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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

       “얼마만에 휴가인 것이에요~ 드디어 자유를 찾은 것이에요~.”

       

        침대에 누워 다리를 휘적이는 마리엘의 표정은 행복 그 자체였다.

        곧 글레시아 학파를 따라 대미궁에 입장해야 하는데도 긴장한 구석따위 찾아볼 수 없었다.

        파딱으로 갤러리에 24시간 상주하는 것보다 화장실도 식당도 없는 미궁에서 죽도록 구르는 게 더 나았기 떄문.

        이러니 그녀에게 불려와 손수 봇짐을 싸주고 있는 내 기분은 가히 최악일 수밖에 없었다.

       

        기껏 뽑아놓은 무급 노예가 쇠사슬을 끊고 달아나려는데, 열차에 올라탈 티켓까지 손수 쥐어줘야 하다니.

        나는 하늘하늘한 프릴이 달린 내의와 속옷을 차곡차곡 담아주며 수 차례 당부했다.

       

        “꼭 사흘 안에는 나오셔야 됩니다.”

        “흐응~ 관리인은 제가 걱정되나요? 허나 쓸데없는 것이에요. 저는 무려! 글레시아 학파로부터 미궁 탐사에 협력을 요청받은 몸이니까!”

       

        내가 세라를 통해 몰래 주머니에 넣어놓은 1등석 티켓을 자랑하는 꼴을 보자 절로 배알이 꼬여왔다.

        미궁 안에서는 갤러리에 접속할 수 없기에 파딱의 업무를 처리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래도 선발대에 속한 채 빠르게 11층에 안착하면 그 이후엔 곧바로 내가 진입할 테니 완장이 없는 공백은 막을 수 있었다.

       

        본인은 최대한 느긋하게 미궁을 주파하고 싶어하는 모양이었지만.

       

        “관리인관리인.”

        “네네.”

        “만에 하나 제가 미궁에서 나오지 못하게 된다면…… 관리인은 울 건가요?”

       

        마치 반응을 떠보는 듯한 미묘한 말투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마리엘이 침대에서 이쪽을 바라본 채 새하얀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설마 내가 갤러리의 관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

        어둠의 숲에서 창을 던진 게 나라는 것쯤은 감추지도 않은 만큼 들켜도 별 상관 없다.

        하지만 마탑에서 지내는 내내 주딱의 정체는 철저히 숨겨왔다.

       

        지금 상황에서 그녀가 내가 주딱이란 사실을 알아챌 방법은 딱 하나였다.

        신비의 파편인 ‘원칙의 시계탑’으로 내게 직접 진실을 들은 뒤 회귀하는 거다.

       

        “설마…… 아무렇지도 않나요?”

       

        잠시 그 가능성에 대해 생각한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확률이 낮은 수준을 넘어 불가능에 가까운 가정이었다.

        현재 내가 알고 있는 마리엘의 원칙이란 ‘도망치지 않는 것’.

        그로 인해 얻는 보상은 ‘기습을 받을 경우 공격을 받기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시간 관련 마법을 괜히 마탑에서 금술로 지정한 게 아니다.

        극히 짧은 회귀조차 부담해야 할 대가가 막심하며 신비를 품고 있다 해도 까다로운 조건과 제약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아직 수련의 층에 발을 들이지 못한 그녀가 새로운 원칙을 세웠을리가 없다.

        그렇다면 이건 철저히 호기심, 혹은 다른 감정으로 물어본 거겠지.

       

        “잡으러 갈 겁니다.”

       

        넌 사흘 안에 안 나오면 내가 직접 찾으러 들어간다.

        진심이 담긴 나의 말에 나비처럼 팔랑거리던 눈꺼풀이 이내 어여쁜 곡선을 그렸다.

       

        “흐응, 그런가요. 그 정도로 제가 소중한가요.”

       

        백 점 만점에 몇 점 짜리 대답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마리엘이 미궁에서 새 살림 차리지 않을 정도의 득점은 해낸 모양이었다.

        무사히 돌아와야겠네요-.라며 가방을 챙긴 그녀는 활기찬 미소와 함께 글레시아 학파를 따라 미궁으로 향했다.

       

        그리고, 사흘이 흘렀다.

       

       

       

        *

       

        ====

        [파딱 죽었냐?]

