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Home EP.22 EP.22

EP.22

       리디아의 반응이 영 석연치 않았지만, 어쨌든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별문제 없이 안전지대에 도착해 지상으로 복귀했고, 레몬과 애플의 증언으로 약탈자 건도 잘 해결됐고, 사지가 망가진 게일도 나름의 수요가 있다며 괜찮은 값에 팔려 갔다.

       

       무슨 수요이며, 어디로 팔려 간 건지는 모르겠지만…길드는 사랑의 여신을 모시는 교단이 세운 모험가 지원 단체라는 걸 생각해 보면 답은 금방 나왔다.

       

       적당한 공창에서 굴리려는 거겠지. 

       

       신전에서 직접 운영하는 곳이라 창남의 대우가 괜찮은 곳이긴 하지만, 범죄 노예는 예외다.

       

       아마 딱 죽지만 않을 정도로 구르지 않을까? 그래도 한 40년쯤 지나면 수요가 떨어지니, 팔다리 회복시켜서 잡부로 써줄지도 모른다. 굳세게 살아가렴 30연챠…아니 게일게일아.

       

       어깨를 으쓱이고는 앞장서서 걷는 레몬과 애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전체적으로 딱 달라붙는 옷을 입고 있어 몸의 라인이 잘 드러난다.

       

       저런. 가슴도 빈약한 게 엉덩이도 빈약하구나….

       

       연민을 담아 혀를 차고 있자니, 내 옆에 바짝 붙은 리디아가 살짝 퉁명스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요나. 역시 좋은 생각은 아니야. 뭘 믿고 이렇게 쫄래쫄래 따라가.”

       

       “그야 돈에 대한 엘프의 진심을 믿죠. 너무 철저해서 문제지, 안 지켜서 문제가 된 엘프는 없잖아요?”

       

       “보통은 그렇지. 하지만 세상일에는 언제나 예외가 있어. 당장 요나가 8쿠퍼를 뺏긴 것도 그런 경우고. 보통 엘프는 그런 푼돈 뜯겠다고 평판 나빠질 일을 안 하잖아.”

       

       “음…그러려나요.”

       

       세계수에 대고 맹세했으니 그렇게까지 할 것 같진 않지만…이건 내가 엘프의 설정을 직접 짠 사람이라 그렇게 느끼는 걸 수도 있다.

       

       모험가로 생활하며 이런저런 못 볼 꼴을 많이 본 리디아는 또 생각이 다르겠지.

       

       그러니까 여기서는 리디아도 이해할 수 있는 근거를 들어줘야지.

       

       히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리디아에게 달라붙었다. 단순히 어깨를 붙이는 걸 넘어, 아예 팔짱까지 낄 기세로 찰싹.

       

       그리고는 리디아를 올려다보며 헤실헤실 웃었다.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전 레몬과 애플을 믿는 게 아니에요.”

       

       “그럼 왜….”

       

       “무슨 일이 생기건, 저번에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리디아 님이 구해주실 거잖아요.”

       

       “…….”

       

       입을 꾹 다무는 리디아. 다만 깡통 로봇이라도 된 것처럼 삐걱이는 움직임이 대답이 되었다.

       

       이거 부끄러워하고 있구만.

       

       평소라면 그냥 흘려 넘겼을 텐데, 오늘따라 반응이 좋은 리디아. 그런 그녀의 팔에 한층 상체를 가져다 댔다.

       

       엘리에게 그러는 것처럼 노골적인 수준은 아니다. 그저 닿는 사람은 신경 쓰이지만, 정작 나는 별일 아닌 것처럼 자연스러운 느낌을 가장한 뒤.

       

       까치발을 들어 리디아의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한다. 닿지는 않지만 체온은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

       

       평소보다 살짝 낮은, 굳이 말하자면 찐목에 가까운 톤으로 작게 속삭였다.

       

       “언제나 믿고 있답니다? 나의 기사님.”

       

       “……!”

       

       리디아의 붉은 눈동자가 크게 뜨이더니, 그대로 덜컥 멈춰버렸다.

       

       전원이 꺼진 골렘 같은 모습.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시동이 켜진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적발은 화려하게 흩날렸고, 눈동자는 타오르는 불꽃처럼 붉게 반짝였으며.

