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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

   

    “너 이 새끼, 기루 갔다 왔지.”

   

    춘봉이의 시선이 날카롭다.

   

    솔직히 잘못한 건 없는데 없던 잘못도 이 자리에서 만들어질 것 같은 눈빛이었다.

   

    “어…, 그렇죠?”

    “…….”

   

    춘봉이의 시선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진득하게 지나간다.

   

    난 결백하다. 진짜 돈 한 푼도 안 쓰고 왔다.

   

    굳이 변명하는 대신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흥. 당당하기는.”

    “동전 한 푼도 안 쓰고 왔어!”

    “병신.”

   

    입술을 삐죽 내민 춘봉이가 주섬주섬 다시 자리에 누웠다.

   

    “분내 나니까 씻고 자.”

    “넹.”

   

    꼼꼼히 씻고 잤다.

   

   

    *

   

   

    아침에 일어나니 춘봉이가 내 다리 한 짝을 꼭 붙들고 잠들어 있었다.

   

    ‘삐진 거 풀렸나?’

   

    통통한 볼살을 꾹꾹 눌러보다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즘 춘봉이는 늦잠을 자는 일이 잦았다. 아무래도 몸이 그렇게 좋지 않아서 그런 것 같은데, 이게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에휴. 하여간. 속 썩이기는.”

   

    검 한 자루를 달랑 들고 집을 나섰다.

   

    멀리 갈 생각은 없었다. 목적지는 집 바로 앞 무너진 흑호문의 건물 터.

   

    서준은 잔해들을 밟고 그 위로 올라섰다.

   

    “공기 좋구만.”

   

    현대 사회의 텁텁한 공기와는 달리 맑은 새벽 공기가 폐를 가득 채운다.

   

    숨을 한 번 크게 내쉰 서준이 검을 뽑아들었다.

   

    ‘태극 뭐 별거 있겠어?’

   

    춘봉 왈, 황운신공은 무극이태극의 깨달음을 토대로 만들어진 무공이라 하였다.

   

    그럼 까짓것 태극 한 번 시원하게 만들면 꽤 괜찮은 성취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혼원신공을 운기하기 시작했다.

   

    쩌저적-

   

    체내를 순환하는 내기를 음기로 전환했다. 그러자 주변 온도가 급격히 내려가며 검에 서리가 낀다.

   

    그 상태로 검에 검기를 덧씌우자 약간 음울하면서도 푸른 빛깔의 검기가 솟아났다.

   

    ‘여기다 양기를 섞으면….’

   

    이번에는 이전에 깨달은 음양반전의 수법으로 음기를 양기로 치환했다.

   

    그러자 주변 공기가 후끈 달아오르며 검에 찬란한 황금빛 검기가 치솟았다.

   

    “어라?”

   

    그렇다. 태극이고 뭐고 그냥 음기가 양기로 바뀌었다.

   

    심지어 온도가 급격히 변한 탓인지 금속으로 된 검이 끼긱 불안한 소리를 내기까지 한다.

   

    “이뭔씹….”

   

    마음 같지 않네.

   

    한숨을 내쉰 서준이 검을 집어넣었다. 한 번에 안 된다면 차근차근 해보면 그만.

   

    이번에는 왼손에 음기를, 오른손에 양기를 담아 합쳐보기로 했다.

   

    ‘왼손에 음기….’

   

    어렵지 않게 성공했다.

   

    ‘오른손에 양기….’

   

    역시 어렵지 않게 성공했다.

   

    그리고 왼손을 보니 음기가 양기로 변해있었다.

   

    “아오 씨발. 때려쳐.”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아직 자신의 수준이 이게 될 정도는 아니었다.

   

    서준이 혀를 차며 건물 잔해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수련했냐?”

    “엉.”

   

    언제부터 보고 있었는지 춘봉이 벽에 기댄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혼원신공?”

    “그렇지?”

    “…황운신공은?”

    “어차피 하나 하면 같이 수련되니까.”

