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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1

       사람은 죽었다고 해서 바로 사라지지 않았다.

         

       생명의 불이 꺼진다고 해도, 그 사람의 기억, 감정, 의지 등, 영적 정보를 담은 잔류 사념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혼’이라는 자석에 이끌려 쇳가루처럼 뭉쳤다.

         

       그러나 사념들을 아무리 잘 끌어모은다고 하더라도, ‘육체’라는 틀이 없으면 그것은 모래성처럼 조금씩 무너져내리기 마련이었다.

       기억도, 감정도, 의지도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져 가는 것이다.

         

       그것이 원더랜드의 영혼들이 관객의 반응을 갈구하는 이유였다.

       그들은 무대 위에서 재주를 펼치고 환호와 갈채를 받음으로써 자신을 증거하고 자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곳에 들어온 영혼이 자신의 이름을 잊기까지는 보통 20년 정도 걸린다고 했다. 그 기간을 공연을 통해 50년, 100년까지도 늘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었다.

       그것은 소멸을 늦추는 것일 뿐, 막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에는 언젠가 쇳가루들은 다 떨어져 나가고 자석만 남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자아가 소멸한, 텅 비어버린 혼은 다시 새로 태어나는 생명을 품기 위해 떠났다.

       이것이 마법사들이 말하는 혼의 순환이었다.

         

       “그럼 아저씨는 몇 년 차인데?”

         

       엘라의 질문에 나는 적당한 숫자를 답했다.

         

       “한 17, 18년쯤 됐던가요?”

         

       혹시나 그녀가 생전의 기억을 묻는다면 기억 안 난다고 얼버무릴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녀는 그것을 듣고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얼마 안 남았네. 그런데 그렇게 게으름을 피워도 되는 거야? 자신을 유지하려면 열심히 공연해야지.”

       “말했잖아요. 늦출 수 있을 뿐, 막을 수는 없다고요. 굳이 몇 년 더 늘리자고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요?”

         

       내 대답에 그녀는 입술을 불퉁하게 내밀었다.

       항상 전력투구로 살아가는 그녀로서는 내 게으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지상에 가족 같은 건 없어?”

         

       그녀의 말에 나는 돌아가신 부모님을 떠올렸다.

       아들의 몸을 고쳐준다는 사이비 종교의 꾐에 속아 뼈 빠지게 일해 돈만 바치다가 돌아가신 분들이었다.

         

       상식적으로 종교의 힘으로 팔다리를 자라나게 할 수 있을 리 없는데…….

         

       하지만 중증 장애아를 둔 부모들은 심적으로 걸레짝이 되어 있는 게 보통이었고, 그런 가짜 구원에나마 기대고 싶어 했다.

       사이비 종교는 그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교묘하게 잘 파고들었다.

         

       “아저씨?”

       “아, 죄송합니다. 잠시 딴생각을 했군요. 지상에 가족이라……. 현재는 없네요.”

         

       그녀는 잠시 내 눈치를 보다가 바닥으로 시선을 돌렸다.

         

       “……미안. 괜한 걸 물었네.”

       “하하하, 사과할 필요 없어요. 여기는 저승이에요. 죽음은 광대들이 소재가 없을 때 꺼내는 제1순위 농담거리라고요.”

         

       나의 말에 그녀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핫, 그래? 확실히 그럴지도……. 아, 저기 루미 언니 온다.”

         

       극장의 입구로 날개 없는 페어리 한 명이 양손에 과일주스를 쥐고 들어왔다.

       나는 상관없었지만, 육체를 가진 두 사람은 영양 섭취가 필요했다. 다행히 이곳은 무료 음료를 제공하는 극장이었다.

         

       “무슨 이야기 나누고 있었어?”

       “영혼의 소멸에 대해서요.”

         

       내 대답에 그녀는 인상을 찌푸렸다.

         

       “멍청이. 고객님을 즐겁게 해드려야지. 뭐 그런 우중충한 얘기를 해?”

       “저거 보고 궁금해하셔서 말이죠.”

         

       나는 무대 위에 걸린 현수막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원더랜드 70년 경력의 인형사가 본 연극을 맡았다고 적혀 있었다.

         

       인형사들은 다른 곡예사들보다 원더랜드에 머무르는 시간이 긴 편이었다.

       아무래도 그들의 진정한 페르소나는 영체가 아니라 인형이라는 물건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

         

       현수막을 읽던 루미는 그 아래 걸린 패널을 보고 안색이 살짝 변했다.

       거기에는 오늘 연극의 극본과 그것을 맡은 작가의 이름이 실려 있었다.

         

       나는 그녀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시는 분인가요?”

       “응? 아, 뭐, 그냥 가볍게 통성명 정도만 한 사이였지.”

         

       그녀는 금방 표정을 풀고 가져온 과일주스를 빨대로 마셨다.

         

       “돌아가신 지 오래됐나요?”

       “17년.”

         

       나는 그녀의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리고 그녀를 돌아봤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내 짐작을 확인해 주었다.

         

       “맞아. 제2회 서커스 그랑프리에서의 사고로 죽었어.”