       

       은연중에 배어 있던 절도 있는 동작은 한층 각도에 날이 선 것이 특유의 멋을 뿜어낸다.

       

       세상에. 설마 그사이에 오러를 활성화한 거야? 대체 얼마나 들뜬 거냐고….

       

       지금, 이 순간. 리디아는 모험가라기보다 기사에 가까웠다.

       

       스릉-

       

       어느새 꺼낸 검을 자신의 앞에 가져다 대며 짧게 검례를 취하는 리디아.

       

       “오늘만큼은 내가 요나의 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줄 테니 내 옆에 꼭 달라붙어 있어.”

       

       “넹.”

       

       의욕을 불태우다 못해, 온갖 폼을 잡으며 나를 호위하듯 감싸는 리디아.

       

       그 모습에 앞에서 레몬과 애플의 표정이 썩어들어가긴 했지만, 그래서 저 쌍둥이가 궁시렁대는 것 말고 뭘 할 수 있겠는가.

       

       리디아의 장단에 맞춰주기 위해, 그리고 걍 내가 흥이 올라서 귀한 집 자식인 것처럼 한껏 어깨를 으쓱이는 것도 잠시.

       

       투덜대면서도 잘만 걷던 레몬과 애플의 발이 멈췄다.

       

       “여기임다.”

       “여기가 저희 조직임다.”

       

       “……?”

       

       순간 둘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순간 이해하지 못해 주변을 재차 둘러보았다.

       

       늦은 저녁 시간에도 조명으로 밝은 거리. 잘 포장된 대로 위에는 수많은 마차와 사람이 오가고 있었고, 골목길을 들여다보아도 거지 하나 없는 깔끔함을 자랑한다.

       

       그렇다. 여긴 판 그레이브의 상업지구…그중에서도 고오급 가게가 몰려있는 거리.

       

       레몬과 애플이 멈춘 것은 이러한 거리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큼직한 상회의 앞이었다.

       

       “크레이들 상회…? 설마 여기가 두 분이 말하는 조직인가요? 그럼 그 보스라는 건 설마….”

       

       크레이들 상회는 이 미궁도시에서도 유명한 곳이다. 무기는 드워프 공방 연합이, 마도구는 마탑이 꽉 쥐고 있지만 그 외의 모든 물품은 크레이들 상회의 영역이니까.

       

       사실상 미궁도시 상권을 삼분 하는 거대 자본 중 하나. 수명이 긴 엘프들이 작정하고 장사에 뛰어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산 증인과도 같은 조직.

       

       그게 바로 크레이들 상회다.

       

       일단 돈만 있으면 시중에 나돌지 않는 물건을 구할 수 있고, 경호에 한해서지만 용병 서비스도 제공하니 전부 맞는 말만 했구나….

       

       설마 이 양아치 년들이 크레이들 상회의 회주와 연이 있을 줄이야. 생각도 못 한 행운에 입이 반쯤 벌어지려던 찰나.

       

       “아, 그쪽이 아님다. 이쪽 건물임다.”

       “크레이들 저거 아주 나쁜 놈들임다. 쳐다도 보지 마십쇼. 퉷.”

       

       레몬의 손가락이 시야의 한구석을 가리키고, 애플이 땅에 침을 뱉었다.

       

       심히 양아치스러운 행동과 크레이들 상회 건물 앞에서 크레이들 상회를 욕하는 멍청함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아…기대하니까 배신당하는 건데, 이 간단한 진리를 잊고 살았네요.”

       

       “오. 뭔가 멋있슴다.”

       “레몬은 바보임까? 요나 님은 언제나 멋있었슴다.”

       

       뭔 뜻인지도 모르고 감탄하는 레몬과, 때는 이때다 싶어 은근슬쩍 아부하는 애플.

       

       너무 노골적인 태도라 오히려 유쾌하네. 헛웃음을 지으며 레몬이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다.

       

       “뭐, 어찌 됐든 이런 동네에 자리 잡았다면 나름 한가락 하는….”

       

       거기까지 말한 시점에 발견한 무너지기 직전의 낡은 목조 건물. 심지어 사이즈도 작다. 구멍가게보다 조금 나은 정도려나.

