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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0

       고된 하루를 마치고 난 뒤.

       

       줄담배를 한 탓에 목이 칼칼해진 클라이스는 헛기침을 하며 방으로 돌아왔다.

       

       몸은 이미 녹초가 되었건만 마냥 죽상이 되어 있을 수만도 없었다.

       

       “어서 와, 클라이스.”

       “다녀왔어요, 언니.”

       

       돌아오면 반겨주는 사람이 생겼기에. 힘들더라도 웃음으로 대해 주어야 한다.

       

       “오늘 별다른 일 없었어?”

       “없었어요.”

       

       클라라는 클라이스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새벽부터 일어나 심야가 될 때까지 일만 하는 동생의 모습을 보니 여러모로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힘들게 노동하고 돌아오는 클라이스. 그에 비하면 자신은 이게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것도 안 하는데 편안한 삶을 보내고 있다. 일주일 전까지 있었던 일들이 전부 꿈만 같았다. 아니, 여기가 정말로 마왕성이긴 한 걸까? 그 정도로 현실감이 없었다.

       

       “내가 뭐 도와줄 건 없을까?”

       “언니는 건강하게 있어 주기만 하면 돼요.”

       “아니, 그런 거 말고….”

       “아뇨, 저는 그것만으로도 괜찮아요.”

       

       클라이스는 힘없이 웃었다. 클라라는 마음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하다못해 식사라도 차려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여기는 공작저가 아니었다.

       

       고민하던 클라라가 가까스로 아이디어를 꺼냈다.

       

       “무슨 연구를 하고 있는진 모르겠어. 하지만 클라이스. 네 언니는 정령마도사야. 필요한 게 있으면 도와줄 수 있어.”

       “정령들이 반발 안 해요?”

       “하겠지. 하지만 어떻게든 설득하면 들어줄 거야.”

       

       클라라도 에테르가 마수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녀에게는 다른 마수와 같은 악의가 느껴지진 않았다. 적어도 자신을 고문했던 길라흐보다는 훨씬 낫다.

       

       이건 정령의 생각이 아니다. 클라라가 제 눈으로 보고 직접 내린 판단이다.

       

       정령내림을 받은 마도사는 모든 가치판단을 정령에게 맡기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게 그나마 정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클라라는 이것을 경계하며 타인의 성품 정도는 스스로 판단하고자 하였다.

       

       자신의 판단이 정답인지는 모른다. 그래도 그녀는 에테르가 그렇게까지 나쁜 마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주일간 쉰 덕분에 마력도 어느 정도 돌아왔어. 아픈 부분도 거의 다 나았고 말이야. 이 점을 어필하면 두 정령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언니…….”

       

       그러나 클라이스는 고개를 내저었다.

       

       “주인님이 언니는 일에 관여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왜?”

       

       클라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도 클라이스처럼 천재 소리를 듣던 몸이다. 틀림없이 마도연구에 도움이 될 터인데.

       

       “이 멍청아, 그걸 몰라서 물어?”

       

       클라라의 질문에 클라이스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대답했다.

       

       로즈마리였다.

       

       로즈마리는 언니의 명령으로 바닥에 마법진을 짜 넣던 중이었다. 그녀도 이 작업을 한 지 거의 일주일째다.

       

       하품이 나올 정도로 피곤한 일이었지만 로즈마리의 ‘계획’과도 일맥상통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던 중이다.

       

       그런데 곁에서 바보 천치 두 마리가 조용히 있어주지는 못할망정, 쓰잘머리 없는 티키타카를 하고 있었으니.

       

       천진스러운 대화에 분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끼어든 것이다.

       

       “너 말이야, 정령마도 한 번 잘못 사용했다가 그 갈고리 팔 엘프에게 다시 잡혀가고 싶어?”

       “아…….”

       

       적확한 지적이었다.

       

       “그 갈고리 팔 남자… 길라흐는 정령이 내는 마력파를 읽어내. 네가 정령마법을 쓰는 순간 귀신같이 냄새를 맡고 달려올 거야. 그렇게 되면 나도 에테르 언니도 널 못 보호해 줘. 알겠어?”

