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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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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 그녀는 빛보다 그림자가 더 많이 드는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빼어난 외모를 가진 줄리아나는 어린 나이였을 때부터 분장으로 얼굴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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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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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8살이 되기도 전에 병으로 떠나고 그녀는 매일매일 동냥을 하며 살아갔다. 그런 어느 날 마을에 축제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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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민가 주민들은 마을 주민들에게 혐오스러운 무언가로 취급받고 있었지만, 축제 기간 만큼은 외부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어렵지 않게 섞여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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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아이들은 강가에서 몸을 박박 씻은 후 버려진 옷 중 깨끗한 옷을 주워 입고 축제 속을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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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제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은 돈 많은 손님들에게 팁을 받아내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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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는 전자에 속했다. 그녀는 화려한 거리를 마음껏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축제를 한 눈에 담았다. 정신을 반쯤 놓은 채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그녀는 마을 중앙에서 진행되는 연극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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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히 공주를 납치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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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촌스럽기 짝이 없는 대본과 그럴듯한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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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에선 전혀 통하지 않을 법한 연기였지만, 이곳에선 사람들의 웃음을 주기 충분했다. 특히 어린 아이들의 눈을 반짝거리게 만들기엔 차고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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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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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는 무대 위에서 검을 휘두르는 남자를 보며 눈을 반짝거렸다. 검이 누군가를 위협하는 게 아닌, 지킬 수 있다는 사실에 반해버리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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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후 줄리아나는 검을 들었고, 다행히 재능이 넘쳐 용병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3년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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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 나랑 사귀어주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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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명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줄리아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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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행복한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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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렌,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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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족가에 납치되어 구해달라 편지를 보냈던 줄리아나의 연인은 엉망진창인 꼴로 찾아온 자신을 보며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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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하하, 저 꼴을 좀 보세요. 아가씨!”
    “호호호, 마치 벌레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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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를 사랑한다고 속삭였던 남자 크렌은 귀족가 아가씨가 보낸 사람이었다. 귀족가 아가씨가 크렌을 그녀에게 보낸 이유? 사랑을 속삭이게 만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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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단한 용병,용병 하더니. 결국 벌레는 벌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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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야 그게 재미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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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는 귀족들의 유흥에 놀아난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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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렌! 크렌…! 네가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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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는 그를 진정으로 사랑했기에 목숨을 걸고 귀족 집안에 찾아왔고, 끝내 호위 기사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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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나 처음으로 맛본 사랑에 눈이 멀었던 바보 같은 여자는 그렇게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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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서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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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오가 너무 무거워 신께서 그녀를 데려가지 못한 탓일까, 그녀의 영혼은 원혼이 되어 땅에 묶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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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모두 죽여버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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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혼이 되어버린 줄리아나는 자신을 가지고 놀았던 귀족을 저주하고, 제 연인을 끔찍하게 죽여버렸다. 하지만 그녀의 분노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녀가 보다 많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움직이려던 그때, 흑마법사가 잔혹한 현장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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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끌끌, 이거 참 쓸만한 원혼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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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분 나쁘게 생긴 흑마법사는 그녀의 원혼을 책 속에 가두어버렸다. 줄리아나를 데려간 흑마법사는 그녀의 원혼이 더욱 강력해질 수 있도록 그녀에게 끝없이 배신당했던 장면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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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지날수록 줄리아나의 증오는 깊어져 갔고, 힘이 강해졌다. 그저 책에 갇혀있던 원혼은 어느새 책과 동화되어 저주의 책이 되어버렸다. 저주의 책이 응당 그렇듯 그녀는 흑마법사의 서고를 빠져나와 세계 곳곳에 흘러 다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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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은은하게 풍기는 새하얀 책은 수많은 사람들의 손에 펼쳐졌고,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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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하얀 책이 책을 펼친 사람의 피로 물들었을 때, 책은 또다시 세계를 떠돌았다. 그렇게 떠돌던 저주받은 책은 노아의 손에서 또다시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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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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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의 중얼거림과 함께 줄리아나는 눈을 떴다. 줄리아나가 가장 먼저 보게 된 건 딱 봐도 후줄근한 옷을 입은 노아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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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과거의 그녀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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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노아에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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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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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식간에 유령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노아가 화들짝 놀라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줄리아나는 그런 노아의 모습을 무시하며 눈을 감고 노아의 기억 속을 더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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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기억들,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기억의 총량은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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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는 노아의 욕망이 강하게 묻어나는 기억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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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고 싶어.
