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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0

        

       악몽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기괴하기 짝이 없는 모습.

       진성은 그 모습을 보며 추억에 잠겼다.

         

       ‘오랜만에 보는구나.’

         

       과거 진성이 자주 보아왔던 아나스타시아의 기술.

       꿈에서 얻거나 알게 된 무언가를 현실의 생물에게 덮어씌우는 그녀만의 능력이었다.

         

       생물을 변질시켜서 부리는 위치크래프트와 온갖 기괴하고 종잡을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한 꿈의 세계를 탐험하는 아나스타시아의 능력은 더없이 궁합이 잘 맞았으며, 외형으로는 짐작할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자그마한 테디베어 인형이 살아 움직이는 무전기나 안테나 역할을 하기도 하고, 확성기를 온몸에 달고 다니는 10m가 넘는 괴물이 꿈에서도 나올 것 같은 중독성 있는 음악(kitsch music)을 틀어놓아서 적의 전의를 떨구기도 했다.

       3m가 넘는 거대한 귀여운 토끼를 만들어놓고 불을 뿜게 만든다거나, 콘크리트로 만든 벽과 똑같은 모습의 고깃덩어리를 소환해서 위장하기도 했다.

         

       대신 이런 기괴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만큼 마녀들의 또 하나의 가족이자 부하인 사역마(Familiar spirit)를 만들지는 못했다.

         

       이는 아나스타시아의 마음이 뒤틀려 있기 때문이었다.

         

       보통 마녀들은 위치크래프트와 실험을 반복하다가 나온 ‘걸작’들과 정신을 연결하고, 피라미드형 권력구조를 만들어서 하인이나 부하처럼 부렸다.

         

       이렇게 마녀와 정신이 연결된 ‘걸작’을 ‘사역마(Familiar spirit)’라고 불렀다.

       

       당연하게도 이렇게 만들어진 사역마는 마녀에게 어마어마한 도움이 된다.

       실험을 돕는 것에서부터 전투에서까지 다방면으로 사용되며, 여왕개미가 병정개미와 일개미를 부리듯 움직여 터전을 가꿀 수도 있고, 요새나 다름없는 거주지를 만들 수도 있다.

       게다가 철저한 피라미드형 권력관계였기에 사역마는 주인인 마녀에게 절대복종하였으며, 마녀가 위기에 빠지면 자신의 영혼마저 불태워서 몸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사역마가 죽으면 정신이 연결된 마녀에게도 어느 정도 타격이 가기 때문에 그런 희생은 어지간하면 일어나지 않았고, 정말 사역마의 희생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에서만 그러한 일이 일어났다.

         

       이러한 사역마의 헌신 때문일까?

       사역마는 마녀에게는 부하이자 집사이며, 메이드이자 친구이며, 반려동물이자 평생 함께할 영혼의 동반자 같은 존재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아나스타시아는 이러한 소중한 존재를 만들지 못했다.

         

       오랜 시간 동안 엘라의 몸에 갇혀서 제대로 된 육체도 가지지 않은 채 꿈의 세계를 방황했던, 꿈의 세계의 주민이나 다름없었던 아나스타시아의 정신은 일반적인 마녀와 다르게 변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위치크래프트와 만나면서 더더욱 깊게 연결되어버린 꿈의 세계, 집단 무의식의 표면이 가지고 있는 특징 역시 아나스타시아가 사역마를 가지지 못하게 방해했다.

         

       집단 무의식.

       정신의 깊은 곳에 존재하는 인간의 특성.

         

       그 장소는 오직 인간만이 범접할 수 있으며, 영혼과 육체와 정신 중 단 하나라도 부족한 이는 아예 그 주위조차 얼씬거릴 수 없다.

         

       모든 조건을 갖춘 인간만을 수용하는 이 끔찍한 배타성은 아나스타시아에게도 스며들었고, 아나스타시아의 비틀린 정신에 배타성을 더해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온 결과는 사역마의 파괴.

