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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

       2황자 이리드는 성급하고 서투른 인물이었다. 유능함을 뽐내는 1황녀, 3황자와 항상 비교당하며 자라난 까닭이었다.

       

       제국의 황실은 어린아이에게는 잔혹할 정도로 엄한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황위에 오르는 것은 마음도, 몸도, 가장 강한 자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2황자는 말을 떼기가 무섭게 무한한 경쟁의 궤도에 내던져졌다.

       

       특유의 과단성은 ‘어떻게든 눈에 띄어야 한다’는 심리가 기저에 깔려 있었고, 의심병 또한 그랬다.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는 자는 그 무엇 하나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의 그릇에 구멍이 난 사람과 같다. 아무리 좋은 것을 부어도, 구멍이 뚫려 있다면 담기지 못하고 흐른다. 

       

       그렇기에, 센트라에게 이끌렸던 것이리라. 

       

       누구에게도 받지 못하여 결핍된 부분을, 텅 빈 부분을 채워주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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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황자 이리드는 방위국 요원 C와 비밀통로를 점검했다. 

       

       100년 전의 비밀통로는 형태가 꽤 달랐다. 좀 더 깔끔했고, 조명도 상대적으로 환했다. 당연히 이리드와 로냐의 사투의 흔적도 없었다. 핏자국도 시체도 없이 먼지나 조금 쌓여 있을 뿐이었다.

       

       이리드는 한 쪽 무릎을 꿇고 센트라가 누웠던 자리에 손을 대었다. 자신을 위해서 울어주던 모습도, 그 향기도,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렇게 눈을 감으면⋯⋯.

       

       방금 전에 있었던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2황자님, 비밀통로에 대해 개선안이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차단벽이 내려오는 장치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군. 적이 만약 비밀통로의 마력 암호문을 모르더라도, 충분한 힘이 있으면 부수고 들어올 수 있지 않나.”

       

       “비밀통로 개선을 위한 자금을 요청해 보겠습니다.”

       

       “사비로 내지.”

       

       2황자는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크라운홀 곳곳을 거닐면서 시찰을 해 둘 생각이었다. 제국 시민들의 안전⋯⋯ 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오늘따라 무척이나 그녀가 그리웠으므로, 추억이라도 되새길까 싶어 나와봤던 것이다.

       

       2황자는, 자색 마탑으로 달려가지 않은 자신의 인내심을 누군가가 칭찬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왕이면 검은 생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여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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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황자는 크라운홀을 걸었다.

       

       사람들은 떠들썩하다. 국경선 끝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나, 제국 수도는 부유하고도 아름답기만 했다. 시민들은 저마다 생업에 종사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2황자 이리드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가리고 있는 후드 끝을 매만졌다. 차원 이동을 겪기 이전에는, 자신의 금발을 자랑하듯이 뽐내고 다니면서 시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황실의 혈통에 모두가 엎드려 고개를 조아렸었다.

       

       그렇게라도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고 싶었던 것이다. 

       

       

       “2황자님, 뭐라도 드시겠습니까?”

       

       방위국 요원 C가 기민한 눈치를 발휘했다. 그녀는 눈썰미 하나로 먹고 사는 직업이었으므로, 다각도로 계산해낸 끝에 완벽한 타이밍에 점심 먹자는 소리를 했다.

       

       주변을 쓱 둘러본 2황자는, 교회의 첨탑이 잘 보이는 카페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저기로 하지.”

       

       “예, 알겠습니다. 카페를 이용하는 시민들은 내보낼까요?”

       

       “아니, 괜찮다.”

       

       C의 눈매가 호선을 그렸다. 이전의 2황자는 자신의 권위를 뽐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제국에서는 그게 맞았다. 황자와 일반 시민들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신분의 격차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2황자는 세상을 낮은 곳에서 바라볼 줄 알았다. 시찰하는 와중, 겉훑기로만 지나가지 않고 어두운 골목길 등의 포인트도 꼼꼼히 체크하시지 않았던가. 경비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도.

       

       본래라면 ‘암살이 우려되니, 황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카페 사람들을 모조리 내쫒아야 한다’고 직언해야 했고, ‘미시적인 부분까지 살펴보시지 않아도 제국은 잘 돌아간다’고 말해야 했으나.

