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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0

        

         끼기긱…!!

         신경줄과 바닥을 동시에 긁는 쇳소리와 함께 발치 근처에 절전 모드로 대기하고 있던 사냥개들이 그 몸을 일으켰다. 드론들은… 그냥 있던 자리에 얌전히 내버려뒀다.

         

         최초 기습으로 망가진 1호와 날아오르다가 부서진 2호의 위치로 보건대, 사방으로부터 좁혀오면서 움직이는 건 다 쏴 버리는 모양이라 지금 가동해봐야 시선 끄는 역할조차 수행하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저 멀리서 들어오는 가로등과 옆 빌딩의 어렴풋한 불빛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암순응(暗順應; 어둠에 눈이 익어 사물이 구분되기 시작하는 현상)이 끝나기 전에 무슨 일이 터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렇다고 인간 발전기 흉내를 내서 사무실 조명을 다시 밝히는 건 기각. 저들이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더라도 섣불리 위치를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지? 엑사테크의 일선 드로이드면 기본적으로 야간 투시나 열화상(Thermography; 피사체가 발산하는 열선을 가시화하여 화상으로 재구성함) 시스템을 달고 있지 않나?

         

         하다못해 레오나르가 뽑은 수백 대의 드론조차 레이저 포인터는 달고 있는 마당에 적들의 탐지 체계가 내 눈보다 못하리라는 건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처럼 들렸….

         

         투콰콰쾅——!!!

         

         “미친!?”

         

         새된 비명과 함께 책상 아래쪽으로 다이빙.

         아니나다를까. 찢어지는 격발음이 울림과 동시에 사무실 벽, 머리 위쪽 부근이 터져 나가며 파편화된 건물 마감재와 내장재를 실내로 쏟아냈다.

         

         조금 허름하긴 했어도 실내와 실외를 확실하게 구분해주던 벽면이 끝에서부터 순차적으로 작살나며 부서진 조각을 흩뿌리는 광경은 흡사 서부 영화에서 목조 건물을 향해 총알이 빗발치는 장면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굳이 이걸 등장인물이 되어서 실체험해보고 싶다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말이다. 그것도 숨는 쪽이라면 더더욱.

         아이씨…! 존나 따가워! 개 따갑다고!! 정확히 사무실 쪽만 날려버리는 것 좀 봐. 이건 무조건 알고 있는 거네!

         

         – 콜드플레인 자원 개발사 건물 안에 숨어있는 거수자에게 통지한다. 그대는 현재 엑사테크 네트워크 무단 침입 및 전략 자산권 침해, 비인가 데이터 접근 혐의를 받고 있으니 항복하라. 자진 투항할 경우 기술자 우대 법령에 의거하여 50년 내외의 노역형 혹은 그에 준하는 수형에 처해질 수 있음을……. –

         

         “꺼져!!”

         

         내 목소리가 닿을지 안 닿을지는 모르겠는데, 들어본 것 중에 제일 쓰레기 같은 무급노동 권유를 대차게 거절하며 고개를 털었다.

         

         고 잠깐 사이에 머리와 어깨 위에 쌓인 파편 부스러기, 그리고 먼지가 흘러내리는 불쾌한 감각을 애써 무시하고 부서진 건물 상태를 가늠했다.

         

         정확히 내가 있던 위치를 특정한 것치고는 탄흔이 엉성하다.

         그야 무자비할 정도로 엉망진창 박살 나긴 했다만, 목표물이 반항조차 할 수 없게 다진 고기로 만들기 위한 정밀 사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해야 하나? 의자에 앉아있던 내 신장을 고려하면 빗나가도 한참 빗나갔다.

         

         단순한 위협 사격? 아니면 규정대로 투항할 기회를 준 건가?

         

         뭐가 됐는지는 몰라도 다음 공격이 치명상이 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저런 식으로 건축재를 찢어버리는 파쇄탄이라면 맞았을 때 몸에 바람 구멍이 나는 게 아니라 진짜 즉사할지도 모르는 일이니.

