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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0

       카드순의 내부 구조는 돔구장과 비슷했다.

       수십만 채의 건물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둥글게 서서 원을 그렸다.

         

       건물들의 배치 역시 돔구장의 관중석과 닮은 점이 많았다.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층이 높아지는 계단식의 구조였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어느 건물의 옥상인 동시에 그보다 높은 층에 있는 건물의 앞마당에 해당했다.

         

       밖에서 봤을 때는 막연하게 크다고만 생각했는데, 안에서 보니 이것이 건축물로서 성립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경이적인 규모였다.

         

       비율로 따지자면, 그들은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타디움의 객석 어딘가에 있는 개미 3마리라 할 수 있었다.

         

       엘라는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둘러봤다.

         

       건물들의 양식과 크기는 통일성 없이 제각각일 뿐만 아니라, 그 배치도 어수선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의 건물이 나란히 있는가 하면, 큰 건물들 사이에 작은 건물이 있는 끼어있기도 했다.

         

       그러나 나름대로 규칙은 있었다. 바로 옆에 붙은 건물들끼리는 입구의 높이가 얼추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건물들은 나란히 줄을 서서 카드순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그러한 기차놀이는 1층에서부터 수천 미터 높이의 꼭대기 층까지 끊기는 곳 없이 나선을 그리며 쭉 이어졌다.

         

       엘라는 건물들이 각각 극장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근처만 둘러봐도 입구마다 어떤 공연이 진행되는지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그 앞에서는 페르소나들이 나와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22인의 물고 물리는 릴레이 곡예! 단, 일주일만 진행됩니다! 이제 남은 자리 얼마 없어요!”

       “30년 연속 한 극장을 지키고 있는 전설의 연극! ‘모라놈의 기사들’이 30분 뒤 시작합니다!”

       “델라 패거리와 벤데스 패거리의 난투극! 마귀 여러분 환영! 토마토 투척 가능!”

         

       어딜 봐도 공연, 공연, 또 공연이었다.

       그녀는 도저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과연 ‘천국’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곳이었다.

         

       허수아비가 느낀 감동 역시 그녀와 다르지 않았다.

       

       루즈나 예테린푸르크도 게임에 등장한 ‘성지’이기는 했지만, 그곳들은 어디까지나 현실에도 있을 법한 공간이었다. 게임에 대한 팬심을 떼놓고 보자면, 유명한 외국인 관광지에 간 것과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

         

       그에 비해 이곳은 진짜 판타지의 영역이었다.

         

       거기다 게임에서는 이 정도로 공간이 상세하게 구현되어 있지 않았다.

       지금 지켜보는 광경이 배경으로 나오긴 했지만, 전쟁 때문에 건물이 무너지고 길이 끊겼다는 핑계로 플레이어가 돌아다닐 수 있는 지역은 여기저기 나누어져 있었고, 그 크기도 제한적이었다.

         

       루미는 두 사람만큼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흥취에 젖어 있었다. 오랜만에 그녀는 유년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 정경을 즐겼다.

         

       그렇게 각자만의 방식으로 조용히 풍경을 감상하던 세 사람.

       그 침묵을 깨트린 것은 엘라였다.

         

       “그런데 세상에 이렇게 곡예사들이 많았나?”

         

       그녀는 10km 이상 떨어진 건너편 건물에서부터 시작해 아래위로 수백 층의 건물들을 둘러봤다.

         

       극장은 어림잡아 수십만 개는 되어 보였다. 단순 계산으로 안에 10명씩만 들어가 있어도 수백만 명이었다.

         

       그런데 카드순의 건물들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 아래에 지반이 되는 건물들이 있었다. 외곽에서 이곳까지 골목을 올라오면서 그들은 그런 ‘중층’과 ‘하층’을 봤었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즉, 모두 따져봤을 때, 최소 수천만 명의 사람이 이곳에 거주 중인 것이다.

         

       컬럼비아 대륙에서 현대적인 서커스의 개념이 등장한 것은 몇십 년 되지 않은 일이었다.

       그전에도 광대, 재주꾼, 악사, 무희 따위가 있었다지만, 지금까지 존재했던 그들 전부를 합친다고 해도 이 정도로 많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의 물음에 허수아비는 밀짚모자의 챙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가 키르쿠스의 신도인 것은 아닙니다. 곡예사가 죽은 가족들을 불러들이기도 하고, 어비스를 표류하던 영혼이 어쩌다 보니 흘러들어 오기도 하죠. 그리고 요정이나 마귀 중에서는 마신의 영역에 기거하는 자들도 있고요.”

