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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0

    “그래서, 방학중에 나도 꼬리가 났단 말이지? 그런데 양털 샴푸로는 꼬리를 감기가 쉽지 않아서…….”

    “음, 그래. 그렇군. 힘들겠어.”

     

    그렇게 들려오는 말에 대충 대꾸를 하고 있으니, 메리가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루크, 혹시 무슨 고민 있어? 아까부터 계속 표정이 별로 안 좋은 걸.”

    “아, 그게 그렇게 보였는가? 걱정을 끼쳤다면 미안하구나.”

     

    나름대로 표정 관리는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타인이 보기엔 그다지 밝은 표정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루크는 멋쩍게 웃으며 메리의 걱정을 달랬다.

    하지만 메리는 눈치가 꽤 빨랐다.

     

    “혹시……. 아까 시루드랑 싸워서 그래?”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그야 당연히 알지. 오늘 너랑 시루드 사이가 평소하고 얼마나 달랐는데.”

     

    사실 눈치가 젬병이라고 해도 그건 눈치채지 못하는 쪽이 바보다.

    평소의 분위기와 정 반대로 냉랭한 두 사람의 사이는 사실 멀리서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미묘했으니까.

     

    루크는 그런 메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갑자기 시루드가 먼저 내게 화를 내더구나.”

    “시루드가? 왜 화를 냈대? 시루드가 이유는 말했어?”

     

    루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런 건 말하지 않아서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방학때 했던 내기를 내가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그 일이 아니면 나는 딱히 시루드에게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없으니 말이다.”

    “뭐야, 둘이 방학 때 만났었어?”

     

    메리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루크를 바라보았다.

     

    “우연이었다. 바닷가에 일식을 보러 갔는데 우연히 마주쳤지. 그래서 낚시 내기를 했다.”

     

    우연히 바닷가에서 만난 남녀, 그리고 이어진 내기!

    이야기에 꽤 흥미가 돋은 메리는 즐거운 표정으로 재잘거리기 시작한다.

     

    “우연? 그거 참 운명적인 만남이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내기는 누가 이겼어?”

    “내가 졌다.”

    “음, 루크는 낚시엔 별로 소질이 없었나보네.”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메리의 말에 루크는 속으로 말을 삼켰다.

     

    루크는 모든 자초지종을 설명하기엔 귀찮기도 하고, 티갈로돈을 닮은 고래상어 이야기를 해봤자 현재 이야기의 주제에서 벗어날 뿐이라 생각해 그런 것으로 넘어가기로 한다.

     

    “아무튼, 내가 내기에서 져서 시루드에게 한가지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로 했는데, 그만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지 뭐냐. 뭔가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지…….”

    “그럼 그냥 가서 미안하다고 하면 되는 거 아냐?”

     

    메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 했다.

    암만 생각해봐도 시루드가 루크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을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루크는 한숨을 쉬며 답했다.

     

    “하지만 시루드가 정말 단단히 화가 난 것 같단 말이다. 내가 불러도 전혀 아는 체도 안하고.”

     

    반에서 하는 수업이라면 옆자리이니 말이라도 붙여볼 기회가 생기지만, 점심시간 이후로는 음악실이나 체육, 마법실습 같이 반에서 벗어나 학습하는 활동시간이었다.

    때문에 시루드는 루크가 다가가면 그때마다 이리저리 장소를 옮기고, 말을 걸어도 무시하며, 거의 투명인간 취급을 하는 것이 아닌가.

     

    과거에도 이 정도로 자신을 거부하는 아이는 있었던 적이 없어서 루크는 곤란할 수 밖에 없었다.

     

    “시루드에게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할 지 도저히 모르겠구나.”

     

    이런 경우엔 어떻게 사과를 건네야 한단 말인가?

    사과란 받아주는 사람이 받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하지만 받는 사람이 저런 태도여서야, 억지로 사과를 건넨다 해도 절대 사과가 받아들여질 리가 없다.

     

    루크의 말을 들은 메리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고민이었구나.”

     

    어쩐지 아까부터 시루드한테서 그렇게 냉랭한 기운이 풀풀 풍기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시루드도 참 속이 좁네, 그런 걸로 그렇게까지 삐친거란 말이야?

    메리는 팔짱을 낀 채로 한동안 앓는 소리를 내며 고민을 하더니 돌연 탄성을 내질렀다.

    루크는 그런 메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뭔가 방법이 떠올랐느냐?”

     

    역시 아이라서 바로 방법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일까?

     

    메리는 해맑게 웃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땐 이렇게 해보는 게 어때?”

    “어떻게 말인가?”

    “이렇게!”

     

    메리는 두 손을 모으며 살짝 눈을 올려 뜨며 말했다.