       

       하필이면 한 블록을 거의 통째로 사용하는 크레이들 상회의 바로 옆에 붙어있어서 너무 비교된다.

       

       “…정말 저기인가요?”

       

       “맞슴다. 크레이들 상회와는 비교도 안 될 전통을 자랑하는 곳임다.”

       “그 이름도 유명한 만물상 에덴! 들어보셨슴까?”

       

       “아뇨. 완전 처음 듣는데요. 리디아 님은요?”

       

       “나도 처음 들어.”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리디아. 돈을 모아두지 않고 전부 자신에게 투자하는 리디아가 저리 말할 정도면 진짜 듣보잡이란 소린데.

       

       싸한 속내가 겉으로 드러난 걸까. 쌍둥이 엘프가 허둥대며 설명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물건을 팔고 있슴다!”

       “그리고 뭐가 됐건 성능은 최고라 자신함다!”

       

       “…네네. 이 가게가 대단한 건 알겠으니까 가서 약속한 돈이나 받아오세요.”

       

       “그러겠슴다….”

       “후딱 다녀오겠슴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만물상 에덴으로 향하는 레몬과 애플.

       

       둘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리디아의 소매를 꾹꾹 잡아당겼다.

       

       “리디아 님. 역시 23골드씩은 무리겠죠?”

       

       “응. 이곳에 가게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기본적인 수입은 있는 것 같지만…그래도 저만한 가게가 갑자기 46골드나 융통하기는 힘들 것 같아.”

       

       “쓰으읍. 그런 그냥 받아낼 수 있는 만큼만 뜯어내고, 나머지는 몸으로 갚게 해야겠네요.”

       

       “허가받지 않은 인신매매와, 장기밀매는 불법이야.”

       

       “…요즘 들어서 저에 대한 이미지가 좀 이상해지지 않았나요 리디아 님?”

       

       “글쎄. 잘 모르겠네.”

       

       “…….”

       

       억울해라. 내가 망설임 없이 적을 죽이는 건, 어디까지나 판 대륙에서 쥐뿔도 없는 고아로서 살아남겠다는 의지의 표명 같은 건데.

       

       어느 순간부터 리디아에게 이런 싸이코패스 취급을 받기 시작했단 말이지.

       

       서운한 마음에 괜히 리디아의 손등만 찰싹찰싹 때리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에덴의 낡은 문이 열리며, 그 사이로 레몬과 애플이 걸어 나왔다. 다만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산발이 된 머리카락. 그나마 봐줄 만했던 얼굴에는 군데군데 파란 멍이 들어있었다.

       

       척 봐도 제대로 얻어맞고 온 느낌. 하기야, 점주 입장에서는 자기 가게 꾸려나가기도 벅찬데 과거의 정을 봐서 저런 양아치를 받아준 것 아닌가.

       

       그런데 밖에 나가서 죽을 뻔한 것도 모자라 빚까지 지고 대신 갚아달라 하면 나 같아도 빡치겠다.

       

       비 맞은 병아리처럼 처량한 모습으로 터덜터덜 걸어온 레몬과 애플. 두 쌍둥이 엘프가 퉁퉁 부은 입술로 말했다.

       

       “죄송함다…보스가 한 번에 그만한 돈은 마련하기 힘들다고 함다….”

       “그래도 시간이 좀 걸릴 뿐, 반드시 갚을 테니 그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고 하심다.”

       

       “그럴 것 같았어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리디아를 향해 슬쩍 손을 내밀었다.

       

       “에스코트. 부탁해도 되겠죠?”

       

       “오늘만이야.”

       

       말은 그리하면서도 입가를 씰룩이는 리디아. 오늘은 하루 종일 날 도와주기만 했으니, 이 정도 서비스는 해줘야지.

       

       그렇게 우리는 만물상 에덴으로 향했다.

       

       

       

       

       

       

       

       

       

       

       

       

       

       “후후후. 이브 니르바나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해야 하려나요?”

       

       그곳에는 턱을 괴는 자세로 우리를 맞이하는 수상할 정도로 수상한 실눈 엘프가 있었다.

       

       …놀랍게도 두 번째로 만나는 내가 설정한 캐릭터였다.

