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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

       막 상경한 세상 물정 모르는 시골 소녀 같은 인상과 다르게, 의외로 예나는 요람과 관련된 이런저런 잡다한 사실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예나는 걸음을 옮기는 내내 주변에 서 있는 건축물들의 용도나 기숙사와 대련장 같은 시설의 위치 등을 줄줄 읊어댔다. 심지어는 학생들의 일도 모르는 게 없었다.

         

         

       “그거 알아? 이번 기수에는 명가의 자제들이 유난히 많이 입학한대. 그중에는 마도이십칠족의 후계자도 네 명이나 있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귀찮은 일에 휩쓸리지 않게 정말 조심해야 한댔어. 그 말을 들으니까 진짜 너무 걱정되고 무서운 거 있지. 나 잘 할 수 있을까? 히잉…아, 그래도 우리 기수는 선배들보다는 나은 편이래. 글쎄, 작년에는…”

         

       예나는 지치지도 않고 혼자서 몇십 분 가까이를 떠들어댔다. 그동안 내가 한 일은 묵묵히 보조를 맞춰 걸음을 옮기거나 가끔 단답으로 맞장구를 쳐주는 것뿐이었다.

         

       어떻게 벌써부터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알 수 있나 잠시 의아하기도 했지만, 그런 의문은 머지않아 풀려 버렸다.

         

       아까 했던 말과 달리, 예나는 이미 제법 많은 숫자의 친구들을 사귄 듯했다. 발걸음 하나마다 나누는 인사도 하나씩이었다.

         

       한참 그렇게 인사를 주고받던 예나가 갑자기 나를 보고는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히…사실은 아까 조금 일찍 왔었거든…그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좀 친해진 사람들도 있어…아까 내가 말해준 것도 다 그런 친구들한테 들은 거고…아, 그래도 거짓말한 건 아니다…? 같이 다닐 정도로 친한 사람은 없어…진짜로…나한텐 네가 제일 친한 친구야…”

         

       예나가 마치 속사포처럼 변명하듯 말을 쏟아냈다. 그런 것치고는 인사를 하는 사람마다 상당히 친해 보였는데.

         

       사실 별생각도 없다. 오히려 그 붙임성 좋은 성격이 부러울 뿐이다.

         

       거기에 예나는 초식동물처럼 무해 해 보이는 인상이기도 했으니, 짧은 시간에 그렇게 많은 사람과 친해질 수 있던 거겠지. 굳이 나하고도 붙어 다니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예나는 물어보지도 않았던 자신의 신상 명세를 알아서 줄줄 토해내기도 했다.

         

       덕분에 나는 예나가 동부 삭주 출신이며 하루에 전기가 들어오는 시간이 채 10시간도 되지 않는 변방 중의 변방 출신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예나는 나에게도 궁금한 점을 쉴 새 없이 물어봤다. 출신지는 어디인지, 가면은 왜 쓰고 다니는지 등등.

         

       그러나 나는 예나처럼 모든 걸 솔직하게 이야기해 줄 수는 없었다. 출신지는 위장 신분에 적힌 곳을 알려주었고 가면을 쓴 사정도 적당히 둘러댔다.

         

       내 고향은 이미 재가 되어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고 가면에는 말할 수 없는 사정이 너무나 많이 얽혀있었으니.

         

       나는 예나처럼 호기심이 많지는 않았지만 딱 하나 궁금한 게 있기는 했다. 요람에 들어올 정도로 재능 넘치는 마법사가 어째서 그날 골목에서 잡범들에게 쫓기고 있던 걸까.

         

       상대가 세 명이기는 했지만, 마법사와 일반인의 싸움이라면 십 대 일의 싸움이어도 마법사가 가볍게 이기는 게 내가 가진 상식이었다.

         

       하지만 그런 내 의문은, 상당히 맥 빠지는 예나의 대답을 듣고 탁-풀려 버렸다.

         

         

       “그게 실은…너무 무서워서 마법식을 작성할 생각을 미처 못했어…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예나는 평생 마수조차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위기에 맞닥뜨렸으니…

         

         

       “이, 이거 어디 가서 말하면 절대 안 된다아…? 진짜루 비밀이야…? 너라서 믿고 알려준 거다…?”

         

       자신도 못내 부끄러웠는지, 예나가 홍당무처럼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는 작게 소곤거렸다.

         

         

       “…어차피 말할 사람도 없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그보다 우리 이제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지금 시간이…”

         

       원래는 먼저 화양관에 가 있을 계획이었지만, 예나의 안내를 받으며 교정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입소식의 시작이 목전에 와 있었다.