         

         거기에. 사람한테 함부로 총질 못하게 저들의 혼을 쏙 빼놓으면서도, 내가 이질적인 능력을 쓰는 게 직접적으로 보여서는 안 된다. 앞으로 갈 길이 먼데 쫓기면서 사는 건 사양이다.

         

         전산화된 데이터는 나중에 신경 써서 흔적을 박박 밀어버리면 그만.

         영원한 비밀로 남으리라고는 장담하기 어려워도 아직까지 내가 은폐했던 자료가 수면 위로 올라왔던 적은 없으니까, 커뮤니티 인간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드웨어를 불태웠어도 이거보단 덜 씹창났겠다’ 수준이라 했던가?

         

         허나 이 병력들을 조종하는 오퍼레이터의 입을 틀어막으려면 다이브 중이거나 차분히 집중 가능한 상태가 아니고서야 꽤 어려울 것 같아서 문제다.

         상대가 옛날 제로처럼 날 봐주는 것도 아닐진대, 간신히 일반인 언저리의 신체 능력을 가진 내가 사각에서 드로이드를 기습하는 것도 요원해 보이는 노릇이고.

         

         그러니까… 여기서는 위협의 주체를 뒤바꾸도록 하자.

         아무리 날 잡으러 온 거라 해도 이런 거에 한 번 당하고 나면 계집애 하나한테 마냥 집중하기는 힘들겠지…!

         

         “좋아, 이리온…?”

         

         끼긱!

         

         차마 인공지능이라 하기도 뭐한. 그저 기초적인 전투 프로토콜에 따라 임전 태세에 들어가 있던 사냥개들이 앞으로 다가와 몸을 숙였다. 혓바닥이 있었다면 소리내서 헥헥거렸을 것 같네.

         

         손을 뻗어 매끈한 등허리 장갑 표면을 한 번 어루만지며 지나쳐 낭창거리는 꼬리부를 움켜쥐었다.

         

         뱀처럼 기다랗고 마디마디로 이루어져 있는 이 강철 촉수는 입체적인 기동력과 전투, 그리고 균형 밸런스를 위해서도 존재하는 게 자연스러워 보였지만. 정작 레오나르는 원랜 다른 기능 때문에 설계한 파츠라고 간단하게 설명했었다.

         

         이번 일에는 마침 딱 적당했으나 만일 인간을 상대한다 가정한다면. 갈고리형 발톱과 톱날 같은 치아가 살상력이 과해서 무력화가 애매한만큼 부무장이 필요했다나 뭐라나.

         

         그의 디자이너스러운, 공학자적 마인드를 완전히 이해한 건 아니었지만 결국 요 꼬리에 잔여 배터리를 써서 전기 충격기로 활용하는 방안이 내장되어 있다는 것만은 알아들었다.

         

         …적을 감전시킨다? 다른 말로 하면 촉수 첨단부가 고전도성 소재라는 것.

         거기에 따로 손볼 필요조차 없이 전기를 방출하는 기능까지 있으니 완전 나를 위한 맹수가 아닌가.

         

         지지지직…!!

         

         푸르고 하얀 스파크가 마구잡이로 튀기며 하운드로이드의 동체를 휘감았다.

         

         끄트머리로부터 흐른 전류가 순식간에 머리까지 일순.

         머지않아 눈과 귀를 괴롭히던 현상은 잠잠해졌지만 목적했던 바는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관절이 유별나게 삐걱거리고 안구 부분에 불길한 색채가 일렁이는 걸 보니 난폭하게 프로그램을 주입하며 신경 연결 통로를 새로 뚫은 탓에 애들이 좀 폭력적으로 변한 것 같기는 한데.

         

         뭐, 나한테 이빨을 드러낼 기색이 없다면야 아무튼 괜찮지 않을까…. 아니, 무책임한 게 아니라 정당방위를 실행하는 순간에는 ‘과잉’인지 아닌지 따질 수 없는 법이잖아?