       

       누나가 여기서 왜 나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실눈 캐릭터는 참 좋은 캐릭터라고 생각해오
    다음화 보기


           


EP.22

EP.22





       리디아의 반응이 영 석연치 않았지만, 어쨌든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별문제 없이 안전지대에 도착해 지상으로 복귀했고, 레몬과 애플의 증언으로 약탈자 건도 잘 해결됐고, 사지가 망가진 게일도 나름의 수요가 있다며 괜찮은 값에 팔려 갔다.


       


       무슨 수요이며, 어디로 팔려 간 건지는 모르겠지만…길드는 사랑의 여신을 모시는 교단이 세운 모험가 지원 단체라는 걸 생각해 보면 답은 금방 나왔다.


       


       적당한 공창에서 굴리려는 거겠지. 


       


       신전에서 직접 운영하는 곳이라 창남의 대우가 괜찮은 곳이긴 하지만, 범죄 노예는 예외다.


       


       아마 딱 죽지만 않을 정도로 구르지 않을까? 그래도 한 40년쯤 지나면 수요가 떨어지니, 팔다리 회복시켜서 잡부로 써줄지도 모른다. 굳세게 살아가렴 30연챠…아니 게일게일아.


       


       어깨를 으쓱이고는 앞장서서 걷는 레몬과 애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전체적으로 딱 달라붙는 옷을 입고 있어 몸의 라인이 잘 드러난다.


       


       저런. 가슴도 빈약한 게 엉덩이도 빈약하구나….


       


       연민을 담아 혀를 차고 있자니, 내 옆에 바짝 붙은 리디아가 살짝 퉁명스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요나. 역시 좋은 생각은 아니야. 뭘 믿고 이렇게 쫄래쫄래 따라가.”


       


       “그야 돈에 대한 엘프의 진심을 믿죠. 너무 철저해서 문제지, 안 지켜서 문제가 된 엘프는 없잖아요?”


       


       “보통은 그렇지. 하지만 세상일에는 언제나 예외가 있어. 당장 요나가 8쿠퍼를 뺏긴 것도 그런 경우고. 보통 엘프는 그런 푼돈 뜯겠다고 평판 나빠질 일을 안 하잖아.”


       


       “음…그러려나요.”


       


       세계수에 대고 맹세했으니 그렇게까지 할 것 같진 않지만…이건 내가 엘프의 설정을 직접 짠 사람이라 그렇게 느끼는 걸 수도 있다.


       


       모험가로 생활하며 이런저런 못 볼 꼴을 많이 본 리디아는 또 생각이 다르겠지.


       


       그러니까 여기서는 리디아도 이해할 수 있는 근거를 들어줘야지.


       


       히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리디아에게 달라붙었다. 단순히 어깨를 붙이는 걸 넘어, 아예 팔짱까지 낄 기세로 찰싹.


       


       그리고는 리디아를 올려다보며 헤실헤실 웃었다.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전 레몬과 애플을 믿는 게 아니에요.”


       


       “그럼 왜….”


       


       “무슨 일이 생기건, 저번에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리디아 님이 구해주실 거잖아요.”


       


       “…….”


       


       입을 꾹 다무는 리디아. 다만 깡통 로봇이라도 된 것처럼 삐걱이는 움직임이 대답이 되었다.


       


       이거 부끄러워하고 있구만.


       


       평소라면 그냥 흘려 넘겼을 텐데, 오늘따라 반응이 좋은 리디아. 그런 그녀의 팔에 한층 상체를 가져다 댔다.


       


       엘리에게 그러는 것처럼 노골적인 수준은 아니다. 그저 닿는 사람은 신경 쓰이지만, 정작 나는 별일 아닌 것처럼 자연스러운 느낌을 가장한 뒤.


       


       까치발을 들어 리디아의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한다. 닿지는 않지만 체온은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


       


       평소보다 살짝 낮은, 굳이 말하자면 찐목에 가까운 톤으로 작게 속삭였다.


       


       “언제나 믿고 있답니다? 나의 기사님.”


       


       “……!”


       


       리디아의 붉은 눈동자가 크게 뜨이더니, 그대로 덜컥 멈춰버렸다.


       


       전원이 꺼진 골렘 같은 모습.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시동이 켜진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적발은 화려하게 흩날렸고, 눈동자는 타오르는 불꽃처럼 붉게 반짝였으며.


