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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0

     어머니가 지금까지 쌓아온 사교계 인맥을 바탕으로 면검부에 대한 정보를 흘리고 판매 의사를 넌지시 내비치며 계약서 아닌 계약서를 쓰는 동안.

     “순찰 다녀왔습니다, 도련님.”

     “고생했네. 로버트 경. 카를로스 경.”

     지브롤터 기사단의 기사들은 말을 타고 달리며, 바르셀 후작령 방향을 매일 매일 순찰하고 다녔다.

     “혹시 병사들이 흘리는 건 없던가?”

     “다행히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다들 군기가 바짝 들기도 했고, 장비도 최대한 갖춰져있으니.”

     로버트는 자신의 품에서 제법 넓은 원판을 꺼냈다.

     “인근 500m이내에 인간 수준의 마나를 가진 생명체를 탐지하는 마도구. 이거 덕분에 병사들이 흘리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지름 약 20cm 정도 되는 마도구.

     들고 다니기에는 분명 불편한 물건이지만, 그 용도는 색적에 있어 엄청난 효과를 자랑하는 물건이다.

     “제국 상회에서 사들일 때는 비싸게 주고 사나 싶었는데….”

     “비싼 물건이지. 정식으로 수입하는 것도 아니고, 용도가 따로 정해져있으니.”

     제국산.

     마법사들이 주변에 마나를 뿌려서 마나의 흐름을 파악하는 탐지 마법이 새겨진 마도공학 병기.

     “전쟁물자 아니니까 다들 쉬쉬해야 할 거야. 이거 다 지브롤터역에 정차할 때마다 몰래 하나씩 빼돌린 거니까.”

     “그래도 되는 겁니까?”

     “합스베르크 황제의 총애를 받는 값으로 그 정도는 해도 넘어갈 수 있어.”

     원래는 마도자동선이나 열차가 앞으로 달릴 때 전방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경우를 탐지하기 위한 물건이지만, 모든 물건은 활용에 있어 적재적소가 있다.

     특히 전쟁에 도움이 된다면 더더욱 그렇고.

     제국에서는 이걸 두고 마도레이더라고 지칭하더라.

     “혹시 이거말고 또 몰래 빼돌린 게 얼마나 되는 겁니까?”

     “필요할 때마다 꺼낼 생각이니, 그냥 이런 게 튀어나온다면 ‘아, 또 그레이 도련님이 이 날을 위해 준비한 거로구나’라고 생각하는 게 편할 거야.”

     “뇌가 단순해지는 것 같습니다만….”

     “평소에 이쪽으로 쓰지 않는 거라고 해도, 용도를 전환하여 효율이 가장 높은 곳에 쓰는 게 실력이지. 그리고 나는 이쪽으로는 제법 능력이 있는 편이고.”

     회귀자로서 가진 능력 뿐만 아니라, 원래 나는 이런 쪽으로 나름 괜찮은 편이었다.

     ‘중고품 재활용 전문가지.’

     누아르와 레타르가 사치를 부리고 사들였다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진 물건들을 어떻게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팔아치워서 백작가 재정에 보탬이 되도록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감지마법이 새겨진 마도구를 최전방 병사들의 초소에 도입하는 것도 회귀 전의 경험에서 비롯된 아이디어다.

     아무래도 지브롤터 백작령을 향한 충성병자와 혁명군의 테러는 생각보다 잦았으니까.

     “혹시나 상급 기사 정도 되는 자들이 암살자로 몰래 와서 병사들을 죽이고 그러는 건?”

     내가 제일 걱정하는 건 상급 이상의 움직임.

     일반 병사가 머무르는 초소에 로버트나 카를로스 같은 기사가 습격을 했을 때, 과연 대처가 가능한가?

     “아직은 그러지 않고 있습니다. 저들도 불필요한 교전이 일어나는 걸 지양하고 있으니.”

