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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

       

       

       “···정말 해야 해?”

       

       “이제 와서 그런 걸 묻는 거야? 이미 계획까지 다 짜놨잖아.”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아멜리아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제 와서 머뭇거리는 시우가 답답했던 걸까?

       

       아멜리아는 시우에게 질책하는 대신, 그를 납득시키기로 했다.

       

       

       “말했잖아. 네가 아르테를 옆에서 감시할 수는 없으니까, 결국 내가 할 수밖에 없다고.”

       

       “네가 아르테의 감시에 더 적합하다는 건 알지만···. 이건 범죄잖아.”

       

       

       시우의 두 눈이 불안한 듯 흔들렸다.

       

       그래, 범죄다.

       

       그것도 아주 질이 나쁜 범죄.

       

       남학생이 여자 탈의실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지탄받아 마땅한 행동이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여학생의 옷가지를 뒤진다?

       

       들킨다면 변명도 불가능하다.

       

       그 순간 바로 성범죄자가 되는 거야.

       

       퇴학은 물론이고, 앞으로의 인생이 망가질 게 뻔했다.

       

       지금이라도 내가 아르테를 감시하고 아멜리아가 뒤지는 게···.

       

       

       “걱정하지 마. 다른 사람이 탈의실에 다가오면 크게 소리를 낼 테니까. 들킬 일은 없어.”

       

       “진짜 해야 한다고···? 이걸?”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들키지만 않으면 범죄가 아니라는 말, 안 들어봤어?”

       

       

       안 들켜도 범죄는 범죄다.

       

       그렇게 말을 하고 싶었지만, 시우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래.

       

       들키지 않아도 범죄는 범죄.

       

       나와 아멜리아를 제외하면, 아르테 이시스의 범죄 행위는 아무도 모른다.

       

       그 범죄 행위의 증거를 붙잡기 위해서라면···!

       

       시우는 마음을 굳혔다.

       

       범죄의 증거를 붙잡기 위해.

       

       어차피 아멜리아는 나를 여자 탈의실에 들여보낼 생각이다.

       

       피할 수 없다면, 최대한 빨리 끝마치는 게 좋겠지.

       

       

       “···알았어.”

       

       “좋아. 그 마음가짐이야. 빨리 가자고. 아르테가 기다리니까.”

       

       

       시우는 애써 마음속의 죄악감을 억눌렀다.

       

       

       

       ***

       

       

       

       “우윽. 이걸 진짜 입어야 해···?”

       

       [왜요? 예쁘기만 한데.]

       

       “저는 이런 거 입기 싫거든요!”

       

       

       라이라가 원망스러웠다.

       

       분명히 노출이 별로 없는 수영복을 부탁했는데.

       

       이게 뭐야.

       

       

       [···그래도 비키니보다 노출 별로 없는 수영복은 맞는 것 같은데요.]

       

       “비키니에 비하면 노출이 적은 건 맞지만···!”

       

       

       내가 원하던 건 원피스 수영복이었다고.

       

       그 왜, 레오타드처럼 생긴 선수용 수영복 같은 거 있잖아.

       

       라이트노벨 소설 같은 곳에서 볼법한 스쿨미즈 같은 느낌의, 노출 적은 거.

       

       그런 수영복을 원했는데.

       

       아침에 받은 수영복의 내용을 확인하고 절망했다.

       

       

       [히로인들은 대부분 비키니 입고 다니는데, 그것보단 노출 적으니까 그걸로 타협하시는 게 어때요? 어차피 이제 늦었는데.]

       

       “···.”

       

       

       떨떠름하게 손에 쥔 수영복을 바라보았다.

       

       그래, 비키니는 아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원하던 원피스 수영복이지.

       

       ···이곳저곳 살색이 드러나는 걸 빼면.

       

       

       “등에는 또 왜 아무것도 없는 거야. ···원재료 절감인가?”

       

       

       일체형의 수영복이긴 하다.

       

       가슴골이 드러나고, 등이 파여있는 걸 빼면.

       

       엉덩이는 철저하게 가려놓은 게 오히려 더 화난다.

       

       등을 이렇게까지 파놓은 주제에, 인심 썼다는 듯 가려놓은 것 같아서.

       

       

       “라이라는, 이게 노출이 적다고 생각한 걸까요···?”

       

       [그렇겠죠? 히로인들은 다 비키니 입고 다니잖아요. 비슷한 느낌인 게···? 히로인 후보였으니까.]

       

       

       일리가 있네.

       

       그래서 라이라를 탓할 수가 없다고.

       

       그냥 내가 사러 갈걸.

       

       부끄럽다고 괜히 시켜서는···.

       

       

       “아르테. 거기서 뭐 해?”

       

       “아, 아멜리아 양.”