     

    “사람들은 ‘올려다보는 시선’에 약하거든.”

    “올려다보는 시선……? 정말 그게 도움이 된다고?”

     

    사람들이 올려다보는 시선에 약하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루크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자, 메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나도 어디서 들은 건데, 정말 효과 좋아. 이렇게 손을 모으고 올려다보면서 사과를 하면 대부분은 그냥 받아주더라고!”

    “뭐? 그게 정말인가?”

     

    대체 그 동작에 무슨 마력이라도 담겨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고작 그런 것으로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지?

    루크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때문에 메리는 더욱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주었다.

     

    “정말이야, 내가 방학 때 할머니가 아끼던 꽃병을 깨트렸을 때도 통했어!”

    “흐음…….”

     

    하지만 메리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사실 일리는 있는 말이었다.

    올려다보는 시선이란 말은 일단 자신의 몸을 낮추었다는 뜻, 거기다 손을 앞으로 모으는 것은 꽤 진정성이 담기는 행동이다.

    때문에 기도를 할 때도 그렇게 손을 모으지 않던가?

     

    게다가, 메리는 자신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이 시대와 문화속에서 아이로 살아온 몸.

    메리의 입장에선 정말로 도움이 되는 이야기라서 자신에게 이야기한 것이겠지.

     

    루크가 그 ‘올려다보는 시선’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도 결국은 시대의 차이.

     

    하지만 문제는 아직 남아있다.

    시루드는 자신보다 키가 작은데, 어떻게 올려다보아야 한단 말인가?

    허리만 숙이는 것은 애 취급을 한다며 또 화를 내지 않을까 싶은데.

    시루드는 평소 엘프의 종족특성상 또래보다 성장이 늦어 작은 키가 불만인 것 처럼 보였으니까.

     

    잠시 고민한 루크는 간단한 해결책을 떠올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한번 해보도록 하지. 고맙구나, 메리. 사과가 잘 되면 너에게 꼭 보답하마.”

    “딱히 보답은 필요 없고……. 나중에 우리 집에서 같이 놀자! 이번 방학엔 연락이 안되어서 얼마나 아쉬웠는지 몰라.”

    “하하, 그건 미안하게 되었구나.”

     

    루크의 표정이 한결 풀어진 것을 확인한 메리는 문득 떠오른 궁금증에 입을 열었다.

     

    “근데 시루드는 내기에서 이긴 대가로 뭘 해달라고 했어?”

    “딱히, 말한 것은 없었다. 비밀이라고 하더구나.”

    “흐응, 그거 궁금해지네! 뭘 하려고 했을까.”

     

    메리는 흥미롭다는 듯 루크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럼 너는 내기로 시루드한테 뭘 하려고 했는데?”

     

    루크는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별건 아니었다. 그냥 볼에 뽀뽀라도 받는 게 어떨까 했는데, 싫어하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지.”

    “……잠깐, 너 방금 뭐라고 했어?”

     

    경악하는 메리.

     

    “너, 좋아하는 사람 없다면서! 시루드한텐 왜 그랬어?”

    “왜 그랬냐니……?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가……? 그냥 내기로 한 말인데. 아, 메리. 혹시 아직도 뽀뽀가 그런 의미라고 생각하는 거라면…….”

    “그, 그건 이제 나도 알아!”

     

    저번 수학여행 이후로 부모님한테 아기는 어떻게 생기냐고 물어봤으니, 이제 뽀뽀로 아기가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 정도는 이해를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뽀뽀는……!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한테 뽀뽀를 해달라고 하는 게 말이 돼?”

    “아니, 딱히 내가 시루드를 싫어 한다는 말을 한 적은 없지 않느냐? 내가 그 아이를 얼마나 아끼는데. 물론 메리, 네가 생각하는 그런 ‘좋아’하고는 다르겠지만.”

     

    루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묻는다.

    솔직히말해, 11살에 3서클에 도달한 제자가 어여쁘게 보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과거에도 그 정도로 마법사로서의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흔치 않았으니까.

    그런 아이를 가르치는 스승의 입장에서 시루드가 싫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하…….”

     

    메리는 이마를 짚었다.

    이제 시루드가 왜 화가 났는지 알 것 같았으니까.

     

    루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너무 모르는 것 같다.

     

    “내가 알려줄게, 지금 시루드가 너한테 왜 화가 났냐면…….”

    —–

     

    방과 후, 시루드는 메리의 부름에 학교의 뒷편으로 불려나왔다.

    뭔가 전해줄 게 있다고 하던데, 그럴 거면 그냥 반에서 전해주지, 왜 이런 곳에서 준다고 하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여자 기숙사하고 가까워서 그런가, 같은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으니, 한켠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시루드는 심드렁하게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시선을 던지며 투덜거리듯 말했다.

