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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0

     

    천룡의 침소 앞에서 나는 기슈타에게 필요한 재료에 대해 설명했다.

     

    “요정의 노래라는 결정이 있어. 중간계에 사는 요정족이 만들어 놓는 보석 같은 거야.”

     

    “보석? 비싼 거냐?”

     

    “값어치야 못 매기지. 벌들이 모아놓는 로열젤리라고 할까.”

     

    “흠, 부탁하면 얻어올 수 있나?”

     

    “요정들이야 평화로운 종족이라 찾아가면 그냥 줄 것 같기야 한데, 문제는 위치지. 워낙 희귀해서 어디서 찾을 지가…”

     

    “요정 말인가? 동쪽 빙판지대 너머 향기로운 초원에 살고 있다.”

     

    대장이 우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진짜? 역시 중간계네. 얼마나 걸려?”

     

    “너희들이 타고 온 그걸로는 한 달쯤 걸릴 터다.”

     

    “꽤 되네.”

     

    기슈타가 손가락을 튕겼다.

     

    “이봐, 용씨. 같이 날아가면 하루에도 가겠는데. 어떻게 생각해.”

     

    “날아간다고? 그야 얼마 안 걸리겠지만, 내가 도울 이유는…”

     

    “우리 약품 잔뜩 받아갔잖나! 형제 좋다는 게 뭐야. 자, 바로 다녀오자고.”

     

    기슈타가 넉살 좋게 대장의 목을 잡고 등 위에 올라탔다. 그가 고개를 이리저리 저었다.

     

    “웃기지 마라. 신성한 어머니의 마나를 인간을 태우는 데 낭비할 것 같나.”

     

    “어머니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야! 그리고 나만 태우면 돼. 라스, 너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어차피 고속 비행은 힘들잖나.”

     

    “아까 죽을뻔하긴 했지.”

     

    “하하! 맡겨둬라! 자, 출발, 출발이다!”

     

    기슈타가 기세 좋게 대장의 옆구리를 발로 두드렸다. 대장이 마지못해 날개를 펄럭이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진짜 바로 다녀온다고?

    기슈타의 행동력은 항상 감탄만 나온다.

     

    “몸조심해!”

     

    “오냐!”

     

    유사시를 위한 포션이 담긴 사이드백을 던져주었다. 기슈타가 가방을 허리에 두르자마자 대장이 쐐애액! 구름을 뚫고 순식간에 쏘아졌다.

     

    “흠.”

     

    기슈타가 다녀오는 데는 이틀에서 사흘 정도가 걸리겠지.

     

    그동안 나는 천룡을 진료하며 기다리기로 했다.

     

     

     

    ***

     

     

     

    ―으으음… 아주 좋군.

     

    천룡에게는 도수치료를 겸한 마사지를 해줬다. 등 위에 올라가서 여기저기 밟아주니 바닥에 엎드려서 만족한 듯 코를 고로롱댔다.

     

    “북부에서 오래 주무시면서 자세가 안 좋았어요. 여기 척추 휘어지신 부분 느껴지시나요. 디스크가 이탈할 수 있으니 스트레칭 자주 하시고요.”

     

    ―알겠다. 거기 좀 더 눌러주게.

     

    날개뼈를 힘주어 밟으니 천룡이 새로운 주제를 꺼냈다.

     

    ―라스 고트베르크. 그대는 운명을 믿는가?

     

    “운명 말입니까. 안 믿습니다.”

     

    ―확신을 가지고 있군.

     

    “예. 실제로 제 선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모습을 많이 봤거든요.”

     

    ―호오. 시간선을 인식한 인간은 흔치 않지.

     

    “천룡께서는 운명이 보이십니까?”

     

    ―본좌는 볼 수 없다. 다만 고대룡 중에서는 볼 수 있는 자도 있다. 시간을 창조한 용은 슈라운트, 관장하는 용은 토름이라는 이름이지.

     

    “친구십니까?”

     

    ―악연에 가깝다.

     

    천룡이 심드렁하게 콧김을 뿜어냈다.

     

    ―그대는 신비한 인간이다. 마치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시간선이 어느 방향인지 알고 행동하는 것 같다. 본좌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그랬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시간선의 방향을 정하기는 어렵지. 하물며 미약한 인간의 몸으로는. 거대한 대양에서 자그마한 키 하나만으로 대형선을 항해하는 행위와 같다.

