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2

모이 받아먹듯 탕후루를 옴뇸뇸 먹으며 와- 와- 감탄을 내뱉던 귀여운 소녀.
     
   청성 길드장과는 대체 어떤 사이인지, 혹시 어디 재벌 집의 숨겨진 아이라도 되는지 싶을 정도로 귀티 나는 아이였는데….
     
   “헤헤 인터넷에서는 이렇게 하는 게 맞죠?”
     
   사이트 이용자들을 죄다 긁어놓고.
     
   심지어 김성영 학생을 고로시하고 실실 웃는 게, 저 아이가 인간의 감정을 알까 싶었다.
     
     
   와! 오팔폰! 감사합니다! 너무 좋아요! 라거나.
     
   혹은 감동해서 사랑해요! 이런 선물은 처음이에요! 같은 반응을 기대하던 사람들이었다.
     
   대리점 직원들은 뒤늦게 아무것도 못 봤다는 듯 슬그머니.
     
   시간을 되감듯 뒷걸음쳐 사라진다.
     
   “그, 우주 노트 24 재고가 남아 있던가?”
   “그거 새벽에 도착한 거 있을 겁니다. 제가 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평생 연기라고는 처음 해 보는 듯한 어색한 대화와 함께였다.
     
     
   그렇게 직원들이 이리저리 몸을 숨기고 아닌 척 존재감을 지워가던 때.
     
   뒤늦게 충격에서 헤어 나온 길드장이 여느 때와 다름없는 투로 물었다.
     
   “누가 가르쳐 준 거지?”
     
   만약 학생부 강사가 가르친 거라면 해고당해도 할 말이 없겠지.
     
   태연한 물음과 달리, 길드장의 속내는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 순수한 아이에게 대체 어떤 쓰레기 같은 인간이 분탕질 따위를 가르쳐 준 걸까!
     
   교단 놈들이 이런 쓸데없는 걸 가르쳤을 리는 없는데?
     
   “해인 스님이요!”
   “…그, 덩치 큰 젊은 스님 분 말인가?”
     
   “맞아요!”
     
     
   …어.
     
   뭐지? 스님이 왜 그딴 짓을?
     
   게이트가 열리고 종교인과 민간인의 경계가 옅어진 건 사실이지만, 자명 스님 아래에서 그런 쓰레기 같은 인간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아마 뭔가 이유가 있었으리라.
     
   길드장은 분탕질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애써 침착하고자 노력했다.
     
     
   “언제 알려주신 거지?”
     
   이쯤 되니 소녀도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길드장님의 분위기가 삐죽 솟았다!
     
   뭔가 고민이 있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다는 뜻이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역시 나 같은 죄인은 뭘 해도 안 되는구나.
     
   또 폐 끼쳐버렸네.
     
     
   “강의 첫날에요….”
     
   소녀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천천히 전말을 이어갔다.
     
   강의 첫날, 노트북 사용법을 몰라 헤매던 때부터.
     
   겨우 ‘죄인’이라는 닉네임을 짓고 접속하자 김성영이라는 학생에게 욕을 먹었다는 것까지.
     
   이미 양조야 강사에게 전해 들은 적이 있던 이야기였지만, 당사자인 소녀의 입으로 듣는 건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일전에는 애들다운 싸움이라 생각했다면.
     
   ‘청성 길드의 일원이 될 녀석이 패드립을 해? 인성 교육이 덜된 녀석이 있었군.’
     
   열불이 치솟아 학생부 커리큘럼에 인성 교육을 추가하기로 결심할 정도였다.
     
   다만, 그럼에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있다면….
     
   다중 분신술, 효과적인 고로시, 제목 어그로 끌기 등등.
     
   겨우 채팅창으로 말싸움이나 하고 끝날 일에 전략핵을 동원한 꼴이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역시 해인 스님이란 자가 악질일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을 듯했다.
     
