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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

       눈의 악마.

         

       실제 명칭은 눈의 악마랑은 거리가 멀다. 재해종(災害種)이라고 불리는 베이그니스(vagueness).

       별명은 땅 문어다. 그 외형이 문어랑 심히 똑같기 때문.

         

       하지만 재해종이니 눈의 악마니 떠들어도, 그녀와 같은 베이그니스들은 이미 대부분 죽은 상태였다.

         

       이유는 단 하나.

         

       자다가 굶어죽은 것.

         

       추운 곳을 좋아하는 베이그니스들은 하나같이 눈과 관련된 곳에 서식했다.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깨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멍청하게도, 한 번 잠이 들면 누군가 깨우지 않는 이상 일어나지도 않았다.

         

       안 그래도 추운 곳에 그녀를 깨울만한 소리가 있을 경우는 드물었다. 거기다가 그녀들의 서식처는 보통 절벽이나 계곡 같은 깊게 파인 곳.

         

       사람이 들릴만한 곳이 아니었다. 짐승들도 자연스럽게 피해 가는 곳이 바로 그녀들의 서식처였다.

         

       잠만보 녀석들은 그렇게 대부분 굶어 죽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재해종(災害種)이라고 불리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 특유의 어마어마한 덩치와, 끝을 모르는 식욕은 인간들에게 있어 재앙이나 다름 없었다.

         

       한참을 굶어서 타인에 의해 깨어난 그들은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을 먹어 치우기까지는 잠들지 않았다. 지금 깨어난 눈의 악마도 절벽을 무너트리고 근처의 마을을 모조리 집어삼킬 때까지는 멈추지 않을 터.

         

       솔직히 말해, 이 눈보라나 느릿느릿 기어 올라오는 거대한 촉수들은 잠꼬대와 같았다. 1페이즈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지. 응.

         

       하지만 그 잠이 완전히 깨어나면, 이곳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이것이 눈의 악마…!”

       “강하군!”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길 수 있어!“

       ”촉수들을 부술 수 없는 건 아니야!“

         

       아니. 아직 전초전이나 다름없다고요.

         

       이단심문관들이 신난 듯이 촉수에 성법들을 퍼부었다. 파삭파삭 촉수가 부서질 때마다 환호를 질렀다.

         

       힘 좀 아껴라. 제발. 저것들 어차피 다 재생한다. 이거 아직 맛보기라고. 진짜는 깨어나지도 않았다고.

         

       눈보라는 시간이 갈수록 거세졌다. 제 자리에 있다간 눈에 파묻히기에 십상이었다.

       아직까지는 전부 예상했던바. 눈의 악마의 출현도, 그 진행도도 모두 예측하에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눈보라의 세기가 너무 거세다는 것.

         

       뭐지.

       원래라면 이렇게까지 몰아붙이지 않는데?

         

       뭔가 이상했다. 수백 번의 시나리오 중에서도 이렇게 강한 눈보라가 몰아치지 않았다.

       거기다가 얼음 절벽을 타고 올라오는 저 거대한 촉수…

         

       원래 눈의 악마보다 훨씬 굵은데…?

         

       “라다토크님! 흔적을 다시 발견했습니다!”

       “전방에 얼음 동굴 발견!”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이단심문관 라다토크가 거세게 검을 뿌리쳤다. 성법 한 번에 촉수의 절반이 날아갔다.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는 무거운 검. 라다토크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얼음 동굴을 가리켰다.

         

       “전원 전투 준비. 이단들을 제거하고 눈의 악마를 다시금 봉인…”

         

       갑작스레.

         

       얼음 절벽이 울렸다.

         

       기괴한 포효소리가 메아리쳤다. 지반이 흔들리고, 눈보라가 한순간 거세졌다.

         

       얼굴을 정면에서 때리는 눈. 내리는 눈덩이 하나하나가 이제는 너무 커져, 거의 우박이 내리는 것과 같았다.

         

       잠깐…이 형태는 설마…

         

       “…아직 동굴도 안 보이는데 1페이즈라고?”

         

       얼음 절벽 위로 거대한 촉수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천지가 뒤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거대 촉수들이 빳빳하게 섰다.