       “……그러고 보니 여기는 꽤 많겠군요. 그때 돌아가신 분들이.”

         

       나는 더욱더 원더스타인이라는 이름은 꺼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얼마 안 있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인형극은 티케터가 추천한 대로 짧고 밝은 이야기라 가볍게 즐기기 좋았다.

       우리는 RP를 번다는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극을 보며 웃고 환호할 수 있었다.

         

       “48%!”

         

       극장을 나오면서 엘라가 신난 목소리로 외쳤다.

         

       이번 공연의 평점인가.

       오랜만에 듣는 그녀의 공연 전투력 측정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괜찮은 점순데요.’라고 말을 받을 뻔했다. 그것이 뭔지 알고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다행히 루미가 그게 무슨 소리냐고 질문함으로써 내 실수를 막아주었다.

         

       그녀는 엘라의 설명을 듣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100%? 그게 너희 대본의 점수라고? 잠깐, 그러면 방금 본 인형극이 그 반도 안 된다는 거야? 너희 단장이 쓴 대본이 그렇게 대단해?”

       “그럼. 말했잖아?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존경이라…….

       미소가 나오는 것을 참기 힘들었다. 내 입술 끝이 슬쩍 올라갔다.

         

       루미는 그런 날 살짝 흘겨보더니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렇게 대단한 대본이란 말이지? 궁금하네. 어느 정도 레벨일지. 잠깐, 너 혹시…… 지상에 있을 때, 은막 아르노라는 사람의 쇼를 본 적 있어?”

       “은막 서커스의 ‘키네마’ 말이지? 몇 번 봤지.”

       “그건 점수가 얼마였는데?”

         

       루미의 얼굴에 긴장감이 흘렀다.

       그녀는 늘 환상으로 자신을 숨기고 다녀서인지, 표정을 감추는 것에 능숙하지 못했다.

         

       다행히 엘라는 그녀의 분위기가 바뀐 것을 느끼지 못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70% 중반쯤?”

       “뭐?”

         

       루미가 더듬이를 바싹 세웠다. 그녀의 눈초리가 날카롭게 치솟았다.

         

       “너 제대로 본 거 맞아?”

       “물론이지. 그런데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

         

       엘라가 이해가 안 된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나는 웃지 않으려고 애쓰며 루미를 달랬다.

         

       “진정하세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일 뿐 아닙니까. 엘피 양도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아무래도 우리 부사장이 페어리다 보니까 환상에 자부심이 있어서요.”

       “아하, 그래? 그러고 보니 은막 사람들은 전부 자기 모습을 가리고 있었지? 어쩌면 그중에 진짜 요정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하, 그래봤자 엘피 양이 있는 서커스단에 비하면 70% 정도잖아요?”

         

       내 말에 간신히 진정했던 그녀가 다시 욱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말을 던지고 나서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토치 댄서’의 페르소나를 쓰고 있으면 입방정을 떠는 게 문제였다.

         

       “누더기에 대충 꿰매놓은 입이라도 말은 바로 해야지! 얘가 하는 말 제대로 안 들었어? 이 애의 서커스단은 이제 막 60% 정도 소화했다잖아!”

       “대신 100%라는 목표치가 있잖아요. 아르노의 쇼는 영원히 70% 중반에 머무르는 거 아닐까요?”

       “뭐? 영원히? 이게……호……죽을래?”

       “푸하하, 방금 ‘혼나볼래?’라고 하려고 했죠?”

       “이게 진짜!”

       “느어어억!”

         

       환상 밧줄이 솟아나 또 내 팔과 다리를 묶고 비틀었다.

       나는 속절없이 바닥을 뒹굴 수밖에 없었다.

         

       “에효.”

       

       엘라는 만난 지 얼마 안 됐지만, 우리가 이렇게 다투는 모습을 몇 번 봐서인지 이제는 질린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부부싸움은 그만하고 가지?”

       “뭐, 뭐? 부, 부부? 저, 저 자식 하고 내가?”

         

       루미는 귀까지 새빨갛게 변해서는 두 팔을 붕붕 휘둘러댔다.

       덕분에 환상이 약해졌고, 나는 간신히 밧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그렇게 보인다고 우리가?”

         

       루미가 재차 캐물었으나 엘라는 못 들은 척 딴청을 피웠다.

         

       “아, 맞다. 후기 작성하고 와야지. 그럼 RP를 더 준다며?”

       “야! 대답하고 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어!”

         

       엘라는 우리를 남겨 두고 방문록을 적는 곳으로 향했다.

         

       그녀가 떠나고 우리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꺾인 팔다리를 맞추며 일어서던 나는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나를 향해 소리를 빽 질렀다.

         

       “뭐, 뭘 쳐다봐!”

         

       얼마 지나지 않아 엘라가 극장에서 나왔다.

       그녀는 시계를 확인하고는 중얼거렸다.

         

       “아직 두 시간 정도 남았나.”

       “공연을 더 보고 싶나요?”

       “음, 그렇긴 한데……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늦지 않을까?”

         

       그녀의 말에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유료 티켓을 사용하면 극장 바로 앞으로 이동이 됩니다.”

       “어, 정말?”