       

       로즈마리는 그리 말하며 클라라에게 작은 마석 조각을 집어던졌다. 조용히 좀 하라는 항의의 표시였다.

       

       “그리고 정령마도사가 마수의 일을 도와? 너 진짜 등신이냐?”

       

       그 일 도와주면 세상이 망한다고!

       

       그리 말하고 싶었지만, 아직 때가 아니었다.

       

       로즈마리는 가슴을 팍팍 쳐대며 분통한 표정을 지었다.

       

       “알겠어, 가만히 있을게. 그런데 블루베리는 안 자?”

       “친한 척하지 마.”

       

       클라라는 어느새 로즈마리를 별명으로 부를 정도로 마음이 풀어진 상태였다.

       

       경위는 단순했다.

       

       로즈마리가 마법진을 짜러 처음 이 방에 들어온 날. 그녀는 곧바로 클라라에게 머리부터 박았다.

       

       그 뒤로 장장 1시간에 걸쳐 목을 조른 이유를 해명했다. 길라흐의 눈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서였다. 네가 의심할까 봐 일부러 못된 척 연기를 했다. 솔직히 나도 마수지만 자매끼리 못 만나게 하는 건 너무하다 싶었다 등등.

       

       온갖 핑계와 핑계를 다 끌어모아 설득한 끝에, 어떻게든 납득시키는 데 성공.

       

       그렇게 클라라는 로즈마리에게 상당 부분 적개심을 풀어버린 것이다.

       

       문제는, 너무 풀어버렸다는 점일까.

       

       “블루베리.”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솔직히 로즈마리가 마수치곤 귀엽게 생겼다.

       

       구천지대계 4석인데도 거북 인형을 매일 들고 다니는 것도 모자라, 키도 쪼끄매서 도저히 절멸급 마수라고 볼 수 없을 외모였다.

       

       특히 말랑말랑한 볼살. 쭉 잡아당기면 모차렐라 치즈처럼 쭈와아아악 늘어날 것 같았다.

       

       “너도 오늘은 그만하고 가서 자. 그러다 키 안 커.”

       “너 진짜 뒈지고 싶지.”

       

       그래서 이런 식으로 친한 척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왠지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 짜증난다.

       

       “그래도 우릴 죽일 생각은 없잖아.”

       “하, 씨.”

       “결국 저번 주에 네가 말했던 건 거짓말이었네.”

       “네년에게 사과하는 게 아니었어.”

       

       클라라의 말대로였다. 로즈마리는 하스펠트 자매를 해칠 수 없었다.

       

       하스펠트 자매야말로 에테르 언니의 인간성을 되찾아 줄 존재. 죽일 수도, 못되게 굴 수도 없었다.

       

       덕분에 이들의 모국을 반쯤 멸망시킨 자신의 위상이 한층 하찮아지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그럭저럭 성과는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바로 클라이스의 사과.

       

       플레어라는 목적성을 잃은 데다가 거울치료까지 받은 클라이스가 오늘 에테르에게 사과한 것이다. 로즈마리는 해당 장면을 스코프로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뒤통수를 싫어하는 언니지만 그래도 진심 어린 용서를 구한다면 웬만해선 봐준다. 로즈마리도 그랬다. 실수할 때마다 머리를 박았더니 한숨을 쉬면서도 그냥저냥 넘어가더라.

       

       여기에 클라라와 클라이스가 보여준 자매애까지.

       

       에테르도 로즈마리와 의자매인 이상 두 하스펠트의 행동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아마 지금쯤 책상에 걸터앉아 고심하고 있겠지.

       

       ‘내가 로즈마리를 너무 심하게 내쳤나?’ 하며 말이다!

       

       만약 다음에 안아달라고 했을 때 군말 없이 안아주면 계획은 성공이다. 언니가 따듯한 마음을 되찾았다는 증거일 테니까.

       

       하다못해 멸망시켜도 인간만 멸망시켰으면…….

       

       그리 생각한 로즈마리는 하스펠트 자매를 흘겨보았다.

       

       “그래서 안 자?”

       “좀 닥치라고!”

       

       여전히 마음에 안 드는 두 사람.

       

       마왕님의 패도를 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대륙의 파멸을 막는 것이 더욱더 중요했기에.

