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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

                *         *           * 

         

       

       

       

       식당에 도착한 이세린은 진성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달음박질로 달려가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위아래로 훑어보고, 눈을 쳐다보고, 쪼그려 앉아서 올려보고, 몸에 코를 박을 듯 가까이 다가가서 노려보고.

         

       그리곤 이렇게 말했다.

         

       “멀리서 보나 가까이서 보나 똑같은데.”

         

       진성은 그 모습에 영문을 모르고 있다가 이세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악마의 어렴풋한 형상을 보고는 상황을 짐작했다.

         

       ‘악마가 뭔가 말했나 보구나.’

         

       그 형상은 흐릿해서 얼핏 보면 아지랑이, 혹은 수증기 때문에 왜곡되어 보이는 풍경과도 같았다. 신경 쓰지 않으면 인지할 수 없고, 신경 쓰고 있다고 한들 그 형상을 제대로 인지할 수 없는 그런 수준.

         

       “저기, 똑같은데…. 응? 그런 뜻이 아니라고? 아니, 아는데…. 나는 잘 모르겠어….”

         

       볼 수 있는 것은 형상뿐인데 그것 또한 어렴풋하게 보일 뿐이었으니 그 존재를 알기란 참으로 어려웠다. 실제로 과거의 진성은 이세린이 악마와 계약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게 어떤 악마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세계 3차 대전이니 몸 상태의 악화니 하는 문제들이 겹쳐서 연락되어도 만나기가 힘들기까지 했다. 그것은 마치 하늘이 둘이 만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닮은 것은 닮은 것을 닮는다. 눈의 뒷면에 작은 뱀이 헤엄치니, 나의 눈 역시 뱀과 같이 변하리라.’

         

       그의 동료였던 어떤 용병은 이런 질문을 했다.

         

       『 그럼 네 의동생 악마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거네? 궁금하지 않아? 』

         

       호기심 많은 당나귀 같은 인간이었던 그는 궁금하다, 궁금하다를 연신 소리치며 그에게 지금이라도 가서 그 악마의 모습을 보고 와주면 안 되냐고 졸랐다. 하지만 그때 못 만나면 못 만나는 대로 주술에 집중하면 그만이라며 대충 넘겼다.

         

       사고를 당하거나 죽었다면 시간을 내어서 찾아갔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지 않은가.

         

       ‘결국, 이 집안의 사람들은 내가 죽을 때까지 무탈하게 잘 살았지.’

         

       진성은 속으로 그리 중얼거리며 주술에 의해 변질된 눈으로 이세린이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뱀의 눈이 가진 상징성을 끌어모으자 제 몸을 감춘 채 이세린에 충고하고 있던 악마의 형상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쇳덩이에 생긴 녹을 연상케 하는 붉은빛. 씻어도 씻어도 사라지지 않을 탁한 녹과 같은 색을 띤 그 붉은색은 태양 아래에서도 광택을 발하지 않고, 어둠 속에서는 한없이 검붉은 색에 가까울 그런 색이었다.

       그리고 그 색을 띠고 있는 수많은 뻣뻣해 보이는 털은 가시처럼 촘촘하게 온몸을 감싸고 있었고, 낙타 머리와 꼬리에만 기다란 머리카락이 있을 뿐이다. 처녀 귀신이 고개를 숙이고 터럭을 내리듯 기다란 머리는 머리 전체를 뒤덮어 얼핏 보면 낙타가 가발을 쓴 것 같이 보였고, 꼬랑지의 털은 기다랗고 뻣뻣한데도 마치 뱀처럼 중력을 거스르며 위아래로 움직였다.

       불룩 튀어나온 쌍봉은 에너지가 담겨 있는지 작게 맥동하며 힘을 발산하였고, 이세린 쪽을 쳐다보며 무어라 입을 열고 있는 그 입에는 금으로 된 혀가 있었다.

       그리고 머리의 가장 위쪽에는 화려하게 치장된 황금 왕관이 자리 잡았으니.

         

       ‘무엇인지 알겠다.’

