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20

       사실은 원래 미아가 쓰기로 한 마법은 이런 용도가 아니었다.

        

       그리폰에게는 날개가 있으니, 얼음으로 순식간에 계단을 만들고 앨리스와 샤를로트가 동시에 뛰어 올라가 날개를 베어버리는 계획이었는데.

        

       안에 그리폰만 있었다면 그렇게 했겠지만, 그 그리폰을 조작하는 인간이 함께 있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스피터스 글래시아!”

        

       미아가 주문을 외치며 바닥을 향해 지팡이를 휘두르자, 마치 바닥에 물이 쏟아지면서 동시에 얼음이 얼어붙는 것 같은 모습이 연출되었다.

        

       디●니 애니메이션에서 나온 아름다운 얼음계단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훨씬 급하게, 쏟아내듯, 아니, 쏘아내듯 세워지는 계단. 실제로 얼기설기 겨우 사람이 밟고 올라갈 수 있을 수준의 모습을 한 계단의 앞쪽으로는 사람이 달려들면 박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날카롭고 두꺼운 고드름이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미아가 그걸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도움이 되기는 했다. 이쪽에서 보기에는 그저 계단의 모습이었지만, 상대방이 보기에는 자신들을 향해 달려드는 얼음 전차 같았을 테니까.

        

       계단이 세워지는 방향에 있던 기사들 몇 명이 뒤로 물러났다.

        

       퓌요오오! 하고, 서부극 영화 시작부에 들릴 것 같은 독수리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그리폰이 날개를 퍼덕이며 상체를 들어 올렸다.

        

       그냥 네 발로 버티고 서 있을 때에도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자랑했는데, 이렇게 뒷발로 서니 진짜 괴수 그 자체였다.

        

       “미아!”

        

       내가 그렇게 외쳤을 때, 나는 이미 전속력으로 계단 위를 뛰고 있었다.

        

       “알고 있어요!”

        

       내가 다시 한번 외치자, 미아가 소리쳤다.

        

       다시 한번 주문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얼음계단은 멈추지 않고 위로, 위로, 조금 완만한 나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다시 한번, 너무 청명해서 짐승의 소리가 아닌 것 같은 독수리 울음소리가 들렸다. 상체를 틀어서 그쪽을 향해 한 발 발사.

        

       투캉! 조금 전까지 사용하던 일반 소총탄과는 몹시 다른, 얼핏 들으면 총성이 아니라 포성이 아닌가 싶은 소리가 들렸다.

        

       깡! 총의 개머리판이 내 어깨를 감싼 황동판을 강하게 때리며 그런 소리가 들렸다. 팔꿈치 쪽에서 들린 끼릭, 하는 소리는 덤이다. ……이건 나중에 브라우닝을 만나면 개선해야 할 점으로 말해줘야 할까?

        

       단 한 발로 그리폰을 무력화 할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리폰이 괜히 그리폰이겠는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서 살기에 그저 동경의 대상이 되었을 뿐이지, 그리폰 서식지에 간 사람 중 멀쩡하게 살아나오는 사람은 몇 사람 없다. 카메라가 발명된 이후에도 그리폰을 찍은 사진은 많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그리폰의 붉은 눈이 나의 눈과 마주쳤다.

        

       순간 등에 소름이 돋았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 있을 때와는 다른 감각이었다. 전장에서는 적어도 상대가 나와 같은 인간이었다. 상대가 인간인 이상, 눈이 마주쳤다고 다른 생물을 보는 것 같은 위압감을 느낄 이유는 없다. 하물며 상대가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병사라면.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존재는 생물의 정점에 섰다는 그리폰. 이 세계에서조차 환상의 범위에 존재하는 드래곤이 아니라면, 지상에서 맨몸으로 그리폰을 이길 존재는 없다.

        

       하지만—

        

       “어딜!”

        

       아래쪽에서 날카롭게 외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리폰의 얼굴 옆으로 검격이 지나갔다. 마치 채찍과도 같은 궤적을 그리는 검격. 클레어의 검격이었다.

        

       피슛, 하고, 그리폰의 얼굴 옆에 상처가 났다. 피가 흐르는지 확인할 시간은 없었다.

        

       하지만 그리폰은 절대로 급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몸을 일으킨 채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올랐을 뿐.

        

       “칫.”

        

       나는 혀를 차고, 다시 총을 들었다—

        

       투다다다!

        

       하지만 내가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다시 한번 그리폰 쪽으로 총알이 날아들었다. 내가 쐈던 총알보다는 조금 작은 폭발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아, 저 총알도 전부 마르마로스 탄이었으리라. 화염의 붉은 빛, 그리고 얼음 조각.

        

       아래를 내려볼 시간은 없었다. 하지만 저걸 쏜 사람이 레나일 거라는 생각은 들었다. 권총에 쓸 탄을 전부 기관단총에 넣기라도 한 걸까?

        

       그리폰은 여전히 그 위광을 전혀 잃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 공격이 그리폰의 시선을 끄는 것에는 성공했던 모양이다.

        

       나를 똑바로 향하고 있던 시선이, 다시 아래를 향했다.

        

       순간 나를 짓누르던 위압감이 사라지고, 소리가 들렸다.

        

       아래쪽에선 이미 칼을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나 총소리도.

        

       “여기까지예요! 더 높게는 못 만들어요!”

        

       미아가 외치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이미 몇 번이나 외쳤는지, 목이 쉬어있었다.

