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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

       황립 론다리움 아카데미는 화려하고 거대하다.

        

       그야말로 제국의 자존심과도 같은, 제국의 최첨단 건축 기술을 아낌없이 들이부은 건물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황성보다 더 굉장한 건물이다. 황성이 지은 지 수백 년이 지나도록 계속해서 보수되고 확장되어왔지만, 그 기반은 중세 시절에 지어진 건물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카데미는 이제 지어진 지 3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지금도 끊임없이 신관이 지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지구의 영국에 지어졌던 수정궁과 비슷한 건물도 아카데미 부지 내에 지어져 있었고, 가로등은 가스등이 아니라 마력석에 의해 밝혀졌다. 아니, 가로등뿐만이 아니라 건물 내의 등은 대부분 마력으로 가동된다.

        

       심지어 전화선도 제도의 다른 건물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이 매설되어 있었고, 오로지 아카데미만을 위한 해석기관도 건물 하나를 통째로 사용하여 가동되고 있어서, 아카데미 내의 전산처리가 거의 완벽에 가깝게, 그것도 다른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빠른 속도로 이루어진다. 해당 기관을 움직이는 것이 석탄이 아니라 순수 마력석이라 검은 매연이 나오지 않는 것은 덤이다.

        

       그 외에도 ‘의무실’은 가벼운 수술 정도까지는 얼마든지 할 수 있을 정도고, 아예 대학 병원과도 연계가 되어있다.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모든 물품도 제국의 공업 생산능력을 아낌없이 사용한 최상품으로만 지급되고, 학생이 필요하다면 개인이 쓰는 병기를 제국제로 교체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아카데미를 다니는데 드는 등록금은 제국민 학생의 경우 전액 제국 황실이 부담하고, 제국 외부의 학생을 기준으로 해도 다른 아카데미에 비해 등록금이 압도적으로 저렴했다. 애초에 이 아카데미는 제국이 손해를 보면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제국이 이 아카데미에 대해 이토록 진심인 이유는, 이 아카데미에는 제국민 뿐만이 아니라 해외의 유명한 집안의 자식들, 혹은 심지어 왕족까지도 입학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훌륭한 생활을 하다가 자기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면 불편함을 느낄 수 있도록. 또, 제국에서 만들어내는 물건의 품질에 대한 신뢰를 심어줄 수 있도록, 제국은 이곳을 ‘제국 자체에 대한 프레젠테이션 실’로 만들어 두었다.

        

       그러니까 황실에서 부담하는 비용은 그저 마케팅 비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돈을 아낄 이유가 없다. 여기서 생활하고 돌아간 학생들이 자라나서 제국의 물건을 사용하게 될 테니까. 그것도 대량으로.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사실 제국 황실의 아이가 들어오기에 최적인 아카데미이기도 했다.

        

       아마 앨리스나 내 성적이 원래 성적에 미치지 않았더라도, 우리 두 사람은 특례입학이 가능했을 거다. 애초에 황실에서 운영하는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황립 론다리움 아카데미 수석, 앨리스 팬그리폰.”

        

       물론, 앨리스에게 그런 배려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을 아주 정확한 2대8 가르마로 갈라 넘기고, 콧수염 끄트머리를 위로 말끔하게 말아 올려 아주 정석적인 카이저수염을 한 교장이, 앨리스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여기, 이 자리에 선 이상 앨리스도, 나도 황녀가 아니다. 그저 일개 학생일 뿐.

        

       그렇다고 해도 학생들이 우리를 마음대로 대하지는 않겠지만, 여기 서 있는 학장은 다르다.

        

       전직 제국 육군 총사령관을 지낸 에이브러햄 피츠제럴드 윈터필드. 북부 귀족 중 가장 이름있는 귀족 가문 출신으로, 제국 육군 총사령관을 무려 세 번이나 배출한 집안이었다. 로맨스 판타지에 나왔다면 북부 대공 가문이라고 하면 되려나.

        

       저 사람의 손녀가 이 아카데미에 있다는 것은 놀랍지도 않다. 다만 히로인은 아니다. 이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군 소속이었다가, 그 출셋길을 포기해버리고 이 아카데미의 교사이자 교관으로 취업해버린 사람으로서, 평민 반 담당 교사로 등장한다.

        

       변경백 출신이면서도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있고 철저한 귀족식 사고를 가진 할아버지에게 반발하는, 전형적이라면 전형적인 선한 역으로 등장한다.