         

       아나스타시아와 정신이 연결된 사역마는 미쳐버리거나 그대로 백치가 되어버리며, 육체의 비중이 낮은 사역마의 경우 산산조각이 나거나 그대로 증발해버리기까지 한다.

         

       “먹이를 먹는 것도 귀엽네요. 역시 저는 대단해요.”

         

       그렇기에 아나스타시아가 다루는 저 악몽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괴물은 사역마가 아니었다.

         

       그녀의 명령을 아무리 잘 듣고, 그녀의 마음을 읽는 것처럼 그녀가 원하는 행동을 이루어주며, 오직 그녀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한들 사역마와는 결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담비가 용병 생활할 당시 그녀가 만든 존재를 지칭하는 말은 크립티드(Cryptid).

         

       미지의 생명체이자 신비로운 생물이며, 괴물인 것 같은데 괴물이 아닌 것 같은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존재라는 뜻의 크립티드(Cryptid)였다.

         

       “꽤 온순하군요.”

       “네! 밥을 먹으면 다 기분이 좋으니까요?”

       “그렇다면 밥을 굶기면 기분이 나빠지겠군요?”

       “그렇죠?”

         

       진성은 에둘러서 그녀에게 경고했다.

         

       저것을 잘 관리하라고.

         

       그러자 아나스타시아는 그가 무엇을 경고하는지 알겠다는 듯 배시시 웃었고, 안심하라는 듯 알 수 없는 무언가에게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 그러자 그것은 어린아이가 대충 낙서로 휘갈긴 선이 걸어오는 것처럼 삐뚤삐뚤 움직여 그녀의 앞까지 도달했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곤 그녀의 뜻에 따라 검은색 잉크로 바닥을 물들이는 것처럼 짙은 검은색의 웅덩이를 만들고 그 안에서 천천히 잠겼다.

         

       그리고 그렇게 잠기는 이름 없는 무언가는 완전히 모습이 사라지기 전 검은색 그물 뭉치 같은 것을 휙 집어던졌다.

         

       카피바라 4마리가 들어있는 그물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꼬박꼬박 밥도 잘 주고 있고, 혹시 못 견딜 정도로 배가 고프면 여기 와서 카피바라를 먹으라고 명령도 내려뒀답니다. 그리고 평소에는….”

         

       아나스타시아는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이 아래에 머무르게 했어요. 그리고 사람이 보여도 모습을 숨긴 채 나오지 말라고 명령도 했고요.”

         

       잘했죠?

         

       아나스타시아는 칭찬해달라는 것처럼 뿌듯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진성은 아나스타시아의 소망처럼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잘하셨습니다. 본디 생물이라는 것은 아무리 잘 길들였다고 한들 아차 하는 순간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이지요. 그것을 위해서는 철저한 관리를 해야 하는 법입니다.”

       “후후.”

         

       아나스타시아는 진성의 말에 뭐가 그리 기쁜지 웃었다.

       소매를 이용해 자기 입을 살짝 가렸고, 눈을 살짝 반개하며 호선을 그렸다.

         

       “역시 은인이세요.”

         

       본 것만으로 아시는군요?

         

       진성은 그녀의 미소에 답장이라도 하듯 옅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리고는 바닥에 놓인 그물을 들고 그녀와 함께 지하를 나섰다.

         

       끼이익.

         

       그렇게 지하를 나온 진성과 아나스타시아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진성은 카피바라를 손질하기 위해 부엌으로 이동했고, 아나스타시아는 ‘저는 언니고 엘라는 동생이에요. 동생은 항상 언니의 미식에 동참해야 하는 의무가 있답니다.’라는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계단을 올라갔다.

         

       당연하게도 아나스타시아가 계단을 올라간 지 얼마 안 되어 위에는 소란이 일어났다.

         

       “언니 경찰이다! 문 열어!”

       “꺅?! 뭐, 뭐야! 뭐예요?!”