       

       평민 출신으로 방위국 분석관의 자리에 오른 C였다. 고귀한 분께서 낮은 곳을, 보여주기식 퍼포먼스가 아니라 진정으로 이해하고 걱정하시니. 당연히 기꺼울 수 밖에.

       

       C는, 카페에서 2황자가 ‘돈은 네가 내’라고 해도 용서할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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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 두 잔과 잘 구운 마들렌. 

       

       주방장이 2황자의 눌러 쓴 후드 아래에서 금발을 발견하고는 몸이 매너모드가 되어버렸다거나, 분석관 C가 ‘먼저 드셔야 나도 먹을 수 있는데⋯⋯.’ 하고 무표정의 가면 속에서 애원의 눈빛을 쏘고 있다거나.

       

       그런 외부의 사건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2황자는 턱을 괸 채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교회의 첨탑, 그에게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장소였다.

       

       “⋯⋯⋯⋯.”

       

       갈고리 총, 서로를 껴안고, 하늘을 날았던.

       

       2황자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을 곱씹으려니, 회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쭉 이어졌다. 갈고리 총으로 하늘을 날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

       

       그러니까, 센트라가 자신을 안아들었고. 가슴팍과 배 어림에서 느껴지는 중량감이⋯⋯ 딱 달라붙는 복장에서 느껴지는 감동적인 무언가가.

       

       “⋯⋯본의는 아니었다.”

       

       이리드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내뱉었다.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이었다. 그녀에게는 닿지도 않을 변명이건만.

       

       “이제와서다만, 시선 처리는 불가피한⋯⋯ 아니, 변명이겠지. 불쾌했다면, 역시 미리 사과를 했어야 했던가⋯⋯.”

       

       C는 약 25분간 기다린 끝에, 그냥 혼자 다 먹어치우기로 결심했고, 실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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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굿간은 깨끗하고, 잘 관리되는 중이었다. 마굿간 주인은 맨 발로 뛰어나와서 응대했고, 2황자는 혼자서 둘러 볼 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다.

       

       이리드는 건초더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저 안에서 단 둘이 들어가, 숨을 죽이고 추격자를 따돌렸었다.

       

       그녀와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다.

       

       이리드는 새끼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의 이름을 불러달라던 약속. 

       

       그건, 무슨 의미였던 걸까.

       

       

       C는 건초더미를 멍하니 바라보는 2황자를 살피다가, 말을 걸었다. 

       

       “누군가를⋯⋯ 추억하고 계십니까?”

       

       “그래. 이제는 볼 수 없는 누군가를.”

       

       “인상착의라도 말씀해 보시겠습니까, 황자님. 어쩌면 가족이나 친인척을 수소문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가. 가족들에게 베푸는 수가 있었군.”

       

       100년의 세월이 서로를 갈라 놓고 있더라도, 센트라의 피는 이어지고 있을 테니까. 어쩌면 그녀의 먼 조상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리드는 그녀의 모습을 되새기며 말했다.

       

       “속눈썹이 길고, 푸른 눈을 가졌어. 마치 드넓은 바다를 담은 것처럼 푸르고 청량했지. 머리카락의 색은 검었고, 둔부를 반 쯤 덮을 정도로 길었다.”

       

       “⋯⋯혹시, 머리카락은 약간 푸른색이 섞인 검은색입니까?”

       

       “그렇다만⋯⋯.”

       

       “동일인일지는 모르겠으나⋯⋯ 인상착의가 비슷한 인물을 압니다.”

       

       C는 짐작가는 바가 있어, 과거의 일을 끄집어냈다. 자신이 직접 보고서를 작성해 올렸던 사건이었다. 공교롭게도 장소 또한 겹치지 않던가.

       

       “방위국의 위험인물 보고서에 올랐던 인물입니다. 창관 ‘로자리아’에서 오직 대화만을 팔았던, 하트. 식별명은 환상의 여인.”

       

       “⋯⋯초상화가 남아 있나?”

       

       “예. 많은 화가들이 초상화를 남긴 바 있습니다. 아마, ‘로자리아’에도 초상화가 남아 있을 겁니다.”

       

       “볼 수 있겠나.”

       

       “예.”

       

       이리드와 C는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로자리아’로 향했다.

       

       ===============================================================

       

       “⋯⋯⋯⋯.”

       

       이리드는 하트의 초상화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는 센트라의 이목구비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트와 센트라의 모습을 비교하면, 먼 조상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닮아 있었다. 

