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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

    아셀라의 주치의를 정하는 최종 선발시험.

     

    상당한 고난에 부딪쳤다.

     

    “하.”

     

    과제랍시고 나온 에메랄드 드래곤의 해츨링을 보자 한숨부터 나왔다.

     

    드래곤은 마법, 주문과 친한 마물이다.

     

    염룡이 뿜어내는 불꽃도 일종의 마법이라고 볼 수 있다.

     

    마나가 가득한 먹이를 좋아하기에, 멋모르고 드래곤 둥지 주위를 어슬렁거리다 잡아먹히는 마법사가 매년 다섯은 나온다.

     

    에메랄드 드래곤은 치유주문을 먹는 특성을 가졌다.

     

    해츨링이라고 해도 용족을 어떻게 구했는지, 과연 제국의 황실이라고 할 만하다.

     

    “내게는 달갑지 않은 행동이란 말이지.”

     

    이놈은 어디가 아픈 게 아니라 배고픈 돼지처럼 치유주문을 먹어치우길 바랄 뿐이다.

     

    탐욕스럽게, 끝도 없이!

     

    문제는 시험 전에 기스와 나는 이야기가 걸린다.

     

    ‘도련님은 당연히 실기시험에서 보여주셨던 의학만 사용하시겠죠? 저희와는 격이 다르시니 말입니다!’

     

    그렇게 도발해오길래 자신있게 대답했다.

     

    ‘하하, 물론이지. 의학만 써서 통과해 보이겠어.’

     

    그렇게 선언해 버렸는데 지금 와서 치유주문을 쓰면 상당히 창피할 일이다.

     

    블라인드 너머로는 황실에서 찾아온 주치의가 나를 채점하고 있겠지.

     

    여기에서 포기할 수도 없고, 이걸 어쩐다.

     

    “야.”

     

    해츨링을 부르니 시큰둥한 눈으로 나를 슬쩍 쳐다보고는 꺼억 트름을 해온다.

     

    앞 후보들에게서 주워 먹은 주문이 벌써 소화된 모양이다. 냄새가 아주 고약했다.

     

    “모르겠다. 이것도 좋아할 수도 있지 뭐.”

     

    해츨링에게 장미 사탕을 내밀었다.

     

    킁킁, 녀석이 길게 찢어진 코를 씰룩여 냄새를 맡더니 팍!

     

    날카롭게 발톱을 세우고는 사탕을 쳐냈다.

     

    미치겠네.

     

    이 사탕이 얼마나 귀한 물건인데.

     

    “아 그러지 말고 일단 잡숴봐. 헤이, 츄라이 츄라이 오케이?”

     

    해츨링의 목을 잡아 입을 벌리고 사탕을 혀에 대주었다.

     

    ―키에엑! 크에에엑!

     

    이제는 발악을 하신다. 아니면 좋겠지만 거부의 의사표현… 이겠지?

     

    드래곤 언어가 이게 아니었나. 아니면 벌꿀로도 안 덮일 정도로 장미 향에 그렇게 민감하신가.

     

    결국 내 방식 때문에 상급치유사가 개입해와서 제재를 먹였다.

     

    잠깐만, 다른 약은 좋아할 수도 있잖아.

     

    더 시험을 진행하자니 결국 실랑이가 붙었고, 그 끝에 해츨링이 내 손에서 탈주했다.

     

    “야야, 잠깐만.”

     

    와장창!

    해츨링을 잡다가 걸대가 넘어졌고, 시험을 채점하던 블라인드 너머의 사람들과 눈이 제대로 맞았다.

     

    아버지 옆에는 감독 중인 주치의로 보이는 노인이 한 명.

     

    둘 다 입을 떡 벌리고는 나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음, 안녕하십니까.”

     

    어색한 인사가 오고 간다.

     

    “흰 머리색이라니, 혹시 저 후보께서… 아니, 저 후보는 후작님의 자제십니까?”

     

    “으음.”

     

    아버지가 곤란하다는 듯 관자놀이를 눌렀다. 본래 공정성을 위해 익명으로 진행되었어야 할 시험이니 그도 당연했다.

     

    이거 원, 이렇게 허망하게 주치의는 물 건너가나.

     

    최종선발시험까지 왔는데 시험방식 때문에 떨어지기는 아깝다.