    네로를 지키고 싶어.
    죽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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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끝으로 꽃잎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처럼 기억을 헤집고 지나간 끝에, 노아가 책을 펼치게 만든 기억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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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드시 지켜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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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로지 제 동생과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 살아가던 아이가 ‘신념’을 가지게 된 순간이 눈앞에 선명히 그려진 순간 줄리아나는 눈을 번쩍 뜨며 험악하게 표정을 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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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앞에 주저앉아있는 아이는 자신과 너무나 비슷했다. 타고난 검술에 대한 재능도,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검을 들겠다 결심하는 모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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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기에 더없이 불쾌했다. 당장이라도 아이의 목을 졸라 죽이고 싶었다. 과거였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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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렇게 쉽게 죽일 수는 없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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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는 험악하게 구기고 있던 표정을 피고 선하게 웃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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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그랬던 것처럼 너도 비참하게 죽어야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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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남자에게 배신당해 비참하게 죽은 것처럼, 노아 또한 ‘리안’이라는 남자에게 배신당해 비참하게 죽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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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아 -…상상만 해도 너무 행복해. 너는 어떤 표정을 지으며 죽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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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절규할 노아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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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군가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원하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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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아름다운 줄리아나의 미소를 보며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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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손을 잡아, 그러면 모두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줄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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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가 노아의 눈앞에 하얀 손바닥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손바닥 위로 새 하얀 빛이 뭉치기 시작했다. 성스럽게 느껴지는 빛은, 독버섯이 화려한 것처럼 온갖 끔찍한 저주를 담고 있었지만 노아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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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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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가 홀린 듯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붙잡으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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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칵,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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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 여기 있어?”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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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생의 리안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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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여기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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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노아를 발견하곤 환하게 웃으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노아의 시선이 리안을 향하자 줄리아나가 대답을 독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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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남자를 지키고 싶은 거지? 그런 거라면 어서 이 손을 잡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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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줄리아나의 속삭임에 노아의 시선이 다시 그녀를 향했다. 노아가 멈칫했던 손을 움직이려는 순간, 리안이 노아의 곁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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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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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장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줄리아나의 모습이 리안의 시야에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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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라? 유령이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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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태연한 목소리에 노아는 물론 줄리아나까지 화들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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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내가 어떻게 보이는 거지? ]
    “어…그야 유령이니까 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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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세계에서 유령이란 일반적인 주민들과 다를 바 없는 이들 중 하나일 뿐이다. 값싼 월세 집이나 오래된 집은 유령과 쉐어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리안의 이웃 중 하나는 유령과 결혼까지 했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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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에겐 유령이 보이는 게 당연했지만, 줄리아나에겐 아니었다. 책을 펼친 사람이라면 모를까, 다른 사람이 자신을 보는 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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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 여긴 미아님이 들어오지 말라고 했던 곳이잖아. 어서 나가자.”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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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말에 줄리아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노아와 리안 사이를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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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안하지만 이 아이는 아직 돌아갈 수 없단다. 나와 얘기가 안 끝났거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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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는 리안에게만 살벌한 살기를 흘렸다. 그러자 리안이 몸을 움찔 떨더니 그대로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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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국은 한낱 인간일 뿐이지.’ ]
    ​
    ​
    그녀는 리안이 추하게 도망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속으로 씩 웃음 지었다. 그런 기대와 달리 리안에게 돌아온 대답은 그녀가 상상한 것과 전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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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가지만 대답해주시면 나가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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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망치기는커녕 도리어 조건까지 거는 모습에 줄리아나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리안은 줄리아나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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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지평좌표계를 고정하고 계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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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다음화 쓰는 중 타닥..타닥…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다음화 보기