       

        요즘 갤에 안 보이는 거 같은데…….

        슬슬 함 달릴까?

       

        — 벌써 갔다고?

        — 왜 이렇게 빨리 고장나나요!!

        — 주딱이 너무 혹사시키긴 했어

        — 진짜네? 벌써 접속 안 한지 삼 일짼데?

        ====

        ====

        [드디어 자유를 찾아 떠났구나]

       

        네가 해낼 거라 믿고 있었어!

       

        — 나도 믿고 있었음 새벽마다 도와준 보람이 있는 듯?

         ㄴ 니가 보냈냐? ㅋㅋㅋㅋ

        — 가기 전에 주딱 정체나 까발려주고 가지

         ㄴ 둘이 만났다는 거 아직도 믿음?

        ====

        ====

        [파딱 지금 미궁에 갇혀 있는 거 아님?]

       

        이번 대미궁 1일차에 들어간 사람들 아직 한 명도 못 나왔다는데

        그 중 하나인 거 같은데?

       

        — 흠, 벌써 3일 지났는데 한 명도?

        — 올해 기수는 실력이 다들 별론가

        — 대미궁이면 고작 첫 번째 시련이잖아

         ㄴ 안개 재수없이 걸리면 빡쎄긴 해

         ㄴ 아무리 그래도 통과자가 있긴 해야지 대형 학파들도 잔뜩 들어갔는데

        — 진짜면 주딱이 구하러 가겠네

         ㄴ ㄹㅇ 노예 하나 잃을지도 모르는데 이건 구해야지

        ====

       

        “아직까지 출구나 안개에 대한 정보가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더 늦어지면 저희만 발이 묶일 텐데요.”

        “설마 자기들끼리 전리품을 독차지하려고?”

        “젠장, 이건 글레시아 놈들이 우릴 배신한 겁니다! 그 냉혈한들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

        “지금이라도 진입할까요, 아르투르 님?”

       

        미티어 학파의 마법사들이 모인 회의실에는 격정적인 기류가 흘렀다.

        선발대가 미궁에 진입한 지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11층으로부터 통과했다는 연락이 오지 않아서였다.

       

        정말로 공략이 늦어지는 것일수도 있지만, 만약 글레시아가 작정하고 함정을 판 거라면 미티어에겐 뼈아픈 손실이었다.

        학파 전체의 등반 속도가 늦어질 뿐 아니라 정보가 없는 상태로 미궁에 들어가면 피해가 누적되기 때문이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 않나. 다른 학파들도 통과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전이니 기다릴 필요가 있다.”

        “입막음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출구 앞에서 최대한 시간을 끌고 나올 생각일수도…….”

        “혹여 저들이 통과를 못한 게 맞더라도 미궁에 진짜로 문제가 생겼다면 그게 더 큰일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죠?”

       

        미궁 내부의 상황은 마탑의 행정부도 알 수 없다.

        한 번 10층을 통과하면 상층에 거주하는 고위 마법사나 마탑의 기둥인 순혈 가문들이 발 벗고 나서는 정도가 아닌 이상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글레시아를 믿고 기다려야 하는가, 아니면 들어가야 하는가.

        혹은 등반을 포기하고 다음 대미궁이 열리는 시기를 노려야 하는가.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맞닥뜨린 아르투르는 머리가 절로 지끈거렸다.

       

        “이대로 일주일이 지나면 안에 있던 이들은 어떻게 됩니까?”

       

        연단에 서서 고민하던 그는 질문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맨 뒷자리에서 계속 위치노트를 보고 있던 클락이었다.

       

        “미궁이 닫히는 순간까지 숨이 붙어있다면 9층으로 전송된다.”

        “죽었으면요?”

        “그걸로 끝이지.”

        “…….”

       

        대답을 듣더니 다시 자리에 앉는 대신 밖으로 나가는 클락.

        그 모습을 본 아르투르는 잠시 회의를 중지시켰다.

        급히 복도로 나오자 긴 창대를 어깨에 걸치고 미티어 관을 떠나려는 그의 뒷모습이 잡혔다.

        분명 느긋하게 걷는 것 같았는데, 따라잡기 위해 걷는 속도를 높여도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질 않았다.

       

        “이봐, 클락! 어디를 가려고 그래?”