     

    “실제로 어렵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 수많은 배드엔딩을 뚫기 위해 얼마나 생고생해야 했는지는 설명해봐야 입만 아프다.

     

    ―그 모양을 인식하고도 선택하지 못하는 인간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그대는 특별하다고 할 수 있겠군.

     

    “예? 저 말고도 시간을 보는 사람이 있다고요?”

     

    천룡은 더 대답하지 않았다. 하늘에서 살펴보는 일만이 전부이고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이제야 떠올렸나.

     

    그만큼 나와의 잡담이 즐거웠나 보다. 마사지가 기분 좋아서 방심했을 수도 있겠고.

     

    “그럼 한 가지 고민만 들어주시겠습니까.”

     

    ―무엇인가.

     

    “한 번 파혼한 상대와 다시 접점을 만들려면 어떤 핑계가 제일 좋을까요?”

     

    천룡이 심드렁하게 콧김을 뿜어냈다.

     

    ―그게 본좌가 알 주제라고 생각하는가?

     

    “저 많은 용족의 어머니시잖아요.”

     

    ―고대룡은 자가번식이 가능하다.

     

    “그건 몰랐군요.”

     

    듣자 하니 아셀라는 제도 내치에 집중하느라 일절 외부 활동은 하지 않는 모양인데.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서 슬슬 화가 풀리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래서 혹시 건수를 만들 수 있으면 얘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뭐, 아직 마왕군과의 전쟁은 시작도 안 했으니 시기가 이르다고도 생각한다.

    아셀라의 성격을 생각하면 괜히 내가 자극해서 리셰나 타냐에게 불똥이 튈지도 모를 일이다.

     

    전부 끝날 때까지 참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그대의 선택에 확신을 가져라.

     

    천룡이 그렇게 말했다.

     

    확신이라.

     

    조언이 아니라 응원이었지만 꽤 도움이 됐다.

     

     

     

    기슈타는 이틀 만에 요정의 땅에 다녀와서는 턱하니 결정을 내놓았다.

     

    “라스, 이게 맞냐? 부족하진 않겠지?”

     

    “포대 가득 가져왔네. 너무 많아. 요정들이 눈치 안 줬어?”

     

    “더 가져가라면서 들판에서 계속 긁어다가 줬다. 착한 친구들이더군.”

     

    괜히 평화로운 요정 마을에 민폐 끼친 게 아닌가 모르겠네.

     

    기슈타 덕분에 재료는 충분해졌다. 나는 바닥에 마나를 흘려보내 슥슥 진을 그리고 그 위에 안정제와 요정의 노래 결정을 올려놨다.

     

    “어디, 루시드 드림 포션 연성에 필요한 진은… 네 개? 거의 최상급 포션이구나.”

     

    연성으로 제작하는 포션은 난이도가 높을수록 어려운 위계의 주문을 필요로 한다.

     

    마법만큼 어려운 도형을 구축할 필요는 없지만 4위계면 상당한 난이도다. 활공 포션이 2위계가 필요했지. 엘릭서는 5위계 이상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주문 사용법은 시모어에게 배운 이후로 익숙해지기야 했지만.’

     

    5위계 치유주문은 쓸 수 있기야 하지만 계열이 다르다. 강화나 합성은 비교적 주문진이 단순하기도 하고.

     

    연성 4위계라. 조금 긴장됐다.

     

    “어디.”

     

    두 개의 진을 겹쳐 기본진 위에 쌓아 올린다. 흔들리지 않도록 모서리를 기준으로 고정한다.

     

    “오오, 언제 봐도 아름답군.”

     

    기슈타가 옆에서 눈을 반짝였다.

     

    마지막 네 번째 진. 이걸 정확한 각도로 관통시키며 그려야 해서 조금 어렵다.

     

    ‘아셀라는 눈 감고도 했었단 말이야.’

     

    그것도 어려운 전투 마법진을.

    말로 설명 못 할 대단한 실력자이긴 하다.

     

    아셀라가 마법을 쓰던 모습을 떠올리며 흉내 내듯 진을 떨어트리니 달칵! 꼭 맞는 자리에 들어가며 완성됐다.

     

    “좋아.”

     

    재료가 빛나며 연성이 완료된다. 물리법칙과 화학식을 뛰어넘은 연금술의 정수가 발현한다.

     

    시전이 완료된 후, 플라스크에서 바라만 봐도 기분 좋은 황금빛 액체가 찰랑였다.