   

    다른 무공이라고 아예 다른 분류는 아니다. 한 무공에서 깨달음을 얻으면 대부분 다른 무공의 수준까지 같이 오르는 경향이 있었다.

   

    “…흥.”

    “아잇, 또 왜 삐졌어!”

   

    얘가 요즘 사춘긴가?

   

    서준의 머릿속에서 책 한 권이 뚝딱 써졌다.

   

    ‘이제 너랑 같이 안 자!’

    ‘냄새나니까 가까이 오지 마!”

    ‘으…. 역겨워.’

    ‘나 이 사람이랑 결혼하기로 했어. 이제 찾지 마.’

   

    서준이 입을 틀어막았다. 그럴 수는 없는 법이다.

   

    “안 된다, 춘봉아! 나는 허락 못 해!”

    “뭐, 뭔데…?”

    “오빠보다 약한 놈한테는 시집 못 보낸다!”

   

    춘봉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너 진짜 주화입마 그런 거 아니지? 애가 날이 갈수록 상태가 안 좋아지네.”

    “뜌따…?”

    “아니, 진짜…. 뭐, 어. 그래, 뭐.”

   

    춘봉이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지랄은 여기까지 할까. 서준이 낄낄 웃으며 춘봉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됐으니까 밥이나 먹자.”

    “그 전에.”

   

    춘봉이가 제 손에 들린 검을 흔들었다.

   

    “대련이나 한 판 하자.”

   

   

    *

   

   

    대련이라 해봤자 대단한 건 아니었다. 

   

    내공 수준은 일류로 제한, 검기는 금지, 당연히 살초도 금지.

   

    진검을 써서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서준이나 춘봉쯤 되는 무인이면 그 정도는 알아서 조절할 수 있었다.

   

    “간다?”

   

    서준이 황룡도하를 펼치며 부드럽게 나아갔다. 땅에서 미세하게 뜬 발바닥이 마치 빙판 위를 미끄러지는 것 같다.

   

    카앙-!

   

    가볍게 휘두른 검이 막힌다.

   

    춘봉과 시선을 마주친 서준이 식겁하며 몸을 회전시켰다.

   

    파라락, 장포의 소매가 휘날린다. 그 사이를 찌른 춘봉의 검이 빠르게 휘둘러지며 서준의 전신을 노렸다.

   

    카캉-!

   

    검을 크게 휘두른 서준의 눈이 빛났다. 빈틈. 그대로 찌르고 들어간다.

   

    그리고 춘봉의 검이 부드럽게 원을 그렸다.

   

    “어?”

   

    분명 힘을 줬는데 그게 이상한 곳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

   

    검이 위로 붕 뜬 사이 춘봉이 재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서준이 어떻게든 검을 휘둘러 막아봤지만, 흐트러진 자세로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기회를 잡은 춘봉이 빛살처럼 검을 휘둘렀다.

   

    따당-!

   

    같은 곳을 연달아 타격하는 검. 서준이 재빨리 튕겨나간 검을 되돌렸을 때, 이미 춘봉의 검이 목에 닿아있었다.

   

    “워메….”

    “많이 늘었네.”

    “뭐야. 비틱이냐?”

    “비틱?”

    “기만이냐고.”

   

    춘봉이 코웃음을 쳤다.

   

    “니랑 나랑 무공 익힌 시간이 얼마나 차이 나는지는 아냐? 나는 걷기 시작할 때부터 익혔는데 니가 이기면 그게 이상한 거지.”

    “그럼 청하문주는 병신이야?”

    “앗.”

   

    곰곰이 생각하던 춘봉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런가?”

    “헉.”

   

    서준이 입을 틀어막았다.

   

    픽 웃은 춘봉이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네 재능은 다른 데 있으니까.”

    “음, 맞지. 그런 의미에서 우리 기공으로 한 판 뜰까?”

    “싫은데? 너 허접이잖아.”

    “뭣…!”

   

    최근 전적 0승 1패. 반박할 수가 없었다.

   

    “분하다…!”