         

       그의 설명을 루미가 이어서 받았다.

         

       “거기다 우리가 사는 곳과 다른 세계도 있고.”

       “다른 세계?”

         

       엘라가 반문했다.

       허수아비 역시 그에 대한 건 처음 들었던지라 그녀를 바라봤다.

         

       루미는 두 사람에게 이 세계의 구조를 설명했다.

       물론 동냥 그릇의 비유가 아닌 고상한 꽃의 비유를 들어서 말이다.

         

       그녀의 설명을 들은 엘라는 예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읽었던 것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그러니까 세상은 커다란 나무고,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그 위에 핀 수백 송이의 꽃 중 하나라는 거지? 마신의 영역은 나무에 달린 벌의 둥지라고 할 수 있고.”

       “그래. 벌들은 나무에 달린 꽃들을 돌아다니지. 마신은 여러 세계에 걸쳐서 존재해.”

       “그럼 모든 세계에 있는 곡예사들이 다 이곳으로 몰려드는 거야?”

         

       ‘모든 세계’라는 말에 허수아비의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지구의 곡예사도 이곳에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루미는 고개를 저어 그의 기대를 부정해주었다.

         

       “모든 곳은 아니야. 그곳에 ‘키르쿠스 신앙’이 존재하고, 그 사람들이 키르쿠스의 신도여야지.”

         

       엘라는 탄성을 삼키며 혀를 내둘렀다.

       다른 세상의 곡예사들이라니.

       그들은 과연 어떤 재주를 지니고 있을까.

         

       그녀는 손발이 근질거렸다.

       당장이라도 근처 극장에 뛰어 들어가서 아무 공연이나 붙잡고 구경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형 집행 예정 시각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다.

         

       “중앙 광장은 저기야?”

         

       엘라는 직선상으로 수 km 떨어진, 카드순 정중앙의 공터를 가리켰다. 테트로미노 광장만큼이나 큰 곳인데도 이렇게나 멀리서 보니 동전만 하게 보였다.

         

       “네. 맞습니다.”

       “하아, 가는 데만 몇 시간 걸리겠는걸?”

         

       그녀의 말에 허수아비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럴 필요 없습니다. 티케터를 부르면 돼요.”

       “티케터?”

       “바운서와 마찬가지로 카드순에 소속된 정령입니다. 공연의 예약을 담당하고 있죠.”

         

       루미가 허공에다 대고 “예매 좀 하고 싶은데요!”라고 외쳤다.

         

       그러자 빛이 번쩍하더니 공중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셔츠에 멜빵 반바지를 입은 중년의 깡마른 남성이었다. 그의 몸은 아까 본 바운서처럼 피부가 반투명한 영체로 이루어져 있었다.

         

       “반갑습니다! 고객님!”

         

       그는 신경질적으로 생긴 외모와 달리 살가운 목소리로 그들을 반겼다.

         

       “기록에 없는 신원이군요! 처음이거나 오랜만에 오신 모양이죠? 그렇다면 알고리즘 대신 직접 추천 들어갑니다. 무엇을 보러 오셨죠? 금주의 새로운 공연? 이번 주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무료 공연? 태그 설정도 하실 수 있습니다! 1인극! 19금! 노래 없음! 요정 배우! 무료 음료 제공! 노 페어리 존! 아, 손님도 페어리군요. 실례했습니다. 그럼 계속하자면, 3시간 이상! 코미디! 소극장! 길들이기!”

         

       엘라는 자신이 좋아하는 단어가 나오자 자기도 모르게 말을 받았다.

         

       “길들이기?”

         

       티케터는 손가락을 딱 튕기며 그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길들이기! 좋습니다! 여기에도 몇 가지 분류가 있습니다. 환수, 마귀, 페르소나, 고향 생물, 외계 생물, 그리고. 아, 방금 새로운 프로모션이 하나 등록되었습니다. ‘자카누바 불놀이’. 어른 둘이면 동반 아이 하나는 무료라는군요! 손님들에게 딱 아닌가요?”

