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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

    <22 – 나 이거 억울해>

     

    소녀와 동료들은 감동을 금치 못했다.

    그들을 탈락시킬 작정으로 추적에 모욕까지 일삼은 자신들을 산사태와 지진으로부터 구해주다니.

     

    “너, 그 손은…… 그 지경이 되도록 로프를 붙잡고 있었던 거야?”

     

    에소니아 모험단의 젊은 피들을 이끄는 젊은 여대장, 이사벨.

    그녀는 자신의 가슴팍만큼도 되지 않는 아이에게 감사함과 동시에 수치심을 느꼈다.

     

    “심한 말만 했는데. 꼴 보기도 싫어서 탈락시키고 싶었을 텐데. 대체 왜?”

    “그냥. 할 수 있으니까 한 거에요.”

     

    그것은 어떠한 이해타산도 없는 순수한 호의였다.

    인간이 인간을 돕는데 이유가 필요한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함!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들은 지닐 수 없는 마음의 힘이었다.

    만 7세가 되면 노동에 투입되는 ‘어린이’가 없는 ‘작은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어린아이의 특권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티 없는 맑음이었다.

     

    ‘구전으로나 듣던 정령이 이럴까?’

     

    풍요로운 숲에서 자라한 티 없이 해맑은 정령.

    척박한 인간사회에서 자라난 이기적인 인간.

    모든 모험가들은 한 번쯤 정령과 인간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꿈을 꾸게 된다.

    자신은 인간이 아닌 정령의 삶을 살고 싶다고.

    폐쇄적인 마을이나 지역에서 이기적인 생을 살아가느니, 광활한 미지의 세계를 누비며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정령의 순수함을 손에 넣겠다고.

     

    ‘단장도 저 아이와 같았어.‘

     

    이사벨은 아이에게서 먼저 죽은 단장의 모습을 겹쳐보았다.

    어른답지 않게 티 없는 순수한 미소를 짓던 단장의 얼굴이 마치 저러했었다.

    생면부지의 철부지들도 모험단에 받아주고, 함께 순수를 쫓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졌네.”

    “시험참가자로도, 어른으로도, 모험가로서도 완패야.”

    “세계제일의 아카데미에 들어가려면 저 정도는 해야 되는 건가?”

     

    이사벨의 눈에서 독기가 사라지자 그녀를 따르던 이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 이사벨씨. 우린 그만두겠어.”

    “그런가. 너희도…….”

     

    기권의사를 밝히며 티켓시계의 조명이 붉은 색으로 물든 참가자들.

    그들의 시계 위로 탈락을 뜻하는 Retire의 문구가 연이어 떠올랐다.

     

    <골드티켓 소지자>

    <상태 – 탈락Retire>

    <사유 – 중도포기>

     

    혼자만 남아서야 무슨 면목이 있으랴.

    함께 기권하려는 그녀를 먼저 기권한 이들이 막았다.

     

    “잠깐. 당신은 안 돼.”

    “왜? 너희가 다 기권하는데 나 혼자 남아서 뭘 하라고? 모험단 정신도 잊은 거야?”

    “이사벨씨. 우린 당신이 걱정되어서 함께 왔을 뿐이야. 딱히 아카데미에 들어갈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어. 실력이 부족한 것도 알고 있었다고.”

    “나 혼자만 모험단에 진심이었다는 거야?!”

    “그런 뜻이 아니야. 애초에 우린 모험단에서도 후방요원이나 연차가 안 쌓인 애송이들이라 목숨만 건진 거잖아. 전부터 단장을 따라다닌 이사벨씨랑은 다르지.”

    “아까도 우린 밧줄 놓쳐서 죽을 뻔했다고?”

     

    그제야 이사벨의 눈에 동료들의 몰골이 들어왔다.

    기진맥진한 몸은 가누기도 힘든 상태.

    피로로 가득한 상태로는 다음 관문을 통과하기란 무리였다.

     

    “우리 몫의 티켓까지 함께 구해준 건 고맙지만 아무래도 여기까지가 한계야.”

    “미안하게 됐다, 이사벨.”

    “비겁해. 다 떠나면서 나한테만 혼자 남으라니, 그런 거 이기적이잖아. 모험단은 언제나 함께여야 하는 거 아니었냐고!”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성토하는 이사벨.

    동료들은 그녀의 애원에 답하는 대신, 오크노디와 지젤, 손오천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폐를 끼쳐서 미안했다. 진심으로 사과하마.”