         

         

       “히야악! 맞다…! 이쪽으로 가면 돼. 빨리 와, 현아…!”

         

       예나가 내 말을 듣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시간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폴짝거리는 걸음으로 앞서며 나를 화양관으로 이끌었다.

         

       화양관은 외벽 전체가 통유리로 되어 있는 무척 큰 규모의 연회장이었다. 천장은 까마득하게 높았고 보석들로 장식된 고급스러운 샹들리에가 곳곳에 매달려 빛을 발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학생들이 거의 발 디딜 틈 없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나와 예나는 그나마 인파가 덜 한 가장자리 쪽에 적당히 자리를 잡고 섰다.

         

         

       “후우…그래도 늦지는 않은 거 같지…? 다행이다…히…”

         

       예나가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작게 웃었다. 홍조가 옅게 올라온 그 볼에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몇 가닥 붙어있는 게 보였다.

         

         

       “현아, 저기 앞에 봐…! 아까 내가 말한 그 학생들이야. 마도이십칠족의…”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예나가 앞쪽을 살피고는 작게 소곤거렸다. 시선을 돌리니, 과연 몇 명의 남녀학생들이 저들끼리 무리를 지어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감에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언뜻 자만에 가까워 보이는 거 같기도 하다. 태도에서는 여유로움과 품격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왔다.

         

       대충 눈대중으로 봐도 좋은 태생의 이들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분명 단장이 말했었지. 요람에 입학하면 도련님과 아가씨들 찡찡거리는 소리에 한동안 귀가 시끄러울 거라고. 그럼 저들도 그렇게 되는 건가…?

         

       악의는 없지만, 솔직히 그 모습이 조금은 궁금하기는 하다.

         

         

       “그리고 오른쪽에 있는 학생들이 2학년이야. 3학년들은 거의 현역이나 다름없어서 요람에는 들어오는 일이 별로 없대. 그러니까 저분들이 우리 직속 선배님인 거지…”

         

       예나가 작은 목소리로 재차 속삭였다. 지금 우리가 있는 화양관의 왼쪽이 신입생들의 자리고, 오른쪽이 상급생들의 자리인 듯했다.

         

       꿈에 가득 차 활기가 넘치는 신입생들과 대조적으로, 화양관의 오른편은 어쩐지 우중충하고 살벌해 보이는 분위기가 가득해 보였다. 아마 작년에 있었다는 그런 일들 때문이 아닐까. 1년 내내 치고박고 싸워댔으면 그야 피곤할 만도 하다.

         

         

       “으, 근데 좀 무섭다아…왜 이렇게 다들 날카로운 표정을 짓고 계신 거 같지…?”

       

       나와 같은 인상을 받았는지, 예나가 자신의 양팔을 감싸며 오들오들 떠는 시늉을 했다.

         

         

       “…?”

         

       2학년 선배들의 면면을 살피는 와중이었다. 나는 눈에 익은 생김의 한 여학생을 문득 발견할 수 있었다.

         

       여학생은 2학년들의 자리에서도 조금 구석에 물러나 있었다.

         

       긴 생머리는 단정하게 빗어 내렸다. 얼굴은 선이 얇고 갸름했다. 눈망울은 크고 또렷했으며 입술은 창백한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코는 예술적인 각도로 솟아있었으며 피부는 잡티 한 점 없이 맑았다.

         

       보는 순간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고혹스럽고 도도한 외모였다. 교장이 전해준 프로필의 사진은 그를 온전히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서늘한 눈동자 사이로 새어 나온 오만함과 시건방짐 또한 아주 잘 느낄 수 있었다.

         

       적화 연씨 가문의 고명딸이자 후계자, 연민하.

         

       해월화가 했던 의뢰의 대상이 바로 저곳에 있었다.

         

         

       ***

       

         

       나는 입소식이 시작하기 전에 잠시나마 그녀를 관찰하기로 했다. 혹시 무언가 실마리라도 얻기를 바라며.

         

       연민하는 내내 무언가 맘에 들지 않는 듯 보였다. 뾰로통하게 살짝 내민 입술에는 심술이 가득했다.

         

       그 주위에는 연민하와 함께하는 몇 명의 상급생들이 있었다. 연민하의 작은 몸짓 하나하나에도 안절부절못하는 게, 친구라기보다는 오히려 시중드는 시녀나 하인에 가까워 보이는 모양새다.

         

       그러나 몇 분간 계속 그 모습을 관찰하니, 나는 몇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연민하의 눈빛은 무게가 없고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그 시선은 눈앞이 아니라 마치 허공 저 너머의 무언가를 보고 있는 듯했다.