     “그리고 도련님의 말씀대로, 혹시나 적에게 당할 것 같으면 순순히 항복하라고 했습니다. 지브롤터 백작가의 정보를 넘기더라도, 살아남으라고.”

     “음.”

     현재.

     전쟁은 폭풍전야라고도 할 수 있고, 소강상태라고도 할 수 있다.

     아직 지브롤터에서는 적극적으로 병력을 움직이지 않았고, 바르셀 후작령 또한 수비를 굳힐 뿐 서로 선을 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저들은 저희가 ‘진정하기’를 바라고 있는 듯하니….”

     “여론전을 통해서 우리가 평화협상을 먼저 제안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예. 실제로 초소 근처를 순찰하다가, 이전에 렘버리에서 만났던 기사 한 명과 조우했습니다.”

     카를로스 경이 비장한 각오로 품에서 손수건 하나를 꺼냈다.

     “저쪽도 정찰을 하러 나왔는데, 이걸 제게 던지더군요.”

     “여기사의 손수건인가? 안에 편지도 들어있는 것 같은데.”

     “저를 회유하려고 하는 거죠. 아무리 그래도, 국왕을 향해 반역을 할 수 있냐고.”

     “흐음….”

     그림이 그려진다.

     

     “여기사, 자네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하지만 저는 그녀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전쟁 중에 펼쳐지는 로맨스의 한 장면이 그려지는 듯 했으나, 현실은 기사의 충심을 더 드러내는 장면이었나보다.

     “설령 관심이 있는 이가 왔다고 해도, 지브롤터를 배신하고 전향할 생각도 없고요.”

     “엘프 때문이잖아, 카를로스 경.”

     “크흠. 로버트 경. 그런 부분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네.”

     아니다. 

     그냥 이성적 매력의 차이였을 뿐이었나.

     “도련님. 설령 엘프가 나타나서 저를 유혹했다고 하더라도, 저는 흔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 믿고 있다네.”

     “로버트 경. 자네 혹시 나 견제하나? 말이 이렇게 되어버리니 내가 꼭 미인이었으면 배신하고 전향할 것처럼 되어버렸지 않은가!”

     “괜찮아. 면검부 하나 사면 돼.”

     “…속지 않습니다, 도련님. 여기에서 ‘사면 정말 죄를 용서받는 겁니까?’라고 물으면, 제가 진짜로 그런 인간이 되어버리잖습니까!”

     “안 넘어가는군. 로버트 경은 내가 어렸을 때 이런 식으로 하면 아주 그냥 숨 넘어가던데.”

     아쉽다.

     

     “이만 돌아가지. 쉬지는 않아. 가야할 곳이 있거든.”

     “가야할 곳…?”

     “그래. 가서 쉬어. 거기 근처에 여관이 많으니까.”

     두 ‘상급 이상의 기사’를 데리고 가야 할 곳이 있다.

     “지브롤터역.”

     협곡 너머.

     대륙횡단 마도자동선들이 모이는 장소.

     “바이크 진격은 안 하기로 했어. 대신 마도자동선을 타고 후작성을 향해 진격하기로 했지.”

     “…….”

     “……뭔가? 그 표정은.”

     “바이크 돌격, 안 합니까?”

     카를로스 경은 어딘가 우울해진 얼굴로 어깨가 축 떨어졌다.

     “바이크 타고 랜스 차징,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

     “……나중에, 그럴 기회가 있겠지.”

     해봐서 알지만, 확실히 해본 적 없어도 하고 싶어지는 그런 게 있다.

     “그래도 들어보면 또 기대가 될 거야. 마도자동선, 바이크보다 더 빠를 테니까.”

     * * *

     잠시 뒤.

     렘부르 군터 자작령에 열차가 머물렀던 ‘렘버리 역’이 있었던 것처럼, 당연히 노스트럼 왕국 전역에 열차역이 만들어졌다.

     지브롤터 또한 그러하다.