    “사정이 있었으니 용서해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그래도 부디 우리 여대장님만큼은 용서해주지 않겠나? 우리랑은 달리 실력이 있는 분이야.”

    “맞아. 이사벨씨가 아니었으면 우리가 골든 티켓을 얻을 일은 절대로 없었어. 대장을 거둬준다면 분명 도움이 될 거라고 자신해.”

     

    지젤이 어쩔 거냐는 눈으로 오크노디를 돌아보았다.

    지진을 눈치 챈 것도 오크노디.

    이들을 구한 것도 오크노디.

    지금 저들이 용서를 구하고 그 용서를 받을지 말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사람은 오크노디 뿐.

     

    소녀는 물었다.

     

    “요리는 할 줄 알아요?”

     

    모두가 당혹스러운 물음이었다.

    아카데미 입학시험에서 요리 할 줄 아는지는 알아서 뭐하려고 묻는 걸까?

     

    “모험단은 현지보급이 필수적이야. 식용재료가 무엇인지 감별하고 즉석에서 조리할 수 있는 방법 정도는 숙직하지 않으면 독이나 병에 걸려서 죽어.”

    “그럼 합격.”

     

    장난스럽게 대답하며 손을 내미는 소녀, 오크노디.

    손을 뻗다가 상처투성이 손을 잡아도 되는지 주춤거리는 그녀를 오크노디의 작은 손이 덥썩 붙잡았다.

    모험가들은 생각했다.

    그냥 용서해줄 생각이었구나.

    저 아이에게는 뭐든 핑계가 필요했을 뿐이었어.

     

    “정말 감동적이야.”

    “우리의 모험도 헛되진 않았구나.”

    “저 순수함이 정령이 아니면 뭐가 정령이겠어?”

    “맞아. 저 아이는 정령이야.”

    “정령을 만났으니 여한이 없어.”

     

    순수한 사람을 칭송하는 온갖 찬사들이 오크노디에게 쏟아졌다.

    작지만 힘찬 손을 마주잡은 이사벨.

    단장이 죽은 이후 오래도록 잊고 지냈던 순수한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정령은 정령끼리 통하는 법이지.”

     

    모험가들은 씨익 웃었다.

    이사벨은 모르겠지만 그녀는 모험가들만의 작은 정령이었다.

    단장을 따르며 그녀가 짓곤 했던 순수한 미소가 보고 싶어서 함께 했던 이들도 적지 않았다.

    미소를 잃어버린 이사벨이 어찌나 슬펐던지.

    그랬던 그녀가 다시 웃음을 찾았다.

    나이제한에 걸려 아카데미에 도전하지 못한 늙은 모험가들에게 들려주거든 기뻐할 소식이었다.

     

    “시험을 보러 오길 잘했어.”

    “그러게.”

     

    자신들만의 작은 깨달음을 간직하고 돌아가는 에소니아 모험단의 젊은이들.

    먼발치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1차 관문 심사관 명호스님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선령한 이들은 패배에서도 스스로 도를 깨우치니, 에소니아 모험단의 앞날은 밝겠구나.”

     

    그로부터 30분 뒤, 맑은 종소리가 무너진 바위산 곳곳에 울려 퍼졌다.

    입학시험 1차 관문 평가시간이 도래했다.

     

     

    * *

     

     

    [산사태 이벤트를 통과했습니다.]

    [다가오는 재난을 파악해 현명하게 대처했습니다.]

    [보상으로 직감기능이 개방됩니다.]

    [관찰 경험치+5]

    [직감 경험치+1]

     

    직감의 경고는 중요하다.

    의식적으로는 파악하지 못한 위험을 무의식이 먼저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무의식의 경고에 귀만 잘 기울여도 산사태 같은 억까 요소를 잘 넘길 수 있는 것이다.

     

    ‘운도 좋았어. 이런 식으로 요리사까지 구하다니.’

     

    본업이 요리사는 아니지만 뭐 어때.

    아무튼 요리만 할 수 있으면 됐지.

    식재료 수급도 잘해, 요리도 잘해, 이만하면 1티어 지원동료다.

     

    “이번 1차 관문 응시생 500명 중에서는 315명의 사상자 및 기권자가 나왔습니다. 고로 2차 관문에 응시할 응시생은 남은 185인입니다.”

     

    수만 믿고 나대거나 어설픈 실력으로 경계를 소홀히 하였던 이들은 대거 탈락했다.