         

       눈 아래는 화장으로 가리지 못한 다크서클이 짙게 묻어나고 있었다. 유리잔을 든 손끝은 심하게 덜덜 떨렸다.

         

       전체적으로 어딘가 여유가 없고 초조해 보이는 모습이다. 작년의 일이 그렇게 스트레스가 심했던 건가? 하긴 요람에서도 영 좋지 못한 모양새였고, 얼마 전에 가문 소유의 광산들이 테러를 받아 큰 타격을 받았다고 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적당히 볼 건 다 봤으니 관찰을 끝내려던 참이었다. 문득 연민하가 고개를 돌리더니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상당히 먼 거리였지만 형형한 눈빛이 정확하게 나를 관통했다.

         

       하지만 연민하는 못 볼 꼴을 봤다는 듯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릴 뿐이었다. 그러고는 다시 시선을 다른 쪽으로 휙-돌려버렸다.

         

       가면을 쓴 탓에 먼 거리에서도 그 생김이 눈에 확 띄었나 싶었다. 어째 시작부터 느낌이 별로 좋지가 않다. 상당히 안 좋은 인상이 박혀버린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안 좋은 인상이 박힌 건 나도 마찬가지다. 사진과 텍스트가 아닌 실물을 확인해서 그런지 그 오만함과 표독스러움이 더욱 기분 나쁘게 피부에 와 닿았다.

         

       그리고 나는 그 두 개를 세상에서 제일 싫어한다.

         

         

       “어…? 시작하려나 봐…!”

         

       돌연 주위에 어둠이 내리자 예나가 중얼거렸다. 레이스가 달린 높은 커튼이 저절로 닫혀 창문을 막아버리자 샹들리에가 발하는 은은한 조명만이 화양관을 비추었다.

         

         

       “곧 요람의 제73회 입소식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학생 여러분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길 바랍니다.”

         

       곧 증폭기를 통해 울리는 어떤 목소리가 실내에 가득 울려 퍼지며 입소식이 시작되었다. 요람의 역사와 설립 취지의 설명, 초빙된 명사들의 재미없는 연설, 앞으로 1년간 각 과목을 담당할 교수들의 소개가 한동안 이어졌다.

         

         

       “이어서 신입생의 선서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요람 73기 생의 대표, 진예서 양은 앞으로.”

         

       사회자의 지명에, 신입생들의 가장 앞줄에 서 있던 여학생 한 명이 연단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아까 예나가 알려준 무리 속에서 대화를 나누던 이였다. 머리카락은 금빛으로 물들었고 눈동자는 녹주석처럼 반짝였다. 이국적이고 청초한 생김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쟤가 다섯 가문 백광 진씨의 후계자야. 아까 봤지…? 진짜 요정처럼 생겼다. 조상 중에 서역인의 피가 섞여서 그렇대…”

         

       옆자리에 선 예나가 조용한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연단 앞에 선 여학생이 자신의 오른손을 펼쳐 가슴께로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자신의 앞에 놓인 선서문을 또박또박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선서. 나는 오직 대한민국 제10 공화국의 번영과 지속, 제민의 보호와 권익을 위해서만 마법을 사용할 것을 다짐하노라. 나는 언제나 정의로 굳건히 서 있을 것이며, 혼돈과 어둠으로부터 질서를 지켜내겠노라. 나는 균형을 깨트리지 않고 현명함으로 마법을 다스릴 것이며, 입자의 흐름을 존중하여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데 힘쓰겠노라. 나는 마법의 근원이자 나침반인 정직과 신뢰를 저버리는 일 없이 그 소명을 오롯이 다하겠노라. 또한 이 모든 말들이 한 점 부끄럼 없는 진실임을 나의 심장과 샘의 앞에서 굳게 맹세하노라.”

       

       진예서가 선서를 마치자 곳곳에서 작게 박수가 쏟아졌다. 선서의 내용에 감동이라도 받은 듯 눈빛을 반짝이는 신입생들 또한 보였다. 당장 내 옆자리의 예나도 마찬가지였고.

         

       하지만 그간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인지, 나에게는 그리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지켜야 가치가 있는 법이다.

         

       아마 방금 눈빛을 반짝거렸던 신입생들도, 1년만 지나면 썩은 물고기처럼 흐리멍텅한 눈빛을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이어 상당히 낯이 익은 사람의 그림자가 등장했다. 언뜻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단아하고 고운 인상의 여인이 단상 위에 모습을 보였다.

         

         

       “세상에, 교장 선생님이야…! 나 진짜 실물은 처음 봐…어쩜 기품이…”

       

       예나가 교장을 보며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주변에서는 그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해월화는 생각보다 인기가 좋구나. 그런데 누나들이랑 단장은 왜 그렇게 교장한테 학을 뗐던 거지?

