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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

       백치열은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까지 늘 혼자였다.

       

       어릴 적 멋모르고 몰래 복용한 ‘멘탈 어태커’라는 직업을 얻은 이후.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필터링하지 않고 그대로 입 밖으로 내버리는 버릇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상대의 정신을 손쉽게 무너트리기 위한 직업의 특성이기는 했다.

       

       그 빌어먹을 특성 때문에 주위 사람들은 하나둘 백치열을 떠나갔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카데미에서만큼은.

       어떻게든 이 버릇을 고쳐 제대로 된 교우관계를 다지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이현성과의 대련 때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번에도 같았다.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부모님 욕을 들먹인 이후, 함께하던 친구들에게 버림받았다.

       

       슬펐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모든 게 자신의 업보라고 생각했다.

       

       이후, 이현성에게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용서는 바라지 않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은 되담을 수 없으니까.

       

       얻어맞더라도 감수하기로 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이현성은 너무나도 쉽게 자신을 용서해주었다. 친구로 받아주기까지 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멀리서 봐왔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고맙다는 마음과 별개로 존경심이 피어올랐다.

       

       가까이서 본 이현성의 성격은 이전과 다르게 한없이 선해졌다.

       

       과거를 뉘우치고 성격을 저렇게까지 바꿀 수 있다니.

       

       대단하면서도 존경스러웠다.

       

       자신도 더 노력하면 이 썩을 놈의 버릇을 개선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보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이현성을 본받아 성격부터 바꾸기로 했다.

       

       그것이 쉽지 않으리란 건 알지만, 이현성이라는 선례가 있기에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현성과 함께 하면 할수록 점점 그에게 감화되어 가는 걸 느꼈다.

       

       

       

       

       ***

       

       

       

       착각이었다.

       

       백치열은 자신이 이현성에게 감화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처럼 선한 성격을 가지게 위해 봉사 활동도 다니고 기부도 해가며 노력했지만 본질적인 면은 그대로였다.

       

       백치열은 스스로가 한심했다.

       

       레인보우 버드의 깃털이 서한빛을 노릴 때.

       

       겁에 질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이 역겨웠다.

       

       몸살 때문에 반응이 느렸던 것도 있지만 핑계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발걸음은 뗐어야 했다.

       구하려고 시도 정도는 해봤어야 했다.

       

       추한 자신과 다르게.

       이현성은 몸을 희생해 서한빛을 구했다.

       

       마치 어릴 적 만화에서 보던 히어로 같은 모습이었다.

       

       더욱 이현성이라는 인간에 대한 경외심이 들었다.

       

       ‘나도···.’

       

       서한빛이 치유 스킬을 사용하고 기절한 뒤.

       

       레인보우 버드의 깃털이 연이어 날아왔다.

       

       이현성은 그 방향을 등지고 있는 상황.

       

       백치열은 현재, 그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바뀌고 싶어.’

       

       방금 그가 행했던 것처럼.

       

       만화 속 히어로처럼.

       

       백치열은 양팔을 벌리고 짭현성 앞을 가로막았다.

       

       

       

       

       ***

       

       

       

       

       백치열이 갑자기 몸을 날려 짭현성을 보호하려는 게 보인다.

       

       쟤는 또 왜 저래?

       

       희생 릴레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뭐 하자는 건지.

       

       나는 빙의했던 철밥통의 몸에서 빠져나와 곧바로 짭현성의 몸으로 빙의했다.

       

       그리고 앞에서 인간 방패를 자처하고 있는 백치열을 간발의 차이로 끌어냈다.

       

       푸푸푹!

       

       또 한 번.

       짭현성의 몸에 다량의 깃털이 처박혔다.

       

       이번에는 빙의한 입장이긴 하지만···.

       몸이 고체가 아니라 그런가, 얼굴부터 몸까지 아주 골고루 뚫렸음에도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혀, 현성아!?”

       

       얼굴이 창백해진 백치열이 놀란 듯 소리쳤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얼굴에 박힌 깃털을 뽑아냈다.

       

       동시에 일그러진 얼굴이 자연스럽게 복원되자 백치열은 괴물이라도 본 듯 한걸음 물러서며 목소리를 떨었다.

       

       “···어, 어어? 어떻게 살아있는 거야···?”

       ─왜, 죽었으면 했어?

       “아니 머리가 뚫렸잖아 방금?!”

       ─사람은 쉽게 안 죽어.

       

       설명은 나중에 하면 된다.

       

       여유가 그렇게 넘치는 상황은 아니니까.

       

       “사람은 머리가 뚫려도 살 수 있는 거였나···?”

       ─쓸데없는 거 신경 쓰지 말고, 우선 서한빛부터 깨워 봐.

       

       빙의가 풀린 철밥통이 레인보우 버드를 붙잡고 있는 사이.