    “지랄.”

   

    서준이 실실 웃으며 검을 검집에 넣었다.

   

    “나 좋은 생각이 났어.”

   

    춘봉의 의아한 시선에 서준이 바로 앞에 있는 담벼락에 지탄을 날렸다.

   

    쩌적-!

   

    지탄에 맞은 담벼락 일부가 얼어붙었다.

   

    이제는 그냥 자연스럽게 음기를 부리는 모습에 춘봉이 혀를 찼다.

   

    “쯧, 세상 씨발.”

    “어허, 잘 보고 있어봐.”

   

    서준이 다시 한 번 중지를 엄지로 붙잡았다. 이번에는 양기로.

   

    콰악-!

   

    아직 음기가 남아있는 담벼락 구석에 정확히 지탄이 날아가 꽂혔다.

   

    그게 끝이었다.

   

    급격한 온도 변화 탓에 조금 금이 가긴 했지만 그게 전부.

   

    “쓰읍…. 이게 아닌데.”

    “뭐가 하고 싶은 건데? 지금 그것만 해도 충분히 신기하거든?”

   

    양기와 음기를 자유자재로 다룬다?

   

    보통 누가 그런 말을 하면 헛소리 취급을 당하거나 사술 취급을 받는다.

   

    아니면 일월마공 익힌 거 아니냐고 대마두 취급을 받거나.

   

    “아니야. 한 번만 더. 이번엔 뭔가 될 것 같아.”

   

    서준이 집중했다.

   

    영감을 얻은 곳은 춘봉이의 검이었다. 연달아 자신의 검을 두드려 저 멀리 쳐냈던 그 검법.

   

    양기와 음기를 동시에 다룰 수 없다면 단계를 좀 나누면 되는 거다.

   

    “후우….”

   

    서준이 눈을 감은 채 손끝에 깃든 음기를 빠르게 회전시켰다. 이미지 하는 건 푸른 구슬.

   

    번쩍 눈을 뜬 서준이 지탄을 날렸다.

   

    쩌적-!

   

    지탄이 담벼락에 박혔다. 하지만 이전과는 조금 다르다. 음기가 그 자리에서 소용돌이치며 머물고 있다.

   

    빠르게 다음 지탄을 쏘아낸 서준이 희미하게 웃었다.

   

    이거, 아무래도 느낌이 좋았다.

   

    “자, 금춘봉! 이게 바로 태극이ㄷ…!”

   

   

    콰아아아앙──────────!!!

   

   

    삐이-, 귀에서 이명이 들린다. 

   

    “콜록…! 콜록…!”

   

    몇 번 마른 기침을 토해낸 서준이 품에 안은 춘봉을 바라보았다.

   

    “어우씹…. 괜찮냐?”

    “어? 어….”

   

    멍하니 서준을 바라보던 춘봉이 흠칫 놀라며 서준의 팔을 강하게 붙잡았다.

   

    “너, 너야말로 괜찮아!?”

   

    춘봉이의 힘에 순응해 그대로 몸을 빙글 돌리니 등짝이 시원하다. 

   

    이거 새옷인데. 얼마 되지도 않아서 다시 사게 생겼네.

   

    한숨을 내쉬고 있자니 등짝에 챱챱 자그마한 손의 감촉이 느껴졌다.

   

    “하아…. 크게 다치진 않았네.”

    “그럼요. 내공으로 막았지. 등에 기를 두른 거면…, 등기? 아니지. 배기背氣라 하나?”

    “헛소리 하지 말고 약이나 발라.”

   

    찰싹-! 허벅지를 얻어맞았다.

   

    “아니, 근데 개쩔지 않…. 뭐야. 표정이 왜 그래?”

   

    우는 건 아닌데,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울상이다.

   

    놀란 서준이 춘봉이의 양뺨을 붙잡았다.

   

    “어디 다쳤어?”

    “…아니.”

    “근데 왜 그래.”

   

    볼을 잡고 쭉죽 늘리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건 심각하다.

