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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1

     

    다행히 인간계로 돌아가는 여정은 무탈했다.

    천룡을 진료해준 보답이랍시고 용인족이 이것저것 챙겨주기도 해서 보급도 충분했다.

     

    특이한 일이라면, 중간에 막 출발한 마도국의 마법사 부대와 조우한 것이었다.

     

    “설마 이런 외지에서 후국군을 만날 줄이야. 꼼짝없이 야생의 적인 줄로만 알았소.”

     

    그들을 호위하던 제국 기사단이 식겁하며 인사를 해왔다. 천둥족 수호대를 멀리서 보면 긴장할 만도 하지. 맘모스에 곰에 늑대에, 온갖 마물을 타고 타니니 말이다.

     

    “드워프 장인도 함께군요.”

     

    “텔레포트 게이트 재료를 운반하고 있습니다. 1년은 족히 걸릴 여정이지요. 예정보다 더 늘어나서, 마계까지 스무 개 부대가 출발했습니다만 몇이나 도착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아, 멀리 보이는 빙산에는 용인족이 삽니다. 혹시 접촉하게 되거든 제 이름을 대고 이걸 보여주십시오. 보급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나는 기사단장에게 폭풍석을 넘겨주었다. 이제 쓸 곳은 없겠다 싶었다.

     

    “감사합니다. 병원장님께는 항상 큰 은혜를 입는군요.”

     

    인사를 마치고 마법사 부대와 헤어졌다. 미래에서도 생존해서 마계에 게이트를 설치하는 데 성공한 부대는 셋뿐이었다. 중요한 임무를 맡은 그들에게 행운을 빌어주었다.

     

    그런데 마법사 부대에 익숙한 얼굴이 한 명 있었다.

     

    ‘수마야?’

     

    마스크를 쓰고 있긴 했지만 그녀가 분명하지 싶었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용사파티에 편성됐을 텐데, 마도국에서 다른 인물을 추천했나.

     

     

    [No. 005 마왕군 승리 21%]

     

     

    현재 시점에서 용사 파티가 마왕에게 이길 확률은 5분의 4다. 조금씩이지만 착실하게 승리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 마법사직 멤버 교체는 허용 가능한 변수라고 생각됐다.

     

     

     

    여행을 거쳐 우리는 인간계로 복귀했다. 인간계와 중간계의 경계 중앙은 대부분 왕국령이고 던전이 넓게 분포한 지형이다. 커다란 호수와 강이 가르고 있어 마물 침입을 방어하기에 용이하다.

     

    그 강이 흘러 내려오는 수원은 북쪽의 바다다. 인간계 북서부는 지형이 복잡해서 소국이 수십 개 몰려있는데, 커다란 바다가 중간계와의 방파제 역할을 해주고 있다.

     

    우리의 목적지인 후국은 인간계의 북쪽이다. 바다를 끼고 북쪽 소국들을 지나, 공국령을 거쳐, 제국령을 통과하면 비로소 도달할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왕국령 국경이 아닌 바닷가의 소국, 제7 부두로 입성했다. 중간계로 나올 때도 지나왔던 길이다.

     

    마침 밤이었기에 여관에서 하루 묵고 출발하기로 했다. 인원이 많기에 여러 여관으로 쪼개져야 했다. 나와 기슈타는 한 방을 썼다.

     

    “문제가 생겼어.”

     

    “라스, 무슨 일이냐?”

     

    나는 테이블 위에 천룡에게 받은 역린을 올려놓고 살펴보던 중이었다.

     

    “기슈타, 네가 보기에 어때?”

     

    “역린 말이냐? 으음… 색깔이 약간 변했나?”

     

    “맞지?”

     

    “그래. 출발할 땐 맑은 날의 무지개색 같았는데 지금은 흐린 날 같다.”

     

    기슈타의 비유는 알기 쉬웠다. 천룡의 역린은 색이 탁해지고 있었다.

     

    “유통기한을 생각 못 했어. 큰일 났다.”

     

    세계수의 가지는 손에 넣은 이래로 불변하고 있었으니 역린도 그러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사용 기한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직 연금술을 더 올리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텐데.”