         

         “……가서 보이는 대로 다 찔러버려!”

         

         – @%^&#$%——!!!! –

         

         전자음과 기계음이 뒤섞인 포효와 동시에. 사냥개들이 부서진 벽을 통해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반대로 나는 사무실 문을 박차고 나가, 그나마 엄폐물 역할을 수행해줄 것 같은 정비대 근처로 숨을 곳을 바꿨고.

         

         모티브로 삼은 이미지가 조금… 많이 강했던 모양인지 원래라면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아야 할 하운드로이드의 폭력적인 소음이 사방에 메아리 쳤다.

         

         야생동물이 익숙지 않을 23세기 친구들이, 과연 요즘 젊은 것들이 광견병 무서운 줄은 알까 몰라.

         

         

         – ?! 교전 개시! 사전에 입수한 짐승 형태의 드로이드 발견. 자유 사격 허가한다! –

         – 양동(Feint Operation; 적을 교란하기 위해 주된 공격 측면과 다른 방향에서 공격하는 것)에 주의하라! 탐지되는 것 이상으로 더 있을 수 있…… 잠깐, 뭐가 이렇게 빠르…! –

         

         옆 외벽은 부수되 거기를 아예 파헤치면서 넘어올 생각은 없었는지, 창고 정문 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물론 안에 있는 나한테까지 굳이 전황을 공유할 생각은 없었는지 외부 스피커는 금방 끊어졌지만… 상관없었다.

         

         대강 소음을 듣고, 남아있던 드론을 전부 출격시켜서 엄호하며 나도 실시간으로 그 광경을 보고 있었으니까.

         

         투콰콰쾅…! 드륵, 드르륵!!

         

         측면과 후면에서 한 마리씩. 돌연 튀어나온 사냥개에게 철저한 제압 사격이 틀어박혔고.

         제 발로 개활지로 나온 게 얼마나 바보 같은 선택이었는지 알려주겠다는 듯이 순식간에 장갑과 관절이 분쇄당했다.

         

         드론의 상황은 오히려 더 안 좋았다. 이쪽의 눈을 없애는 것의 중요도를, 잘 쳐줘야 전투 로봇 한두 기나 겨우 망가트릴 사냥개의 정리보다 우선시한 건 실로 칭찬할 만한 전략적 판단이었으나.

         

         시야에 비친 분할 화면이 하나하나 어두워지며 기기 파손을 알리는 와중에도. 화력이 분산된 탓에 너덜너덜한 다리로 지면을 박찬 개들이 기어이 목표물에 도달하는 걸 본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너네, 그거 무조건 실수한 거야.

         

         – 아잇… 썅! 이거 무조건 시말서 쓰게 생겼네!! –

         

         아마 덮쳐진 드로이드를 조종하는 오퍼레이터로 추정되는 남자의 욕설이 튀어나왔지만.

         내 맹견은 후려갈기는 주먹질을 말 그대로 개무시한 채, 필사적으로 맞닿은 발톱과 이빨은 장갑을 파헤쳤다. 마치 어떻게든 가죽을 벗겨내고 먹이의 살점을 취하려는 짐승의 본능처럼.

         

         까드득 하며, 장갑이 떨어져 나가고 열린 틈새로 불꽃이 튀자 잔상이 남을 속도로 일렁인 꼬리가 연약한 내부 회로에 틀어박혔다. 생명의 징후라고는 일절 없는 두 무인 드로이드의 육탄전에 뿌연 흙먼지가 피어올랐고.

         

         뭔가를 토해내듯 꿈틀거리는 촉수, 마구 튕기는 몸체와 호응하는 것처럼 이루어지는 방전 현상.

         사주 경계를 지속하는 병사를 제외하고. 드론을 정리한 이들이 뒤늦게나마 다 망가져가는 사냥개들을 떼어내 던지고는 자빠져 있는 동료들의 드로이드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사람으로 치면 보호 장구 같은 걸 다 껴입은 미식축구 선수가 거 살짝 넘어졌다고 엄살 부리며 안 일어나는 걸 타박하는 느낌?

