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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

       

         

         

         

       “그 사람은 갑자기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레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별 다른 이유는 없었다.

         

       잠들 때마다 이상한 꿈을 꾸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꿈인지 그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지만, 아침에 일어날 때면 항상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바늘로 찔러오는 듯한 흉통은 덤이었다.

         

       의사는 일종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원인 불명의 후유증일 수도 있다고만 말할 뿐 원인을 속 시원하게 말해주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정밀 검사로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으니까.

         

       다만 레아가 기억하고 있는 건 단 하나였다.

         

       검은 고양이 가면을 썼던 바로 그 대위.

         

       그 남자를 찾아야만 한다는 것.

         

       꿈속에서 자신이 내내 그 남자를 찾아다니고만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르헨은 마냥 곤란할 뿐이었다.

         

       자기도 그걸 찾아보려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미 안보전략국에 대한 이상한 점을 식별한 순간부터, 아르헨은 감찰실의 권한을 적극 활용하여 카린 메이븐과 정체불명의 대위를 추적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찾지 못했다.

         

       우스갯소리로 사령관 다음으로 제국군에서 독보적인 권력을 자랑한다는 감찰실의 손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단체?

         

       그녀가 단숨에 확 꽂혀버린 이유이기도 했다.

         

       수상해도 너무 수상하지 않은가.

         

       아르헨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이내 레아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알았어. 찾아볼게.”

         

       지금 이 수사 내용도 사실상의 기밀이다.

         

       아무리 가깝고 친한 동생이라 한들 그 내용을 차마 말해줄 수는 없었다.

         

       안보전략국의 존재조차도 1등급의 기밀사안이었으니.

         

       아르헨으로서는 철저하게 자신의 입을 단속해야만 했다.

         

       완벽에 가까운 FM.

         

       아르헨 오르카를 이보다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으니까.

         

       “응… 고마워. 그런데 언니, 또 하나가 더 있는데.”

         

       “뭔데?”

         

       “우리 그레이브야드는 지금 어떻게 됐어?”

         

       “오늘따라 갑작스러운 질문을 많이 하네.”

         

       결국 아르헨은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몸을 돌려 레아를 바라보았다.

         

       “너 무슨 일 있구나. 나한테만 말해줘.”

         

       레아는 힐끗, 고개를 돌리며 그 눈빛을 회피했다.

         

       아르헨의 눈동자에는 기묘한 힘이 있었다.

         

       마주보면 저도 모르게 자신의 속마음까지도 털어놓아버리는 것이다.

         

       그만큼 아르헨은 본받을만한 사람이었고, 또 그런 고민을 나누면 진심으로 공감해주며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이 마음을 말하는 것이 맞을까하는 망설임도 있다.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은가.

         

       단순히 꿈에 불과한 내용에 집착하며, 제대로 얼굴도 모르는 남자를 쫓는다는 것이.

         

       “레아.”

         

       “…읏.”

         

       그러나 아르헨에게는 언제나 약해지고마는 레아였다.

         

       아르헨이 그녀를 소중하게 여기는 만큼이나, 레아도 아르헨을 소중하게 여겼으니까.

         

       “사실은… 요즘 매일 꿈을 꿔. 잠들 때마다.”

         

       조심스럽게 입 밖으로 내뱉은 자신의 감정.

         

       레아는 기억나는 모든 것을 아르헨에게 털어놓았다.

         

       아무리봐도 그 남자인 게 분명하다는 것과, 꿈의 맨 마지막은 언제나 그레이브야드가 철저하게 파괴되는 장면에서 끝난다는 것까지.

         

       “지평선 너머로 티탄이 무지막지하게 몰려와. 우리들은 필사적으로 싸우지만 결국 밀리고 말아. 모두가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순간, 그 남자가 울부짖으면서 자살해.”

         

       “그건… 굉장히 불길하면서도 기분 나쁜 꿈이네.”

         

       레아의 이야기를 들은 아르헨이 소름이 돋는지, 제 팔을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응… 그래서 너무 힘들어. 자는 게 무서워진 적은 처음이야.”

         

       정확하게 말하면 악몽은 아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으니까.

         

       다만 자신마저 희생당하던 마지막, 절규하던 남자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귓가에 맴돌아 미칠 지경이었다.

         

       -레아, 레아. 떠나지 않기로 했잖아. 내 곁에 남기로 했잖아!

         

       -그래, 내가 잘못했어. 다음에는 함께 군을 떠나는 거야. 티탄도, 다른 사람들도 찾을 수 없는 먼 곳으로, 멀리멀리 떠나는 거야.

         

       -레아…! 안 돼! 이것도, 이렇게 사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 거야? 어째서, 왜 나에게…!!

         

       게다가 그 목소리가 때때로 무척 다르게 들려온다는 것도 마음에 상당히 걸렸다.

         

       마치 다른 상황에 도달할 때마다, 자신이 계속해서 연달아 죽임을 당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비단 남자의 목소리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로 들리는 것도 섞이기도 했다.

         

       -미안해요, 약속 못 지켜서.

         

       -떠나자고요? 저랑 단 둘이? 다른 사람들은 어떡하고….

         

       -사랑했어요. 진심으로. 하지만 당신이 있을 곳은 제 곁이 아니잖아요? 다음에는 모두가,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바로 그 곳으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어지러웠다.

         

       순간적으로 핑 도는 감각에 레아가 눈을 질끈 감았다.