     

    이럴 줄 알았으면 천룡에게 나중에 찾아갔어야 했다.

    역린은 또 난다고 하니 리필 안 되려나.

     

    “일단 얼음으로 최대한 감싸놓는 수밖에 없겠어. 보존법을 찾아보자.”

     

     

    그렇게 밤을 보내고 다음 날, 기슈타는 새벽부터 어시장에 나가 바닷고기를 싹쓸이해왔다.

     

    “이 동네는 활기가 없지만 물고기가 많아서 마음에 든다. 봐라! 이렇게 싱싱한 청어는 후국에서 구경 못 해.”

     

    그녀의 손에서 펄떡이는 활어를 보고 다른 천둥족도 침을 질질 흘렸다.

     

    “대장, 우리도 생선 먹는다.”

    “참치 먹고 싶다.”

    “돈 내고 사서 먹어. 봉급 받잖냐.”

    “돈 없다. 집 사야 한다.”

    “드워프 왕국에서 도끼 샀다.”

     

    수호대에는 봉급 괜찮게 주고 있었는데, 다들 돈이 없는 걸 보면 야생에서만 살다가 자본주의 맛을 보고 소비를 주체 못 하던 모양이다.

     

    나중에 경제 교육을 시키기로 하고 내가 사주려고 하는데 기슈타가 짝, 대원들의 엉덩이를 쳤다.

     

    “너희들, 몸이 편해졌어! 언제 우리가 밥을 돈 주고 사 먹었지?”

    “맞는 말이다.”

    “생선! 잡는다!”

     

    천둥족은 훌렁훌렁 갑옷을 벗어 던지고는 창 한 자루만 든 채 바다를 향해 뛰어들어갔다.

     

    북부 바다라 얼음장처럼 차가운 수온이건만, 다들 참 건강하다.

     

    “금지! 불법 조업은 금지요!”

     

    그 모습을 본 어부들이 기겁을 했다.

     

    하지만 잠시 후.

     

    ―쿠웅!!

     

    천둥족이 바닷속에서 몇백 톤은 나가게 생긴 거대한 문어 마물을 잡아 끌어올리는 걸 보고는 태도를 싹 바꾸었다.

     

    “저들이 바다의 주인을 잡았소!”

    “여태 어부를 백 명이나 잡아간 최악의 마물을 말이오?!”

    “드디어 맘 놓고 배를 띄울 수 있겠군!”

    “영웅들을 맞이하시오!”

     

    천둥족 덕분에 난데없이 귀빈 대접을 받았다. 정작 그들은 방금 잡아 올린 해산물을 먹는 것 말고는 별 관심이 없었다.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건장한 천둥족 서른 명이 속옷만 입고 불을 피우는 모습을 보니 나도 원시 문명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불! 따갑다!”

     

    바다의 주인과 싸우다가 상처를 입은 대원도 있어서 적당히 치료해주었다.

     

    연고를 치덕치덕 바르고 탁탁 때려주고 있으니 멀리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한 소녀가 있었다.

     

    “왜, 너도 고트베르크 수호대에 관심 있어?”

     

    농담 삼아 물어보니 쪼르르 내게 다가오는 소녀. 북부 지방에 살아서 피부는 하얗고 에스키모처럼 모피를 둘렀다. 열일곱, 열여덟 정도로 보였다.

     

    “고트베르크 제약공장의 연고죠! 그거 그대로 바르면 안 돼요!”

     

    그렇게 외치고는 내가 들고 있던 약제를 빼앗아 냅다 주문을 시전한다.

     

    잘 아는 주문이었다. 연금술, [성질변화]의 주문식이었다.

     

    “어, 어라?”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하는 소녀.

     

    나는 흥미가 생겨 그녀에게 다가가 보았다.

     

    “왜 그대로 쓰면 안 되는데?”

     

    “그게… 이 약은 괜찮은 것 같은데, 보통 고트베르크의 약은 다 엄청 독하단 말이에요. 아니, 약이 아니라 독이에요. 사람들은 잘 모르고 소문만 믿고 쓰고 있는데, 그대로 쓰면 큰일 나요. 성질 변화로 약하게 만들어야 해요.”