         

       진성은 그 형상을 보자마자 이세린과 계약한 악마의 명칭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문화권에 따라 그 이름이 달랐던 악마.

       어떤 곳에서는 레페나.

       어떤 곳에서는 고모리.

         

       가장 유명한 이름은….

         

       ‘그레모리.’

         

       인간 역사에서 수많은 계약자를 만들었던 저 악마는 오직 여자만을 계약자로 만드는 초월종이었다. 그레모리와 계약한 여자는 상상을 뛰어넘는 부와 강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온갖 비밀과 보물을 찾아낼 수 있다는 저 악마는 계약자의 인생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끌고 간다.

       부를 쌓아 배고픔을 없애주고, 보물로 강도를 물리칠 힘을 부여한다.

       의학과 치유의 힘으로 주위 사람이 헛되이 죽어 슬퍼하는 것을 막아주고, 시종일관 우호적으로 삶의 동반자가 되어준다고 하니 그야말로 ‘악마’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존재라 할 수 있으리라.

         

       단 한 가지 단점만 빼면 말이다.

         

       ‘악마와 계약한 존재는 무언가 결여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

         

       다른 초월종이 그러하듯, 악마들 역시 취향이 있었다.

         

       사람도 애완동물을 기를 때 취향이 있지 않던가.

       어떤 이는 파충류를 좋아하고, 어떤 이는 개를, 어떤 이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등의 그런 취향 차이.

       생김새를 따지고, 몸집의 크기를 따지고, 털의 길고 짧음을 따진다.

         

       그와 같이 초월종마다 선호하는 인간 유형 역시 달랐는데, 천사와 악마는 무언가 결여된 인간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었다. 그들은 결여된 것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채워주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천사는 애정과 의존으로 채운다.

       악마는 자신의 능력으로 채운다.

         

       어느 쪽이 되었건 계약자는 행복해진다.

       천사의 계약자는 천사에게 종속되고 의존함으로써 행복해지고, 악마의 계약자는 악마의 도움으로 삶이 풍족해지니 행복해진다.

         

       이세린 역시 행복하리라.

       그가 시간을 거슬러 오기 전에도 끝까지 행복했고, 이번 삶 역시도 행복하리라.

       악마는 계약자의 행복을 위해 후원을 해주는 소중한 키다리 아저씨이며, 동시에 평생을 함께 지내는 파트너이기도 했으니까.

         

       “हूँ.”

         

       진성은 주술을 해제하곤 자리에 앉았다. 그는 살짝 시큰거리고 건조해진 눈을 손으로 비벼 눈물을 만들었다.

         

       ‘그 녀석에게 말해줄 이야기가 생겼군.’

         

       악마와 한참 이야기하던 이세린 역시 이야기가 끝났는지 진성의 맞은편에 앉아서 눈을 이곳저곳으로 굴렸다.

       진성과 눈이 마주치는 것이 어색하기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레모리가 무슨 소리를 해서 그것이 신경 쓰여 그러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그레모리가 있는 곳을 쳐다보기도 하고, 문을 쳐다보기도 하고, 고개를 숙여 식탁을 쳐다보기도 하는 등 결코 정면을 보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색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덜컹.

         

       “나 왔어~ 어? 둘밖에 없네?”

         

       누군가가 들어왔다.

         

       이세린과 똑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는 쌍둥이, 이아린이었다. 그녀는 아침 식사임에도 단정하게 차려입고 나온 이세린과는 달리 부스스한 머리털을 빗을 생각도 않은 채 대충 세수만 하고 잠옷 차림 그대로 왔다.

         

       그 모습은 잠에서 막 깨어난 암사자가 어슬렁거리는 모습 같았다.

         

       그녀는 사뿐사뿐 걸어와 진성의 옆자리에 앉고는 그의 어깨를 쿡쿡 찔렀다.

         

       “야, 야. 오래비, 오래비.”

         

       진성이 고개를 돌리자 이아린이 피식 웃었다.

         

       “되게 오랜만에 본다? 응?”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슬쩍 눈을 피하며 말했다.

