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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

       제압한 고학년을 밧줄로 꽁꽁 묶었다.

         

       “선배님! 어떻게 이리도 사악한 짓을 하실 수 있으세요? 후배는 실망했습니다!”

         

       파스텔은 이름도 잘 모르겠는 선배님에게 실망했다.

         

       미라처럼 꽁꽁 감긴 선배가 황당해했다.

         

       “내가 무슨 사악한 짓을 했는데?”

       “발뺌까지 하시는 건가요?!”

         

       으아아.

         

       사악한 범죄자의 전형!

         

       뻔뻔함에 부도덕이 흘러넘쳐.

         

       파스텔은 단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선배님은 사악한 어떤 일을, 어…….”

         

       헉.

         

       이 선배님이 뭘 했는지 모르겠어.

         

       슬쩍 추격하던 1학년을 바라봤다. 1학년이 서둘러 대답했다.

         

       “비밀창고를 찾았어. 마침 창고에 있던 선배님이 도망쳤고.”

         

       허억, 비밀창고.

         

       이름만 들어도 사악함.

         

       “맞아요! 사악한 비밀창고! 후배는 실망했습니다! 사악한 비밀창고에!”

         

       덜덜덜, 사악한 비밀창고래.

         

       얼마나 많은 마석 각성제가 있을까? 침이 흐르는 듯하다. 서둘러 침을 삼키고 강력히 선언했다.

         

       “당장 학생회가 압류하겠습니다!”

         

       선배를 데리고 비밀창고로 이동했다. 선배는 포박이 과했는지 걸을 수도 없길래 발부문만 풀어줬다.

         

       “여기야?”

       “맞아.”

         

       파스텔은 딱히 비밀은 아닌 듯한 창고에 도착했다. 상가 뒤편의 한 칸짜리 창고였다.

         

       이렇게 대놓고 있다니.

         

       “어떻게 비밀창고를 구하신 거죠? 설마 음밀한 로비? 상가와 연계된 범죄망?”

       “그냥 창고 대여한 거야.”

         

       밧줄에 묶인 고학년이 멋쩍어했다.

         

       에, 그럴 수가…….

         

       왠지 실망한 파스텔은 창고를 수색했다.

         

       정면으로 나무 상자가 쌓인 책상과 각성제 알약 포대가 보였다. 한쪽 벽면을 완성된 각성제 상자가 빼곡히 채웠다.

         

       “우와악.”

         

       완벽한 각성제 상품화 현장이다.

         

       먹을 게 이만큼이나?

         

       침샘이 찌릿했다.

         

       파스텔은 누가 보기 전에 서둘러 침을 닦았다.

         

       그리고 잽싸게 외쳤다.

         

       “전량 압수! 전량 압수!”

         

       기분 따라 양팔이 버둥댔다.

         

       모두 내 뱃속으로 압수!

         

       각성제 친구들도 그러길 바랄 거야.

         

       오예.

         

       고학년이 괴로워했다.

         

       “그건 좀 과하지 않아? 이거 비싸게 산 거야.”

       “징벌적 의미도 있으니까요!”

       “한 번만 봐주면 안 될까?”

       “예외는 없어요! 그렇지, 친구친구들?”

         

       이미 압수당해 본 친구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파스텔은 당당하게 선배를 직시했다.

         

       “선배님! 한 번쯤은 실수할 수 있어요. 하지만 실력은 정직한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거라고요. 약물 도핑 같은 거에 의존해서는 안 돼요. 본질을 단련하지 못하게 된다고요!”

         

       에헴.

         

       어깨를 으쓱으쓱.

         

       “정론이긴 한데 들어봐.”

         

       선배가 하나씩 짚었다.

         

       “부작용 없고 중독성도 없어. 그런데 효과는 확실하지. 이건 가격만 부담스러울 뿐 아무 문제 없는 제품이야. 교수님들이 이미 확인했잖아.”

         

       잉, 그런가? 사실 괜찮은 제품?

         

       “물론 교단의 노하우가 담긴 듯한 결과물이긴 해. 찝찝하지.”