줄리아나, 그녀는 빛보다 그림자가 더 많이 드는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빼어난 외모를 가진 줄리아나는 어린 나이였을 때부터 분장으로 얼굴을 가렸다.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8살이 되기도 전에 병으로 떠나고 그녀는 매일매일 동냥을 하며 살아갔다. 그런 어느 날 마을에 축제가 열렸다.

빈민가 주민들은 마을 주민들에게 혐오스러운 무언가로 취급받고 있었지만, 축제 기간 만큼은 외부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어렵지 않게 섞여들 수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강가에서 몸을 박박 씻은 후 버려진 옷 중 깨끗한 옷을 주워 입고 축제 속을 돌아다녔다.

축제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은 돈 많은 손님들에게 팁을 받아내기 위해서였다.

줄리아나는 전자에 속했다. 그녀는 화려한 거리를 마음껏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축제를 한 눈에 담았다. 정신을 반쯤 놓은 채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그녀는 마을 중앙에서 진행되는 연극을 보게 되었다.

“감히 공주를 납치하다니!”

촌스럽기 짝이 없는 대본과 그럴듯한 연기.

수도에선 전혀 통하지 않을 법한 연기였지만, 이곳에선 사람들의 웃음을 주기 충분했다. 특히 어린 아이들의 눈을 반짝거리게 만들기엔 차고 넘쳤다.

‘멋지다.’

줄리아나는 무대 위에서 검을 휘두르는 남자를 보며 눈을 반짝거렸다. 검이 누군가를 위협하는 게 아닌, 지킬 수 있다는 사실에 반해버리고 만 것이다.

그 이후 줄리아나는 검을 들었고, 다행히 재능이 넘쳐 용병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3년을 살았다.

“줄리아나, 나랑 사귀어주지 않을래?”

운명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줄리아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

..아니, 행복한 줄 알았다.

“크렌, 어째서…!”

귀족가에 납치되어 구해달라 편지를 보냈던 줄리아나의 연인은 엉망진창인 꼴로 찾아온 자신을 보며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저 꼴을 좀 보세요. 아가씨!”

“호호호, 마치 벌레 같구나.”

그녀를 사랑한다고 속삭였던 남자 크렌은 귀족가 아가씨가 보낸 사람이었다. 귀족가 아가씨가 크렌을 그녀에게 보낸 이유? 사랑을 속삭이게 만든 이유?

“대단한 용병,용병 하더니. 결국 벌레는 벌레야.”

그야 그게 재미있으니까.

줄리아나는 귀족들의 유흥에 놀아난 것뿐이었다.

“크렌! 크렌…! 네가 어떻게…!”

줄리아나는 그를 진정으로 사랑했기에 목숨을 걸고 귀족 집안에 찾아왔고, 끝내 호위 기사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맛본 사랑에 눈이 멀었던 바보 같은 여자는 그렇게 죽었다.

‘용서하지 않아.’

증오가 너무 무거워 신께서 그녀를 데려가지 못한 탓일까, 그녀의 영혼은 원혼이 되어 땅에 묶여버렸다.

‘모두,모두 죽여버리겠어!’

원혼이 되어버린 줄리아나는 자신을 가지고 놀았던 귀족을 저주하고, 제 연인을 끔찍하게 죽여버렸다. 하지만 그녀의 분노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녀가 보다 많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움직이려던 그때, 흑마법사가 잔혹한 현장에 나타났다.

“끌끌, 이거 참 쓸만한 원혼이구만.”

기분 나쁘게 생긴 흑마법사는 그녀의 원혼을 책 속에 가두어버렸다. 줄리아나를 데려간 흑마법사는 그녀의 원혼이 더욱 강력해질 수 있도록 그녀에게 끝없이 배신당했던 장면을 보여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줄리아나의 증오는 깊어져 갔고, 힘이 강해졌다. 그저 책에 갇혀있던 원혼은 어느새 책과 동화되어 저주의 책이 되어버렸다. 저주의 책이 응당 그렇듯 그녀는 흑마법사의 서고를 빠져나와 세계 곳곳에 흘러 다니기 시작했다.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은은하게 풍기는 새하얀 책은 수많은 사람들의 손에 펼쳐졌고,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새하얀 책이 책을 펼친 사람의 피로 물들었을 때, 책은 또다시 세계를 떠돌았다. 그렇게 떠돌던 저주받은 책은 노아의 손에서 또다시 펼쳐졌다.

“유령…”

노아의 중얼거림과 함께 줄리아나는 눈을 떴다. 줄리아나가 가장 먼저 보게 된 건 딱 봐도 후줄근한 옷을 입은 노아의 모습이었다.

마치 과거의 그녀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

줄리아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노아에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

순식간에 유령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노아가 화들짝 놀라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줄리아나는 그런 노아의 모습을 무시하며 눈을 감고 노아의 기억 속을 더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기억들,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기억의 총량은 많지 않았다.