       

       

       아멜리아가 말을 걸어왔다.

       

       우울했던 기분이 조금은 나아진 기분이었다.

       

       아멜리아는 아카데미에서 그나마 친하게 지내는, 유일한 친구였으니까.

       

       후후, 나는 왕따가 아니라고.

       

       그야 이렇게 예쁘고 착한 히로인 친구가 있으니까!

       

       

       “슬슬 들어가자. 지금 씻으러 가지 않으면 수업에 늦겠어.”

       

       “아, 아앗. 잠시···.”

       

       

       준비가 안 됐는데···!

       

       그런 나의 외마디 비명은, 아멜리아가 탈의실로 나를 이끄는 손길에 목소리가 되지 못했다.

       

       

       

       

       

       

       

       

       

       

       

       “···우와, 가슴 생각보다 크네.”

       

       “하하···. 그, 그런가요?”

       

       “나는 별로 없는데···. 있지, 조금만 떼서 나눠주라.”

       

       “그런 게 될 리가 없잖아요···.”

       

       “칫.”

       

       

       터덜, 터덜.

       

       샤워를 끝마치고 수영장으로 힘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지, 지쳤어···.

       

       아멜리아가 오늘따라 텐션이 높네.

       

       이상하게 달라붙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작가님은 왜 아까부터 말이 없지?

       

       평소 같았으면 재잘거렸을 텐데.

       

       아멜리아보다 먼저 나온 틈을 타, 작가님께 작게 소곤거렸다.

       

       

       “···작가님?”

       

       [네, 네헤엣?!]

       

       “아니, 말이 없으시길래. 왜 그렇게 놀라요?”

       

       [아뇨, 그게···. 이게 라이트노벨인가, 싶어서요. 히로인들 샤워 씬에서 가슴 만지고 노는 거, 진짜로 있는 거구나···.]

       

       “···도대체 뭘 본 거에요?”

       

       

       작가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다.

       

       그 왜, 라이트노벨 쪽에 그런 거 많잖아.

       

       가슴 작은 히로인이 가슴이 머리보다 큰 히로인보고 에잇, 에잇 하면서 막 움켜쥐고.

       

       가슴 큰 히로인은 비명을 지르고, 옆의 남자애들은 그거 듣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거.

       

       그런데 우리는 가슴 만진 적도 없었다고.

       

       그냥 평범하게···아니, 평범은 아니긴 했지.

       

       나 혼자 눈 감고 샤워하느라 헛짓거리를 좀 했으니까.

       

       아멜리아가 나를 도와주느라 시간이 좀 걸리긴 했다.

       

       내 몸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역시 다른 사람의 알몸은 조금 그랬거든.

       

       평소 같았으면 계속 재잘댔을 작가님이 왜 이렇게 조용한가 했더니, 소재로 쓰려고 적어놓고 있었던 건가?

       

       물론 작가님이 이 세상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적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보정을 거친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다.

       

       유시우의 행동 방식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니까 당연한 거긴 하지만.

       

       하지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눈에서 뇌로 직행하는 동안 도대체 무슨 필터를 거쳤길래 정보를 저렇게 받아들이는 걸까.

       

       의문이었다.

       

       

       “아, 아멜리아 양. 여기에요.”

       

       “응.”

       

       

       작가님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탈의실에서 나온 아멜리아를 불러왔다.

       

       ···역시 소설 속 히로인 아니랄까 봐, 당연하다는 듯 비키니. 그것도 흰색.

       

       순백의 비키니가 묘하게 야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나는 저런 거 못 입어.

       

       

       “다들, 주목하도록! 수영 수업에 앞서 주의사항을 설명해주겠다!”

       

       

       아, 시작인가.

       

       ···뭔가 즐거워졌다.

       

       어렸을 적을 제외하고는 물놀이를 즐겨 본 적은 없다시피 하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조금 즐겨볼까.

       

       

       

       ***

       

       

       

       “서, 선생님. 잠깐 화장실 좀···.”

       

       “···응? 아, 그래. 다녀와라. 돌아왔을 때 사람이 없다면 교실로 오도록.”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배를 붙잡고 식은땀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본 선생님이 대충 짐작했다는 듯 시원스럽게 나를 보내주었다.

       

       조금 전에 능숙하게 수영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니, 연습하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여겼겠지.

       

       사람이 없는 복도로 나오자마자 찌푸린 얼굴을 풀고 발걸음을 옮겼지만, 식은땀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식은땀은 연기 같은 게 아니었으니까.

       

       ···이제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와버렸다.

       

       여자 탈의실에, 숨어들어야 할 시간이다.

       

       

       “아무도 없지···?”

       

       

       벌컥.

       

       지체하지 않고 탈의실의 문을 열어 순식간에 숨어들어 갔다.