     
   물론 이는 해인 스님으로서도 억울해질 오해였다.
     
   인터넷에서 타인과 교류할 때라고는 헬스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교환할 때뿐이었고, 채팅보다 게시글과 댓글을 쓰는 게 익숙한 탓이었다.
     
   안 그래도 아픈 손가락인 소녀에게 부모가 어쩌고저쩌고 막말을 해대는 꼴에 열불이 뻗쳐서 되는대로 말을 꺼내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었고.
     
   무엇보다 가장 큰 원인은 소녀의 인식에 있었다.
     
   “그래. 이해한다만, 그런 식으로 분란을 일으키는 건 좋지 않은 행동이다.”
     
   이미 배운 걸 기억을 지울 수 없으니 어떻게든 설득해 보고자 했는데.
     
   “네…? 이, 인터넷은 원래 이렇게 쓰는 거 아닌가요…?”
     
   소녀가 소심하게 대꾸했다.
     
   “사람들이 욕망을 풀어내는 장소잖아요…?”
     
     
   길드장과 자명 스님이 추측했듯 소녀는 멍청한 아이가 아니었다.
     
   상식이 부족할지언정 한 번 들은 건 잊지 않을 정도로 똑똑한 아이였으니.
     
   그간 다른 학생들과 강의를 들으며 김성영의 시비를 통해 제게 상식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차피 게이트 오염이니 뭔가 때문에 외출도 금지되었던 터라 남는 시간에는 인터넷에 집중했고.
     
   교육엔 그리 좋지 않은 검열 없는 인터넷 문화에 적나라하니 노출된 것이었다.
     
   “인터넷이라고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는 일이 괜찮을 리 있겠나.”
     
   칭찬받을 줄 알았는데….
     
   계속해서 혼나기 시작하자, 소녀 역시 불퉁하니 반박하기 시작했다.
     
   “아니에요. 인터넷은 악마가 깃든 곳이에요. 다 나쁜 사람들이니까 당해도 싸요.”
     
   곧장 증거를 보여주겠다며 토독- 자판을 치며 몇몇 사이트를 띄워 올렸다.
     
     
   [11호선 한남 칼찌 시원하면 개추~~]
     
   라던가.
     
   [비처녀 퐁퐁녀 거르고 조신한 일녀 사귀어야 하는 이유]
     
   라던가.
     
   [노오오옹!!!], [내 똥 굵기 ㅁㅌㅊ?], [할] 등등의 차마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게시글들이었다.
     
   질펀한 똥 사진과 나신의 할머니를 본 길드장이 착- 눈가를 덮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개 같은….
     
   나이 먹고 대놓고 욕지거리가 나온 건 난생처음이었다.
     
   소녀는 똑똑하다.
     
   때문에 다른 아이들처럼 이용 시간제한이나, 접근 제한 같은 건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소녀가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환경 그 자체였다.
     
   인터넷의 자유? 좋다.
     
   하지만 그 인터넷을 악마가 깃든 곳이라 생각하게 될 정도의 무분별한 환경은 좋지 않았다.
     
   역시 아이가 스스로 배우고 고쳐나가길 바라기보다 제대로 된 교사를 붙여줘야 할 듯했다.
     
   잠시간 고민하던 길드장은 이내 해탈한 표정으로 소녀를 바라봤다.
     
   제 생각이 잘못될 리 없다고 믿는 듯 불퉁하니 양 볼을 부풀린 소녀.
     
   다른 건 몰라도 악마에 관해서는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선명하다.
     
   길드장은 어쩔 수 없이 소녀의 시선으로, 소녀가 받아들일 법한 설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것들은 악마다.”
   “그쵸! 다들 화가 나 있는 게 사탄이 들린 게 분명해요!”
     
   “그래서, 그들을 상대하는 너 역시 사탄에 들릴 생각이냐.”
     
   흠칫-
     
   그제야 방방 뛰던 소녀가 슬그머니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왜 악마들이 하는 짓을 따라 하고 있던 걸까?
     