        “이대로면 결론이 나진 않을 것 같아서요. 제게 약조한 건 미티어 학파만이 아니라서 저는 가보려고 합니다.”

       

        홀로 미궁으로 들어가겠다고 말하는데도 의연한 태도였다.

        해주마법으로 마법제에서 3위를 따낸 실력이니 자신이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르투르는 그것이 위험하다 생각했다.

        마수들에겐 해주 따위 통하지 않을 뿐더러 미궁은 마법사들에게 정신적으로 과부하를 주기 위해 설계된 장소였다.

        무엇보다 클락마저 보내버린다면 미티어는 사실상 10층을 통과하지 못하게 된다.

        여기서 그를 설득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혹시 창이 문제가 된다면 두고 가겠습니다.”

        “그러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생각해둔 방안이 있다.”

        “어떤 거죠?”

        “모험가들의 힘을 빌리는 거다.”

       

        은 등급 정도면 마법사보다 뛰어난 색적 능력을 가진데다 변수에 대한 대비책도 갖춘 이들을 고용할 수 있다.

        물론 그들 역시 탑을 등반해야 하지만, 미티어 학파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순식간에 해치워버릴 것이다.

        3층부터 9층까지 최대한 빠르게 의뢰를 깨면 미궁이 닫히기 전에는 10층에 도달할 수 있다.

       

        “이틀이면 충분해. 과거에도 미궁에서 실종자가 많아졌을 때 썼던 방법이지.”

        “…….”

        “왜?”

        “죄송한데, 그러면 그냥 들어가시죠.”

       

        그런데 아르투르의 설명을 들은 클락은 잠시 망설이더니 자신의 목에 걸고 있던 것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짤랑거리는 다섯 개의 플레이트 중 하나의 색을 확인한 그는 곧장 회의실로 달려갔다.

       

       

       

        *

       

        마법사의 위계가 총 열 개로 나뉜다면, 모험가의 등급은 총 다섯으로 이루어진다.

        동, 은, 금, 백금. 나머지 하나는 딱 세 개만 만들어 동료들과 나눠 가졌다.

        내가 그중 금 등급 모험가의 징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아르투르는 망설이지 않고 미궁 진입을 결정했다.

        모험가 경력이 있는 마법사는 나 혼자였기에 위계가 낮은 이들을 제외한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들어왔군.”

        “전투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데?”

        “아직 입구니까. 우선 전진한다.”

        “읏, 안개가……!”

       

        스산한 공기가 감도는 미궁의 초입.

        안개가 퍼지자 같이 있던 이들의 외양이 짐승과 비슷한 형태로 물들었다.

        사람과 마수,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기 어렵게 만드는 첫 번째 저주.

        다행히 전투에 직접적인 지장이 갈 만큼 까다로운 종류는 아니었다.

       

        “아르투르 님, 괜찮으십니까?”

        “갑자기 위치 노트로 사진은 왜 찍으시는 건지…….”

        “어어? 괘, 괜찮다! 아무 일도 아니니까 신경쓰지 마라!”

       

        누군가에게는 갈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마법으로 불을 밝히며 걷던 우리는 이내 이쪽으로 달려오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얼핏 보기엔 마수인지 사람인지 햇갈렸지만 가까이 다가오니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사, 살려줘!”

        “무슨 일이지?”

        “이쪽으로 와라!”

       

        미티어의 마법사들이 그를 눈치채고 주위에 다른 적이 있나 경계할 때.

        나는 뒤에서 조용히 창을 들어올렸다.

       

        “커헉, 끄르륵……!”

        “클락?”

        “이게 무슨 짓입니까!?”

       

        겨우 열 걸음 정도를 남겨놓고 창에 맞아 날아간 정체모를 적.

        모두가 놀라 뒤를 돌아볼 때, 나는 녀석이 쓰러지며 바닥에 흩뿌려진 피와 내장에 손을 댔다.

        검은 잿가루와 마력을 품은 액체는 내 손끝에 닿자마자 연기를 내며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건 대체……?”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존재의 티끌마저 인간을 향한 적의로 가득찬 자들만이 뿜어낼 수 있는 사기(死氣)와 독기.

       

        “아무래도 이곳에 명계의 문이 열린 모양입니다.”

       

        공격한 이유는 위치노트를 소지하고 있지 않아서였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미궁에 있는 마수들에게 나올 만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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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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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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