         

       내려치기 일보 직전인 상태. 눈의 악마라 불리는 베이그니스들이 가장 먼저 일어나면 하는 짓이다.

         

       굶주린 배에 뭐라도 집어넣는 것. 그리고 그건…

         

       “이런 시발?!”

         

       이 얼음 절벽을 통째로 먹어 치운다는 뜻이었다.

         

       “당장 저 얼음 동굴로 뛰세요!”

       “형제님. 지금 뭐라고…”

       “설명할 시간 없으니까 뛰라고!”

         

       나는 몸소 말을 실천했다. 헐레벌떡 앞을 향해 뛰었다.

       얼음 동굴. 저것이 유일한 기회다. 저곳에서 버티는 게 눈의 악마 공략전에 있어서 필수 순서이니!

         

       “일단 시발! 전부 뛰어어어어엇!!”

         

       빳빳하게 섰던 촉수들이 일제히 내려쳤다. 거대한 그림자들이 지형을 뒤덮었다.

       눈의 악마의 처절한 포효.

         

       얼음 절벽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 . .

         

         

         

         

       골이 울렸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신음으로 가득한 주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잿불을 켰다.

         

       “…하.”

         

       어떻게든 얼음 동굴 속으로 들어온 건가. 이단심문관들 또한 거의 동시에 들어온 듯했다. 일부가 부서진 지반에 깔려 부상을 입은 듯했으나, 목숨에는 지장이 없는 것 같았으니.

         

       그나마 다행인가.

         

       갑작스레 천장이 울렸다. 거대한 진동 속에서 큰 소리가 났다. 우적거리는 소리.

         

       눈의 악마가 얼음 절벽을 먹어 치우는 소리다. 맛이 없는 단순 얼음덩어리니만큼, 천천히 먹고 있는 것이겠지. 내 예상이 맞다면, 저 녀석이 얼음 절벽을 전부 먹어 치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이주 남짓이었다. 어쩌면 그보다 더 길지도 모르고.

         

       일단 나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이단심문관들뿐만이 아니라 처음 보는 얼굴들도 대거 섞여 있었다.

         

       뱀의 교단.

         

       태양신교 입장에서는 이교도들이 이곳저곳에 완전히 널려 있었다.

         

       누군가 갑작스레 내 얼굴을 감쌌다. 흠칫 놀라 돌아보자 그곳엔 라다토크가 있었다.

         

       “형제님. 불을 끄십시오.”

       “불 끄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보이면 표적이 됩니다.”

         

       라다토크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는 거 같았다. 불을 끄고 어둠 속에 갇히자, 라다토크가 작게 속삭였다.

         

       “밖에 무엇이 있습니다. 형제님. 그것이 뭔지 알고 있습니까?”

       “눈의 악마에요.”

       “형제님은 제가 모르는 걸 알고 있는 듯 하군요.”

       “책에서 읽었어요. 얼음 절벽의 전설은 유명하니까.”

       “가르쳐주실 수 있겠습니까?”

         

       곰의 덩치를 한 뱀 같은 사람. 역시 라다토크다. 아무리 어린 사람이더라도, 배우는 데에 있어선 상관하지 않는군.

         

       “눈의 악마는 거대한 문어 형태의 악마에요. 빠른 재생력과 끝없는 식욕으로 유명하죠.”

       “아까 얼음 동굴을 외치지 않았습니까?”

       “제일 안전해 보였던 곳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아닌 거 같네요.”

         

       지반이 울렸다. 몸이 한 차례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라다토크가 한숨을 내쉬었다.

         

       “형제님이 어떻게 느낄지는 모르지만…저희는 지금 통째로 먹히고 있는 거 같습니다.”

       “아마도 맞을걸요?”

       “더 늦기 전에 탈출해야 합니다.”

       “불가능해요. 어디 한 곳을 건드리면 우리를 감싸고 있는 이 지형 자체가 무너질지도 몰라요.”

       “얌전히 먹힐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먹히는 편이 옳을지도 몰라요.”

       “…예?”

       “생각해보세요. 이단심문관님. 지형 전체를 잡아먹을 정도로 엄청나게 큰 악마라면, 오히려 내부에서 들쑤시는 게 옳지 않을까요?”