       

       당분간은 이 미천한 것들과 같은 배를 타야 할 것 같다.

       

       늦은 밤. 마법진을 짜는 로즈마리의 한숨은 얕아질 줄 몰랐다.

       

       

       **

       

       

       마찬가지로 일과가 끝난 뒤 새벽.

       

       에테르는 연구실 책상에 걸터앉은 채로 생각에 잠겼다.

       

       “……흐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알던 클라이스가 아니었다.

       

       클라라 때문에 절박해 한다는 건 이래저래 이해했다.

       

       그렇더라도 그 자존심 높던 클라이스가 스스로 나서서 사과할 줄은 몰랐는데.

       

       “기구한 일이군.”

       

       몸의 제어권만 내줬다 뿐이지, 또 다른 ‘자신’도 클라이스가 용서를 비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꾸만 이런 환청이 들려왔다.

       

       ‘야, 솔직히 이건 카운트에서 빼야 하는 거 아니냐?’

       

       무슨 소리인가 싶어 귀를 기울였더니 단순한 이야기였다.

       

       클라이스 땐 지구에서 온 녀석이 뒤통수를 대신 맞았으니 1천 번의 카운트에서 한 번은 무효 아니냐는 논리였다.

       

       “…무슨 소리냐.”

       

       너도 나고, 나도 너인 것을.

       

       하는 짓도, 말투도, 좋아하는 것이나 싫어하는 것도 전부 똑같은 주제에.

       

       “고민이 깊은 모양이로구나.”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요르문간드가 문을 닫으며 들어오고 있었다.

       

       “우리 중 가장 똑똑하면서도 어째 수심에 잠긴 얼굴을 하고 있을까.”

       “민천이 이 시각엔 웬일이지?”

       “그냥 보러 온 게지. 죽었나, 살았나.”

       “드래곤이란 편해서 좋겠군.”

       

       에테르는 눈을 반쯤 감은 채로 거의 까라져 있다시피 했다.

       

       요르문간드가 무어라 중얼거리긴 하는데, 도무지 머리에 들어오질 않았다. 대신 구둣발에 난 흠이나 신경 썼다. 가끔씩 들려오는 질문에는 단조로운 목소리로 어, 어, 하며 대꾸했다.

       

       “마왕군 전군과 조율해서 일정을 잡았다. 자네가 세계수를 불태우면 여가 공의 로드스톤을 회수, 마왕의 부활과 동시에 피치블렌드 산을 경유하여 브릴뤼움 대폭포로 침공을 개시하려고 하는데…… 저기, 여의 말을 듣고는 있는가?”

       “듣고 있다.”

       “호천은 일리야드에서, 창천은 제국을 경유해서 군대를 움직이기로 했다.”

       “그렇군.”

       “그때 자네는 어디로 침공할 계획인지 물어보려고 하는데.”

       

       에테르는 피식 웃었다.

       

       “어디랄 게 있나.”

       

       흑주의 시전 범위는 행성 전체. 지연 효과에 따라 위치마다 시간 차이는 있겠지만, 거의 수 초 이내로 대륙 전부를 노릇하게 구워버릴 수 있다.

       

       “그때 상황 봐서 유동적으로 대처하도록 하지.”

       “예비 병력이라.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

       

       요르문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에테르도 대강 마음을 정했다.

       

       제아무리 클라이스를 용서해준다고 한들, 인간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어 있는 법이다.

       

       그녀를 제외하고서라도 이미 999번의 검증된 통계가 존재했고, 지금 와서 결정을 철회한다고 한들 공중에 붕 뜨기만 할 뿐이다.

       

       그렇게 어영부영 넘어가느니 차라리 리셋하고 다음 세계선으로 넘어가는 수밖에.

       

       이건 파괴가 아니다.

       

       다시 창조하는 것이지.

       

       악인이 없는 올바른 세계가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세상을 부수리라.

       

       “그러고 보니, 상천. 여가 여기 온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뭐지?”

       

       요르문간드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네가 주문한 거, 완성됐다. 조금 전 빌헬름이 폭약으로 만드는 작업까지 끝낸 모양이더군.”

       

       에테르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드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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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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