       

       아멜리아가 말하길, 머뭇거리다 보면 오히려 수상해 보인다나.

       

       당당하게, 그리고 대담하게.

       

       그녀가 내게 한 충고였다.

       

       

       “후우, 후우···.”

       

       

       뭔가 남자 탈의실과는 냄새가 다른 것 같은데.

       

       아니, 아니겠지.

       

       그저 착각일 뿐이다.

       

       

       “아르테, 아르테··· 여깄다. 아르테 이시스.”

       

       

       아르테의 사물함을 찾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이름 순으로 정렬되어 있었으니까.

       

       옆에 아멜리아의 사물함도 있으니 확실하겠지.

       

       ···뭔가, 남자 탈의실의 사물함보다 부드러운 것 같은데.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들어 시우는 황급히 사물함을 열어 재꼈다.

       

       가지런히 정돈되어있는 옷가지들.

       

       검은 레오타드를 최대한 의식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시우는 옷을 뒤지기 시작했다.

       

       

       “···왜 없지?”

       

       

       그런데 이상했다.

       

       아무리 옷을 뒤적여봐도, 도무지 기계장치 같은 것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옷가지와 약간의 현금, 스마트폰이 있었을 뿐.

       

       시우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어느새 십여 분이 넘어갔으니까.

       

       이렇게 늦으면 수업이 끝날 수도 있었다.

       

       적절한 시간을 찾느라 수업이 어느 정도 진행된 이후에 빠져나왔으니까.

       

       

       “아르테! 같이 가자!”

       

       “···!”

       

       

       잔뜩 초조해하며 장치를 찾는 사이, 아멜리아가 크게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샌가 가까이 다가온 학생들의 목소리.

       

       한참을 집중하며 뒤지느라 눈치채지 못했다.

       

       어느새 시계를 바라보니 이십 분이 지나있는 상황.

       

       실패했구나.

       

       시우는 실패를 직감하고, 황급히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발을 움직였다.

       

       하지만 마음이 급하면 실수를 범하는 법.

       

       수영장 탈의실의 바닥은 언제나 물기로 가득 차 있다.

       

       항상 주변에 물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겠지.

       

       그렇기에 선생님들은 탈의실에서 뛰지 말라고 가르친다.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은 대가는 참혹했다.

       

       쿠당탕!

       

       커다란 소리를 내며 넘어졌으니까.

       

       물론 시우는 초인이다. 마나를 다룰 수 있는 초인으로서, 고작 넘어지는 것 자체로는 크게 다치지 않는다.

       

       문제는 시간.

       

       

       “아르테, 재밌었어?”

       

       “네에. 즐거웠답니다.”

       

       

       어느새 아멜리아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아르테와 다른 학생들의 목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와서 탈의실 밖에 나가기는 늦었다.

       

       ···어, 어떻게 하지?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시우는, 가장 숨기 쉬운 장소에 몸을 숨기기로 했다.

       

       

       “다음에도 수영 수업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있지 않을까? 수영장 만들어놓고 많이 쓰지 않으면 아깝잖아.”

       

       “후후, 그것도 그렇네요.”

       

       

       망했네. 시우는 직감했다.

       

       무심코 열려있는 사물함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래, 아르테 이시스의 사물함 안으로.

       

       여기서 어떻게 도망가라고.

       

       엄청난 실수였다.

       

       이제 여자 탈의실에 숨어들어 간 걸로도 모자라 여학생의 사물함 속에서 냄새나 맡고 다니는 변태 취급을 받겠지.

       

       

       “···흐음.”

       

       

       그 와중에 정말 좋은 냄새가 나서 더 슬펐다.

       

       향수는 아니지만, 말로 표현하기 오묘한 이성의 살내음.

       

       시우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레오타드에서, 아르테의 향기가 났다.

       

       

       “아, 아르테. 미안해. 나 화장실 좀. 같이 가줄래?”

       

       “네···? 다녀오세요. 기다려 드릴게요.”

       

       “아이, 왜 그래. 친구끼리 이런 것도 같이 안 가줘?”

       

       “그, 그런가···? 네에. 친구니까요. 알겠어요.”

       

       

       ···!

       

       시우에게는 뜻하지도 않게, 기회가 찾아왔다.

       

       아멜리아와 함께 화장실로 사라진 아르테.

       

       옷을 갈아입고 사라진 여학생들.

       

       지금이 기회였다.

       

       쏜살같이 사물함에서 뛰쳐나왔다.

       

       복도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후 그대로 남자 탈의실로 직행.

       

       조용한 탈의실 안에서, 시우는 그제야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눈물을 삼켰다.

       

       살아남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나도 아르테 살내음 맡고싶다

    부러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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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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