         

       일부러 먹히는 것이 눈의 악마 토벌전의 핵심.

       애초에 이 거대한 덩치를 상대로 외부에서 싸우는 건 죽여주십쇼-하는 거나 다름없다!

         

       “안으로 들어가 내장을 들쑤시고 심장을 파괴하죠. 그런 다음에 다시 나오는 거예요.”

       “무모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이미 무모한 짓을 할 수밖에 없게 되지 않았나요?”

         

       라다토크가 어둠 속을 노려보는 것이 느껴졌다.

         

       “형제님은…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습니까?”

         

       알다마다.

       그러니까 따라왔지! 하지만 이리 빠를 줄은 몰랐다!

         

       “설마요. 그러면 따라왔겠어요?”

       “…하긴 그렇군요.”

         

       이단심문관들이 정신을 차렸다. 하나둘씩 라다토크의 주변으로 몰려드는 게 느껴졌다.

       뱀의 교단에 속한 자들도 일어섰다. 어둠 속에서 속삭이다가 반대편으로 샤샤샥 움직였다.

         

       “…소속을 대라.”

       “닥쳐라. 이단들.”

       “이럴 줄 알았지! 잘도 살았구나! 이 더러운 태양의 종자들!”

       “추악한 짐승의 비늘 따위가 어디서 입을 터느냐!”

         

       왁왁!

       재잘재잘!

         

       터져나오는 고함 속에서 나는 귀를 후볐다. 그래. 이렇게 만났는데 안 싸우는 게 이상하지.

       하지만 안 된다. 지금은 안 돼. 나는 라다토크의 품에서 쓱 빠져나왔다. 폐에 있는 힘껏 공기를 담았다.

         

       “조요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옹!!!”

         

       소리가 멈췄다.

         

       나는 불을 탁 켰다. 화들짝 놀란 뱀의 교단들과 이단심문관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둘 다 성한 곳이 없었다. 곳곳에 타박상은 물론, 일어설 수 없어 앉은 채 검을 뽑은 사람도 있었다.

         

       “다 닥치고 들어 봐요. 상황이 이런데 무슨 소리를 그렇게 질러요?”

       “닥쳐라! 이단의 말 따위…”

       “아 시발! 이거 안 느껴져요?! 우리 다 죽게 생겼다고!”

         

       때마침 지반이 울렸다. 몸이 한 차례 더 가라앉았다. 아주 좋다. 나이스 어시스트. 눈의 악마.

         

       “지금 산 채로 먹히는 중인데, 우리끼리 싸워서 되겠어요?!”

       “하, 하지만 이단들과 같은 땅을 밟고 설 수는…!”

       “이단심문관님. 지금 우리 밑에 있는 게 뭔지 몰라요? 눈의 악마에요. 눈의 악마. 이런 얼음 절벽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먹어 치우는 녀석이라니까?”

       “네놈이 우리를 속일 지 어떻게 알고…!”

       “아. 좀. 뱀 교단. 그래. 당신들. 당신들도 똑같아요. 같이 먹히는 신세인데 자꾸 검 들이댈래요?”

         

       나는 땅을 쾅쾅 찼다.

         

       “이 눈의 악마라는 게, 우릴 다 먹어 치우면 어떨 거 같아요. 그대로 다시 자러 갈 줄 알아요? 제가 책 좀 읽어서 아는데, 이 새끼 전에도 도시 몇 개는 낼름 삼킨 녀석이었어요. 깨어나면 이런다니까?”

       “혀, 형제. 그게 사실인가?”

         

       물론 구라다.

       그랬으면 누가 푯말이라도 세워놨겠지.

         

       하지만 뭐 어떠냐!

       아무도 모르면 거짓말이 아니지! 그건 진실이다!

         

       “제가 거짓말한 거 본 적 있으세요? 이 망할 눈의 악마는, 우릴 다 먹고 나면 근방의 도시까지 꿈틀거리면 나아갈 거라니까요? 이단심문관님. 그렇게 내버려 둘 거예요?”

       “우, 우리는 힘없는 약자들을 보호해야만…”

       “눈의 악마가 죄 없는 시민들을 먹게 내버려 둘 수는…”

       “그렇죠? 우리의 위대한 라가 그랬잖아요. 추위에 떠는 자들을 위해 불을 밝혀라.”