       

       만약 동일인이라면.

       

       그녀는, 차원 마법사를 찾아갔을 것이다. 자신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던가. 자색 마탑에는 천재 마법사가 있고, 그가 차원 마법을 복원해내었다고. 그 마법을 통해 시간을 뛰어넘었노라고.

       

       그녀는, 어떤 대가를 바쳐서⋯⋯ 차원 마법을 실행했을 것이다. 이리드를 만나기 위해서. 만약 그렇다면. 어째서 그녀는, 자신을 찾지 않았나. 어째서 하트라는 가명을 썼던가.

       

       센트라는 차원이동으로 과거로 넘어 온 이후에,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지금이, ‘이리드가 차원이동을 겪기 전’인지, ‘이리드가 차원이동을 겪은 후’인지, 그녀는 모른다. 차원 마법에 대한 소란이 일어날까봐, 황실과 소년 기사는 자색 마탑에서 차원 마법을 복원했다는 사실을 숨겼으니까.

       

       수소문해도 ‘2황자가 차원이동을 겪었다’는 정보가 들어올 일은 없었다. 

       

       만약 ‘이리드가 차원이동을 겪기 전’이라면, 센트라라는 이름을 알리는 것은 독이 된다. 만약, 이리드가 센트라에 대해서 미리 알게 되면⋯⋯ 미래는 바뀐다. 

       

       차원이동을 했던 이리드는 ‘센트라를 모르는’ 이리드이니까.

       

       자신이 찾아갈 수도 없고, 불러낼 수도 없다면, 그녀는 기다려야 했다. 서로의 추억이 쌓인 장소인 여관. 과거의 창관 ‘로자리아’에서, 사랑을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로 ‘하트’라는 가명을 써서.

       

       이리드가 알아차려주길 기도하면서, 찾아와, 이름을 불러주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렇게 3년을, 지내다가. 끝끝내 이리드가 찾아오지 않자, 시간이 다 되어버려. 그녀는 본래 세계로, 미래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찾아왔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

       

       이리드는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3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센트라의 방이 있다. 하트가 머무르던 곳이기도 하다.

       

       문을 열었다. 인테리어가 같았다. 작은 방, 방의 한 켠을 전부 차지하는 침대, 자그마한 책상과 원고지. 다양한 책들. 그리고, 텅 비어있는 작은 화병 하나.

       

       그녀의 향기는 나지 않았다.

       

       확신할 수 밖에 없었다. 현재의 창관이, 하필이면 하트가 머무르던 그 방의 인테리어가. 100년 후의 미래와 정확히 같은 모습을 취하고 있었으니까. 달라진 것은 책의 종류와, 비어있는 화병 뿐이다.

       

       그녀가 찾아왔었다.

       

       쿵쿵. 몸 전체가 진동하는 것처럼 심장이 떨렸다. 이리드는 떨고 있었다. 솟구쳐오르는 감정이 심장을 박살내고 튀어나올 것 같아서, 견디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테이블을 펴 놓을 공간도 없는 작은 방. 이리드는 침대에 조심스럽게 걸터앉았다. 여기서, 이리드는 그녀와 나란히 앉았었다.

       

       기억하고 있다.

       

       센트라는 이리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기분 좋은 무게감이 느껴졌고, 행복이 녹아들었다. 두 사람은 침묵 속에서, 그저 오가는 체온으로, 무게로, 분위기와 향기로, 서로의 영혼으로 대화를 했었다.

       

       기억하고 있다. 약속을.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면. 제 이름을 불러주실래요?”

       

       기억하고 있었다.

       

       

       이리드는 책상 위의 화병을 바라보며, 뒤늦은 약속을 지켰다.

       

       “⋯⋯센트라.”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리드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비가, 내렸다.

       

       언제까지고 멈추지 않을 것 같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번에는, 그러니까⋯⋯ PC로 말이에요.
    왼쪽 오른쪽에 21, 22화를 동시에 펼쳐두고 읽어보는 건 어떠세요?

    흠흠. 이걸 어떻게 한 번 해보고 싶었답니다.
    부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

    이제 챕터 1이 끝났습니다! 와!
    여기까지 쓸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요!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앞으로도 팍팍 써나가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디어 마이 프렌즈-!!

    다음화 보기


           


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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