        

       후에 게스트 캐릭터로 등장하여 사용해볼 수 있긴 하지만 게스트 캐릭터답게도 성능은 출중한데 다른 캐릭터와의 연계성이 별로인지라 1회차가 아니면 채택되는 일은 거의 없다. 게다가 게스트 캐릭터라 최종전에서는 쓸 수도 없고.

        

       “그리고 차석, 클레어 그레이스. 앞으로.”

        

       교장의 말에 이미 앞에 나와 있던 두 사람이 앞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갔다.

        

       클레어가 그레이스 가의 고아원에 가는 것은 보았는데, 이렇게 멋지게 성장하여 그레이스 가에 입양까지 될 줄은 몰랐다.

        

       참고로 원작에서도 앨리스는 수석이었지만, 차석은 클레어가 아닌 다른 캐릭터였다. 그나마도 조연이라 중요한 캐릭터는 아니었고. 애초에 클레어는 아카데미 입학시험을 치지 않았으니까.

        

       그레이스 가에 입양된 거라면, 검술도 그레이스 가의 검술을 배웠을까? 모션이 그렇게 대단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주변 캐릭터의 입을 빌려서 ‘올곧음의 표본’이라고 불릴 정도였고, 작중 윈터필드 교장도 보고 감탄했을 정도였으니까.

        

       채찍 같은 검…… 그러니까 사복검을 쓰던 원작의 클레어와는 완전히 다른 검술을 쓰지 않을까?

        

       나는 황녀이긴 했지만, 수석도, 차석도 아니었기에 다른 학생들 사이에 서 있었다. 실비아라는 인물의 외모는 아름다운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저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의 외모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사실 아름답다는 것도 내 주관이었기에 별로 객관적인 표현은 아니었고.

        

       생각해보니, 레오와 클레어는 둘 다 머리카락이 푸른색이었다. 클레어 쪽의 머리카락 색이 더 짙기는 했지만…… 두 사람이 ‘남매’라고 말하고 다닌다면 누가 의심하지는 않을 거다. 귀족들 사이에서야 이미 소문이 나 있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두 학생 모두, 그 나이의 다른 친우들과 비교해 훨씬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그 빛나는 지성으로 아카데미의 이름에 걸맞은 이가 되어, 제국을 호령하는 위대한 자가 될 수 있도록 하라.”

        

       웃기는 이야기다.

        

       수석, 차석 모두 여성이었으니 따지자면 투표권도 없다. 앨리스는 차기 황제이니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클레어는 사실 귀족적인 시선에서는 ‘좋은 곳에 시집가는 것’이 자기 이름을 떨칠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레이스 남작가가 ‘일반적인 귀족’은 아니라 다행이었다.

        

       그래도 제국군은 여성이고 남성이고 할 거 없이 죄다 받아서 동등한 대우를 한다고 했으니, 그쪽으로도 생각해볼 순 있겠지. 앞으로 스토리가 원작대로 진행되지 않고, 황제가 갑자기 각성하여 성군이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클레어가 교장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앨리스는 그러지 않았다……?

        

       ……엥?

        

       “…….”

        

       “…….”

        

       잠깐의 정적.

        

       자기한테 시선이 몰리는 것을 분명히 느끼고 있을 텐데도, 앨리스는 교장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은 채 가슴을 펴고 교장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 그 얼음처럼 차가운 교장의 표정이 아주 잠깐 허물어졌을 정도로.

        

       그리고, 내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교장은 그런 앨리스를 보고 아주 조금 미소를 지었던 것 같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아제르나 전기’는 사실 엄밀한 고증을 통한 가상역사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유럽에서 유명한 몇 나라의 역사를 따와 대충 뭉친, 일본 판타지 게임 특유의 무근본 판타지에 가까운 세계관을 가졌다. 하지만 그래도 ‘스팀펑크’라는 장르적 특색을 유지하기 위해 실존하던 국가의 당시 분위기를 상당히 참고한 것도 있다.

        

       그리고 그 실존하던 국가의 당시 분위기, 즉 잉글랜드의 분위기를 말하자면—

        

       —자기한테 부당한 대우가 있다면 절대로 참지 않고 따지고, 막판에는 목숨을 건 결투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굽히지 않고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남자답다’라고 여겨지던 마초스러운 분위기였다.

        

       물론 게임이니 어느 정도 과장한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앨리스는 남자는 아니었지만, 외부 시선으로 봤을 때는 이 나라를 물려받을 유일한 적통이었다.

