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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0

       그러니까…… 그나마 멀쩡한 곳이 도서 위원회라는 거지?

        

       독서동아리 같은 곳인가? 아니, 도서관 관리를 맡고 있다는 것을 보면 단순히 책만 읽는 곳은 아닐 것 같다. 아마 사서 일 같은 것도 하겠지.

        

       하지만 그래도 존재감이 희박한 곳이라는 인상은 여전했다. 솔직히, 나는 고등학교 다니는 내내 한 번도 도서실을 이용해본 적이 없으니까. 소설 같은 것은 자주 읽었지만 그걸 굳이 도서실에서 빌려 읽지는 않았었다. 보통은 내가 사서 읽었지.

        

       사실 도서실뿐만이 아니라 학생회 자체가 별로 대단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 선도위원이라는 것도 말로만 들어봤고, 만화에서나 봤지 진짜로 학생들 지적하고 다니는 위원은 여기 와서 처음 봤으니까.

        

       보통은 선생들이 직접 잡고 다니지 않나? 하긴, 여기 선생들은 대부분 일하기 싫은 게 대놓고 티 나는 열정 따위 눈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는 놈들 뿐이었지.

        

       돈 많은 학교답게도, 도서실 건물은 따로 있었다. 심지어 컸다. 시립 도서관 같은 수준으로 크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동 단위로 운영하는 도서실보다는 확실하게 커 보였다.

        

       뭐, 이렇게 커도 쓰는 사람은 별로 없는 모양이지만.

        

       도서실을 드나드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아예 없는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빈말로도 ‘많다’고는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 학교 학생들은 방과 후가 되면 모두 집으로 돌아가니까. 남는 건 동아리 활동이 제대로 된 경력으로 인정받는 운동부원들이나 음악계 동아리뿐이다. 그나마도 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고.

        

       “그런데, 도서 위원회 위원장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

        

       “으음…….”

        

       내 질문을 받은 손아름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이미지가 강렬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회의에 나와도 보통 그냥 조용히 앉아있을 뿐이었고. 아, 선도위원장이 출석하지 않아서 내가 대신 나가본 적이 한 번 있어.”

        

       그 한 번으로 위원장들 이미지를 머리에 새겼다는 건, 나름대로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임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위원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출석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었다면 손아름도 그냥 대충 빠져버렸어도 별문제 없지 않았을까? 정말 매사에 성실하다니까.

        

       ……아니, 그러면 도서 위원장은 나름대로 그런 곳에 나올 만큼 성실한 사람이라는 걸까?

        

       내가 가지고 있는 도서부, 혹은 독서부의 이미지가 대부분 어린 시절에 봤던 만화나 라이트노벨 속 이미지뿐이라서 현실의 도서 위원장이 어떨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원작이 미연시였다는 걸 생각하면, 이쪽 도서 위원장도 대충 그런 이미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만.

        

       “좋아.”

        

       어차피 여기서 더 시간을 끌어봐야 유의미한 정보가 나올 것 같지는 않으니, 나는 그대로 도서실에 들어가기로 했다.

        

       “잠깐.”

        

       그리고, 바로 선도위원장에게 제지당했다.

        

       “도서실에선 정숙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어.”

        

       “나도 떠들 생각은 없어.”

        

       “……그리고, 과한 애정행각은 금지라는 규칙도.”

        

       손아름이 그렇게 말하면서 사방에서 나에게 매달려있는 삼인방을 보았다.

        

       “…….”

        

       세 사람 다, 그냥 무의식적으로 매달려있었던 모양이다.

        

       각자 조금 어색한 표정을 보이더니, 이내 나에게서 떨어졌다.

        

       양팔과 등에 바람이 불어와 순식간에 시원해졌다.

        

       ……아, 등은 땀으로 젖었을지도 모르겠네.

        

       무더운 날씨다. 목에 머리카락이 찐득하게 들러붙어 있는 것을 생각하면, 분명 이쪽도 땀에 젖기는 마찬가지겠지.

        

       그런 상황에서도 조금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뭐, 나도 이미 이쪽으로 넘어갈 대로 넘어간 모양이다.

        

       이건 뭐 군체도 아니고.

        

       변태.

        

       사라가 대놓고 언짢은 목소리로 나에게 일갈했다.

        

       그 말을 부정할만한 근거를 찾지 못하겠다.

        

       아니, 부정하라고.

        

       *

        

       넓은 도서관에 사람이 없으니 발소리가 또각또각 울려 퍼졌다.

        

       이 넓은 공간에서 사람들이 앉아서 책을 읽을 공간이 반이고, 나머지 절반은 장서가 꽂혀있는 곳이었는데……

        

       책상 대부분은 비어있고, 책장 사이에도 사람은 별로 없었다. 심지어 책 읽고 가져다 두라고 배치해둔 카트도 채 절반이 차지 않았다. 발소리가 울릴 만 했다.

        

       하지만 그래도, 도서 위원은 제대로 있었다.

        

       뭐, 진짜 도서 위원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고, 일단 사서 자리에 앉아있으니 그렇게 추측만 해볼 뿐이었지만.

        

       거기는 엄청나게 소심해 보이는 애가 하나 앉아있었다.

        

       아니, 음침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인상 자체는 엄청 얌전해 보이고, 피부도 거의 햇빛을 보지 못한 것처럼 희었다.