       


       은연중에 배어 있던 절도 있는 동작은 한층 각도에 날이 선 것이 특유의 멋을 뿜어낸다.


       


       세상에. 설마 그사이에 오러를 활성화한 거야? 대체 얼마나 들뜬 거냐고….


       


       지금, 이 순간. 리디아는 모험가라기보다 기사에 가까웠다.


       


       스릉-


       


       어느새 꺼낸 검을 자신의 앞에 가져다 대며 짧게 검례를 취하는 리디아.


       


       “오늘만큼은 내가 요나의 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줄 테니 내 옆에 꼭 달라붙어 있어.”


       


       “넹.”


       


       의욕을 불태우다 못해, 온갖 폼을 잡으며 나를 호위하듯 감싸는 리디아.


       


       그 모습에 앞에서 레몬과 애플의 표정이 썩어들어가긴 했지만, 그래서 저 쌍둥이가 궁시렁대는 것 말고 뭘 할 수 있겠는가.


       


       리디아의 장단에 맞춰주기 위해, 그리고 걍 내가 흥이 올라서 귀한 집 자식인 것처럼 한껏 어깨를 으쓱이는 것도 잠시.


       


       투덜대면서도 잘만 걷던 레몬과 애플의 발이 멈췄다.


       


       “여기임다.”


       “여기가 저희 조직임다.”


       


       “……?”


       


       순간 둘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순간 이해하지 못해 주변을 재차 둘러보았다.


       


       늦은 저녁 시간에도 조명으로 밝은 거리. 잘 포장된 대로 위에는 수많은 마차와 사람이 오가고 있었고, 골목길을 들여다보아도 거지 하나 없는 깔끔함을 자랑한다.


       


       그렇다. 여긴 판 그레이브의 상업지구…그중에서도 고오급 가게가 몰려있는 거리.


       


       레몬과 애플이 멈춘 것은 이러한 거리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큼직한 상회의 앞이었다.


       


       “크레이들 상회…? 설마 여기가 두 분이 말하는 조직인가요? 그럼 그 보스라는 건 설마….”


       


       크레이들 상회는 이 미궁도시에서도 유명한 곳이다. 무기는 드워프 공방 연합이, 마도구는 마탑이 꽉 쥐고 있지만 그 외의 모든 물품은 크레이들 상회의 영역이니까.


       


       사실상 미궁도시 상권을 삼분 하는 거대 자본 중 하나. 수명이 긴 엘프들이 작정하고 장사에 뛰어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산 증인과도 같은 조직.


       


       그게 바로 크레이들 상회다.


       


       일단 돈만 있으면 시중에 나돌지 않는 물건을 구할 수 있고, 경호에 한해서지만 용병 서비스도 제공하니 전부 맞는 말만 했구나….


       


       설마 이 양아치 년들이 크레이들 상회의 회주와 연이 있을 줄이야. 생각도 못 한 행운에 입이 반쯤 벌어지려던 찰나.


       


       “아, 그쪽이 아님다. 이쪽 건물임다.”


       “크레이들 저거 아주 나쁜 놈들임다. 쳐다도 보지 마십쇼. 퉷.”


       


       레몬의 손가락이 시야의 한구석을 가리키고, 애플이 땅에 침을 뱉었다.


       


       심히 양아치스러운 행동과 크레이들 상회 건물 앞에서 크레이들 상회를 욕하는 멍청함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아…기대하니까 배신당하는 건데, 이 간단한 진리를 잊고 살았네요.”


       


       “오. 뭔가 멋있슴다.”


       “레몬은 바보임까? 요나 님은 언제나 멋있었슴다.”


       


       뭔 뜻인지도 모르고 감탄하는 레몬과, 때는 이때다 싶어 은근슬쩍 아부하는 애플.


       


       너무 노골적인 태도라 오히려 유쾌하네. 헛웃음을 지으며 레몬이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다.


       


       “뭐, 어찌 됐든 이런 동네에 자리 잡았다면 나름 한가락 하는….”


       


       거기까지 말한 시점에 발견한 무너지기 직전의 낡은 목조 건물. 심지어 사이즈도 작다. 구멍가게보다 조금 나은 정도려나.