   역시 신께 선택받은, 대단한 능력을 지닌 길드장님 다운 통찰력이야!
     
   소녀는 금세 제 잘못을 깨닫고는 다짐했다.
     
   “맞아요! 이럴 게 아니라 악마는 다 때려죽여야 해요!”
     
   사탄, 악마.
     
   악마는 죽어야 한다.
     
   인터넷은 없어져야만 한다.
     
   소녀의 생각이 먹물 번지듯 널뛰기 시작했다.
     
   교단이 새겨놓은 트리거가 발동하며 가상현실에서 그러했듯, 소녀의 동공이 작아지던 때였다.
     
   “…그러니 인터넷을 쓰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라.”
     
   휙- 길드장이 소녀의 손에 들린 오팔폰을 빼앗아 들었다.
     
   고양이처럼 좁혀진 샛노란 동공이 따라온다.
     
   여태까지의 그 순진하고 귀엽던 소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원색적인 살기가 담긴 시선.
     
     
   개 같은 교단 새끼들.
     
   이렇게 작은 애를 세뇌해서 어디에 쓰겠다고.
     
   이를 악문 채, 소녀의 양 겨드랑이를 잡아 들어 올렸다.
     
   워낙 몸무게가 가벼운 탓에 염동력 없이도 쉽게 달랑달랑 들어 올려지는 몸뚱이.
     
   “길드 본사로 데려다주마. 인터넷이 정말 악마들의 온상일지, 인터넷을 쓰는 사람들이 악마 들린 사람들일지 판단하는 건 그 이후에도 늦지 않다.”
     
   그제야 소녀의 흉흉하던 기운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이대로 설득하는 건 포기다.
     
   대신 인터넷이 마냥 나쁜 게 아니라는 걸, 인터넷을 쓰는 사람들은 그저 익명성을 대가로 날뛰는 겁쟁이들이라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
     
     
   방법을 생각해 봤다.
     
   상담사를 부른다거나 내면 심리에 과하게 영향을 끼치는 건 좋지 않다.
     
   그리 쉽게 풀릴 세뇌였다면 이리 고민하지도 않았을 거다.
     
   서서히, 서서히 소녀가 저 스스로 잘못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상현실을 사용해 보는 건 어떨까.
     
   요즈음에 가상현실은 단순한 기술력을 넘어 각성자들의 초능력까지 더해 만들었으니 소녀가 내면에 쌓여있던 감정을 맘껏 풀어낼 수 있겠지.
     
     
   ‘우선 꼬마가 어느 정도의 키워드에 반응하는지 확인해 봐야겠군.’
     
   악마라는 키워드.
     
   가상현실에 관련된 것들은 차고 넘쳤다.
     
   데몬 슬레이어, 둠 다이버즈, 이스케이프 프롬 헬 등등.
     
   게임 제목뿐만이 아니라 내용 역시 악마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소녀는 과연 이런 가짜에도 세뇌된 반응을 내비칠까?
     
     
   물론 처음부터 이런 적나라한 게임을 사용할 생각은 아니었다.
     
   천천히 단계별로 밟아 나가야 세뇌를 통제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테니.
     
   ‘시작은… 더 히어로 정도면 괜찮겠군.’
     
   더 히어로.
     
   악마와는 관련이 없는, 정부에서 제작한 일종의 교육 홍보용 게임이었다.
     
   빌런을 때려잡는 아주 간단한 내용으로 소녀가 과연 이런 ‘빌런’들도 ‘악마’로 인지하는지 확인해 볼 계획이었다.
     
   놀랍게도 오픈 월드 게임인지라 다른 플레이어들이 악마가 아니라는 걸 보여줄 수도 있을 터.
     
   “악마를 잡겠다고 너 자신이 악마가 되어선 안 된다.”
   “…네.”
     