         

       선배가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해. 어차피 교단은 망했잖아. 기술 갖춘 누군가가 살아남아 각성제 장사라도 하는 거 아닐까? 이 제품은 홍보용이고.”

         

       논리적인 목소리가 울렸다.

         

       “각성제 장사면 소소하지 않아? 우리가 다 망한 교단을 소소한 장사까지 경계해야 해? 아니잖아. 그러면 생명이 걸린 전투 상황에 부작용도 없고 중독성도 없는 약물을 사용하는 건 잘못일까? 이것도 아니잖아.”

         

       어라.

         

       듣고 보니 맞는 말.

         

       어라라.

         

       내가 이 세상의 문화와 역사를 잘못 이해하고 움직이고 있는 건가?

         

       이 세상에서 약물 사용은 사실 그리 심각하지 않은 사안?

         

       세상 물정 모르는 파스텔이 악물이라는 단어에 혼자 경악했을 뿐인가?

         

       생각해 보면 담배나 술도 약물이긴 하다.

         

       마검을 빠르게 두드렸다.

         

       악마님! 악마님!

         

       『어느 정돈 맞는 말이다.』

         

       허억.

         

       『황실 정예병도 마석 약물을 쓴다. 그것도 매우 잘 쓰지. 성취에 집중해야 할 학생일지라도 전투 의뢰 땐 고려해 볼 만해. 목숨보다 중요한 건 드무니.』

         

       어라라.

         

       파스텔은 눈이 격렬히 떨렸다.

         

       이 세상 왜 이 모양?

         

       아니 내가 틀린 건가.

         

       『하지만 교단의 위험성을 얕보는 건 잘못됐군. 교단이 망한 후에 태어난 세대라 체감이 다른가. 각성제 압류는 합당한 조치다. 이건 교단과 관련된 거니.』

         

       오.

         

       역시 악마님이야.

         

       내 뱃속으로 압수! 를 지지해 주셔.

         

       파스텔은 다시 당당한 표정이 됐다.

         

       “선배님이 틀렸어요!”

         

       교단이 뭔진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앵무새처럼 악마의 말을 따라 했다.

         

       쫑알쫑알쫑알.

         

       에헴.

         

       어깨를 으쓱으쓱.

         

       고학년이 듣다가 고개를 떨궜다.

         

       “하긴 교수회의 결정인가. 가져가라, 에휴.”

         

       이것이 필기 수석의 설득력.

         

       헤헤.

         

       “친구친구들, 모두 챙겨! 전부 압수야! 압수!”

         

       1학년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파스텔은 미소 지으며 선배를 돌아봤다.

         

       “그런데 선배님은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알아야 보고서를 제대로 쓰는데.

         

       줄에 꽁꽁 묶인 선배의 눈빛이 변했다.

         

       “내 이름?”

         

       문득 줄이 흘러내렸다. 선배가 멀쩡한 양손을 움직였다. 품에서 검은 구체가 꺼내졌다.

         

       “당연히 못 알려주지. 괜히 혼날 일 있어?”

         

       에.

         

       구체가 지면에 충돌했다. 연기가 폭발했다.

         

       우와악.

         

       놀라던 파스텔은 코를 찌르는 양파향에 기겁했다.

         

       으에에.

         

       급격히 눈이 따가워졌다. 눈물이 나왔다. 숨 쉬자 코가 아렸다.

         

       “그건 줄 테니 보고서에선 빼줘!”

         

       목소리가 울리고 멀어졌다.

         

       연기가 창고를 채웠다.

         

       으아아.

         

       이게 무슨 양파 연기야.

         

       양팔을 허둥대며 창고를 나왔다.

         

       맑은 공기가 맡아졌다. 기침이 연달아 나왔다. 눈이 따갑고 코가 아렸다.

         

       양파아!

         

       무의식적으로 눈을 비비다가 화들짝 놀랐다. 손에 묻은 연기 잔여물이 눈에 닿았다.

         

       고통이 화끈 올라왔다.

         

       “우와앙!”