     

    ‘본 적 있어. 내의원 주치의, 팔켄하인이다.’

     

    상대가 이 남자라면 써먹을 재료가 있다.

     

    또각또각.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날카로운 구두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복도부터 이어진 소리에 모두 주목한다. 문은 금방 열렸다.

     

    아셀라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시험장을 슥 둘러보았다.

     

    “황녀 전하.”

     

    팔켄하인이 아셀라에게 인사를 보냈다.

    아주 정중하게 예를 갖추지는 않은 느낌이었는데, 그가 제2 황자 담당임을 생각하면 당연한 태도이기도 했다.

     

    아셀라는 내리깐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는 팔켄하인을 향해 말했다.

     

    “팔켄하인 경. 본녀의 주치의를 결정하는 자리에 본녀를 부르지 않은 것은 무슨 의도인가?”

     

    “그것은….”

     

    다짜고짜 화를 표현하는 아셀라의 태도에 팔켄하인이 당황한 기색을 비쳤다.

     

    아버지가 그를 대신하여 대답했다.

     

    “황녀 전하. 주치의 선발은 공정성을 부여하기 위해 팔켄하인 경께서 과제 내용을 준비하셨고, 블라인드 테스트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게 불만이라고 얘기하는 거야. 내 주치의를 내가 정해야 당연한 수순 아니야?”

     

    “하오나 전하.”

     

    팔켄하인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반론했다.

     

    “잘 아시겠지만 황가 주치의는 단순한 전하의 담당의 이상의 권력을 가진 직책입니다. 제국 최고 치유사 이백여 명이 모인 내의원에서 최고직으로서 한 치유사 파벌을 운영하게 되지요.”

     

    팔켄하인은 다른 의도 없이 사실만을 아셀라에게 고하고 있었다.

     

    “때문에 선임 주치의인 제가 후보를 검증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트베르크 육성소엔 신뢰도가 있어 최종후보 선발까지는 맡겼으나, 선택할 주치의에게 내의원의 품격을 떨어트릴 결격사유가 있다면….”

     

    “내 주치의가 나를 담당하는 일 말고 뭐가 필요하다고?”

     

    아셀라가 고개를 치켜들며 팔켄하인을 쏘아보았다.

    기세에 눌린 그가 입을 다물었다.

     

    “내의원 안의 놀음은 너희끼리 알아서 해. 내 주치의는 내가 관리해. 그리고 내가 최종후보에서 뽑고 싶은 사람은 한 명이야.”

     

    슥, 아셀라가 팔을 들어 검지로 나를 가리킨다.

     

    “라스 고트베르크.”

     

    침묵이 가라앉았다. 다른 후보들이나 선발 과정을 입회하던 상급치유사들도 무거운 긴장감에 소름을 느꼈다.

     

    가장 먼저 입을 뗀 사람은 팔켄하인이었다.

     

    “역시 고트베르크 가의 자제셨군. 전하께서 저 후보를 뽑고 싶으신 겁니까?”

     

    그렇게 되묻는 그의 표정은 어쩐지 긴장이 한껏 풀려있었다.

     

    아니, 그걸 넘어서 혼자서만 얼굴이 싱글벙글하고 있다.

     

    뭔데?

     

    “잠시만요, 인정할 수 없습니다!”

     

    여태 상황을 지켜보던 기스가 블라인드 뒤에서 앞으로 걸어 나왔다.

     

    “방금 공자님은 과제를 앞에 두고 아무런 활약도 못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익명으로 진행되어야 했던 시험을 망쳐놓으셨지요. 처음부터 합격자를 내정해 놨다면 이 선발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저도 동의합니다!”

     

    세 번째 후보 녀석도 목소리를 키웠다.

    이름이 뭐더라. 까먹었다.

     

    원칙적으로만 따지면 그들의 의견이 꼭 틀린 건 아니다.

     

    기스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나도 맥없이 물러나고 싶지는 않다.

     

    아셀라가 슥, 다른 후보들을 쳐다본다.

     

    기스의 앞까지 걸어간 그녀가 차가운 목소리로 질문한다.

     

    “그대, 본녀의 주치의가 되고 싶은가?”

     

    기스는 아셀라의 행동에 당황하며 몸을 슬쩍 뒤로 빼며 대답했다.

     

    “무, 물론입니다.”