         

       “내 생각보다도 더 상태가 심각할 수도 있겠는데. 의사 선생님은 뭐래셔?”

         

       “별 이상은 없대…. 그래서 물어본 거였어. 혹시 이게 예지몽은 아닐까? 가끔은 그런 사람들도 태어난다면서.”

         

       “그렇긴 하지.”

         

       “설마 총격의 후유증으로 초능력을 각성했다던가?”

         

       이런 와중에도 실없는 소리를 내뱉는 레아 길리아드였다.

         

       아르헨은 그 모습에 잠깐 얼이 빠져있다가, 이내 풋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럼 우리들은 다 초능력자겠네?”

         

       그레이브야드에서 죽다 살아난 인물만 몇 명이던가.

         

       루터스 에단의 무리한 지휘 때문에 희생당할 뻔한 건, 아르헨 오르카도 매한가지였다.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라, 아르헨은 푹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그레이브야드는… 요새 벽이랑 아카샤만 남아있는 상태야.”

         

       “아카샤만? 사실상 아카샤가 요새 방어 시스템의 중추잖아. 왜 그것만 남아있어?”

         

       “모르겠어. 최고 사령부의 기술자들도, 정보통신대에서도, 공병대에서도 이유를 모르겠대. 아카샤를 회수하기 위해선 보유하고 있는 모든 데이터 파일이 삭제되야하는데, 무슨 이유인지 엄청나게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삭제되지 않고 있다고 하더라고.”

         

       “그거야말로 수상하네….”

         

       “그렇다고 허허벌판에 아카샤만 덩그러니 내버려두고 갈 수는 없잖아? 그래서 요새 건물은 해결책을 찾을 때까지 내버려둔대.”

         

       “으음….”

         

       레아가 찝찝한 듯이 입술을 잘근거렸다.

         

       “어쨌거나, 그 대위라는 남자는 최대한 힘써서 찾아볼게. 그냥 개꿈일 테지만, 어쩌면 네가 그 대위가 너무 맘에 들어서 다른 꿈속에 섞여나오는 걸지도 몰라.”

         

       일리가 있었다.

         

       실제로 맘에 들기도 했지 않았던가.

         

       정말 그런 거라면, 레아는 지금 자신의 연애 상대를 아르헨에게 찾아달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으니.

         

       뒤늦게 몰려오는 수치심에, 그녀가 얼굴을 붉혔다.

         

       “레아, 다른 생각 말고 지금은 회복하는 거에만 집중해. 연애건 소개팅이건 일단 나아야 하지. 병실에서 하고 싶지는 않을 거 아니야.”

         

       “맞아….”

         

       “언제나 안정, 또 안정! 그러니까 얼른 자. 내가 방해되는 것 같은데 그냥 로비에 나가서 볼게.”

         

       “으응.”

         

       레아는 빠르게 서류들을 챙겨 나가는 아르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역시 언니도 쉽사리 뭐라 말할 수 없는 내용일까.

         

       자기가 생각해도 난해하기는 했다.

         

       그래, 그래봐야 개꿈이지.

         

       인류는 티탄과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그녀 역시 살아있는 역사의 증인이었다.

         

       하지만 이 불안감은 대체 무엇인가.

         

       갑자기 티탄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불안감이었다.

         

       무언가.

         

       이대로 간다면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느낌.

         

       이게 연회장에서 만났던 의문의 대위 때문인지, 아니면 그레이브야드의 사람들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레아… 사랑해.

         

       -저도 사랑해요.

         

       아르헨이 자리를 떠나자마자, 귀신같이 계속해서 울려퍼지기 시작하는 목소리들에.

         

       레아는 그저 눈을 질끈 감으며, 이불을 뒤집어쓸 뿐이었다.

         

         

         

       ***

         

         

         

       우우우웅.

         

       제국의 최북단이자 최전선에 위치한 그레이브야드의 요새에서 붉은 빛이 일순간 번뜩였다.

         

       이미 황폐화된 주변 지역이었기에, 종전이 된 직후 인근의 주민들도 모두 남쪽으로 이주한 현재.

         

       그 정체불명의 현상을 관측하고 해결할 사람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으니.

         

       [그레이브야드 요새 시스템 자체 정기 진단 중.]

         

       [최순위 명령권자, 루터스 에단의 명령을 이행합니다.]

         

       [명령의 입력으로부터 180일이 경과되었습니다.]

       

        [미싱 프로토콜 가동]

       [지정된 기간 이내로 루터스 에단으로부터의 명령 갱신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주요 대상자들의 기억을 복구합니다.]

         

       [1차 대상자, 부사령관 아르헨 오르카 대령.]

       [2차 대상자, 돌격대장 브라운 드레이크 중령.]

       [3차 대상자, 군수과장 샬롯 에버그린 소령]

         

       …

       ……

       …

         

       […통신 반경 내의 해당 인원을 찾을 수 없습니다.]

         

       [최우선 복구 기록으로 지정된 34번째 기록의 주요 대상자는 레아 길리아드입니다.]

         

       [양자 기록 전송 활성화.]

         

         

         

         

         

       

         

         

         

         

         

       [미싱 프로토콜의 긴급 수행 절차에 따라 12일 후, 해당 인원에게 그레이브야드로의 긴급 귀환 메시지를 전송합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즐거운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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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ar Hero With No Regrets

A War Hero With No Regrets

후회 안 하는 전쟁영웅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victory earned after forty regressions.

It was now my turn to leave their side.

Not by anyone else’s will, but by my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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