         

       파스텔은 평소와 다른 의미로 울부짖었다.

         

       “우와아앙!”

         

       혼란이 이어졌다.

         

       양파 냄새가 풀풀 풍겼다.

         

       어디선가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좋은 경험이군. 이런 건 실전에서 가끔 겪게 될 거다. 안전할 때 미리 겪는 건 매우 각별하지.』

         

       공감력 0%의 무자비한 조언이 이어졌다.

         

       『진정하고 숨을 참아봐라. 인간을 벗어난 넌 숨을 안 쉬어도 된다. 그리고 어차피 무슨 성분이 건 네게 효과는 없어. 마음을 진정시켜라. 위험하지 않다.』

         

       지금 양파 콜록콜록 상황에 무슨 조언을 하시는 건가요?

         

       완전 사악한 악마님!

         

       악마 같은 악마!

         

       파스텔은 눈물 흘리는 와중에 힘껏 외쳤다.

         

       “냉혈한! 철면피! 공감력 제로!”

         

       완전 악마!

         

       악마 그 자체!

         

       악마가 당황했다.

         

       『크흠, 미안하다. 하긴 통각은 느껴지겠지. 실전도 아닌데 고통을 참으라는 건 과한가. 눈은 비비지 말고 양팔을 벌려. 깨끗한 공기로 잔여물을 날려 보내는 거다. 금방 가시겠지.』

         

       파스텔은 양팔을 벌렸다.

         

       바람아 바람아.

         

       그러다 정신없이 양팔을 파닥였다.

         

       파닥파닥파닥파닥.

         

       으아아.

         

       못 참겠어서 몸을 회전했다.

         

       빙글빙글빙글빙글.

         

       우와앗, 세상이 돈다아.

         

       파스텔도 돈다아.

         

       중심이 비틀리고 지면에 주저앉았다.

         

       파스텔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떨궜다. 눈과 코가 붉었다.

         

       아직도 양파향이 진동했다.

         

       양파 완전 싫어.

         

       내 인생 최악의 식재료야.

         

       “저 양파 안 먹을래요.”

         

       평생.

         

       앞으로 요리에 빼줘요.

         

       『음.』

         

       악마가 잠시 고민했다.

         

       『그건 요리하기 난감하겠어. 안 돼, 골고루 먹어라. 편식은 좋지 않다.』

         

       으아아, 냉혈한.

         

       햄버그 스테이크에 몰래 멸치를 갈아 넣을 사람!

         

       들켜놓고도 뻔뻔히 식사를 강요할 사람!

         

       허억, 악마 그 자체.

         

       얼마 뒤 상황이 정리됐다.

         

       서둘러 달려온 더스틴이 친구친구들을 통솔하며 창고를 정리하고 각성제를 회수했다. 누군가 일부 빼돌리지 않는지 철저히 감시하는 건 물론이다.

         

       세수하고 온 파스텔은 현장 상황을 냉정하게 꼼꼼히 확인했다. 그리고 재차 확인한 다음 감탄했다.

         

       “우와아! 깔끔한 일처리!”

         

       서류 작업을 잘하는 엘리와 다르게 더스틴은 현장이 맞구나.

         

       “더스틴! 더스틴!”

         

       파스텔은 세수하는 겸 근처 닭꼬치 집에서 구매한 닭꼬치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역시 넌 남 수발드는데 적성이 있구나! 재능이 넘쳐!”

         

       닭꼬치 우물우물.

         

       더스틴의 표정이 복잡미묘해졌다.

         

       칭찬이 싫은가 봐.

         

       부끄러움이 많나?

         

       이해심 많은 내가 이해해 줘야지!

         

         

         

       #

         

         

         

       “상당한 분량의 각성제를 압수했습니다. 창고 진압 도중에 대부분 물에 젖어버려 폐기해야 했지만요.”

         

       파스텔은 고급 사탕맛이 감도는 입을 오물거리며 보고했다.

         

       카를로 교수가 보고서를 읽다가 고개를 들었다.

         

       “학부 협조도 얻었나?”

