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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0

       

       그러니까, 내가 오스에와 함께 렌까의 방정리를 대충 마치고 나가려고 할 때였다.

       

       『……인형 어디갔어?』

       

       뒤늦게서야 인형이 사라진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분명 렌까가 나에게 달려들기 전에 인형을 바닥에 내려놓은 것을 똑똑히 봤는데, 그 인형이 나와 렌까의 싸움에 휘말린 것도 아니었고, 오스에가 치운 것도 아니었다.

       

       마치 인형 스스로가 발이 달린 것처럼—물론 발이 달리긴 했지만서도—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설마, 귀신 들린 인형이었나.’

       

       귀신 들린 인형. 얼핏 들으면 화성인과 마찬가지로 허황된 이야기 같지만, 일전에 인체모형 사건도 겪었던 나로서는 그리 불가능한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귀신 들린 인형……

       

       렌까가 화성인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던 기묘한 일들도 이러면 설명이 된다. 즉, 방의 어질러짐이나 수상한 메시지 따위는 렌까가 스스로 저지르고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인형에 빙의된 악귀의 소행이라고 말이다.

       

       다만 렌까는 자신이 아끼는 인형이 그랬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화성인의 소행으로 착각했을 뿐이다.

       

       이렇게 되자, 나는 내가 내렸던 결론을 수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렌까가 단순히 미친게 아니었구나.’

       

       나는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렌까를 내려다보며 오스에에게 말했다.

       

       『오스에.』

       『예.』

       『렌까를 정신병원으로 보낸다는 거, 일단 보류.』

       『……?』

       

       렌까가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는 것은 맞았지만, 내가 좀 전에 결론을 내렸듯이 아무 일도 없는데 혼자 망상에 휩싸여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본인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은 것 뿐이었다.

       

       그렇다면, 그 현상의 원인을 밝혀내고 렌까에게 이해시킨다면 렌까의 착각 증세도 치료될 터. 

       

       『까뜨린느라고 했지. 그 인형이 원인이야. 인형을 찾자.』

       『……!』

       

       나는 다시 헤드폰처럼 생긴 영혼 라디오를 머리에 썼다. 여전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은 이 저택의 어딘가에 숨어있겠지.’

       

       인형에 빙의된 악귀도 바보는 아닐 터. 혹시라도 나라는 외부인이 원인을 밝혀내고 제거할까봐 잠시 자리를 피한 모양이지만, 악령이라면 쉽게 본거지를 떠나지 않으리라.

       

       그렇게 나와 오스에는 렌까의 방을 빠져나와서 방 하나하나를 뒤져 보았다. 하지만 인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스에가 말했다.

       

       『아무래도, 본채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만.』

       『다른 건물도 있어?』

       『조금 떨어진 별채에 욕탕이 있습니다.』

       

       과연 그 말을 듣고 본채에서 나오니, 조금 떨어져 커다란 굴뚝이 있는 별채가 있었다.

       

       ‘여기가 렌까가 목욕을 하는 곳이란 말이지.’

       

       별채 안의 욕탕은 으리으리했다. 고급스럽기도 했고, 공중목욕탕 정도까지의 규모는 아니지만, 혼자서 쓴다고는 상상하기 힘든 커다란 욕조라니.

       

       ‘누구는 다라이에 물 받아놓고 찬물로 씻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욕탕의 보일러 뒤쪽이나 물탱크 등을 뒤지고 다닐 즈음, 멀리서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다. 별채 바깥으로부터 들려오는 흐릿한 소리였다. 오스에가 말했다. 

       

       『주군의 방에서 울리는 전화입니다.』

       『안 받아도 돼? 렌까 깰텐데.』

       『졸자가 다녀오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오스에는 눈 앞에서 사라지듯 모습을 감췄다. 거, 어지간히 급한 거 아니면 정상적으로 걸어나가도 될텐데. 하여간 은신은 대단한 수준이라니까.