         

       “뭐가 그리 바쁘길래 허구한 날 외출, 외박, 외출이야. 이러다 얼굴도 까먹겠다. 응?”

         

       투덜대며 내뱉는 말은 얼핏 들으면 시비를 거는 게 아닐까 싶은 말투였지만, 그 말 안에는 걱정이라는 감정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뭘 하고 다니는지 황금 냄새 풀풀 풍기고. 돈 버는 것도 좋지만, 그 뭐냐. 알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식당은 조용해졌다. 이아린은 그리 말하곤 고개를 홱 돌려서 머리카락을 한 손가락으로 꼬았고, 진성은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세린의 경우 정적에 휘감긴 식당의 분위기 때문인지, 아니면 어색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음침하게 고개를 숙인 채 있었을 뿐이었다.

         

       그 죽음과도 같은 침묵의 시간을 깨는 것은 이양훈과 그 처첩이었다. 셋으로 이루어진 구세주는 식당의 어색한 분위기를 깨며 상석에 앉았고, 침묵하고 있던 이아린은 이양훈과 자신의 어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이내 가족이 다 모이자 식사가 시작되었고.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쓸데없이 테이블매너를 따지고, 아침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무겁고 화려한 요리들에, 식사 중에 떠드는 것을 버릇이 없다고 표현하는 이양훈의 꼰대스러움이 만들어낸 침묵이었다. 그 때문에 모두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조차 조심하며 조용조용히 아침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고 이야기는 식사가 끝난 다음에야 할 수 있었다.

         

       이양훈은 손에 든 후식과 함께 온 녹차를 마시며 이세린과 이아린에게 말했다.

         

       “실습이 취소되었다더구나.”

       “네에….”

         

       이세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이아린은 오히려 실습이 취소되어 좋은지 대충대충 반응했다.

         

       그리고 진성은 의아한 듯 셋을 쳐다보았다.

         

       ‘실습이 취소되었다?’

         

       이세린, 이아린 자매가 다니는 고등학교는 서울 이능 특성화 고등학교.

       줄여서 서특고라고 불리는 이 학교는 이능을 발전시키는 데 특화된 고등학교였다. 소환술, 마법, 무공 등으로 강해지고 하는 사람들이 잔뜩 몰려드는 이 학교의 커리큘럼은 개인의 발전. 개개인의 무력과 이능의 강화를 위한 교육을 하는 이 학교는 당연히 현장 실습의 비중이 컸다.

         

       악귀나 악령이 출몰한 곳에 가서 토벌하기도 하고, 범죄자를 검거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며, 정부의 일을 도와주기도 하는 등 가지고 있는 이능으로 세상에 이바지하는 활동을 많이 했다.

         

       이맘때쯤이면 둘은 경찰청에서 실습할 예정이었을 텐데….

         

       “실망하지 말아라. 오히려 미리 터진 것에 감사해야지. 강력사건이 실습 중에 터졌다면 크게 걱정했을 테니까.”

       “그…. 네에….”

       “호국회 측에서 말하길, 엄청난 강자였을 거라고 하더구나. 그런 흉악범 놈을 실습 중에 마주쳤다면 크게 고초를 치를 수도 있었을 거야. 오히려 실습이 취소된 것이 전화위복이야.”

         

       이아린은 이양훈의 그 말에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진짜? 그 꼰대들이 그렇게 말할 정도야?”

       “어허! 신경 꺼라! 일류의 경지에도 이르지 못한 주제에!”

       “뭐?! 이 꼰대가 진짜! 영약이라도 사주고 그런 말을 하던가!”

       “영약은 벽을 뚫는 데 써야지! 함부로 먹으면 큰일 난다고 했을 텐데!”

       “그럼 과외라도 해주던가!”

       “네가 익힌 무공은 과외도 힘들지 않으냐! 그러게 누가 그런 무공을 익히라고….”

       “그럼 보약이라도 사줘!”

       “아니…. 하아….”

         

       진성은 둘의 싸움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호국회, 호국회라.’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피를 이용해 만든 편지였다.

         

       ‘내 편지를 보았구나. 호국회가 미끼를 물었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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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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