   그렇게 소녀를 안아 든 채, 곧장 길드 본사를 향해 날아올랐다.
     
     
   생각에 잠긴 듯 멍하니 품에 기대있는 소녀는 여태까지와 달리 지나칠 정도로 얌전했다.
     
   앙다문 입술, 허공을 바라보는 멍한 시선.
     
   전형적인 교단 세뇌 피해자들의 반응이었다.
     
   길드장은 아무렇지 않은 척, 슬쩍 소녀에게 물었다.
     
   “악마가 그렇게 미운 이유가 있나.”
     
   멍하던 모습과 달리, 반응은 곧바로 돌아왔다.
     
   “악마가 없어져야 무고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잖아요. 그럼 더 이상 슬퍼하는 사람도 없을 테고. 세상이 행복해질 테니까요.”
     
   교단이 주장하는바 각성자들에 의해 완전히 통제된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상하다는 걸 알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그리고 그렇게 악마를 쳐 죽여야 제가 죽었을 때 천국에 갈 수 있잖아요?”
     
   그렇기에 더욱이 소녀가 세뇌당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일전의 강의에서 보였던 모습, 그리고 오늘의 반응.
     
   두 상황의 공통점은 ‘악마’라는 키워드였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악마’라는 키워드가 소녀의 세뇌를 불러일으키는 것임이 분명했다.
     
   “악마를 직접 본 적이 있나 보군.”
     
   슬쩍 떠보는 듯한 길드장의 물음에 소녀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물론이죠! 일곱 악마를 전부 다 봤어요! 그리고 제가 직접 죽였어요.”
     
   죽였다.
     
   그리 말하고도 괴리감을 느끼지 못하는 듯, 평소처럼 헤헤 웃는 얼굴.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악마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지자 요사스레 빛나는 눈빛.
     
     
   길드장은 이 이상 소녀를 떠보는 건 포기했다.
     
   이 안타까운 소녀를 한시라도 빨리 도와주고 싶지만, 조급함은 실수를 일으키는 법이다.
     
   당장은 인터넷과 악마와의 연관성을 끊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게 낯선 침묵 속.
     
   구름을 뚫고, 새하얀 궤적을 남기며 날아가던 두 사람의 앞으로 거대한 빌딩이 나타났다.
     
   총 60층으로 이뤄진 게이트 부산물로 만들어진 대한민국에 단 세 개뿐인 기념비적인 빌딩.
     
   청성 길드의 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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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 받아먹듯 탕후루를 옴뇸뇸 먹으며 와- 와- 감탄을 내뱉던 귀여운 소녀.

청성 길드장과는 대체 어떤 사이인지, 혹시 어디 재벌 집의 숨겨진 아이라도 되는지 싶을 정도로 귀티 나는 아이였는데….

“헤헤 인터넷에서는 이렇게 하는 게 맞죠?”

사이트 이용자들을 죄다 긁어놓고.

심지어 김성영 학생을 고로시하고 실실 웃는 게, 저 아이가 인간의 감정을 알까 싶었다.

와! 오팔폰! 감사합니다! 너무 좋아요! 라거나.

혹은 감동해서 사랑해요! 이런 선물은 처음이에요! 같은 반응을 기대하던 사람들이었다.

대리점 직원들은 뒤늦게 아무것도 못 봤다는 듯 슬그머니.

시간을 되감듯 뒷걸음쳐 사라진다.

“그, 우주 노트 24 재고가 남아 있던가?”

“그거 새벽에 도착한 거 있을 겁니다. 제가 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평생 연기라고는 처음 해 보는 듯한 어색한 대화와 함께였다.

그렇게 직원들이 이리저리 몸을 숨기고 아닌 척 존재감을 지워가던 때.

뒤늦게 충격에서 헤어 나온 길드장이 여느 때와 다름없는 투로 물었다.

“누가 가르쳐 준 거지?”

만약 학생부 강사가 가르친 거라면 해고당해도 할 말이 없겠지.