     

    “흠. 재밌는 이야기네.”

     

    이 소녀는 보기 드문 연금술사다. 성질 변화도 쓸 줄 아는 걸 보면 우리 약품에 대해 빠삭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을까 했다.

     

    “약품, 갖고 있어?”

     

    “아스피린은 있어요.”

     

    소녀가 주머니에서 손때 묻은 자그마한 박스를 하나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고트베르크 제약공장제 아스피린. 6개입. 나는 박스를 열어 내용물을 꺼내보았다.

     

    그리고 누르스름한 알약을 자세하게 살필 것도 없이 내막을 깨달았다.

     

    “짝퉁이네.”

     

    “엣, 가짜라고요?”

     

    “포장지부터 색이 어설퍼. 쓰는 염료가 달라. 여기 모서리 인쇄한 부분도 틀려서 어긋났지. 그리고 내용물. 이건 뭐냐? 포장 캡슐은 최소한 비슷하게 보이려는 성의도 없잖아. 어디, 중요한 약품을 보자.”

     

    가볍게 진을 그려 성분을 분석한다. 소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과연, 네 말이 맞아. 이건 독이야. 버드나무에 연금술 주문을 써서 만든 것 같긴 한데, 합성이 잘못됐어. 이건 몇 달만 복용해도 혈정액증이 생기겠어. 애초에 우리 공장에서는 진통제로 아스피린이 아니라 아세트아미노펜을 판 지 1년이나 됐다고.”

     

    “저, 저기….”

     

    나는 당황하는 소녀에게 물었다.

     

    “이거, 누가 팔고 있어?”

     

    “어음, 7부두의 약품은 전부 한 상인 길드를 통해서만 살 수 있어요.”

     

    “7부두도 분명 연합군 참가국인데. 들어오는 약품은 빼돌려서 암시장에 내놓고, 자국민에게는 가짜를 저가에 만들어 유통하고 있다는 거구만. 너, 이름은?”

     

    “마샤요.”

     

    “마샤. 연금술을 배운 지는 얼마나 됐어?”

     

    “어릴 때부터 독학했어요. 저랑 같이 배운 친구들이 있거든요.”

     

    “다들 같이 이 약품이 위험한 걸 알고 사람들을 도우려고 중화하고 다녔던 거야?”

     

    마샤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한데. 확실히 원재료는 같으니 조금 손대면 쓸 수야 있지.”

     

    나는 가짜 약에 [성질 변화]를 사용했다. 주문진 위에 화학식이 분자 모형으로 나타난다. 독이 될 성분을 제거하고 [강화]를 써서 부작용을 제거했다.

     

    “우와.”

     

    내 주문을 본 마샤가 헤 입을 벌렸다.

     

    “저기, 선생님은 혹시 위대한 연금술사신가요?”

     

    “하하, 아니.”

     

    나는 마샤에게 약을 돌려주며 대답했다.

     

    “나는 의사야. 마샤, 혹시 제약에 관심 있어?”

     

    “이 약품들이요? 그야… 연금술은 재미있죠.”

     

    흠.

     

    어쩐지 제약공장의 실력 좋은 노예… 아니, 제약사 인재들을 늘릴 좋은 기회가 아닐까 직감이 들었다.

     

    “저기, 그보다 의사시라는게 어떤…”

     

    “여기 명함. 오후에 찾아갈 테니 친구들이랑 기다리고 있어. 일 얘기 해보자고.”

     

    마샤에게 명함을 건네주었다. 그것을 읽어본 그녀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고, 고트… 병원장…?!”

     

    “일단 오전 일정은 정해져서. 기슈타!”

     

    “라스, 불렀냐!”

     

    단숨에 공중을 뛰어서 내 앞에 착지한 그녀에게 내가 말했다.

     

    “나쁜 놈들이 있어. 도끼 챙겨.”

     

    기슈타가 잔뜩 신나서는 입꼬리를 활짝 찢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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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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