         

         하여간 방금 그걸로 전투 불능이 되었으리라곤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보였다.

         그렇겠지. 재수없게 신호 송수신기가 작살난 게 아니라면 한 쪽 다리로 일어나던, 팔로 물구나무를 서서라도 자력 귀환해서 재정비할 수 있다는 게 무인기 운용의 장점이기에.

         

         네~ 그래서 저도 너무 좋네요? 일단 움직이기만 하면 어떻게든 써먹을 방법이 있으니까!

         

         – ……뭐야, 씨발. –

         

         “오.”

         

         눈치가 꽤 빠르다.

         수중에 들어온 드로이드를 매개체 삼아, 오퍼레이터나 이들을 지휘하는 기지 자체에 침투하려고 했는데 주된 부품 제어권이 내 쪽으로 넘어오자마자 모든 신호 교환이 반강제적으로 종료되었다.

         

         남은 주소를 통해 잠긴 문을 두드릴 수는 있는데 응답이 아예 없는 감각이라 할까, 이런 식으로 엿먹는 미래를 상정한 건 아니었겠지만. 말단 로봇이 적에게 노획 당했을 때 본부까지 피해가 미치는 걸 방지하기 위한 꼬리 자르기처럼 보였다.

         

         쩝, 어쩔 수 있나. 잘린 꼬리라도 열심히 주워서 무기로 써먹어야지.

         

         쾅—!!

         

         개전 신호는 깔끔한 업어 치기.

         

         최초로 덮쳐진 순간, 사냥개의 발톱에 총신이 망가졌음을 확인하자마자 쓰레기를 내던진 드로이드가 시뻘건 안광을 줄줄 흘리며 자신을 일으켜 세워주던 아군을 되려 바닥에 내던졌다.

         

         시야는 훔쳐볼 수 있었지만 딱히 내가 조종하는 건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그럴 여력이 없어서. 지금의 나는 연구소 봉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니.

         

         하지만 광견병의 주된 증상은 통제되지 않는 흥분과 공포, 피해망상과 폭력성이었나?

         동물이 폭력성을 발휘하는 주된 방식이 깨물기와 할퀴기고, 이는 바이러스의 전염으로 이어지니 괜히 좀비 개념의 원전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구태여 수동 조작할 필요조차 없었다.

         

         – 씨팔 새끼들아, 당장 독립 네트워크만 남기고 전부 닫아!! 통신도 잘라버려! 바이러스 공세다!! –

         

         깡! 깡!! 쾅! 콰지직! 우득! 쾅!!

         

         분대장(Platoon Leader)의 노호성과 지가 무슨 고릴라라도 된 것 마냥 아군의 기기의 가슴팍을 마구잡이로 내려쳐서 잡아뜯고 시스템 전선을 물리적으로 접촉시키려는 행위 중 어떤 게 더 빨랐는지 난 잘 모르겠다.

         

         ‘많이 퍼트려라.’ 라는 메시지를 담기는 했는데, 그걸 수행하는 주체가 사냥개에서 이족보행형 드로이드가 되니까 저런 진풍경이 나오는구나. 어우, 끔찍해라.

         

         ………어, 뭐야. 우리 사냥개도 아직 움직일 수 있었네?

         저런, 다른 친구는 발목 언저리로 촉수가 침투해서 그만… 나도 저 기분 알지. 저기 빈 공간이 의외로 넓어서 사막 지대만 조금 걸어 다녀도 제로도 모래가 한 바가지씩 쏟아지더라고. 음.

         

         으득! 으드득!!

         

         – 발사… 발사아아(Open Fire)!! 책임은 내가 진다! 소모율이고 뭐고 따지지 말고 안전 거리 유지한 채로 떨어져서 갈아버려! 외곽팀도 눈치보지 말고 당장 들어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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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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