       -내 말은 지지리도 안 듣는 주제에 구절은 다 기억하는구나.

         

       당연하지. 이럴 때 써먹으려고 외워둔 건데.

         

       “아무튼 싸움은 안 돼요. 이단은 중요한데, 이 밑의 악마를 저지하는 게 우선이라고요.”

       “…형제님 말이 맞습니다만…”

         

       라다토크가 눈을 번뜩였다.

         

       “저 더러운 이단들이 가만히 있을지 모르겠군요.”

       “가만히 있을 거예요. 거기 우두머리 누구예요?”

       “…뱀의 교단 사제 이자벨라다.”

         

       불빛 속에서 여사제가 일어섰다.

         

       …이자벨라?

         

       잠깐만. 그 이자벨라라고?

         

       “당신이 왜 여기 있어요?”

       “나를 아나?”

       “아니 시발…!”

         

       이자벨라. 검은 비늘의 성기사단장.

       한창 잘 나가는 뱀 교단의 핵심 전력!

         

       나는 그녀에게 불꽃을 들이밀었다. 흘러내리는 흑발에 절세 미녀. 눈 밑에 박힌 바코드 문양의 타투는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이자벨라의 외형이 맞았다.

         

       뱀 교단 핵심 전력이 왜 식량 털이나 하고 있어?!

         

       시나리오가 또 어떻게 굴러가는 거야…?

         

       “…아니. 내가 당신이 누군지 알겠어요?”

         

       나는 급히 정정했다. 생각해보면 차라리 낫다. 누군지도 모를 우두머리를 상대하느니, 성실하지만 나사 하나 빠진 성기사가 훨씬 나으니까!

         

       “그, 이자벨라. 그러니까…하씨. 당신들도 살아야 할 거 아니에요? 솔직히 말해, 우리가 이기면 이겼지, 질 리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라다토크님. 저렇게 말하는데요?”

       “궁금하다면 직접 보여주지.”

         

       라다토크가 성큼 앞으로 나왔다. 이자벨라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우리에겐 철곰이 있어요.”

       “형제님. 저는 라다토크입니다.”

       “아무튼 있어요! 당신들이 진짜 만에 하나 이기더라도…대부분이 죽을 거요? 그렇게 되고 싶어요? 이런 동굴 속에서 갇혀서, 그냥 뒤지고 싶냐고요. 예?”

       “…뭐 어쩌자는 거지?”

       “이단이니 뭐니 일단 다 접어두고, 나가서 이야기하자고요. 나가서.”

         

       나는 손을 쓱 내밀었다.

         

       “임시 동맹. 어때요? 라다토크님도 찬성하시죠?”

       “……”

         

       라다토크가 침묵했다. 눈을 감고 생각하다가 이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군…눈의 악마를 이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으니…태양신교는 죄 없는 자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검을 집어넣겠다. 임시 동맹을 제안한다. 이자벨라.”

         

       이자벨라가 이를 갈았다. 옆의 뱀 교단 성기사들을 노려보다, 이내 검을 탁 집어넣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네놈들은 인정한 건 아니다. 이 더러운 이단들. 나가는 즉시 베어주마.”

         

       뱀 교단 신도 중 하나가 중얼거렸다.

         

       “뱀교단의 떠오르는 신성 이자벨라님과…태양신교의 불곰이라니…어이어이…꽤나 위험한 조합이 탄생한 거 아니냐구…”

       “아 좀.”

         

       오타쿠 말투 집어넣어라.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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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성기사가 성물을 독차지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 world where magic reigns supreme and the influence of gods wanes, a young boy finds himself unexpectedly thrust into the role of an acolyte in the declining Sun God’s Temple. Blessed with the divine stigma of the Sun God, he must navigate the temple’s internal politics, the hostility of his fellow acolytes, and the challenges that come with his newfound powers.

As he delves deeper into the mysteries of the temple, he discovers hidden secrets and powerful artifacts that could change the course of his destiny. With the guidance of an enigmatic senior acolyte and the unwavering faith in his own abilities, he sets out to prove his worth and carve his own path in a world that has all but forgotten the true power of the di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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