태연한 물음과 달리, 길드장의 속내는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 순수한 아이에게 대체 어떤 쓰레기 같은 인간이 분탕질 따위를 가르쳐 준 걸까!

교단 놈들이 이런 쓸데없는 걸 가르쳤을 리는 없는데?

“해인 스님이요!”

“…그, 덩치 큰 젊은 스님 분 말인가?”

“맞아요!”

…어.

뭐지? 스님이 왜 그딴 짓을?

게이트가 열리고 종교인과 민간인의 경계가 옅어진 건 사실이지만, 자명 스님 아래에서 그런 쓰레기 같은 인간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아마 뭔가 이유가 있었으리라.

길드장은 분탕질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애써 침착하고자 노력했다.

“언제 알려주신 거지?”

이쯤 되니 소녀도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길드장님의 분위기가 삐죽 솟았다!

뭔가 고민이 있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다는 뜻이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역시 나 같은 죄인은 뭘 해도 안 되는구나.

또 폐 끼쳐버렸네.

“강의 첫날에요….”

소녀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천천히 전말을 이어갔다.

강의 첫날, 노트북 사용법을 몰라 헤매던 때부터.

겨우 ‘죄인’이라는 닉네임을 짓고 접속하자 김성영이라는 학생에게 욕을 먹었다는 것까지.

이미 양조야 강사에게 전해 들은 적이 있던 이야기였지만, 당사자인 소녀의 입으로 듣는 건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일전에는 애들다운 싸움이라 생각했다면.

‘청성 길드의 일원이 될 녀석이 패드립을 해? 인성 교육이 덜된 녀석이 있었군.’

열불이 치솟아 학생부 커리큘럼에 인성 교육을 추가하기로 결심할 정도였다.

다만, 그럼에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있다면….

다중 분신술, 효과적인 고로시, 제목 어그로 끌기 등등.

겨우 채팅창으로 말싸움이나 하고 끝날 일에 전략핵을 동원한 꼴이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역시 해인 스님이란 자가 악질일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을 듯했다.

물론 이는 해인 스님으로서도 억울해질 오해였다.

인터넷에서 타인과 교류할 때라고는 헬스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교환할 때뿐이었고, 채팅보다 게시글과 댓글을 쓰는 게 익숙한 탓이었다.

안 그래도 아픈 손가락인 소녀에게 부모가 어쩌고저쩌고 막말을 해대는 꼴에 열불이 뻗쳐서 되는대로 말을 꺼내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었고.

무엇보다 가장 큰 원인은 소녀의 인식에 있었다.

“그래. 이해한다만, 그런 식으로 분란을 일으키는 건 좋지 않은 행동이다.”

이미 배운 걸 기억을 지울 수 없으니 어떻게든 설득해 보고자 했는데.

“네…? 이, 인터넷은 원래 이렇게 쓰는 거 아닌가요…?”

소녀가 소심하게 대꾸했다.

“사람들이 욕망을 풀어내는 장소잖아요…?”

길드장과 자명 스님이 추측했듯 소녀는 멍청한 아이가 아니었다.

상식이 부족할지언정 한 번 들은 건 잊지 않을 정도로 똑똑한 아이였으니.

그간 다른 학생들과 강의를 들으며 김성영의 시비를 통해 제게 상식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차피 게이트 오염이니 뭔가 때문에 외출도 금지되었던 터라 남는 시간에는 인터넷에 집중했고.

교육엔 그리 좋지 않은 검열 없는 인터넷 문화에 적나라하니 노출된 것이었다.

“인터넷이라고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는 일이 괜찮을 리 있겠나.”

칭찬받을 줄 알았는데….

계속해서 혼나기 시작하자, 소녀 역시 불퉁하니 반박하기 시작했다.

“아니에요. 인터넷은 악마가 깃든 곳이에요. 다 나쁜 사람들이니까 당해도 싸요.”