       “네. 물론이죠.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 좀 더 보다가 가죠.”

       “좋아. 예매 좀 하고 싶은데요!”

         

       그녀의 외침에 따라 허공에서 티케터가 나타났다.

       아까와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생긴 것은 다른 중년 남성이었다.

       그는 다소 경망스러웠던 이전의 티케터와는 달리 고급 음식점에서 주문을 받는 것처럼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고리즘에 따라, 방금 관람하신 것과 비슷한 것을 추천해드릴까요?”

       “아니, 태그를 직접 지정할게.”

         

       나는 둘 사이에 고개를 불쑥 집어넣으며 말했다.

         

       “역시 길들이기로 할 건가요?”

       “아니, ‘괴물서커스’로 검색할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우리를 향해 쑥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원더랜드의 공연도 봐두고 싶어서. 내가 그래도 명색이 괴물서커스단의 부단장이잖아. 단원들에게……그리고 단장에게 도움이 되고 싶으니까.”

         

       기특하기 짝이 없는 말에 나는 입을 딱 다물었다.

         

       ‘너 진짜 얘한테 잘해야 해.’

         

       루미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괴물서커스라.

       명색이 단장인 내가 그걸 떠올리지 못했다니.

       확실히 이곳의 쇼를 본다면 뭔가 도움이 될 만한 것을 건질지도 몰랐다.

         

       그러나 검색을 마친 티케터는 살짝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어 보였다.

         

       “죄송하지만 해당 태그로 등록된 공연이 없습니다.”

       “어째서?”

         

       그녀가 따지듯이 되물었다.

       확실히 이상한 일이긴 했다.

         

       괴물서커스는 서커스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이동 수레에 기이한 생물들을 싣고 다니며 구경거리로 삼은 것이 현대 서커스의 시초였다고 들었다. 연회에서 활약하던 마술사가, 길거리에서 재주를 보이던 곡예사가, 극장에서 연기를 하던 배우가, 궁정에서 희언을 일삼던 광대가 합류하게 된 것은 시간이 지나서였다.

         

       물론 이곳에 괴물서커스가 없는 것에 대해 몇 가지 짐작이 가는 이유는 있었다.

         

       “아마 다들 육체에서 벗어나서 생김새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거 아닐까요?”

       “거기다 이곳은 요정이나 마귀도 들르는 곳이잖아. 아무리 무섭게 생겨도 괴물서커스로는 관객을 모으기 힘들지 않을까?”

       “우리 단원들도 여기 오면 실업자가 되는 건가 그럼.”

         

       엘라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할 수 없지. 딴 거나 보자. 아까는 내가 선택했으니까 지금은 아저씨하고 언니가 골라 봐. 뭐가 보고 싶어?”

       “저는 액션이 많은 걸로요.”

       “나는 노래가 많은 걸로!”

         

       내가 고른 것은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라는 곡예였다.

       그것은 우연히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외나무다리에서 만나서 벌어지는 활극을 담고 있었다.

         

       처음에는 두 명으로 시작했던 이야기가 나중에는 각자의 지인이나 행인들까지 합세하여, 무려 20명이 넘는 곡예사들이 외나무다리 위에서 서로를 붙들고 엎치락뒤치락하는 묘기를 보였다.

       결말은 우스꽝스럽게도 다들 강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지나가는 어부에게 구조되는 것으로 끝났다.

         

       “53%!”

         

       루미가 고른 것은 ‘광란의 주방’이라는 작품이었다. 요리사들이 주방에서 연회를 준비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담은 극이었는데, 그들의 곡예는 특이하게 조리 도구와 음식을 이용해 진행되었다.

         

       칼이 휘둘러질 때마다 경쾌한 도마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색색의 재료들이 공중에 튀어 올랐고, 몇 미터는 되어 보이는 피자 반죽이 무대를 가로질러 원반처럼 날기도 했다. 팬에서 불꽃이 치솟을 때마다 환호와 갈채가 쏟아졌다.

       이 모든 과정은 신나는 노래와 함께 진행되었다.

         

       “67%!”

         

       극장을 나오는 루미는 우쭐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훗, 내가 더 높은 걸 골랐네. 대본 짜는 능력에 비해서 보는 눈은 형편없나 봐.”

         

       나는 조금 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루미 씨가 고른 건 유료 공연이었잖아요.”

       “오, 그럼 나중에 내기하든가. 누가 더 높은 걸 고르나.”

         

       세 번째 공연을 보고 나왔을 때, 형의 집행 시각까지는 이제 5분도 채 남지 않았다.

       우리는 티케터에게 입장권을 구매해서 절취선을 따라 그것을 뜯었다.

         

       이미 세 번째 공연을 볼 때, 한 번 사용해봤던 터라 갑자기 주변 풍경이 일그러진다고 해서 당황하지 않았다.

       우리의 몸은 중앙 광장에 있는 사법 극장으로 이동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몽디 님, 100코인 후원! 요즘 들어 연재 주기가 늦어지고 있는데 꾸준한 응원 감사드립니다. 속도를 당긴다고 해도 아마 다음주 월요일이나 화요일부터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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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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