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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

       

       

       

       『어이. 뭔가.』

       

       방 안에 있던 다까히로가 마당에서의 소란을 들었는지, 방 문을 열고 내다보며 말했다.

       

       그러던 다까히로는 강 형사의 뒤에 서 있는 순사부장을 발견하고, 비꼬듯이 인사를 건넸다.

       

       『이게 누구야. 다니무라 순사부장 아니십니까. 간만이십니다?』

       『……! 다까히로 군. 자네가 왜 여기에서?』

       『그건 아실 것 없고, 순사부장이야말로 무슨 일입니까?』

       

       서로 아는 사이였나. 하긴, 경성에서 활동하는 엽사조합 간부와, 경성 종로경찰서 소속의 경찰은 아무래도 안면이 있을 만도 하다.

       

       다까히로를 보고 잠시 놀란 순사부장은, 강 형사를 바라보며 다까히로에게 턱짓을 했다.

       

       『……설명해 드려.』

       『예.』

       

       가죽 재킷의 강 형사가 앞으로 나서서, 앞서 나에게 했던 말을 다까히로에게 다시 한 번 설명한다. 이번에는 일본어였고, 나에게 했던 것보다 훨씬 공손한 말투였다.

       

       『그것이…… 며칠 전 끽다점에서의 사건 있지 않습니까? 그 범인인 ‘계형복’이라는 조선인이 사체로 발견되었는데, 여기 이 시라바야시 군도 용의자에 포함되어서 말이죠.』

       

       아까 나에게 설명했을 때보다 더 디테일한 정보가 나왔다. 그 조선인 강도의 이름이 ‘계형복’이었구나. 강 형사의 말을 들은 다까히로가 못마땅하다는 투로 되물었다.

       

       『사체? 용의자?』

       『예.』

       『사체가 발견된 것이 언제, 어디, 어떻게인데? 아앙? 소상하게 말해!』

       

       다까히로가 위압적인 어조로 묻자, 강 형사는 순사부장의 눈치를 잠깐 보더니, 디테일한 사건 정보를 술술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것이, 오늘 아침 청계천 오간수 다리 아래에서…… 예예. 동대문 근처요. 마침, 여기서도 멀지 않은 곳이잖습니까? ……거기서, 온 몸에 핏기라고는 하나도 없고 ‘미이라’처럼 바싹 말라서 죽어있는, 계형복의 사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정확한 원인을 알기 위해 급히 조사를 맡겼습니다만, 저희 생각으로는 끽다점 사건 때 연관이 있던 각성능력자의 범행이 아닐까 하고-』 

       『하! 그게 말이 되나…….』

       

       다까히로는 강 형사를 피식 비웃으며, 고개를 돌려 순사부장을 바라보며 말한다.

       

       『어이, 순사부장 나리. 여기 계신 시라바야시 생도에게는 아리바이가 있습니다. 어제 나와 함께 지방에 있는 그의 본가에 다녀와서, 오늘 오전에야 경성으로 돌아왔단 말입니다.』

       『아……』

       

       다까히로의 위세에 잠시 주춤한 순사부장은, 다시 내 쪽을 돌아보며 묻는다.

       

       『사실인가? 시라바야시 군.』

       『예.』

       

       나는 순순히 대답했다. 애초에 다까히로의 말대로, 나에게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으니까.

       

       『어제와 오늘 도장이 찍힌 승차권도 있고, 수원의 본가와의 연락을 통해 입증도 가능합니다.』

       『순사부장 나리, 알아들었습니까? 시라바야시 생도는 관계없으니까, 돌아가십쇼.』

       

       다까히로가 순사부장을 향해 다시 한 번 윽박을 질렀다. 와, 이게 시마즈 구미의 위세인가. 결국 순사부장은,

       

       『으음……. 알겠네. 이만 물러가지.』

       

       라는 말을 남기고, 비 맞은 개처럼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는 강 형사와 함께 대문 밖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던 다까히로가

       

       『쳇, 사쓰(짭새) 놈들이란…….』

       

       하고 중얼거리며 마당에 침을 퉤, 뱉는다. 나는 그런 다까히로를 보며 생각했다.

       

       ‘이거, 은근히 도움되네.’

       

       물론 나한텐 확실한 알리바이도 있었고, 부모 찬스를 쓰면 더더욱 무서울 것도 없었지만, 어쨌거나 경찰서에 가서 집으로 전화를 한다거나 증거를 입증한다거나 해야했기에 귀찮아졌을 것이었다. 

