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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1

       다음 날 출근해서도 클라이스는 에테르에게 사과했다.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 어떤 식으로 피해보상을 할 것인지.

       

       일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경위나 자신의 처지는 다 내려놓은 채 진정성 있는 사죄를 반복했다.

       

       그런 사과에도 불구하고 에테르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거나, 눈길을 이리저리 돌린다거나. 심지어 가끔은 섬뜩한 미소를 짓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시계.

       

       손목에 찬 시계를 5분 단위로 확인하고 있다.

       

       마치 어느 때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어느덧 점심. 클라이스는 점심을 간소하게 끝마친 뒤 어제처럼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연구실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온 것은 이 무렵이었다.

       

       “상천 님. 실험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종이에 이론식을 끄적이고 있던 에테르는 미묘하게 히죽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북쪽 회의장에서 보면 되나?”

       “네, 상천 님의 명령대로 극점에서 실험할 예정이니까요.”

       “좋아, 훌륭하다.”

       

       자리를 정리하고 짐을 챙기는 에테르. 정신없이 연구하던 클라이스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시 주의를 돌렸다.

       

       “주인님, 어디 가세요?”

       “볼 일이 생겼다. 너도 따라와.”

       “하지만 저는 연구를…….”

       “특별히다. 알 권리를 주지.”

       

       클라이스의 머리 위로 무수한 갈고리 핑이 찍혔다.

       

       “알 권리라니…. 무엇을 말인가요?”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주는 게 훨씬 나을 거다. 잔말 말고 따라 와. 세 번 말 않는다.”

       “……네.”

       

       아무런 의문이나 반항 없이 속죄하기로 한 거 아니었나. 이 이상 캐묻는 건 심기를 거스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클라이스는 마지못해 에테르를 따라나섰다.

       

       

       **

       

       

       마왕성 북부.

       

       시멘트와 납으로 이루어진 거대 초소를 따라 마왕군의 핵심 전력이 하나둘씩 집결하기 시작했다.

       

       창천과 상천이 가장 먼저 도착했고, 뒤이어 인간형 구천지대계와 함께 호천이 등장했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는 민천이 하품하며 나타났다.

       

       길라흐는 반쯤 감긴 눈으로 설렁설렁 나타나는 요르문간드를 향해 은근히 핀잔을 주었다.

       

       “또 지각입니까?”

       “제때 맞춰서 왔다.”

       

       눈가를 꾹꾹 누르며 하품을 연달아 하는 요르문간드. 그녀는 드래곤인 만큼 낮에는 자고 밤에 움직이는 습성이 있었다.

       

       지금은 한창 낮이었으니, 그녀 입장에서는 꿈나라로 가 있다가 갑자기 깨워서 야간근무를 서게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모인 목적은 무엇인가?”

       

       파스모가 심드렁하게 이를 갈며 물었다. 그의 주변에는 눈이나 심장 따위가 들어 있는 호롱불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모이기 전부터 알려주면 재미없으니까요.”

       “그래도 언질 정도는 주어야지. 괜히 별거 아니면 시간만 낭비한 꼴이 되잖나.”

       “걱정하지 마라. 시간 낭비는 절대로 아니니까.”

       

       에테르는 오늘 새벽 요르문간드와 상의한 끝에 어디서 어떻게 실험할지를 결정지은 상태였다. 사실 요르문간드가 느릿느릿 나타난 건 실험의 준비 때문인 것도 있었다.

       

       에테르가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세계수의 폭파 건이다.”

       “호오.”

       

       일제히 탄복하는 사천. 

       

       여신이 엘프족에게 내렸다고 전해지는 신록의 세계수는 정령들의 상징. 그 나이만 물경 2천 년에 달하는 거목이다.

       

       세계수가 일반적인 나무와는 다른 점이 있다면, 방화 따위에도 끄떡없다는 점이다.

       

       불로 지지면 장작이 되어 타닥타닥 타는 다른 나무와는 다르게, 세계수에는 여신의 축복이 걸려 있어 불을 붙인다고 해도 있는 그대로 산화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대전쟁 시대에도 불타지 않고 온전히 제 자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니.

       

       세계수 내부에 로드스톤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태울 가치가 있는 존재였다.

       

       “이거 군침이 싹 도는군요.”

       

       길라흐는 갈고리 팔로 입을 쓱 닦으며 빈정거렸다.

       

       여신이 나무에 새긴 베리어를 뚫을 정도로 강력한 폭발 실험을 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우회 수단을 검증하는 실험을 할 것인가.

       

       평소 에테르와 척지고 살던 길라흐였지만 세계수를 불태워만 준다면 사천 언저리로 인정해 줄 의향이 있었다.

       

       “우선 저쪽을 보아라.”

       

       에테르는 허허벌판을 손으로 가리켰다.

       

       언제 세운 것인지 세계수 크기만 한 나무가 있었다.

       

       물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마수가 아닌 클라이스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았다. 에테르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클라이스에게 미리 준비해 둔 망원경을 건넸다.

       

       “내열성이 높은 소재로 만든 모조 세계수다. 여신이 내린 축복을 최대한 구현할 수 있도록 단열 마법을 추가로 구축했지.”

       “용암에도 불타는 일이 없다는 소리구나.”

       

       클라이스는 불안해졌다.