    물론 네임드NPC들은 흙투성이가 된 얼굴이나 찢어진 옷을 보아 산사태에 휘말려 험한 꼴을 겪기는 했지만, 다들 어떻게든 살아남아 통과했다.

     

    “여러분에게는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명호스님은 인자한 얼굴로 응시생들의 안일한 마음가짐에 타종을 때려박았다.

     

    “그저 구원을 바라며 기도하는 것. 이는 세계제일을 꿈꾸는 자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민초의 길.”

    “여러분은 작은 고을이나 산의 주인, 숱한 선신과 소신격 따위에게 자신의 목숨과 기원을 바치는 닫힌 고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소승이 동방제국을 떠나 서방교육기관의 중심지에 발을 들인 것 또한 그 때문이지요.”

     

    명호스님의 시험.

    그것은 소망을 쌓는 석탑쌓기의 시험이 아니었다.

    바라는 것은 의존이 아닌 자립.

    그의 시험은 곧 주체성의 시험.

    기프트 아카데미가 찾고자 하는 세계제일의 교육기관에 어울리는 인재란, 빛나는 재능Gift이란 주체성에서 탄생한다.

     

    “빛나는 재능의 원석을 갈고닦는 첫 걸음은 주체성을 품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여러분 중 대부분은 그 증명에 실패했지만 시련 속에 쓰러지진 않았죠.”

    “죽지 않는 것은 기회로 이어집니다. 오늘의 실패를 내일의 성공으로 탈바꿈시킬 기회 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다음 관문에서 증명하셔야 합니다. 세계제일의 기프트 아카데미에 입학할 자격이 있음을.”

     

    멘트만 봐서는 집단탈락을 시켜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관대한 명호스님은 다음 기회를 주었다.

    산사태와 지진이라는 가혹한 변수 속에서 살아남기에 급급했던 응시생들에게 자비를 베푼 것이다.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내가 기억하던 시험평가.

    주섬주섬 다음 관문으로 이동할 채비를 갖추던 내 주변에 이상한 조명이 날아들었다.

    시험관을 따라다니던 부하들이 조명마법이 걸린 거대한 빛 생성기를 나한테 겨누기 시작했다.

     

    “여기 이 아이는 이번 시험 최연소 응시생임에도 산사태의 징후를 파악하고 슬기롭게 사면을 피해 산정 너머 평탄한 지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엥? 저요?”

    “이 아이의 이름은 오크노디! 이번 1차 관문을 수석으로 통과한 응시생입니다.”

     

    사방에서 믿지 못하겠다는 시선이 쏟아진다.

    산사태를 눈치 채지 못하면 폭증하는 탈락확률(60%)이나 중상확률(30%)을 낮추겠다고 대비했을 뿐인데.

    게임 속에서라면 [중상을 회피했습니다.(9.9%)] 내지 [그룹 전원이 중상을 회피했습니다.(0.1%)] 선에서 그칠 이벤트에 덤이 따라붙었다.

     

    “시험관의 극찬을 받는 인재라. 탐이 나는군.”

    “어머나, 귀여운 아이네.”

     

    선성향 캐릭터들.

     

    “저딴 꼬마가 이 나를 제치고 수석?”

    “그저 한미한 하급귀족가문의 말예는 아니었군요. 쯧. 거슬려요.”

     

    중립성향 캐릭터들.

     

    “툭 차면 부러질 것 같은데?”

    “후후. 슬슬 애완견을 바꿀 때가 되긴 했지요.”

     

    심지어는 악성향 캐릭터들까지.

    주조연 캐릭터들이 모조리 나를 주목했다.

    연극 보러 갔다가 배우들과 눈이 마주치고, 반 강제로 무대에 끌려올라가는 아싸의 심정이 이럴까.

    게임에서라면 “뭘봐 텐련아.”하고 거대한 덩치와 근육을 내세우며 눈을 부라렸겠지만, 130cm나 겨우 넘는 이런 작은 키에 여자의 몸으로는 무리다.

    무엇보다도, 지금은 게임이 아닌 현실.

    아싸에게 그런 대담함은 무리라고.

     

    “보, 보지 마…….”

     

    시선을 피해 지젤의 다리 뒤에 숨었다.

    사방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부끄러움 때문일까.

    피부로 느껴지는 시선이 한층 뜨거워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조련사님 2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부끄럼 타는 오크노디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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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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