     협곡 관문을 전속력으로 지나치자마자 잠시 달렸다가 속력이 줄어드는데, 열차가 멈추는 곳은 지브롤터 성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이다.

     역이라는 건 교통의 중심이며, 사람들이 접근하기 편한 곳에 만들어져야 한다.

     하지만 때때로 그 지역을 다스리는 자의 개인적인 이유로 인해, 그 ‘지역’에는 도착해도 중심지까지 가는데 또 걸어서 한참 가야하는 경우가 생긴다.

     지브롤터 역이 바로 그러하다.

     “도련님. 항상 느끼는 거지만, 지브롤터 역에서 내린 사람들이 다시 지브롤터 성까지 오는데 따로 마도자동선을 타야하는 걸까요.”

     “그야, 아버지께서 지브롤터 성에 사람 마구 드나드는 게 싫으니까.”

     “하긴. 그 안에 암살자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지브롤터 역과 지브롤터 성 사이에는 약 20분 정도 시간이 소요되는 마도자동선이 정기적으로 왕복하고 있다.

     한 마디로, ‘환승’해야 한다.

     횡단열차를 타고 지브롤터에 간혹 내리는 이들은 이러한 불편함에 투덜거리기도 하지만-

     ‘미래보다는 낫지.’

     미래에는 지브롤터 자체에 정차하지 않았다.

     협곡을 지나가기는 해도 열차의 도로가 지브롤터 백작령을 피해서 위아래로 퍼져나가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두 사람. 지브롤터 역을 지을 때, 내가 그 위치를 정하는데 관여했다는 건 알고 있나?”

     “예. 백작님을 설득해서 이곳으로 정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그랬지.”

     그나마 아버지가 제국 쪽에서 오는 문물에 익숙해지고 캐롤라인 성이 따로 만들어져서 그랬지, 아니었으면 지브롤터 역은 말만 지브롤터 역이고 저기 북쪽 세이레네 영지의 경계에 세워졌을 터.

     “원래는 이거, 저기 세이레네랑 우리 영지 사이에 딱 지어졌을 거야. 지브롤터 백작령의 경계를 따라서 철도가 깔렸을 거고.”

     지금은 우리 영지 안에 있다.

     제국 방향으로 가는 길에 있으며, 지브롤터 성과 협곡 사이에 정확히 위치하고 있다.

     “지어질 때부터 제국과 교류가 있었으니, 걱정은 했겠지. 나중에 제국이 쳐들어오면 그 때 위험하지 않겠냐고.”

     “지금은….”

     “그 반대.”

     그렇기에, 우리의 ‘후방기지’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

     “제국 방향이라는 건, 왕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다는 것. 그리고 이곳에서 뭔가를 준비하면 상대적으로 왕국으로부터 안전하다는 것.”

     애초에 그럴 목적으로 ‘제국 방향’에 역을 설치했다.

     “도련님, 설마….”

     “맞아.”

     즉.

     “왕국을 상대로 전쟁을 할 때를 대비하여 지어진 역이라는 거지.”

     “…….”

     “언제부터 이런 걸 준비했는가. 그런 걸 따지는 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지금은 저게 중요한 게 아니겠어?”

     역에 정차된 철도의 일부, 본래 정기선이 오가야 할 철로 위에 마도자동선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저기, 우리가 타고 갈 마도자동선이 있군.”

     “…….”

     두 기사는 여러 작업자들이 열심히 무언가 작업을 하고 있는 마도자동선 하나를 보고 입을 떡 벌렸다.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도련님, 저기, 저거….”

     “맞아.”

     “…왜 붉은색으로 칠하는 겁니까?”

     “아버지의 머리카락과 똑같은 색이라서.”

     마도자동선이, 붉게 물들어있었으니까.

     배의 선수부터 선미까지, 몸통은 물론이거니와 아래 바퀴까지 붉은색으로 칠해져있었다.

     “저러면 너무 잘 보이지 않겠습니까?”