        

       확실히 내가 달리는 계단은 끝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계단 너머에 추기경의 얼굴이 보였다.

        

       이쪽을 바라보는 추기경의 가슴 근처에서 희미하게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아마 저게 지금 저기 있는 그리폰을 조종하는 모양이었다.

        

       만약 그리폰을 제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 그 그리폰으로 자길 먼저 보호했으면 되었을 텐데, 나와 눈이 마주친 추기경의 얼굴은 굉장히 일그러져 있었다.

        

       ……아하.

        

       그러니까, 그런 대단한 물건을 가지고도, 그리폰을 완벽하게 제어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뜻이리라.

        

       겨우 한 마리인 것도 그렇고.

        

       그러니까, 뭐.

        

       저 사람은 팬그리폰은 못 될 사람인 모양이다.

        

       나는 무릎을 한껏 오므렸다가, 그대로 있는 힘껏 자리를 박찼다.

        

       쨍그랑, 하고 단단하게 얼어있던 얼음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텀블링을 하듯 몸이 위로 휙 들리면서 시야가 반전되었다.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되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래도 지금까지 계속 사격을 해오던 것이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 그 반전된 시야 안에서, 모든 것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2층 어딘가에 숨어있던 기사들이 추기경을 지키기 위해서 달려오는 것이나, 추기경이 황급하게 몸을 돌리는 것이나.

        

       정확한 조준은 필요 없다. 지금 내 손에 들린 총에서 나갈 총알은 안전거리 같은 것이 없는 유탄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나는 그 모두가 모여있는 쪽으로 총을 적당히 조준하고, 쐈다.

        

       펑, 하고 한순간 2층의 일부분이 터져나갔다. 누군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몸에 불이 붙은 것인지, 이리저리 날뛰는 인간도 있었다.

        

       “컥……!”

        

       하지만 나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성당 기사라면 모름지기 검격 정도는 쓸 줄 아는 이들이 있는 법이니까.

        

       서걱, 하고 한순간에 오른팔이 너덜너덜해졌다.

        

       멋들어지게 뛰었는데, 나는 2층 난간에는 닿지 못한 채—

        

       —떨어질 리가 없잖아?

        

       다시!

        

       *

        

       공중에서 옆으로 몸을 틀었다. 검격의 끝이 어깨를 살짝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면 허용 범위였다. 전투 끝나면 문 열고 나가기만 해도 금방 치유할 수 있으니까.

        

       다만 멋지게 착륙하려는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다.

        

       마르마로스 탄이 터졌던 곳에 착지해서 적의 품에 떨어지는 일은 없었지만, 바닥을 몇 바퀴 정도 굴렀다.

        

       하필이면 입고 있는 황동 엑소슈트의 안쪽은 철심으로 되어있어서, 이렇게 격렬하게 바닥을 구르니 말 그대로 ‘뼈에 맞은’ 느낌이 들었다. 어깨 쪽에 상처가 난 채여서 더 아프기도 했고.

        

       이것도 돌아가면 브라우닝한테 말해주기로 하자.

        

       지체할 시간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마자, 그대로 뒤로 벌렁 넘어졌다.

        

       검사들이라고 내가 일어나서 자기들한테 총을 쏘는 것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다는 소리겠지.

        

       다시!

        

       *

        

       보통 총알이 몇 발 들어가지도 않는 리볼버로 적을 난사한다는 것은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다. 들고 있는 총이 서른 발씩 들어가는 돌격소총이라면 모를까, 약실이고 뭐고 없이 꼴랑 여섯 발 들어가는 리볼버라면 총알을 다 비우는 순간에 그냥 아무것도 못 하는 표적이 되어버릴 테니까.

        

       하지만,

        

       만약 내 앞에 적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고,

        

       내가 가진 총에 들어있는 총알이 절대로 ‘일반적인’ 탄환은 아니고,

        

       이 여섯 발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흩뿌릴 기회가 나에게 무한히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는 바닥에서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굴렀다. 내가 조금 전까지 있던 곳으로 검격이 날아들어 먼지와 돌조각을 날렸다.

        

       바닥에 누워 겨우 고개만 들어 상대방을 확인할 수 있는 상태 그대로, 나는 오른손으로 허리춤에 미리 준비해두었던 리볼버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적들을 향해 적당히 겨눈 채, 그대로 왼손으로 패닝.

        

       퍼퍼펑, 눈앞에 있는 적들이 터져나갔다. 물론 터져나갔다는 것은 내 시선으로 봤을 때의 이야기고, 아마 산산조각까지는 나지 않았으리라. 성당 기사들이 입고 있는 갑옷은 장식이 아니다. 단순한 철판이 아닌 어떤 마법적인 가공이 되어있을 게 분명하다.

        

       그러니 제일 앞줄의 몇 사람이 쓰러진 것으로 만족하자.

        

       덕분에 시간을 벌 수 있었으니까.

        

       나는 곧장 일어나서, 바닥에 있는 소총을 잡았다.

        

       “큭……!”

        

       깡, 하고 오른팔에 다시 한번 검격이 와 닿았다. 황동판이 찌그러지고, 안쪽의 철심이 그대로 팔을 때리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잭 체인은 잭 체인이라는 건지, 팔이 잘리는 것은 막아주었지만.

        

       순간 시간을 돌려야 하나 하다가, 그 전에 일단 한 발은 쏴보기로 했다.

        

       아직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나는 코끼리 사냥용 소총의 개머리판을 겨드랑이 아래에 낀 채, 그대로 적을 향해 조준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