       

       그런 귀찮은 일이 될 뻔했던 것을, 시마즈 구미 소속 간부의 입김만으로 단번에 해치워버린 것이다.

       

       ‘그나저나, 미이라처럼 피가 빠져나가 죽었다라…….’

       

       나는 잠시 마당에 서서, 아까 경찰들이 말하고 간, 조선인 강도의 사인(死因)에 대해 생각했다. 의문의 각성능력자에 의해, 핏기가 하나 없는 미이라처럼 되어서 죽어있었다고.

       

       어떤 기분이었을까. 서서히 피가 빠져나가며 죽는 기분은.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몽롱한 상태에서 서서히 정신을 잃어가는 것이다……

       

       ‘잠깐.’

       

       거기까지 생각하니, 얼핏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이유하!’

       

       이유하가 앓고 있었던 증상. 아프지는 않지만 어쩐지 기력이 없고, 어지럽고 정신이 몽롱하다고 했었다. 거기다 숨이 차고, 안색도 창백해졌었다.

       

       ‘이거 딱, 빈혈 증상이잖아. 피가 부족할 때…….’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감기 따위가 아니라, 피가 부족할 때, 혹은 몸에서 대량의 피가 빠져나갔을 때의 증상이었다.

       

       ‘피……!’

       

       문득, 양복자가 말해 주었던 구로베 교수의 소문이 떠올랐다. 드라큘라 교수라는 별명.

       

       ‘설마, 구로베 교수가?’

       

       물론 그가 전설 속 흡혈귀인 드라큘라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가 행하고 있다던 연구의 내용을 생각하면, 그가 범인이라는 것도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각성능력자의 혈액은 그 자체로 마력의 매개체가 되어, 마력을 보존하는 데에 효과가 있었다. 때문에 마력 보존에 대한 연구를 몇 년째 이어가던 그가 학생들의 피를 탐하는 것은 전혀 이상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엽사전문학교만큼, 각성자의 싱싱한 혈액을 수급하기 좋은 곳도 없지.’

       

       구로베 교수가 범인이라면, 당장 이유하는 물론 이유하와 마찬가지로 기숙사에서 지내는 아이까와 역시 위험하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까히로가 물어왔다.

       

       『나가십니까?』

       『응. 병원은 아니고 잠시 다녀올 곳이 있어서. 너는 따라오지 말고 여기서 밥이나 짓-』

       

       나는 말을 하다 말고 다까히로를 돌아보았다.

       

       ‘이 녀석도 데려갈까?’

       

       혹시라도 구로베 교수의 범행이 맞을 경우, 지금의 내 능력으로는 원로 교수인 그를 혼자서 상대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21세기로 치면 B급 헌터에 상응하는 능력에다가 시마즈 구미의 고위급 간부인 다까히로가 나와 같은 편이라면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나는 말을 바꾸어 물었다.

       

       『-기는 싫지?』

       『……?』

       

       집구석에서 밥이나 지으라는 말에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던 다까히로는, 명령이 질문으로 바뀌어 들어오자 의문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어정쩡하게 앉아있는 다까히로를 독촉했다.

       

       『자, 칼 챙겨서 일어나. 나가자.』

       『……어디로 말입니까?』

       

       목적지는 당연히 학교 기숙사였다. 나는 주섬주섬 칼을 챙겨 나오는 다까히로에게 대답했다.

       

       『흡혈귀 잡으러.』

       

       

       

       ***

       

       

       

       다까히로와 함께 학교에 도착한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일요일이었으니만큼 교정을 오가는 학생은 드물었다. 나는 바로 기숙사동이 위치한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오긴 왔는데, 들어갈 수도 없고……’

       

       기숙사 건물 1층까지는 자유롭게 출입 가능했지만,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둘로 나뉘어 있었다. 한 쪽은 남자 기숙사로 통하는 계단이었고, 다른 한 쪽은 여자 기숙사로 통하는 계단.

       

       당연히, 남자들은 들어갈 수 없는 금남(禁男)의 구역이었다.

       

       『이거, 참. 지나가는 여학생이라도 있으면 불러달라고 부탁이라도 해 볼텐데…… 응?』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자니 다까히로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어느새 내 뒤에 서 있는 여학생 한 명.