줄리아나는 노아의 욕망이 강하게 묻어나는 기억을 찾아냈다.

살고 싶어.

네로를 지키고 싶어.

죽고 싶지 않아.

손끝으로 꽃잎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처럼 기억을 헤집고 지나간 끝에, 노아가 책을 펼치게 만든 기억을 찾아냈다.

반드시 지켜낼 거야.

오로지 제 동생과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 살아가던 아이가 ‘신념’을 가지게 된 순간이 눈앞에 선명히 그려진 순간 줄리아나는 눈을 번쩍 뜨며 험악하게 표정을 구겼다.

눈앞에 주저앉아있는 아이는 자신과 너무나 비슷했다. 타고난 검술에 대한 재능도,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검을 들겠다 결심하는 모습도.

그렇기에 더없이 불쾌했다. 당장이라도 아이의 목을 졸라 죽이고 싶었다. 과거였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랬을 것이다.

[ ‘그렇게 쉽게 죽일 수는 없지’ ]

줄리아나는 험악하게 구기고 있던 표정을 피고 선하게 웃음 지었다.

[ ‘내가 그랬던 것처럼 너도 비참하게 죽어야 해.’ ]

그녀가 남자에게 배신당해 비참하게 죽은 것처럼, 노아 또한 ‘리안’이라는 남자에게 배신당해 비참하게 죽기를 원했다.

[ ‘아아 -…상상만 해도 너무 행복해. 너는 어떤 표정을 지으며 죽을까?’ ]

줄리아나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절규할 노아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누군가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원하니? ]

“…!”

노아는 아름다운 줄리아나의 미소를 보며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 내 손을 잡아, 그러면 모두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줄게. ]

줄리아나가 노아의 눈앞에 하얀 손바닥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손바닥 위로 새 하얀 빛이 뭉치기 시작했다. 성스럽게 느껴지는 빛은, 독버섯이 화려한 것처럼 온갖 끔찍한 저주를 담고 있었지만 노아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 자,어서. ]

노아가 홀린 듯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붙잡으려는 순간.

달칵,쾅!

“노아?! 여기 있어?”

“…!”

[ ..!? ]

야생의 리안이 나타났다.

“아! 여기 있었네!”

리안이 노아를 발견하곤 환하게 웃으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노아의 시선이 리안을 향하자 줄리아나가 대답을 독촉했다.

[ 저 남자를 지키고 싶은 거지? 그런 거라면 어서 이 손을 잡아. ]

줄리아나의 속삭임에 노아의 시선이 다시 그녀를 향했다. 노아가 멈칫했던 손을 움직이려는 순간, 리안이 노아의 곁에 도착했다.

“어?”

책장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줄리아나의 모습이 리안의 시야에 잡혔다.

“어라? 유령이네?”

“…?!”

[ …?! ]

리안의 태연한 목소리에 노아는 물론 줄리아나까지 화들짝 놀랐다.

[ 내,내가 어떻게 보이는 거지? ]

“어…그야 유령이니까 보이죠?”

개그 세계에서 유령이란 일반적인 주민들과 다를 바 없는 이들 중 하나일 뿐이다. 값싼 월세 집이나 오래된 집은 유령과 쉐어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리안의 이웃 중 하나는 유령과 결혼까지 했다고 들었다.

리안에겐 유령이 보이는 게 당연했지만, 줄리아나에겐 아니었다. 책을 펼친 사람이라면 모를까, 다른 사람이 자신을 보는 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노아, 여긴 미아님이 들어오지 말라고 했던 곳이잖아. 어서 나가자.”

“아…”

리안의 말에 줄리아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노아와 리안 사이를 파고들었다.

[ 미안하지만 이 아이는 아직 돌아갈 수 없단다. 나와 얘기가 안 끝났거든. ]

줄리아나는 리안에게만 살벌한 살기를 흘렸다. 그러자 리안이 몸을 움찔 떨더니 그대로 굳어버렸다.

[ ‘결국은 한낱 인간일 뿐이지.’ ]

그녀는 리안이 추하게 도망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속으로 씩 웃음 지었다. 그런 기대와 달리 리안에게 돌아온 대답은 그녀가 상상한 것과 전혀 달랐다.

“한 가지만 대답해주시면 나가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도망치기는커녕 도리어 조건까지 거는 모습에 줄리아나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리안은 줄리아나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지평좌표계를 고정하고 계신 거죠?”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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