       

       잠깐 가벼운 소란이 일었지만, 교장이 손을 살짝 들어 올리니 곧 진정되었다. 해월화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학생들을 잠시 둘러보더니, 곧 입을 열고 연설을 시작했다.

         

         

       “반갑습니다, 신입생 여러분.”

         

       맑고 고운 목소리가 증폭기를 통해 화양관 안에 가득 울려 퍼졌다.

         

         

       “우선 요람의 가족이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요람은 이제 막 마법사로서의 여정을 시작한 여러분을 물심양면으로 도와드릴 수 있는 최고의 장소지요. 분명히 말씀드리죠. 후회할 일은 없을 겁니다. 뭐, 마사다 시립 아카데미나 육화 같은 똥통들보다는 우리 요람이 훨씬 낫지 않겠어요?”

         

       해월화가 던진 농담에 좌중의 여기저기서 작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그 반응을 본 교장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3년간 자신을 갈고닦으며 점점 한 명의 어엿한 마법사로 거듭나게 될 겁니다. 그 과정에서 옆에 있는 이들과 함께 어우러지게 되겠지요. 때로는 서로 협력할 수도 있고, 때로는 마찰과 다툼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겁니다. 어느 쪽이든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리고 우리 요람은 그런 여러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장소이지요.”

         

       말을 마친 해월화가 잠시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선의의 경쟁이 아닌 생산성 없는 분열만을 반복한다면, 우리 앞에 놓인 건 오직 어두운 미래뿐일 겁니다. 우리는 근시안적인 이익에 눈이 멀기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실력뿐, 출신과 배경은 부차적이라는 점을 부디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정녕 현명한 마법사라면, 방금 한 말들을 반드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럼, 다시 한번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연설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예나 역시 상기된 얼굴로 손뼉을 신나게 맞부딪혔다.

         

         

       “우와아…진짜 멋있으시다아…”

       

       교장은 잠깐 학생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곧 계단을 따라 걸어 내려왔다. 생각보다는 연설이 상당히 빨리 끝난 기분인데. 정말 귀찮은 일을 싫어하는 성격이 맞는 듯하다.

         

       단상을 내려가며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해월화가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고는 살짝 눈웃음을 지어준 후 교직원들의 자리로 향했다.

         

       확실히 눈에 띄어서 그런지, 오늘따라 눈을 마주치는 사람이 많다…

         

         

       “…이제 2학년 대표의 답사를 마지막으로 입소식을 종료하겠습니다.”

       

       증폭기를 통해 사회자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나는 불현듯 연민하가 있던 자리로 시선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연민하의 아름다운 얼굴은 날 것의 노기로 가득 물들어 있었다. 이를 으득 깨무는 소리가 들려오는 착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먼 거리였지만 그 분노가 여과 없이 느껴졌다.

         

       아까 예나에게 듣기로, 답사를 하는 2학년 학생은 작년 종합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학생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연민하와 내내 라이벌리티를 가지고 있다던 백가의 영애겠지. 그에 밀려 2위를 했으니, 저렇게 분노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

         

         

       “그럼 2학년 대표. 백서연 양은 단상 앞으로.”

         

       사회자의 입에서 어떤 이름이 내뱉어지는 순간이었다.

         

       마치 지독한 한기가 스며드는 것처럼, 돌연 몸 곳곳에 오한이 느껴졌다.

         

       쿵쾅거리는 심장 뒤로는 정체불명의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또각, 또각…

         

       누군가 단상으로 걸음을 옮기는 구두 소리만이 조용히 메아리쳐 울려 퍼졌다.

         

       머지않아 인파 사이로 검은 생머리를 길게 기른 어떤 여학생의 뒷모습이 나타났다.

         

       단상 앞에 선 여학생은 곧 몸을 돌려 우리 쪽을 향했다.

         

         

       “…”

         

       문득 숨이 막히는 듯한 거센 충격이 나를 강타했다.

         

       머릿속이 새하얘져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한때는 나의 전부였지만, 이제는 밤마다 찾아오는 고통스러운 꿈.

         

       내 심장을 뽑아간 뒤, 그 자리에 뻥 뚫린 구멍만을 남겨놓은 사람.

         

       찰나의 틈도 없이, 나는 방금 엄습했던 불안감과 오한의 정체를 바로 알아낼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신입생 여러분. 2학년을 대표해서 이 자리에 선 백서연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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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recting the Villainess of the Academy

Correcting the Villainess of the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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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reunited with the girl who left me when I lost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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