         

       티케터는 잔뜩 흥분해서 외쳤다. 이 모든 말을 쏟아내기까지 시간이 채 3초도 걸리지 않았다.

         

       엘라는 그가 내뿜는 외판원 같은 분위기에 휘말려 순간적으로 ‘어떤 공연을 볼까?’ 고민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오즈는 침착한 태도로 원하는 바를 말했다.

         

       “중앙 광장에서 침입자들의 형이 집행된다고 하던데, 그걸 구경하고 싶습니다.”

       “아, 그것 말씀이군요! 확인되었습니다! 중앙 사법 극장에서 진행되고, 공연 예정 시각은 3시간 뒤군요. 티켓 발부하겠습니다. 입장료는 1인당 50RP입니다! 손님 운이 좋으시네요. 공연 직전에 대량으로 표가 취소되어서 가격이 싸졌어요!”

         

       허수아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저렴했다. 게임에 나온 극장들의 입장료는 최소 100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들에게는 아직 한 푼의 RP도 없다는 것이었다.

         

       “여러분은 보자……완전 빈털터리네요? RP를 벌어야겠군요! 그럼 근처에 있는 무료 공연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티케터가 그들에게 손짓하더니 어디론가 걷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그의 뒤를 따랐다.

         

       엘라는 자신이 제대로 피부를 가렸는지 다시 한번 복장을 점검하고는 티케터에게 들리지 않도록 오즈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RP라는 건 또 뭐야? 공연은 또 갑자기 왜 보러 가는 건데?”

         

       그녀의 질문에 허수아비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공연에 대한 거라면, 밖에서는 그가 묻고 그녀가 가르쳐주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자신이 대답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신선한 경험이었다.

         

       “원더랜드의 재주꾼들은 재화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대신 관객의 호응과 평가를 원하죠. 그것이 곧 화폐인 셈입니다. 공연을 보는 동안 얼마나 호응을 잘 해줬느냐에 따라 또는, 공연을 보고 난 뒤 방문록을 얼마나 성의있게 작성했느냐에 따라 RP(Reaction Point)가 지급됩니다.”

       “오호, 그럼 우리는 지금 관객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거네.”

         

       이해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엘라는 뭔가 이상한 것을 느끼고 두 사람을 바라봤다.

         

       “잠깐, 그런데 당신들은 왜 한 푼도 없는 건데? 여행사를 꾸릴 정도면 꽤 오래 살았을 거 아냐?”

         

       핵심을 찔러 들어오는 그녀의 질문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

       뭐라고 대답하지?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다가, 두 사람은 동시에 뭔가 떠올랐다는 듯 소리쳤다.

         

       “RP가 다 떨어져서 일을 시작한 거거든! 돈이 있으면 우리는 놀기만 해서 말이지!”

       “도박을 좋아해서 말이죠! 얼마 전에 카지노에 갔다가 몽땅 날렸답니다!”

         

       둘은 대답을 던지고는 서로를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게 뭐야! 우리가 도박 중독자야?’

       ‘루미 씨야말로! 우리가 백수건달입니까?’

         

       그나마 다행(?)이라면 둘의 말이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쯧.”

         

       엘라는 두 사람을 보며 혀를 찼다.

       방금까지만 해도 둘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하던 그녀의 눈동자에는 경멸의 빛이 나타났다.

         

       그녀 같은 일 중독자에 서커스 마니아가 보기에는 이렇게 활기차고 열정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빈둥거리면서 도박이나 하고 논다는 그들이 그렇게 한심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얼마 걷지 않아 작은 극장들이 모여 있는 거리에 도착했다.

       티케터는 그곳을 가리키며 그들을 돌아봤다.

         

       “이 근처에 무료 공연이 몇 개 있는데, 혹시 바라시는 조건이 있나요?”

       “음, 짧고 가벼운 걸로?”

         

       세 사람에게 던진 질문이었으나, 엘라는 두 사람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바로 답했다.

         

       오즈와 루미는 서로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꼼짝없이 한심한 인간들로 낙인찍힌 듯했다.

       

       그녀의 요청에 티케터는 반투명한 영체를 번쩍거리더니 바로 답을 내놓았다.

         

       “1시간 이하, 가볍고 밝은 스토리, 아, 다행히 하나 있군요.”

         

       그는 그들을 근처에 있는 한 극장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는 인형극이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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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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