       

       『혹, 시라바야시 생도가 아니십니까?』

       

       그렇게 무표정으로 물어오는, 머리칼을 한쪽으로 넘겨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는 작은 키의 여학생. 

       

       『어, 응. 너는-』

       『가쓰라이 오스에, 입니다.』

       

       ……으음, 그게 누구더라. 분명 공통수업을 받을 때 같은 반에서 본 것 같은데, 어쩐지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음침한 인상의 여학생이었다.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나는 마침 지나가던 여학생인 그녀에게 말했다.

       

       『부탁 하나만 하자. 아이까와 사토미라는 애 좀 불러줄래?』

       『……알겠습니다. 시라바야시 생도.』

       

       오스에는 내 뒤에 서 있는 다까히로를 슬쩍 보더니, 몸을 돌려 여학생 기숙사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갔다. 머지 않아서 아이까와가 내려왔다. 

       

       『아! 시라바야시 군……!』

       

       나를 발견한 아이까와는 내 쪽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내가 이유하의 상태를 묻자,

       

       『저기, 제가 방금까지도 리 양의 방에 있다가 나온 참인데요…… 리 양은 여전히 괴로워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도 좀……』

       

       하고 대답하는 아이까와를 그제서야 자세히 보니, 그녀도 뭔가 안색이 창백해보이는데다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다.

       

       『잠깐 이마 좀 짚어볼게.』

       『예? 에엣……!』

       

       ‘같은 증상이야.’

       

       아이까와의 이마를 짚어 상태창을 확인해보자, 하단의 상태란에는 ‘빈혈’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이유하와 같은 증상. 내가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저기, 그게……』

       

       아이까와의 설명을 들어보니, 어젯밤 구로베 교수의 연구실에 몰래 들어가봤는데, 특별한 건 없었고, 기숙사로 돌아와서부터 지금처럼 힘이 없고 어지럽기 시작했다고.

       

       『뭐?』

       

       구로베 교수의 연구실에 갔다 온 뒤로……?

       

       확실했다. 구로베 교수든 누구든, 학교 내에 흡혈귀 노릇을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우선 구로베 교수의 연구실로 가 보자. ……그 전에, 잠깐.’

       

       내가 구로베 교수의 연구실에 가 있는 사이에, 그가 여기로 온다면? 그 때는 내가 지켜줄 수 없다. 나는 다까히로에게 말했다.

       

       『다까히로.』

       『예.』

       『너는 지금부터 여기, 기숙사를 지키고 있어. 기숙사 사감실 전화를 빌려서 네 부하들도 몇 명 더 불러오고. 구로베 교수가 들어오지 못하게 해. 난 따로 가볼 곳이 있어.』

       

       다까히로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구로베 교수가 누굽니까?』

       『여기 아이까와가 얼굴을 알아.』

       

       나는 아이까와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 말에 아이까와가 두 손을 모으며 물었다.

       

       『저, 저기! 시라바야시 군! 어디를 가려고요……?』

       『구로베 교수의 연구실. 혹시 구로베 교수가 여기로 오면, 연구실로 연락 줘.』

       

       그 말을 끝으로, 나는 기숙사에서 나와서 교수들의 연구동 건물로 향했다. 긴 오솔길을 지나 연구동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다.

       

       교수들은 모두 퇴근하거나 아니면 일요일이라 나오지 않았는지, 어두운 연구동은 인적 하나 없이 고요했다.

       

       나는 발소리를 죽이기 위해 구두를 벗어 가방에 넣고, 연구동 입구의 신발장에서 고무화를 아무거나 한 켤레 집어들어 갈아신었다.

       

       어두운 복도를 조심스럽게 걷다보니, 「마술학 – 구로베(黑邊)」라는 명판이 걸린 교수 연구실을 발견했다. 문 틈에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여긴가.’

       

       한동안 문에 귀를 가져다대고 귀를 기울였지만, 인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문고리를 잡고 돌려보았다. 문은 잠겨있지 않았는지 그대로 열렸다.

       

       들어가니 마치 병원처럼 약품 냄새와 알코올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눈에 보이는 풍경은 그야말로 옛날의 과학 교과서에서 나올 법한, 유리로 된 ‘비이커’며 시험관, 샬레 접시 등이 가득한 연구실.

       

       그 안에, 구로베 교수는 없다.