곧장 증거를 보여주겠다며 토독- 자판을 치며 몇몇 사이트를 띄워 올렸다.

[11호선 한남 칼찌 시원하면 개추~~]

라던가.

[비처녀 퐁퐁녀 거르고 조신한 일녀 사귀어야 하는 이유]

라던가.

[노오오옹!!!], [내 똥 굵기 ㅁㅌㅊ?], [할] 등등의 차마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게시글들이었다.

질펀한 똥 사진과 나신의 할머니를 본 길드장이 착- 눈가를 덮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개 같은….

나이 먹고 대놓고 욕지거리가 나온 건 난생처음이었다.

소녀는 똑똑하다.

때문에 다른 아이들처럼 이용 시간제한이나, 접근 제한 같은 건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소녀가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환경 그 자체였다.

인터넷의 자유? 좋다.

하지만 그 인터넷을 악마가 깃든 곳이라 생각하게 될 정도의 무분별한 환경은 좋지 않았다.

역시 아이가 스스로 배우고 고쳐나가길 바라기보다 제대로 된 교사를 붙여줘야 할 듯했다.

잠시간 고민하던 길드장은 이내 해탈한 표정으로 소녀를 바라봤다.

제 생각이 잘못될 리 없다고 믿는 듯 불퉁하니 양 볼을 부풀린 소녀.

다른 건 몰라도 악마에 관해서는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선명하다.

길드장은 어쩔 수 없이 소녀의 시선으로, 소녀가 받아들일 법한 설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것들은 악마다.”

“그쵸! 다들 화가 나 있는 게 사탄이 들린 게 분명해요!”

“그래서, 그들을 상대하는 너 역시 사탄에 들릴 생각이냐.”

흠칫-

그제야 방방 뛰던 소녀가 슬그머니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왜 악마들이 하는 짓을 따라 하고 있던 걸까?

역시 신께 선택받은, 대단한 능력을 지닌 길드장님 다운 통찰력이야!

소녀는 금세 제 잘못을 깨닫고는 다짐했다.

“맞아요! 이럴 게 아니라 악마는 다 때려죽여야 해요!”

사탄, 악마.

악마는 죽어야 한다.

인터넷은 없어져야만 한다.

소녀의 생각이 먹물 번지듯 널뛰기 시작했다.

교단이 새겨놓은 트리거가 발동하며 가상현실에서 그러했듯, 소녀의 동공이 작아지던 때였다.

“…그러니 인터넷을 쓰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라.”

휙- 길드장이 소녀의 손에 들린 오팔폰을 빼앗아 들었다.

고양이처럼 좁혀진 샛노란 동공이 따라온다.

여태까지의 그 순진하고 귀엽던 소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원색적인 살기가 담긴 시선.

개 같은 교단 새끼들.

이렇게 작은 애를 세뇌해서 어디에 쓰겠다고.

이를 악문 채, 소녀의 양 겨드랑이를 잡아 들어 올렸다.

워낙 몸무게가 가벼운 탓에 염동력 없이도 쉽게 달랑달랑 들어 올려지는 몸뚱이.

“길드 본사로 데려다주마. 인터넷이 정말 악마들의 온상일지, 인터넷을 쓰는 사람들이 악마 들린 사람들일지 판단하는 건 그 이후에도 늦지 않다.”

그제야 소녀의 흉흉하던 기운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이대로 설득하는 건 포기다.

대신 인터넷이 마냥 나쁜 게 아니라는 걸, 인터넷을 쓰는 사람들은 그저 익명성을 대가로 날뛰는 겁쟁이들이라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

방법을 생각해 봤다.

상담사를 부른다거나 내면 심리에 과하게 영향을 끼치는 건 좋지 않다.

그리 쉽게 풀릴 세뇌였다면 이리 고민하지도 않았을 거다.

서서히, 서서히 소녀가 저 스스로 잘못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상현실을 사용해 보는 건 어떨까.