   

    서준이 무릎을 살짝 굽혀 춘봉과 눈을 마주쳤다.

   

    “무슨 일 있어?”

    “…그냥. 별거 아니야.”

    “뭔데 그래. 말만 해봐. 오빠가 다 들어줄게.”

   

    요즘 혼원신공만 쓰고 황운신공은 안 써서 섭섭했나?

   

    어쩌면 가르쳐준 검은 안 쓰고 탄지공으로 이상한 짓만 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지그시 눈을 마주하고 있으니 춘봉이가 우물거리던 입술로 말을 토해냈다.

   

    “이제…, 내가 도움이 안 되나 싶어서….”

   

    이게 무슨 개소리지? 진짜 사춘기라도 왔나?

   

    습관처럼 튀어나오려던 생각 없는 말을 목구멍 아래로 쑤셔넣었다.

   

    춘봉이의 말은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희야,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가르쳐줄 수 있는 건 다 가르쳐줬어. 이제 너 혼자서도 다 잘할 수 있잖아. 혼원신공이 있으니까 황운신공도 아주 대단한 도움은 안 되고. 나 때문에 영약 구하겠다고 고생하고…. 방금도 날 지키려다 다치고…. 난 도움받기만 하잖아….”

   

    삐죽 튀어나온 입술 위로 잔뜩 구겨진 눈매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얘가 이렇게 여리다. 강한 척은 다 하면서.

   

    요즘 딴생각을 좀 많이 하는 것 같더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

   

    콧잔등을 찌푸린 서준이 춘봉이를 번쩍 안아들었다.

   

    “이봐, 금춘봉. 솔직히 방금은 내가 병신짓 하다 다친 거잖아.”

    “그래도….”

    “어허, 이거 안 되겠구만.”

   

    서준이 익숙하게 춘봉이를 목마 태웠다.

   

    부옇게 일었던 흙먼지가 가라앉아 완전히 무너진 담벼락이 보인다.

   

    서준은 무너진 담벼락을 지나 황룡도하를 펼쳐 시장 거리로 나왔다.

   

    사람들이 보이자 춘봉이가 발갛게 부은 눈을 감추려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차 싶었던 서준이 다시 춘봉이를 목 위에서 내려 품에 안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말했다.

   

    “봐봐.”

    “…뭐를.”

    “빨리.”

   

    춘봉이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곁눈질로 사람들을 살피는 걸 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여기 이렇게 병신들이 많아.”

    “뭐?”

   

    춘봉이가 황당한 표정을 했다. 물론 지나가던 사람들도 황당한 표정을 했다.

   

    내 말이 개소리 같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이 수많은 병신들을 한 번 보고, 너를 다시 한 번 돌아봐. 너 정도면 진짜 개쩌는 놈이라니까?”

    “…지금 그걸 위로라고 하는 거야?”

    “당연하지.”

   

    도움이 안 돼도 괜찮다. 너는 내 동생이다. 너 아니었으면 난 진즉에 뒷골목에 시체 상태로 굴러다녔다. 그냥 평소에 헛소리 주고 받는 것만 해도 내가 얼마나 도움을 받는지 모른다. 

   

    그런 당연한 말은 굳이 안 했다.

   

    “신동이고 천재라면서. 조만간 절맥도 고칠 수 있을 수 있을 텐데, 그때부터 열심히 쫓아와봐. 혹시 알아? 네가 엄청 세져서 날 먹여 살릴지.”

    “…….”

    “뭐, 그때쯤 나는 초절정 찍을 거라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나름 농담이었는데 반응이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신 있다.

   

    “아마 인기도 초절정이지 않을까? 줄 서는 여자만 모아도 연병장 다섯 바퀴 정도는….”

    “…닥쳐 바보야.”

    “넹.”

   

    닥쳤다.

   

    그래도 서준은 웃었다. 그가 이겼으니까.

   

    퉁퉁 부은 눈으로 삐죽삐죽 웃는 춘봉이의 얼굴은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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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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