       


       하필이면 한 블록을 거의 통째로 사용하는 크레이들 상회의 바로 옆에 붙어있어서 너무 비교된다.


       


       “…정말 저기인가요?”


       


       “맞슴다. 크레이들 상회와는 비교도 안 될 전통을 자랑하는 곳임다.”


       “그 이름도 유명한 만물상 에덴! 들어보셨슴까?”


       


       “아뇨. 완전 처음 듣는데요. 리디아 님은요?”


       


       “나도 처음 들어.”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리디아. 돈을 모아두지 않고 전부 자신에게 투자하는 리디아가 저리 말할 정도면 진짜 듣보잡이란 소린데.


       


       싸한 속내가 겉으로 드러난 걸까. 쌍둥이 엘프가 허둥대며 설명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물건을 팔고 있슴다!”


       “그리고 뭐가 됐건 성능은 최고라 자신함다!”


       


       “…네네. 이 가게가 대단한 건 알겠으니까 가서 약속한 돈이나 받아오세요.”


       


       “그러겠슴다….”


       “후딱 다녀오겠슴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만물상 에덴으로 향하는 레몬과 애플.


       


       둘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리디아의 소매를 꾹꾹 잡아당겼다.


       


       “리디아 님. 역시 23골드씩은 무리겠죠?”


       


       “응. 이곳에 가게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기본적인 수입은 있는 것 같지만…그래도 저만한 가게가 갑자기 46골드나 융통하기는 힘들 것 같아.”


       


       “쓰으읍. 그런 그냥 받아낼 수 있는 만큼만 뜯어내고, 나머지는 몸으로 갚게 해야겠네요.”


       


       “허가받지 않은 인신매매와, 장기밀매는 불법이야.”


       


       “…요즘 들어서 저에 대한 이미지가 좀 이상해지지 않았나요 리디아 님?”


       


       “글쎄. 잘 모르겠네.”


       


       “…….”


       


       억울해라. 내가 망설임 없이 적을 죽이는 건, 어디까지나 판 대륙에서 쥐뿔도 없는 고아로서 살아남겠다는 의지의 표명 같은 건데.


       


       어느 순간부터 리디아에게 이런 싸이코패스 취급을 받기 시작했단 말이지.


       


       서운한 마음에 괜히 리디아의 손등만 찰싹찰싹 때리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에덴의 낡은 문이 열리며, 그 사이로 레몬과 애플이 걸어 나왔다. 다만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산발이 된 머리카락. 그나마 봐줄 만했던 얼굴에는 군데군데 파란 멍이 들어있었다.


       


       척 봐도 제대로 얻어맞고 온 느낌. 하기야, 점주 입장에서는 자기 가게 꾸려나가기도 벅찬데 과거의 정을 봐서 저런 양아치를 받아준 것 아닌가.


       


       그런데 밖에 나가서 죽을 뻔한 것도 모자라 빚까지 지고 대신 갚아달라 하면 나 같아도 빡치겠다.


       


       비 맞은 병아리처럼 처량한 모습으로 터덜터덜 걸어온 레몬과 애플. 두 쌍둥이 엘프가 퉁퉁 부은 입술로 말했다.


       


       “죄송함다…보스가 한 번에 그만한 돈은 마련하기 힘들다고 함다….”


       “그래도 시간이 좀 걸릴 뿐, 반드시 갚을 테니 그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고 하심다.”


       


       “그럴 것 같았어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리디아를 향해 슬쩍 손을 내밀었다.


       


       “에스코트. 부탁해도 되겠죠?”


       


       “오늘만이야.”


       


       말은 그리하면서도 입가를 씰룩이는 리디아. 오늘은 하루 종일 날 도와주기만 했으니, 이 정도 서비스는 해줘야지.


       


       그렇게 우리는 만물상 에덴으로 향했다.


       


       


       


       


       


       


       


       


       


       


       


       


       


       “후후후. 이브 니르바나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해야 하려나요?”


       


       그곳에는 턱을 괴는 자세로 우리를 맞이하는 수상할 정도로 수상한 실눈 엘프가 있었다.


       


       …놀랍게도 두 번째로 만나는 내가 설정한 캐릭터였다.


       


       누나가 여기서 왜 나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실눈 캐릭터는 참 좋은 캐릭터라고 생각해오
    다음화 보기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