        

       ‘팬그리폰’이라는 이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 나라의 모든 이름의 무게를 합치더라도 팬그리폰보다 무겁지 않을 정도로.

        

       그러니, 그 황실의 적통으로서 머리를 꼿꼿이 들고 있는 앨리스의 태도는, 아카데미의 규칙으로 미루어 봤을 때는 별로 좋은 행동은 아니었으나.

        

       군인의 정점을 찍고 내려온 딱딱하게 굳은 사고방식의 틀딱 노인네가 보기에는 아주 훌륭한 차기 황제의 자세였다는 말이다.

        

       훗날 앨리스가 황제가 되고도 저 교장이 살아있다면 명령을 내릴 사람은 앨리스였으니까.

        

       그래서인지, 교장은 앨리스에게 별다른 지적을 하지는 않았다. 아마 다른 학생, 예를 들어 공작가의 아이가 똑같은 짓을 했다면 불호령을 내렸겠지만 말이다.

        

       교장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앨리스에게 자기가 들고 있던 판을 넘겼다.

        

       앨리스는 이미 몇 번이고 연습한 것 같은 각이 살아있는 자세로 그 판을 받아서 들고, 군대식으로 ‘뒤로 돌아’를 했다. 클레어는 그런 앨리스를 보고 조금 당황한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얼른 앨리스를 따라 뒤로 돌아섰다.

        

       앨리스는 판을 열어 그곳에 쓰여있는 글을 읽었다.

        

       “영예로운 신세기가 시작하는 해, 1901년을 맞이하여 황립 론다리움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된 신입생의 대표 앨리스 팬그리폰 외 89명은, 아카데미의 수칙을 철저하게 지키고 학문을 배움에 충실하며,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고 학우들과 친교를 다져 인류를 이끌어 갈 재목이 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1901년.

        

       게임에서도, 현실에서도, 의심의 여지 없이 ‘벨 에포크’ 즉, 그 좋았던 시절이라고 불리던 시대.

        

       현실에서는 그로부터 10년이 넘게 흘러서야 세계대전이 일어났지만, 게임에서 그 정도의 시간을 다루면 지나치게 루즈해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게임에서는 우리가 아카데미를 졸업하기도 전에 사건이 터지기 시작한다.

        

       그 좋았던 시절은 채 5년을 가지 못한 채 그대로 붕괴해버릴 거고.

        

       ……그리고, 나는 그 과정에서 죽을지도 모르는 히로인들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살려낼 생각이었다. 필요하다면 몇 번이고 시간을 되돌리면서.

        

       “…….”

        

       강당의 분위기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앞에 서 있는 교장과 황녀라는 인물의 존재 때문에 그럴 뿐, 아마 다들 속으로는 얼른 돌아가서 쉬고 싶을 거다. 아카데미의 기숙사는 평민들은 둘째치고 대부분의 귀족도 써보기 힘든 호화스러운 사양이었으니까.

        

       아무리 아카데미 입학생이라고 해봐야 이제 막 열다섯 살이 된 아이들이다.

        

       아니지, 올해 열다섯이 되는 아이들이었으니 아직 아닌 애들도 있을지 모른다.

        

       친구도 사귀고 연애도 해보고 싶겠지.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연애는 둘째치고 친구는 사귀어보고 싶었다.

        

       기왕이면 원작 주인공들과 친구가 되면 좋겠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멍하니 서 있는데, 문득 시선이 느껴졌다.

        

       “…….”

        

       앨리스한테 시선을 맞춘 채 시야 바깥쪽에 집중했다. 초점을 그쪽으로 맞춘 것이 아니라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앨리스 옆에 서 있는 클레어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알아본 걸까?

        

       그럴 수도 있다. 원작에서 엄청 똑똑했던 클레어니까. 오히려 여유 있게 자란 지금은 더 똑똑할지도 모르지. 아편에 중독되어본 적도 없고, 술이나 담배도 하지 않을 테니 정신이 훨씬 더 멀쩡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정체를 드러낼 수는……

        

       ……어?

        

       잠깐만, 드러내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뭐지?

        

       그냥 확 드러낸다고 하면 어딘가 석연치 않지만, 그렇다고 드러내서는 안 될 이유도 잘 모르겠다.

        

       “…….”

        

       조금은 고민해보도록 할까.

        

       나는 위풍당당하게 서서 학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앨리스를 보면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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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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