     

    “뭐야, 메리 왜 이런 곳에서 보자고 했…….”

     

    하지만 시루드의 눈에 보이는 것은 메리가 아니었다.

     

     

    루크 이루시.

     

     

    오늘 하루동안 의도적으로 피해다니고 있던 바로 그 여자애.

    이런 곳으로 자신을 불러낸 사람이 사실 루크라니?

    대체 무슨 일일까?

     

    루크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시루드를 향해 입을 열었다.

     

    “사과를 하고 싶어서 불러냈다.”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놀랐던 표정을 곧장 무표정으로 돌린다.

    그럼 그렇지, 자신이 어디 루크의 말과 행동에 한두번 속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시루드는 그렇게 루크를 지나쳐가려고 했다.

     

    “잠깐, 이야기를 좀 들어주거라.”

     

    루크는 시루드의 팔을 붙잡는다.

    시루드는 루크가 붙잡은 팔에서 느껴지는 악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 만으로 별로 자신을 붙잡고 싶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미련없이 툭 털어내며 말했다.

     

    “갑자기 왜 이래? 우리 이럴 정도로 안 친하잖아. ‘좋아하는 사람’따위는 아무도 없다며.”

     

    루크는 자신이 쳐낸 손을 살짝 놀랐다는 듯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한번 다가와 손목을 당겨 시루드의 몸을 돌렸다.

     

    “미안하다, 내가 네 기분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

    “무슨 기분?”

    “내가 배신을 한 것처럼 느껴졌겠지, 이해한다. 내가 먼저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으니. 하지만 그건 오해다.”

    “……오해라고?”

     

    -털썩.

    루크는 곧장 메리의 말대로 무릎을 꿇어 시선을 낮추곤 눈을 올려 뜨며 손을 모았다.

    갑작스런 루크의 행동에 크게 당황한 시루드는 장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지, 지금 뭐하는거야, 갑자기!”

     

    루크가 무릎을 꿇다니?

    말그대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광경이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다.

     

    게다가 이 장소는 인적이 드물긴 해도 사람이 아예 안 다니는 곳은 아니다.

    몇몇 사람들의 시선도 함께 느껴지는 것 같자, 부끄러워서 식은땀이 절로 난다.

    어쩐지 자신을 흉보는 것 같은 시선도 느껴지는 것 같다.

     

    하지만 루크는 그런 것에는 아랑곳 않고 그 상태로 말을 시작했다.

     

    “시루드, 내가 너를 싫어했던 것이 절대 아니야. 아니, 오히려 좋아하고 있어.”

     

    루크의 첫마디에 시루드는 어질어질하던 정신이 퍼뜩 차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뭐, 뭐라고……? 그게 무슨 뜻이야? 좋아하고 있다니?”

    “그래, 분명 형태는 다르지만 너를 좋아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야.”

     

    그럼 메리와 아침에 나누었던 말은 대체 뭐란 말인가?

    루크가 분명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고 하지 않았나?

    루크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분명 사실이라고 생각했는데……!

     

    루크는 그런 시루드의 시선을 바라보며 여전히 말을 이었다.

     

    “남자아이들 중에선 가장 좋아하는 것이 너야, 그만큼 내게 너는 특별한 아이다.”

    “…….”

     

    루크의 난데없는 고백에 시루드는 멍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시루드가 그렇게 입을 다물고 있자, 루크는 말을 더욱 이어나갔다.

     

    “그리고, 저번 바닷가에서 있었던 일도 사과를 하겠다. 난 네가 그 정도로 그 일을 생각하고 있는 줄은 몰랐어.”

    “…….”

    “그래서 말인데, 늦었지만 내기의 대가를 지불하고 싶다. 네가 원하는 소원을 말해보거라.”

     

    루크의 말에 시루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그럼……. 학교에나 자주 나와, 너가 없으면…… 그, 심심하니까…….”

     

    루크는 살짝 휘둥그레한 눈으로 시루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로 그거면 되나?”

    “그, 그래…….”

     

    시루드는 루크의 시선을 피하며 아주 작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루크는 일어나 무릎과 치맛단을 털어내고는 시루드에게 화해의 의미로 손을 내밀었다.

     

    “좋아, 사과를 받아줘서 고맙다, 시루드.”

    “응.”

     

    루크는 꽤 놀랐다.

    이게 정말로 통할 줄이야.

    이 세상을 살아가며 쓸만한 지혜를 얻었다.

     

    루크는 시루드의 손을 붙잡아 흔들며 말했다.

     

    “그럼, 이제 회원 가입하는 것 좀 도와주겠느냐?”

    “……그거 설마 아직도 안 됐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음…남이 보면 고백이라도 한줄;
    시루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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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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