     “잘 보이겠지. 눈 깜빡할 새에. 적이 대응하기도 전에 후작성에 처박힐 걸.”

     “그렇다면, 도련님. 제가 다른 건 모르겠는데, 저거 ‘배’잖습니까.”

     “그렇지.”

     마도자동’선’이니까.

     “배에 바퀴가 달리고, 철도를 달리고 그래도 일단 제국의 해군에서 쓰던 배를 개조한 거니까 계속 마도자동선이라고 했던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저기, 갑판 위로 저렇게 뚜껑 덮어버린 이상, 저건 이제 그냥 배가 아니라 배를 개조한 무언가 아닙니까? 거기에 생긴 게 꼭….”

     “물고기 비슷한 형태지.”

     배의 위에 유선형으로 된 덮개가 설치되니, 양 옆에 지느러미를 달고 있다면 흡사 저기 바다를 누비는 물고기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경들. 언젠가 나중에 저기 세이레네 남쪽 바다에 가면, 한 번 바다 낚시를 한 번 가보게. 그러면 저 형태가 이해가 될 거야.”

     “……?”

     “유선형으로 된 물건은 앞으로 나아가는 데 흐름의 저항을 줄이기에 가장 완벽한 형태거든. 물고기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말이지.”

     바람의 저항을 줄이기에 가장 최적화된 형태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런 복잡한 내용은 저기 마도자동선 덮개 위에서 열심히 작업자들을 향해 소리치고 있는 바토리 소장이 설명할 일.

     “저기 바다를 누비는 돌고래가 머리를 들이받는 것처럼, 우리도 후작성을 향해 냅다 들이박는 거지. 최고 속도로.”

     “…도련님, 혹시 청새치라고 아십니까?”

     “알기는 아는데, 왜?”

     “청새치 앞에 랜스 같은 게 달려있지 않습니까. 저것도 어차피 충차 비슷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비슷하게라도 다는 건 어떠신지요?”

     “…….”

     잠시, 떠올려봤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성벽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격하여 그 성벽을 뚫어버리는 청새치를.

     아니, 마도자동선을.

     “…거기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니, 이번 전투가 끝나고 한 번 만들어보도록 하지.”

     “어, 진짜로요?”

     “지금부터 만들려고 하면 당장 실전투입할 수 없어서 그렇지, 예산이 부족한 건 아니라서.”

     승전 후 1년 정도면 한 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저 마도자동선의 진가는….”

     “아, 마침 잘 왔다!”

     바토리 소장이 소리쳤다.

     “도련님! 물자부족!!”

     “……?”

     “마법사들의 공중포격을 막기 위한 장갑을 설치하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그러다보니 풍석 출력이 좀 부족해졌어!”

     “…씁.”

     마도자동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에 문제가 생겼다.

     “영지 내에 있는 마석들 대량으로 긁어모았는데도 부족한 겁니까? 열차랑 마도자동선 내에 있는 풍석 엔진들 다 모아서 개조했는데도?”

     “조금 부족해. 최소한 비룡이 강습하는 속도 만큼은 나와야 할 거 아니야. 최고 속도로.”

     “으음….”

     대략, 시속 350km인가.

     “확실히 그렇기는 하지만….”

     “어디 풍석 가져올 거 없어?”

     “있기는 합니다.”

     “진짜?”

     “예.”

     이런데 쓰려고 한 건 아니지만, 필요하다면 일회용이라도 가져다 써야지.

     “협곡에 엄청 큰 풍석 하나 있습니다. 성벽 위로 올라가기 위한 승강기 아래.”

     “…….”

     “성벽 위로 올라가는 엘레베이터 역할이기는 하지만, 그것도 나중에 새로 지으면 되니까.”

     “그거 함부로 떼어내서 써도 되는 거야? 1회용으로?”

     “바토리 소장.”

     나는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그 시설 책임자 및 감독자가 접니다.”

     “…….”

     “그 시설 관리 및 감사가 제 정치적 어머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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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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