       

       마물의 숫자가 더 늘어나고 있었다.

       

       서한빛 때문에 팔팔해진 버드들.

       뒤이어 당도한 새로운 마물들.

       

       스톤 골렘들만으로는 막아내기 벅찬 물량이다.

       

       더욱 문제는···.

       

       ‘···한 마리가 아니었나?’

       

       다른 레인보우 버드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그럼 던전의 보스는 아니라는 건데.’

       

       더 높은 수준의 마물은 보이지 않는다.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실체화된 보스는 이곳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이동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레인보우 버드가 둘이 된 시점에서 형세가 매우 불리해졌으니까.

       

       ─깨비야 일단 저 닭대가리 상대 좀 하고 있어 볼래?

       ─키이!

       

       호승심 강한 깨비가 땅을 박차고 튀어나갔다.

       

       혹시 깨비라면.

       레인보우 버드와 비등하게, 아니 압도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했던 것이 무색해지게.

       

       ─키이이!

       

       짧은 격돌에도 수준의 차이가 한눈에 보였다.

       

       깨비가 3성에 준하는 마물이라도.

       저 어마한 체급 차이까지 메꾸진 못했다.

       

       ‘씁. 깨비도 상급 3성한테는 안 되나 보네. 체격이 비슷했으면 할만했을 것 같은데.’

       

       유효타는 제법 들어간다만···.

       

       그것이 치명타까지 이어질 기미는 안 보였다.

       

       오히려 레인보우 버드를 상대하기에는 체급이 맞는 철밥통이 더 적합했다.

       

       둘이 합체라도 하면 딱일 텐데 말이지.

       

       아쉬움을 삼키고 있자 백치열이 조심스레 말을 건네 왔다.

       

       “도, 도망갈까? 네 소환수, 아니 깨비도 힘겨워 보이는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이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마물들이 사람들을 쫓아가지 못하게 붙잡고 있었던 것도 있지만, 나 또한 속도가 딸려 도망을 못 가는 것이 지대한 이유였다.

       

       ─도망은 무슨, 우리 속도로는 금방 따라 잡혀. 그것보다 긴급 조치 부서에 연락은 넣었어?

       “아 맞다···. 급하게 오느라 까먹고··· 있었어··· 미안.”

       

       백치열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지가지한다.

       어쩐지 왜 이렇게 안 오나 했네.

       

       서한빛에 이어서 너까지 그러면 어떻게 하냐···.

       

       지금 긴급 조치 부서에 지원 요청을 한다 해도 도착할 때까지 버티는 건 무리였다.

       

       속이 터질듯한 답답함에 비속어가 목까지 차올랐지만 애써 억누르고 화를 식혔다.

       

       ─됐고, 서한빛부터 빨리 깨워.

       “흔들어도 안 일어나는데···?”

       ─뺨이라도 때려.

       

       미세하게 떨리는 백치열의 동공에 ‘그래도 되나?’ 같은 고민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시간 없는데 진짜.

       

       빠른 걸음으로 백치열을 지나쳐 바닥에 누워있는 서한빛에게 다가섰다.

       

       짜악-!

       

       뺨을 한 대 때리자,

       

       “으, 으···.”

       

       서한빛은 조금 정신을 차린 듯 신음을 흘리며 몸을 뒤척였다.

       

       짜악! 짝!

       

       아직은 비몽사몽 한 상태인 것 같아 연속으로 뺨을 후려쳤다.

       

       똥을 싸지르고 기절해서 앙심을 품은 건 아니다. 아마도.

       

       ─빨리 좀 일어나라.

       “으으···?”

       

       볼때기가 시뻘게져서야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서한빛.

       

       빨리 정신 차리라고 한 번 더 손을 치켜드는 순간.

       

       “히익··· 그, 그만···!”

       ─아, 일어나셨네요.

       

       정신을 되찾은 서한빛이 팔을 우스꽝스럽게 휘적이며 벌떡 상체를 가누었다.

       

       “이현성 님···?”

       

       그리고 한동안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금붕어처럼 입을 뻥긋거리기만 하던 것도 잠시.

       

       “모, 몸은 괜찮으신가요?!”

       

       그제야 기절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오른 모양이었다.

       

       ─보시다시피 멀쩡합니다.

       “···다, 다행이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제 치유가 닿았나 보네요···.”

       

       응. 마물들에게 아주 잘 닿았지.

       

       일전의 행동을 상기시키고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너 때문에 더 골치 아파졌다고.

       

       그런 불평은 전투가 마무리되고 해도 늦지 않기에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다. 

       

       ─서한빛 님. 저기 마물들을 덮을 정도의 광범위 보호막 하나쯤은 손쉽게 칠 수 있죠? 당장 하나만 쳐주세요.

       

       “어라, 아까는 반말···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광범위 보호막은 갑자기 왜요? 마물들을 가둬두려고 그러는 건가요?”