     

    “나, 제국의 황녀 아셀라 폰 뷔르템펠트에게 평생 충을 바칠 준비가 되었느냐는 질문이야.”

     

    “…그도, 물론.”

     

    아셀라의 위압에 눌린 기스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간다.

     

    아셀라는 대놓고 기스를 향해 코웃음을 치고는 마법을 시전했다.

     

    “얼음창.”

     

    아셀라가 들어 올린 오른손에서 순식간에 세 개의 마법진이 구성된다.

    대기가 흘러내리듯 녹아내리고 뭉쳐, 어느새 날카로운 송곳의 형태를 이루었다.

     

    그것을 본 기스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야 자기가 어떤 자리에 도전했는지 피부로 느낀 모양이지.

     

    하지만 그 뒤에 아셀라가 취한 행동은 조금 예상 밖이었다.

     

    스륵!

     

    아셀라가 오른손을 튕겨 날카로운 얼음 송곳으로 자신의 왼팔을 찢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이 자리의 전원이 그녀의 얼음처럼 단단하게 얼어붙었다.

     

    새하얀 아셀라의 팔뚝에서 뚝뚝, 붉은 선혈이 방울져 흘러내린다.

     

    “고쳐봐.”

     

    아셀라는 무감정한 목소리로 일갈했다.

     

    기스는 새파랗게 얼굴이 질려서는 벌벌 떠는 양손을 천천히 올렸다.

     

    “…자애로우신 여신님께 기도드리옵니다.”

     

    기스가 치유주문을 시전한다. 신성력이 새어나와 아셀라를 휘감는다.

     

    그 찰나.

     

    ―콰직!

     

    새하얀 신성력이 주먹으로 쥐어짠 듯, 공중에서 일그러지며 아셀라의 색인 금빛으로 물들어갔다.

     

    “어, 어째서….”

     

    “너도 해 봐.”

     

    아셀라가 다른 후보에게도 눈짓했다.

     

    그도 치유주문을 시전해보지만 결과는 같다. 치유술은 통하지 않는다.

     

    아셀라의 강대한 마력이, 저급 주문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며 망가트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아셀라가 나를 쳐다봤다.

     

    ‘역시 폭군이시구만.’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아셀라를 향해 걸어갔다.

     

    품에서 손수건을 꺼낸다.

     

    벌써 팔꿈치까지 흘러내리는 아셀라의 핏방울을 조심스레 닦아낸다.

     

    “조금 따끔합니다.”

     

    빨간약을 꺼내 피를 닦아낸 상처에 덧발랐다. 아셀라가 팔을 살짝 움찔하는 게 느껴졌지만 얼굴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상처는 그렇게 깊지 않았다.

    가볍게 베인 정도.

    이 정도면 흉이 지지도 않겠지.

     

    리넨 밴드를 꺼내 응급처치를 사용한다.

     

    아셀라의 왼팔에 매듭이 하나 지어졌다.

     

    “끝났습니다.”

     

    주황빛으로 물드는 아셀라의 팔.

     

    치료 효과가 발생했다는 뜻이었다.

     

    아셀라는 고개를 젖혀 팔켄하인을 돌아보았다.

     

    그 이상의 말은 필요없었다.

     

    팔켄하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손뼉을 쳤다.

     

    “훌륭한 시연이었습니다. 과정에 다소 문제가 있었지만 이 내용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습니다.”

     

    그가 아버지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황녀님의 주치의께서 결정된 것 같소이다. 축하드리오, 고트베르크 경.”

     

    “감사합니다.”

     

    상급치유사들도 선발이 끝난 것에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다른 후보들을 돌아보았다.

     

    기스가 분한 듯 이를 꽉 깨물었지만 납득한 듯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패배는 인정할 줄 아는 녀석이었다.

     

    “라스 공자.”

     

    귓가를 때리는 날카로운 목소리에 재빨리 고개를 돌려 대답했다.

     

    “예, 황녀님.”

     

    “별로 안 기뻐 보이네?”

     

    “그럴 리가요. 앞으로 황녀님을 모실 수 있게 되어 성은이 망극할 따름입니다.”

     

    아셀라의 금빛 눈동자가 나를 올려다본다.

     

    음, 아주 부담이 된다.

     

    그녀는 미세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더할 나위 없이 악녀에 어울리는 표정으로 내게 명령했다.

     

    “네게 황궁을 보여줄게.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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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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