       “네, 음성적 거래를 잡으려면 공동 대응이 필요하니까요. 고질적으로 변하기 전에 뿌리 뽑으려고요. 이 사안에 교수진의 협조도 요청드립니다.”

         

       읽던 보고서가 책상에 놓였다.

         

       “학생회가 그렇게까지 힘써줄 필요는 없어.”

       “네?”

       “각성제를 재차 분석한 결과 여전히 성분엔 문제가 없더군. 음성적 거래 정도는 내버려 둬도 괜찮겠지.”

         

       파스텔은 당혹스러웠다.

         

       어, 그게 맞나?

         

       카를로 교수가 서랍에서 서류를 꺼냈다.

         

       전체 재학생의 외부 의뢰 데이터였다.

         

       약물 유포 이후부터 의뢰의 질이 높아지고 완료된 양도 많아졌다.

         

       에.

         

       “의존하면 좋지 않겠지만 사비를 쓴다는데 말릴 이유도 없어. 부작용도 없잖아.”

         

       아카데미가 학생 건강과 기관 성과 중에서 성과를 선택했다.

         

       으아?

         

       “교단은요? 위험하지 않아요?”

       “크래프트라 신경 쓰이나 보군. 그건 다음 교수회의에서 논의해 보지. 어차피 망한 단체라 위험할 건 없으니.”

         

       카를로 교수가 새 서류를 꺼냈다.

         

       “그보다 마탑에서 공문을 보내왔어. 소소한 정기 교류니 크게 신경 쓸건 아니지만 학생회는 미리 알 필요가 있겠지.”

         

       파스텔은 공문을 받고 학생회로 돌아왔다.

         

       잉.

         

       현실 너무 냉정해.

         

       소파에 드러누워 공문을 훑어봤다.

         

       정기적으로 교류하던 대로 마탑에서 곧 찾아오겠다는 간단한 내용이다.

         

       음.

         

       “엘리! 엘리! 마탑에서 온다는데 구체적으로 뭘 하는지 알아?”

         

       깃펜을 놀리던 엘리가 고개를 들었다.

         

       “아마, 신입생 교류일 거야. 전년도는 입학생이 없어 못 했겠지만 이번엔 하려나 보네. 간단한 거라 강당에 모여 구경하다가 끝날걸.”

         

       헤에, 그렇구나.

         

       파스텔은 엘리 몰래 알약을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삼키지 않고 씹자 달콤한 사탕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우아아.

         

       셰프의 마석 칵테일.

         

       생 마석과는 차원이 다르다.

         

       입꼬리가 풀렸다.

         

       깃펜을 물며 생각하던 엘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파스텔, 너는 구경이 아니라 재학생 앞에서 신입생 대표로 나서야 할 거야. 고생하겠네.”

         

       잉.

         

       강당에서 장기 자랑하기?

         

       헤에, 재밌겠다.

         

       “뭘 하면 되는데? 노래 한 곡?”

         

       우왕.

         

       파스텔의 노래 한 곡 갑니다.

         

       “필기 수석이잖아?”

       “맞아!”

         

       헤헤.

         

       엘리가 시크하게 말했다.

         

       “그럼 학술 토론.”

         

       학술 토론?

         

       파스텔은 들려온 단어를 곰곰이 되짚었다.

         

       학술 토론.

         

       허억.

         

       학술 토론?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 주제가 어떤 건데?”

         

       유능한 파스텔이 시원하게 대답할 수 있는 주제겠지?

         

       행정 업무라던가 실무 행정이라던가.

         

       어라라.

         

       강당에서 토론할 만한 주제가 아닌데.

         

       “아마 분야를 가리지 않을걸. 필기시험 때처럼.”

         

       엘리가 학생회 서랍을 뒤적였다. 2년 전 주제를 찾아왔다.

         

       ―불멧돼지의 서식지 이동이 대수림 생태계에 끼칠 영향을 방위적 관점에서 논하시오.

         

       으아아.

         

       전혀 모르는 내용!

         

       필기 수석 파스텔, 대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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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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