       

       ─대충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가능하면 제 소환수들 다 죽어나가기 전에 빨리 좀 해주세요. 시야까지 차단하는 종류의 보호막으로.

       

       이런 부탁을 하는 이유?

       

       어쩔 수 없이 최후의 수단을 쓰기 위함이었다.

       

       한순간에 불리하게 뒤바뀐 전황.

       이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 방도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던 중.

       

       문득 서한빛의 서브 직업인 ‘보호의 천사’가 떠올랐다.

       

       그 직업으로 보호막을 친다면.

       확실하게 마물들을 도륙 낼 수 있는 비장의 수를 꺼내는 것도 가능했다.

       

       “···현성 님. 그 정도 범위면 보호막의 내구도가 한참 떨어져요. 레인보우 버드가 공격하면 1분도 안 돼서 깨질걸요···?”

       

       이걸 또 따지고 있네.

       핑크 똥쟁이가 의견을 낼 입장이라 보는 건가?

       

       열불이 나려는 걸 차게 식히고 대답했다.

       

       ─상관없어요. 외부와 내부의 시야를 차단하려는 용도니까. 잔말 말고 저 포함해서 마물들 주위로 보호막 치세요.

       “네? 같이 가두라는 건가요? 대체 왜···?”

       ─이유는 묻지 말고, 빨리.

       

       인상을 와락 구기며 재촉하자 서한빛이 겁먹은 강아지처럼 몸을 움츠렸다.

       

       “아, 알았어요······.”

       ─경고하는데, 무슨 일이 있더라도 30분이 넘기 전까진 절대 보호막은 풀지 마세요.

       “어차피 그전에 깨질 텐데···.”

       ─깨질 일 없으니까 해제하지 말라고, 요.

       “···네.”

       

       확답을 받은 나는 최대한 목소리를 깔고 진지하게 말을 덧붙였다.

       

       “해제하면 다 같이 죽는 거니까, 명심하세요.”

       

       그만큼 중요사항이라는 걸 각인시키기 위해서.

       

       “현성아···.”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만류하려는 백치열을 외면한 채, 주저 없이 짭현성의 몸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갔다.

       

       

       

       ***

       

       

       

       

       

       서한빛과 거리를 벌린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뒤쪽을 확인했다.

       

       ‘···제법 빠르게 발동되네.’

       

       거대한 반구체의 보호막이 서서히 펼쳐지고 있다.

       

       ‘근데 아무렇지도 않나? 혈액 공포증 때문에 아까는 벌벌 떨었으면서 왜 지금은 멀쩡해?’

       

       그런 의문을 품고 있는 사이.

       

       완성된 보호막이 주위를 뒤덮었다.

       

       내부에는 마물과 소환수들.

       

       그리고 내가 서있었다.

       

       ─후우···.

       

       서한빛이 똥을 싸지르지 않았더라면.

       

       아니, 백치열이 긴급 조치 부서에 연락만 제대로 했더라면.

       

       이 방법까지 사용할 일은 없었을 터.

       

       그토록 사용하고 싶지 않았던, 꺼림칙하고 역겨운 수단을 꺼낼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나는 빙의를 곧장 해제했다.

       

       “짭현성 고생했다. 이제 도감 속으로 다시 들어와.”

       

       보호막이 완전해지고,

       이제는 외부와 단절된 고립된 공간이 되었다.

       

       ‘시야는 차단했으니까 괜찮겠지.’

       

       우선적으로 짭현성을 복귀시키고, 도감 속에 있던 난쟁이 2호를 소환해 맡겨두었던 물건을 건네받았다.

       

       값싸고 독한 양주를 담은 간이 물통이었다.

       

       “너희도 이제 전부 복귀해.”

       ─키이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레인보우 버드와 접전을 벌이고 있는 깨비가 걱정 어린 눈빛을 보내왔다.

       

       이 명령을 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주저하고 있는 모습.

       

       “걱정 안 해도 돼. 별문제 없을 테니까. 아마도···.”

       

       그렇게 깨비, 철밥통, 스톤 골렘들까지 모두 복귀시켰다.

       

       모든 소환수들이 사라지자 마물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쏠렸다.

       

       “뭘 쳐다봐, 황당해? 나였으면 그러고 있을 시간에 당장 달려들어서 찢어 죽여놨겠다.”

       

       꼴에 지성체라고 얼을 타고 있는 꼴들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나는 조소를 흘리며 술을 담은 물통의 뚜껑을 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히어로 파트 4~7 까지는 작가의 멘탈을 위해 댓글 금지 설정으로 바꿨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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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cademy’s Only Monster Summoner

The Academy’s Only Monster Summoner

아카데미 유일급 마물 소환사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possessed a madman in the novel who confessed to the heroines and was dump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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