠다.

         

         

       그렇게 한참을 더 걸어갔을까.

         

         

       덩쿨들로 이루어진 좁은 통로가 등장해 일직선으로 정렬해 앞으로 나아갔고, 끝에 다다르자 사람이 살 수 있을 정도의 넓은 공간이 드러났다.

         

       정원사와 처음 마주친 공간이었다.

         

         

       정원사가 자신의 옆으로 서라는 듯 옆으로 자리를 비켜주기에 나란히 섰다.

         

       옆을 보니 그녀가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었고,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장미가 하나가 보였다.

         

       다만 특이한 것이 은백색으로 빛나고 있다는 점이랄까.

         

         

       “조금 신기한 장미… 네? 하하, 예쁘다.”

         

       “저, 저게 뭔데요?”

         

         

       무연이 당황하며 물었지만, 딱히 대답은 해주지 않았다.

         

         

       내가 관찰했다는 것을 확인하자 정원사는 한숨을 내쉬며 팔을 내렸다.

         

         

       “…자세히 보았으면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있겠지.”

         

         

       어라, 뭔 문제가 있었나?

         

         

       조금 거리가 있던 탓에 살짝 눈을 찡그리며 장미를 다시 관찰했고, 정원사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저 검은 녀석, 저게 내 친구를 갉아먹고 있어. 웬만하면 내 힘으로 해결하고 싶지만, 나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녀석이야.

         

       저거 때문에 내 친구부터 처리하려고 하던 인간들도 내가 뭘 하기도 전에 떼죽음을 당했고.“

         

       아마 너도 그렇게 될 확률이 높아 보이지만.

         

         

       이어지는 살벌한 한 마디에 나는 무심코 마른침을 삼켰다.

         

         

       정원사가 침울해진 표정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그 정도인가?

         

         

       왜냐하면 내 눈에는 그냥 꽃을 갉아먹고 있는 애벌레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조금 다른 점이라면 캐릭터 같이 데포르메된 외모와 애벌레스럽지 않게 쭉쭉 길게 뻗어있는 다리 정도려나.

         

       내가 당황하는 기색을 드러내자 정원사가 풀 죽은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괜히 데리고 왔어. 나도 해결하지 못하는 거를 인간이 어떻게….”

         

       “한 번 해보지, 뭐.”

         

       “뭐?”

         

         

       아니, 해결해준다고 하는데 뭐 저렇게 당황하지.

         

       정원사의 반응을 뒤로한 채 장미를 향해 걸어갔다.

         

         

       음.

         

       역시 가까이서 봐도 그냥 벌레로밖에 안 보이는데.

         

         

       별거 아니라는 듯이 입을 비틀며 벌레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잠깐, 이 바보가…!”

         

       정원사의 외침에 반사적으로 뒤로 빠졌고, 왜 그런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장미를 뜯어 먹고 있던 애벌레가 갑자기 꼬리를 하늘로 바짝 들더니 내가 있는 방향으로 푸른색 액체를 뿜어내는 것이 아닌가.

         

         

       눈으로 보기는 했지만, 이미 날아온 그 액체를 피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끄앗…!”

         

         

       온몸이 끈적끈적해지는 기분이 들면서 옷이 파랗게 물들어버렸다. 

       

       

       설마 사람을 부식시키는 물질인가.

       

       

       큰일난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긴장하고 있었건만.

       

         

       이, 이게 다야?

         

       아무 일도 없이 그저 옷만 더 축축해질 뿐이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거였네.”

         

         

       어째선지 이미 포기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는 정원사였다.

         

         

       “왜, 왜. 이게 뭔데?”

         

       “그걸 맞으면 인간은 제정신을 유지 못하… 응?”

         

         

       암울해진 톤으로 말을 읊던 정원사가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들어 나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명백히 당황한 기색이 느껴졌다.

         

         

       “뭐, 뭐야. 왜 멀쩡해?”

         

         

       정원사가 당황하며 물어왔다.

         

       그, 그러게요.

       

       


           


Dark Fantasy: Super Coward Mode

Dark Fantasy: Super Coward Mode

슈퍼 겁쟁이 모드 다크 판타지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The super cowardly me installed Super Coward Mode, and the terrifying extraterrestrials started to look cute. “Eating the flesh of an extraterrestrial deity? You’re not human! Ew!” “Even withstanding mental manipulation? What kind of monster are you!” “Enslaving an extraterrestrial deity? You must be out of your mind.” …And then, the reactions around me became strang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