       

       불이 켜져있는 것을 보면, 구로베 교수는 퇴근하지 않고 여전히 이곳에 머물러 있다가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이리라. 저녁을 먹으러 간 것일까?

       

       그가 돌아오기 전까지 뭔가 더 확실한 증거를 찾아야 했다. 나는 비어있는 연구실을 뒤져 보았다. 그러던 나는, 연구실의 한 쪽 책장에서 마력 반응이 느껴지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 높지 않은 수준의 마력 결계.

       

       제법 꼼꼼하게 쳐 둔 결계였지만, 저번 실습장의 쇠말뚝 결계와 마찬가지로 21세기의 내 기준에서는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진 허술한 결계였다. 

       

       취약한 부분에 손을 가져다대고 마력을 투사하자, 결계는 어렵지 않게 풀리며 책장이 통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드드득…… 

       

       회전문처럼 돌아가는 책장 너머로는 방 하나가 더 있었다.

       

       ‘세상에……!’

       

       그곳에 있던 것은, 양복자가 말해준 소문대로, 반쯤 해부된 소형 마수들. 그리고 선반에 정리되어 있는 것은, 유리로 된 시험관 안에 담겨서 코르크마개로 밀봉된 붉은 액체들.

       

       피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혈액이 담긴 시험관에는 각각 라벨이 붙여져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었다. 라벨에 적힌 것은 날짜와, 사람의 이름.

       

       1921년 12월 23일, ……

       1922년 2월 11일, ……

       1922년 2월 12일, ……

       

       무려 십수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라벨의 날짜. 그 끝자락에 있던 것은, 내가 알고 있는 이름들이었다.

       

       1939년 4월 7일, 이유하.

       1939년 4월 8일, 이유하.

       1939년 4월 8일, 아이까와 사또미……. 

       

       ‘미친, 소문이 사실이었나?’

       

       그 뿐만이 아니라, 마지막에는 ‘1939년 4월 9일, 계형복의 피부조직’이라는 라벨이 붙은 샬레 접시까지 있었다.

       

       ‘계형복이라면……!’

       

       분명, 오늘 아침에 청계천 다리 아래서 발견되었다던, 그 조선인 범죄자의 것이었다.

       

       더 이상 의문을 가질 것이 없었다. 구로베 교수가 범인이었다.

       

       ‘젠장, 어쩌지?’

       

       구로베 교수가 범인인 것은 확실했지만, 내가 그를 이길 수 있을까? 능력도 능력이었지만 그는 이 학교의 원로 교수 중 하나였다. 저 혈액 샘플에 적힌 날짜들만 봐도, 그는 십수년동안 이 짓을 해 왔다.

       

       그러고도 들키지 않았다는 것은, 학생 한둘의 폭로만으로는 그를 어떻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지금 여기서, 나 혼자 어떻게든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승산이 없지는 않았다. 구로베 교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연구실로 돌아올 것이다. 내가 이 곳에 숨어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채로. 그 때 기습한다면 어떻게든 승산은 있으리라.

       

       나는 연구실 탁자에서 예리한 메스 하나를 집어들며 생각했다.

       

       ‘여기서 기다린다.’

       

       만약 그 전에 구로베 교수가 기숙사로 향한다고 해도, 보는 눈이 많은 기숙사에서 범행을 저지르지는 못 할 것이다. 게다가 다까히로와 그의 부하들을 배치시켜 놨다. 시마즈 구미의 간부급인 녀석들이라면 충분히 저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기다린지 두어 시간 쯤 지났을까. 창 밖으로 노을지던 하늘도 어느덧 완전히 어두워져 밤이 되었을 무렵, 

       

       고요한 공기를 깨트리고 울리는 연구실의 전화.

       

       ‘으악!’

       

       깜짝 놀란 나는 벌떡 일어나 수화기를 들었다. 들려오는 것은 다까히로의 목소리.

       

       -『도련님!』

       『무슨 일이야?』

       -『구로베라는 놈을 잡았습니다!』

       『잡았다고?』

       -『예. 구로베 사노스께…… 기분나쁘게 생긴 놈이군요. 리 생도의 상태를 봐야겠다며 기숙사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기에 일단 붙잡아 두었는데요. 어떻게 할까요?』

       

       결국, 연구실로 오지 않고 기숙사로 간 건가? 하지만 오히려 다행이었다. 나 혼자서 싸울 필요가 없어졌으니.

       

       ‘됐다!’