     

     

    ―――――――――――

    · 루시드 드림 포션

    · 물약 / 초월급

    · 효과 : 기분 좋은 꿈의 세계에 다녀옵니다. 신수급 마물, 초월적인 존재에게도 효과가 있습니다.

    · 지속시간 : 10일

    ―――――――――――

     

     

    나는 포션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시면 열흘 동안 기분 좋은 꿈을 꾸는 포션입니다. 쉬고 계시면 그동안 감사히 역린을 받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좋다.

     

    천룡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커다란 손톱으로 플라스크를 조심스레 잡았다. 단숨에 입안에 털어 넣고는 침소로 올라가 몸을 웅크린다.

     

    ―역린은 여기에 있다. 가져가거라. 언젠가 또 만나지. 고트베르크, 기슈타.

     

    우리는 천룡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상태창으로 그녀가 숙면하는지 진단하려는데 메시지가 떠 있었다.

     

     

    ―――――――――――

    · 위대한 업적!

    · [하늘용군단의 동맹] 업적을 획득했습니다. 만물의 관장자들이 당신을 주목합니다.

     

    · 매우 희귀한 재료의 연성에 성공했습니다!

    · 대량의 경험치를 습득하였습니다.

    · 연금술의 랭크가 곧 A로 승급합니다.

     

    · 당신은 [엘릭서] 재료의 공통점을 깨달았습니다.

    ―――――――――――

     

     

    좋은 이야기뿐이었다.

    엘릭서 제조에 한 발 다가갔다는 것도 반가운 이야기였다.

     

    우선 역린을 채취하는 게 중요했기에 내용 파악은 뒤로 미뤄뒀다.

     

    편안한 얼굴로 눈을 감으며 얼굴을 내민 천룡.

    그 턱밑에 다른 껍질을 제치고 영롱하게 빛나는 비늘 하나가 톡 튀어나왔다.

    내가 쉽게 가져갈 수 있게 천룡이 배려해준 모양새였다.

     

    사이즈로 보아 메스로는 택도 없게 생겼다.

     

    “기슈타, 도끼 좀 빌려줘.”

     

    나는 빌린 도끼로 조심히 외곽부터 긁어내 채취를 완료했다.

     

    내 손바닥보다 조금 큰 반짝이는 비늘. 고대룡의 역린을 손에 넣은 순간이었다.

     

    “좋아.”

     

    천룡의 상처에 마무리 처방을 한 후, 나는 침소를 나섰다.

     

     

    이로서 엘릭서의 재료 두 가지가 모였다.

     

    ‘세계수의 가지와 고대룡의 역린.’

     

    두 재료에는 알기 쉬운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장생을 뛰어넘어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사는 초월적인 존재의 일부분이라는 점이야.’

     

    남은 마지막 재료도 마찬가지로, 영생하는 초월자의 신체일 확률이 높다.

     

    여신은 아니겠지. 다른 재료를 보면 어디까지나 실존하는 존재의 것일 테고, 여신은 진짜 신이 아니라 이 상태창 같은 시스템이나 다름없으니까.

     

    엘릭서가 이미 만들어진 적이 있다는 걸 감안하면, 그렇게까지 접근하기 어려운 존재도 아닐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포션을 만들 땐 베이스가 될 액체가 필요해.’

     

     

    [· 엘릭서 = ??? + 고대룡의 역린 + 세계수의 가지]

     

    다른 연성식을 보면 베이스 액체는 가장 앞에 표시되곤 한다. 루시드 드림 포션도 안정제가 맨 앞에 왔다.

     

    즉, 첫 번째 재료는 액체.

     

    “피… 이려나.”

     

    그때 연성식이 변화했다.

     

     

    [· 엘릭서 = ???의 피 + 고대룡의 역린 + 세계수의 가지]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이제 연금술을 더 연마하거나, 직접 그 존재와 만나면 확실해지겠지.

     

    “용건은 마쳤어. 돌아가자, 기슈타.”

     

    “모험은 끝이냐? 그동안 즐거웠는데 아쉽게 됐군.”

     

    “뭘, 집에 돌아갈 때까지가 모험 아니겠어.”

     

    “오, 그렇겐 생각 못 해봤어. 맞는 말이야!”

     

    잠깐 실망한 기색을 보였던 기슈타가 금방 화색을 되찾고는 신이 나서 가슴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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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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