         

       쾅쾅쾅! 쾅쾅쾅!

       쾅쾅!

         

       몸통 박치기라도 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소리를 듣고 놀라서 깨는 엘라의 비명이 들렸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당연하게도 막 잠이 들었다가 깨어난 엘라의 분노 섞인 외침이 들렸고, 그 외침에 대응하는 아나스타시아의 ‘나는 언니고 너는 동생이니까 나를 따라와야 한다.’라는 무적의 논리가 들렸다.

         

       그렇다면 식당은 평온했는가?

         

       그렇지 않았다.

         

       “여, 오라비. 왜 이렇게 늦게 와. 지금 이 토끼 같은 여동생들에게 먹을 거 만들어주는 거 귀찮다고 지금 꾀부리는 거야? 응? 아니지?”

       “…양아치 이아린.”

       “아니야. 이건 정당한 요구야. 나중에 카피바라 구워주겠다고 말해놓고 약속 안 지킨 오라비가 잘못한 거니까, 내 요구는 지금 완벽하게 정당한 거라고. 멍청한 이세린같으니.”

       “뭐? 지금 나, 멍청한 이아린한테 멍청하다고 들은 거야…?”

         

       그의 동생들이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진성은 그 둘을 뒤로한 채 그물을 들고 주방으로 들어갔고,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된 주방의 가운데에 그물을 놓았다. 그리고는 경험으로 다져진 솜씨로 카피바라를 잠에 빠져들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내주었고, 삼매진화를 피워 순식간에 가죽과 털을 태워버렸다.

         

       그리곤 익숙한 솜씨로 도축하고 주방 곳곳에 있는 향신료를 가져와 카피바라를 굽기 시작했다.

       그는 화덕을 쓰는 대신 카피바라를 허공에 띄워놓고 삼매진화로 불태우는 방법을 택했다.

         

       카피바라의 바로 아랫부분에 삼매진화로 만든 판 모양의 불꽃을 만들어 고기를 익힘과 동시에 기름이 그냥 타버릴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혹여 스프링클러가 오작동해서 물벼락을 맞을까 스프링클러의 표면을 얼려서 제대로 작동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순식간에 네 개의 카피바라 고기가 완성되었을 때.

         

       끼이익.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요? 오밤중에 갑자기 고기라니. 밤에 먹는 음식은 레이디의 관리에 아주 좋지 않아요. 살로 바로 간다고요.”

       “우매한 동생 같으니! 맛있게 먹으면 칼로리가 없어요. 동생의 몸에 살이 뒤룩뒤룩 붙는 이유는 깨작깨작 먹기 때문이에요.”

       “뭐, 뭐라고요? 뒤룩뒤룩? 레이디가 되어서 어쩜 그리 천박한 말을…! 스승님께 부탁드려서 교육해달라고 다시 청해야겠어요!”

       “…동생? 이 언니가 실수한 것 같아요. 제 사과, 받아주시겠어요? 레이디라면 받아주겠죠?”

       “싫어요.”

         

       또 다른 자매가 식당에 발을 디뎠다.

       아나스타시아는 언제나처럼 천진난만한 듯, 하지만 사람의 속을 긁어놓는 말로 동생을 놀려댔으며, 그녀의 억지에 이끌려서 식당에 발을 디디게 된 동생은 졸린 눈을 연신 비비며 한숨을 푹푹 쉬고 있었다.

         

       엘라는 축 늘어진 몸임에도 비척거리며 아나스타시아를 따라오는 것이 반쯤은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듯 보였고, 그 모습만 보더라도 아나스타시아가 얼마나 엘라를 데리고 다녔고 얼마나 놀렸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엘라는 그렇게 비척비척 움직여 이세린과 이아린의 앞쪽에 앉았고, 졸음을 쫓기 위해서인지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게 되었고, 그 덕분에 진성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요리가 담긴 접시를 허공에 띄운 채 자신에게 다가오는 진성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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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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