       

       ‘그나저나, 여기도 아닌가.’

       

       나는 오스에가 나간 뒤에도 잠시 목욕탕을 살폈지만 딱히 인형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수건과 욕의(浴衣) 비누, 입욕제같은 목욕 용품 뿐……

       

       욕실 바닥에 떨어져있는 머리카락같은 것이 인형의 흔적일까 싶었지만, 검고 길다란 것으로 볼때 인형이 아닌 렌까의 머리카락이었다.

       

       ‘이게 다인가.’

       

       나는 렌까의 머리카락을 털어버리며 생각했다. 전화 벨소리는 어느샌가 끊겨 있었다. 렌까가 받았든 오스에가 받았든 한 모양이었다.

       

       ‘후우. 일단 렌까의 방으로 돌아가 보자.’

       

       렌까도 깨어났으리라. 일단은 렌까로부터 인형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보고, 인형에 악귀가 들린 것이라는 내 추측도 말해주는 것이 좋겠다. 그러면 제정신이 돌아올지도 모르지. 그렇게 생각하며 슬슬 나가려던 그때,

       

       —대앵…… 대앵…… 대앵……

       

       멀리서 괘종시계 종소리가 들려왔다. 본채, 렌까의 방에 있던 괘종시계가 울리는 소리이리라.

       

       —대앵…… 대앵…… 대앵……

       

       길게 울리던 종소리는 열두 번을 끝으로 멈췄다. 벌써 밤 12시, 자정이 된 것이다.

       

       ‘어, 잠깐. 자정이라고.’

       

       자정이라고 하니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저번 인체모형 때에도 방숙자는 자정이 지나서 본격적으로 활동했었다. 그냥 밤중이 편한 시간이어서인지 음기가 강해져인지 그런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나도 대비를 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귀가 어떤 식으로 공격해올지 모르니까 말이다.

       

       나는 이곳에 올 때 챙겨온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이걸 입는 것도 오랜만이군.’

       

       슬라임 고무로 만들어진 전신 타이즈 수트였다. 어차피 구겨넣으면 부피를 많이 차지하지도 않아서 가방에 쑤셔넣고 있던 물건이었다.

       

       그동안은 날이 더웠던데다가 막상 싸울 일이 없어서 짱박아두고 있었지만, 지금은 꽤나 선선한 한밤중인데다가 무슨 공격이 날아들어올지 몰랐기에 이것을 입기로 한 것이다.

       

       입고 있던 교복을 벗고, 속옷 위에 전신 타이즈를 입은 다음, 그 위에 다시 교복을 걸쳤다. 타이즈의 머리를 감싸는 부분은 후드처럼 뒤로 늘어트렸다.

       

       나는 다시 교복 망토를 두르고 교모까지 머리에 쓴 뒤, 욕탕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

       

       그렇게 다시 밖으로 나온 나는 어딘지 위화감이 느껴지는 것을 눈치챘다.

       

       어두웠다.

       

       그리고, 고요했다.

       

       물론 시간도 시간이고 날도 흐리니 어두운 것은 당연하기는 했다. 음력 보름이 가까워 달도 거의 둥글어진 날이건만, 날이 흐린 탓에 구름에 가려져 어두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까와는 달리 위화감을 느꼈던 것은, 아까는 정원 곳곳을 밝히고 있던 가스등이 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위화감을 느낀 두 번째 이유는, 사방에서 울던 풀벌레 소리가 멈춰 조용하다는 것이었다.

       

       불안할 정도로 고요한 가운데, 나는 저 앞의 본채로 향하는 길목에 쓰러져있는 왜소한 체구의 누군가를 발견했다. 오스에였다.

       

       『오스에!』

       

       급히 달려가서 확인해봤지만 단순히 기절했을 뿐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외상도 없고, 호흡도 평온했다. 누군가에게 기습을 당해 쓰러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오스에가 기습을 당하다니?’