요즈음에 가상현실은 단순한 기술력을 넘어 각성자들의 초능력까지 더해 만들었으니 소녀가 내면에 쌓여있던 감정을 맘껏 풀어낼 수 있겠지.

‘우선 꼬마가 어느 정도의 키워드에 반응하는지 확인해 봐야겠군.’

악마라는 키워드.

가상현실에 관련된 것들은 차고 넘쳤다.

데몬 슬레이어, 둠 다이버즈, 이스케이프 프롬 헬 등등.

게임 제목뿐만이 아니라 내용 역시 악마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소녀는 과연 이런 가짜에도 세뇌된 반응을 내비칠까?

물론 처음부터 이런 적나라한 게임을 사용할 생각은 아니었다.

천천히 단계별로 밟아 나가야 세뇌를 통제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테니.

‘시작은… 더 히어로 정도면 괜찮겠군.’

더 히어로.

악마와는 관련이 없는, 정부에서 제작한 일종의 교육 홍보용 게임이었다.

빌런을 때려잡는 아주 간단한 내용으로 소녀가 과연 이런 ‘빌런’들도 ‘악마’로 인지하는지 확인해 볼 계획이었다.

놀랍게도 오픈 월드 게임인지라 다른 플레이어들이 악마가 아니라는 걸 보여줄 수도 있을 터.

“악마를 잡겠다고 너 자신이 악마가 되어선 안 된다.”

“…네.”

그렇게 소녀를 안아 든 채, 곧장 길드 본사를 향해 날아올랐다.

생각에 잠긴 듯 멍하니 품에 기대있는 소녀는 여태까지와 달리 지나칠 정도로 얌전했다.

앙다문 입술, 허공을 바라보는 멍한 시선.

전형적인 교단 세뇌 피해자들의 반응이었다.

길드장은 아무렇지 않은 척, 슬쩍 소녀에게 물었다.

“악마가 그렇게 미운 이유가 있나.”

멍하던 모습과 달리, 반응은 곧바로 돌아왔다.

“악마가 없어져야 무고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잖아요. 그럼 더 이상 슬퍼하는 사람도 없을 테고. 세상이 행복해질 테니까요.”

교단이 주장하는바 각성자들에 의해 완전히 통제된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상하다는 걸 알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그리고 그렇게 악마를 쳐 죽여야 제가 죽었을 때 천국에 갈 수 있잖아요?”

그렇기에 더욱이 소녀가 세뇌당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일전의 강의에서 보였던 모습, 그리고 오늘의 반응.

두 상황의 공통점은 ‘악마’라는 키워드였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악마’라는 키워드가 소녀의 세뇌를 불러일으키는 것임이 분명했다.

“악마를 직접 본 적이 있나 보군.”

슬쩍 떠보는 듯한 길드장의 물음에 소녀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물론이죠! 일곱 악마를 전부 다 봤어요! 그리고 제가 직접 죽였어요.”

죽였다.

그리 말하고도 괴리감을 느끼지 못하는 듯, 평소처럼 헤헤 웃는 얼굴.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악마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지자 요사스레 빛나는 눈빛.

길드장은 이 이상 소녀를 떠보는 건 포기했다.

이 안타까운 소녀를 한시라도 빨리 도와주고 싶지만, 조급함은 실수를 일으키는 법이다.

당장은 인터넷과 악마와의 연관성을 끊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게 낯선 침묵 속.

구름을 뚫고, 새하얀 궤적을 남기며 날아가던 두 사람의 앞으로 거대한 빌딩이 나타났다.

총 60층으로 이뤄진 게이트 부산물로 만들어진 대한민국에 단 세 개뿐인 기념비적인 빌딩.

청성 길드의 본사였다.


           


Don’t Die, It’s Not Your Body

Don’t Die, It’s Not Your Body

죽지 마, 네 몸이 아니야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Don’t worry, you deserve to be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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