       

       『내가 곧 갈테니까, 지키고 있어!』

       

       나는 구로베 교수의 연구실을 박차고 나와 부리나케 달려나갔다. 

       

       교수 연구동에서 기숙사로 이어지는 이어지는, 가로등도 없이 어두운 오솔길. 그런데 오솔길로 접어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라바야시 생도!』

       

       하고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돌아보니, 서글서글한 인상의 젊은 교수.

       

       『사이가네 선생!』

       

       사이가네 교수였다. 내가 멈춰서자, 사이가네 교수가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이런, 밤산보 중에 누군가 했더니 자네였구만! ……그런데 시라바야시 생도는 이 밤중에, 학교에는 무슨 일인가? 내가 알기로 자네는 통학일텐데.』

       『어, 잠깐 볼 일이 있어서요. 그나저나……』

       

       마주친 김에, 나는 사이가네 교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알레르기 때문에 생겼다던 두드러기는 말끔히 나아 있었고, 오히려 오늘따라 얼굴빛도 더 좋아 보였다. 

       

       ‘기껏 해독제를 구해 왔는데 필요없게 됐네.’

       

       『그나저나, 라니. 뭔가?』

       『어…… 그러니까, 먼저 가 보겠다고요. 제가 지금 좀 바빠서……』

       『흠. 그렇잖아도 바빠 보이긴 하군. 그러게나.』

       『예. 내일 뵙겠-』

       

       하고 헤어지려던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 사이가네 교수에게 같이 가 달라고 할까?’

       

       학생인 내가 원로 교수인 구로베 교수를 추궁하려면, 적어도 같은 교수이자 어른인 사이가네 교수가 곁에 있어주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유사시엔……

       

       『선생. 혹시 선생도 각성능력을 가지고 계십니까?』

       

       아주 미약하게나마 마력이 느껴져서 하는 말이었다. 내 물음에, 사이가네 교수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하! 능력 말인가! ……별 재주는 아니라서 말은 안했지만, 실은 나도 사소한 재주가 하나 있지. 「도로도로(흐물흐물)」해질 수 있다네.』

       『……흐물흐물이요?』

       『그래. 내 손을 잡아 보겠나?』

       『…….』

       

       별 생각 없이 사이가네 교수의 손을 잡아보니, 마치 뼈가 없는 듯 물컹한 손에 나는 질겁하고 말았다.

       

       『으악!』

       『하하! 놀랐는가? 그래, 이 정도의 재주라네, 시라바야시 생도. 이래서 굳이 말을 하지 않았지……』

       

       ‘와…… 십. 놀래긴 했는데 진짜 별거 아니네.’

       

       아마도 신체변형계의 일종일텐데, 암만해도 싸움에는 못 써먹을 능력이었다. 게다가 마력량도 낮고. 하긴, 그러니까 일반과 교수를 하고 있는 거겠지.

       

       ‘근데 이 정도면, 옅은 마력량에 비해서는 꽤 높은 퍼포먼스인데……’

       

       사소한 궁금증이 생긴 나는, 여전히 그의 손을 맞잡은 채로 상태창을 띄워 보았다.

       

       ‘상태창!’

       

       팟-!

       

       눈 앞에 사이가네 교수의 상태창이 띄워졌다.

       

       ‘……?’

       

       하지만, 눈 앞에 표시된 상태창을 보고, 나는 뭔가 잘못 된 것이 아닌가 싶어 눈을 깜빡거렸다. 하지만, 망막이 아닌 뇌내의 시각 신경에 띄워지는 상태창 디스플레이는 눈을 깜빡인다고 해서 내용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하하…… 그나저나, 너무 오래 잡고 있는 것 아닌가, 시라바야시 군? 아무리 신기하다고 해도 말이지.』

       

       그리고 상태창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개인의 영혼, 고스트에 새겨진 자아 인식과 마력 패턴을 그대로 분석해서 데이터로 보여줄 뿐.

       

        [유저 정보]

        성명 崔成吉 (최성길)

        연령 만 27세

        마력 E급

        각성 신체변형/B급

           혈분흡수/A급

        상태 변형 유지중(121일 8시간)

        [▷메인 화면]

       

       나는 여전히 웃고있는 사이가네 교수의 얼굴과, 눈 앞의 상태창을 겹쳐서 바라보며 생각했다.

       

       ‘뭐지, 이 새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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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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