        

       뛰어난 은신 능력으로 오히려 기습을 하면 했지 기습을 당할 녀석은 아니었다. 

       

       ‘설마, 인형이……?’

       

       예전, 인체모형에 갇힌 방숙자가 폭주했을 때에도 영혼 에너지로 염동력 비슷한 물리력을 행사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오스에가 그걸 간파하고 피하지 못할 녀석은 아닐텐데……

       

       그 때, 

       

       핑—!

       

       무언가가 내 뺨을 스쳤다. 뺨을 만지니 한 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

       

       날아든 것은 검은 색으로 번들거리는 수리검. 나는 얼른 칼을 뽑아들며 일어섰다. 주위를 둘러싼 나무 사이사이로 얼핏얼핏 검은 실루엣들이 보였다. 

       

       ‘인자(忍者)?!’

        

       스슥- 슥-

       

       집중하면 나뭇잎 스치는 소리를 사방에서 들을 수 있긴 했지만, 그것은 그저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정도의 소음이었다. 수십 명이 나무 사이를 날다람쥐처럼 오가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은닉성.

       

       ‘인자들은 저번에 죽였는데…… 또 보내온 건가?’

       

       저번 고무공장 때, 렌까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감시하던 인자 부대를 모조리 죽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대동아공영회 놈들이 인자 부대를 다시 보내온 건가? 

       

       ‘아니, 아니야. 뭔가 달라.’

       

       뭔가 달랐다.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어둠 속에서 기다란 칼날 하나가 나를 향해 쇄도해 왔다. 

       

       —깡!

       

       얼른 칼을 휘둘러 막아낸 나는, 내가 느끼던 위화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적이 나를 향해 휘둘러온 것은 칼이 아니었다. 아니, 칼날 모양의 무언가였다. 번들거리는 검은 색 재질로 이루어진…… 게다가 그 칼날은 놈의 팔과 그대로 이어지듯 연결되어 있었고, 놈의 전신 역시 그러한 재질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놈들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 마수다!’ 

       

       놈들은 인간이 아니라 마수였다! 내 마력감응은, 저 놈들에게서 분명한 마수의 마력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도 인간에 마수를 섞었던 나까모리 교수나 늑대인간 공팔자와는 달리, 오로지 마수의 그것만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젠 마수를 인간에 섞다 못해 마수로 인간을, 아니 인자(忍者)를 만들어낸 것인가? 

       

       게다가 놈들의 몸을 이루고있는 물질…… 마치 T-1000이라도 된 것 마냥 자유자재로 형상을 바꾸는 저 검고 번들거리는 물질. 

       

       ‘이거, 뭔가 기시감이……’

       

       어디서 본 것만 같은 그 느낌이 무엇인지 나는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다.

       

       ‘내꺼랑 같은 재질이야!’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전신타이즈와 같은 재질이었던 것이다. 모찌넨도, 즉 21세기에서는 슬라임이라고 부르는 마수가 고무 용액에 용해되며 만들어진 재질.

       

       물론 우연히 탄생한 내 것과는 달리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저 놈들은 뭔가 더 섞이긴 했겠지만, 놈들의 몸을 이루는 것은 기본적으로 내 고무슬라임 수트와 같은 재질이었다.

       

       —깡! 

       

       나는 나를 향해 날아오는 칼날을 다시 한 번 흘려내고, 한껏 강기를 두른 검으로 놈의 몸통을 길게 베었다. 하지만 놈의 피부는 내 칼날에 닿는 순간 경질화되어, 살짝 홈이 패였을 뿐 유효타를 주지 못하고 오히려 내 손목만 아플 뿐이었다. 

       

       또한 그렇게 한 놈을 공격하는 사이, 나는 사각에서 다가오는 적에게 빈틈을 허용하고 말았다.

       

       『커헉!』

       

       다구리에는 장사 없다고, 전방의 적에게 집중하는 사이 결국 옆구리를 베이고 만 것이다. 하지만, 

       

       ‘……?’