        

       우리가 들어온 것도 눈치채지 못한 듯 사서 자리에 앉아 제목 모를 두꺼운 책을 읽고 있는 그 애는, 앞머리가 눈썹 아래까지 내려와서, 와, 저 상태로 책을 읽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는 걸까, 하고 조금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다른 머리카락도 축 처져있었고.

        

       파티 때는 머리끝이 살짝 휘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딱히 그런 형태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그때는 머리카락을 묶었다가 풀었던 게 맞았던 모양이다.

        

       ……그래. 얘는 내가 본 적 있는 애였다. 파티에도 나왔던 애.

        

       그냥 파티에 나오기만 했으면 이렇게 얼굴을 기억하지는 못했을 거다. 파티 끝난 뒤에 나에게 ‘동생들 먹이고 싶으니 음식을 따로 챙겨가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나는 얘 얼굴도 몰랐을 테니까.

        

       도서 위원장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한 번이라도 얼굴을 본 애가 앉아있어서 조금 반가웠다. 내 쪽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마음도 조금 놓였고.

        

       그래서 나는 조금 자신감 있는 걸음으로 그 아이가 앉아있는 쪽으로 다가가다가, 문득 깨닫고 말았다.

        

       이 사람, 이름표가 갈색이다.

        

       이 학교는 이름표의 색으로 학년을 구별할 수 있다. 금색을 표현한 듯한 노란색, 은색을 표현한 듯한 흰색, 그리고 아마도 구리색을 표현한 것 같은 밝은 갈색. 노란색 이름표를 받은 학생들이 졸업하는 해에 들어오는 애들은 노란색 이름표를 받아 다시 졸업할 때까지 쓰는 규칙이 있어, 우리는 언제나 다른 학년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름표는 보통 금, 은, 동의 순서로 받게 되므로, 내 한 학년 위는 동색을 표현한 밝은 갈색 이름표다.

        

       ……그날 존댓말을 한 게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여기서 엄청나게 뻘쭘해질 뻔했으니까.

        

       그 사람 앞에 선 나는, 숨을 살짝 들이쉰 뒤 말했다.

        

       “저기…….”

        

       “…….”

        

       상대는 무응답.

        

       그저 자기가 읽고 있는 책에 푹 빠져있었다. 그렇게 재미있을까? 여기서 대충 보이는 내용만 보면 더럽게 재미없어 보이는 과학 계열 서적인 것 같은데.

        

       “저기, 선배……?”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불러봐도, 상대는 무응답이었다.

        

       일부러 무시하는 것 같지는 않다. 고개를 숙여서 앞으로 축 내려온 머리카락 사이로 눈동자가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였으니까. 그야말로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 모습.

        

       “저기—”

        

       팡!

        

       “으헿!”

        

       내가 다시 한번 말을 거는데, 옆에서 갑자기 파열음이 들려서 펄쩍 뛰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그 자리에서 펄쩍 뛰어버렸다.

        

       “어…….”

        

       내가 그렇게까지 놀랄 줄은 몰랐는지, 대출대를 손으로 세게 내려친 당사자인 소희가 조금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

        

       소희가 작게 사과했다. 아마 책상을 때린 직후에는 대답이 없는 도서 위원에게 뭐라고 할 생각이었겠지만, 내가 대놓고 흘겨보니 할 말을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

        

       도서 위원은 조금 얼빠진 표정으로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얼빠졌다기보다는 혼이 빠졌다고 해야 하나. 깜짝 놀라서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나는 머리를 긁적거린 뒤 말했다.

        

       “저, 그, 미안해요.”

        

       “핫.”

        

       나의 말을 듣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온 듯, 도서 위원은 어깨를 움찔 떨더니,

        

       “죄, 죄송합니다……!”

        

       그렇게 외치면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쿵.

        

       그리고, 당연히 그녀가 무릎에 올려두었던 책도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정말 운 좋게도, 책은 도서 위원의 발가락을 찍지는 않고, 그 바로 앞에 아슬아슬하게 떨어졌다가, 도서 위원의 발 위를 덮듯 툭 쓰러졌다.

        

       “아.”

        

       “…….”

        

       음…… 뭐랄까.

        

       뭐 어떻게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원작에 안 나온 캐릭터 맞지? 왜 이렇게 행동 하나하나가 만화적인지 모르겠네.

        

       *

        

       “선배가 위원장이라고요?”

        

       아무리 다시 생각해봐도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대놓고 실례되는 말이기는 했지만, 나는 그 질문을 차마 참을 수가 없었다.

        

       아니, 이 사람이 덜렁거려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나의 초대장을 받을 정도의 사람이고, 자기 집 동생들에게 파티 음식 먹여보겠다고 앞으로 나올 정도로 ‘서민다운’사람이라서 놀란 거다.

        

       ……아니, 이 ‘서민다운’이라는 말도 엄청나게 실례되는 말이긴 하지만.

        

       완전 악역 영애나 할 법한 말이잖아.

        

       ……그런 건 뭐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위원장 자리는 보통 돈 많은 집안의 애들이 꿰차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이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 조금 놀라웠을 뿐이다.

        

       하긴, 유일하게 도망가지 않은 위원장 중 하나라고 할 때 대충 짐작을 해야 했을지도.

        

       “네, 네. 제가 위원장이에요.”

        

       선배는 내 눈을 슬쩍 피하면서 말했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무리 봐도 히로인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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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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