       

       세계수를 태워버린다고?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란 말인가?

       

       그렇게 되었다간 정령왕들의 분노를 한 눈에 받게 된다. 대전쟁이 다시 한번 터질 것이고, 세계는 화마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이야기였다. 그 세계수를, 여신이 엘프족에게 내려 2천 년을 불타지 않고 살아남았던 신목을 터뜨릴 수 있나?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강한 화계마도, ‘플레어’로도 그건 못 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 실험을 하려는 것 같아서 몸이 전율했다.

       

       “다들 알겠지만 여기서 카우렐리아까지는 거리가 꽤 된다. 그 근처는 경비도 삼엄하니 폭파용 무기를 몰래 반입하려 했다간 입국심사에서든 국내에서든 반드시 걸리게 되어 있지.”

       

       “그러면 뭐 어떡하겠다는 겁니까?”

       “그래서 이번 실험은 폭파 실험인 동시에 이동 실험이다.”

       

       이번에는 에테르가 하늘을 가리킨다.

       

       “위에 뭐 보이는 거 있나?”

       

       나머지 마수는 고개를 내저었다. 클라이스의 눈에도 마찬가지였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칙칙한 겨울 하늘뿐이었다.

       

       “기감으로 눈치를 못 채면 이쪽은 성공한 것이군.”

       

       “뭐가 말인가?”

       “스텔스.”

       

       그때였다.

       

       후우우우웅─!!

       

       아직 방어막을 세우지 않은 창가 너머로 세찬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창천과 호천은 눈살을 찌푸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클라이스는 크게 당황하여 몸을 움츠렸다. 로즈마리의 입에선 ‘와, 오, 오와’ 하며 토막 난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이윽고 구름을 걷고 나타난 것은 거대한 비공정.

       

       “저, 저건…….”

       

       클라이스는 언젠가 저 거대한 비행물체를 본 기억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수년 전. 친우 메리가 헤를라인과 함께 1차 저지선을 돌파하던 그날, 자신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절멸급 마수가 저것이었으니.

       

       “캐슬 브라보.”

       “구천지대계 중 6석을 담당하는 녀석입니다. 창천과 호천께서 봉인되고 나신 후 기술이 많이 발전하여 만들어낸 신입이지요.”

       

       3석인 빌헬름이 덧붙이자 파스모와 길라흐는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칭찬할 만하군.”

       “이야, 저희도 늙은이가 다 되었군요. 제가 한창 날뛰었을 땐 민천 말고는 고고도 비행이 가능한 녀석이 우리 군에 없었는데 말이죠.”

       

       다리를 후들거리던 클라이스는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1차 저지선에서 제국군을 다시 후퇴하게 만든 것이 저 녀석이다.

       

       헤를라인의 한쪽 눈을 빼앗아 간 녀석도 바로 저 녀석이다.

       

       하단에 달린 무수한 포탑으로 기관포 세례를 내려 클라이스가 속해 있던 사단을 단숨에 전멸시킨 것까지도 전부 저 녀석이 벌인 짓이다.

       

       도무지 용서할 수가 없는 존재.

       

       그렇지만 지금은…… 클라이스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슬슬 창문을 닫아라. 보호 필름도 코팅하고.”

       

       에테르의 말에 따라 2군단의 마수들이 초소의 모든 창문을 닫기 시작했다. 이곳의 모든 창문은 자외선 차단 필름이 붙여져 있었고, 일반 유리와는 달리 어지간한 열과 풍압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실험하기 전 에테르는 방사선 차단 기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특히 클라이스에게는 피폭 방지 스크롤을 선크림 바르듯이 적용해 주며 만전을 기울였다.

       

       “슬슬 때구나.”

       

       전장만 수백 미터에 이르는 거대 비공정, ‘캐슬 브라보’가 스텔스를 다시 유지하며 수천 미터까지 날아올랐다. 

       

       정말로, 세계수를 불태울 수 있다고?

       

       어떻게?

       

       목이 바싹 마른 클라이스는 침을 의식적으로 삼켰다. 쌍안 망원경을 눈 가까이 가져가며 초점을 맞추자 검게 도색된 가짜 세계수가 눈에 들어온다.

       

       실제 세계수와 아주 똑같은 조건은 아니지만, 적어도 크기나 모양새 등은 사진첩에서 본 것과 똑같았다. 물론 마수들의 기술력이 저런 비공정을 띄울 정도로 대단하니 실제 세계수와 방어체계도 비슷하겠지.

       

       그런 생각을 한 지 10분이 지났을 무렵.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 당신이 만든 발명품으로 실제 세계수를 불태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길라흐가 물었다. 슬슬 지루함을 느낀 것인지 어딘가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실제로 길라흐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얼마 전 클라라 하스펠트라는 좋은 장난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뒤로 철병팔진에서 다른 정령마도사를 잡아먹다가 흥미가 떨어져서 어슬렁어슬렁 나온 참이었다.

       

       솔직히, 이번에 에테르가 벌이는 짓이 별로 재미있을 것 같진 않았다. 성공하리라는 보장도 없었고 말이다.

       

       “당신은 사천 중 최약체. 마법을 구사한다고 해도 세계수를 태울 정도까지는…….”

       “닥치고 보기나 해.”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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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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