       

       옆구리가 조금 얼얼하고 교복이 길게 베었을 뿐, 내 몸에는 상처가 나지 않았다. 나는 교복의 갈라진 틈새로 손을 넣어 매만져 보았다. 놈들의 칼을 받아냈음에도 수트는 멀쩡했다. 

       

       ‘아아. 그래서인가.’

       

       저들의 몸과 무기를 이루고 있는 것과 내가 입은 전신타이즈는 기본적으로 같은 재질이고, 동종(同種)의 것이라 서로에게 피해를 줄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수트의 후드처럼 늘어트린 부분이 머리를 완전히 감싸도록 쓰며 놈들을 한차례 둘러보았다.

       

       『……!』

       

       놈들도 예상치 못한 무효타에 잠시 당황한 듯 했지만, 이내 다시 진형을 갖추고 나를 원형으로 둘러싸기 시작했다. 

       

       ‘마수 주제에…… 지능적이군.’

       

       직격타를 주기는 힘들지만 어차피 자신들이 유효한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내가 입은 수트도 무적은 아니어서, 직접적으로 베이지만 않는다 뿐이지 충격은 고스란히 내 몸에 전해졌다. 게다가 통째로 이러한 재질로 된 놈들과는 달리 수트는 얇기까지 하니, 강한 공격을 받으면 베이거나 찢어지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것도 그렇고, 내 싸구려 양산형 공장제 일본도는…… 

       

       아무리 강기를 둘러도 이것으로는 놈들을 벨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공격을 받아낼 때마다 날이 빠지고 무뎌졌다. 반면, 놈들의 몸이 변형되어 경질화된 칼날은 바로바로 수복되어 날카로움을 유지하고 있었다.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충격이 누적되어 불리해지는 것은 내 쪽이었다. 놈들도 그것을 눈치챘는지, 나를 둘러싼 채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며, 치고 빠지는 식으로 나를 공격해 오기 시작했다. 

       

       ‘젠장, 놈들을 벨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아닌데. 이대로라면……’

       

       그때, 

       

       『시라바야시 상! 하아, 하아…… 그들은 「마인(魔忍)」! 보통의 검으로는 베어지지 않습니다! 하앗……』

       

       하고, 멀리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급히 달려왔는지 헐떡이는 목소리는 분명 렌까의 그것이었다.

       

       『렌까!』

       

       나를 둘러싸고 있는 마수 인자들 때문에 그 너머에 있는 렌까의 모습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가 나에게 뭔가를 집어던지는 것만은 볼 수 있었다.

       

       『받아요! 이것을!』 

       

       인자들의 머리 너머에서 날라온 것은 칼집째로 던져진 검이었다. 내가 칼을 받자 렌까가 이어 외쳤다.

       

       『본래 저의 아버님으로부터 저의 혼인의 기념으로 받은 것입니다만, 지금은 당신의 것으로 하세요! ……그것은,「히히이로카네(緋々色金)」로 만들어진 보도(寶刀)입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의 TM 그1I: 「히히이로카네(緋々色金)」라는 금속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전 실버 사무라이로 재등장했던 아오끼 소좌의 대태도(大太刀)가 「아포이타카라(青生生魂)」라는 금속으로 만들어졌다는 언급이 나왔었는데, 그것과 마찬가지로 둘 다 가공의 금속입니다. 대충 일본판 환단고기에 나오는 고대일본의 킹왕짱 합금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오늘의 TMI 그2: 주인공이 쫄쫄이 수트를 속에 입고 마인(魔忍)을 상대하고 있긴 합니다만…… ‘대’ 어쩌구 아니거든요! 도대체 뭘 상상하시는거죠?? 불건전해욧!!!!!!!!!!

    …….

    그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저는 월요일에 돌아오겠습니당!!! 즐거운 주말 되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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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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