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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21

        

       예상치 못한 아이컨택트.

         

       엘라는 기지개를 켜던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녀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진성을 바라보았고, 지금 자신이 한 ‘레이디답지 않은’ 행동에 대해서 생각했으며, 식당에 들어오면서 자신의 언니라고 주장하는 쪼끄마한 존재와 나누었던 대화에 대해서 떠올렸다.

         

       “…”

         

       엘라는 점점 얼굴에 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기지개를 켜기 위해 목뒤에 가져간 손을 슬그머니 아래로 내렸다. 그리곤 자신의 추태를 감추려고 하는 것처럼 어깨를 모으고 양어깨에 자기 손을 가져가 자신의 가슴께를 감쌌다.

         

       그리고 그녀의 손이 어깨에 닿았을 때, 엘라는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자, 잠옷!’

         

       엘라는 지금 잠옷 차림이었다.

         

       노출이 심한 잠옷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꽁꽁 싸매는 옷차림도 아니었다.

         

       잠옷이라는 정체성에 걸맞게 착용한 듯 착용하지 않은 듯 가볍고 편안한 착용감을 위해서 얇은 옷감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실크가 섞여 있어 속이 살짝 비치는 듯 보이는 잠옷은 속살의 색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 굴곡만큼은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미용을 위해서 쓸데없는 것을 입고 있지 않았던데다가, 잠자리에 들려는 찰나 끌려온 것이기에 당연하게도 그녀의 얼굴 화장이 지워져 있었다. 즉, 가벼운 옷차림에 쌩얼이라는 최악의 조합으로 진성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힉.”

         

       저택의 다른 사용인들은 괜찮았다.

       옷시중, 목욕 시중마저 드는 것이 사용인들의 일과인데 그들에게 쌩얼이나 가벼운 옷차림 보여준다고 그게 뭐 문제가 되겠는가? 그녀에게 있어 사용인이라는 것은 사람임과 동시에 자신의 생활을 돕는 편리한 도구일 뿐이었다.

         

       마치 마녀들의 사역마와 같이 말이다.

         

       이양훈?

       그것 역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미 아나스타시아와 이아린과 끌려다니며 온갖 추태를 보였으며, 그 덕분인지 이양훈이 그녀를 보는 시선은 ‘예쁘고 예의 바른 손님’에서 ‘사고뭉치들에게 끌려다니는 불쌍한 애’ 내지는 ‘활발하고 장난기 많은 데다가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대형견들에게 속절없이 끌려가는 견주’같은 느낌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엘라에게도 이양훈은 단지 친구 아버지나 동네 아저씨 느낌이었을 뿐 그 이상은 될 수 없었기에 이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눈앞의 진성은 그녀의 또래인데다가 훤칠한 키, 잘생긴 얼굴을 가지고 있는 남성이었다.

       또한 겉으로는 예의를 차리면서 음심이나 욕망을 가지고 접근하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그녀가 살면서 만나본 가장 완벽한 신사였다.

         

       그렇기에 엘라는 당황하면서 진성의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피하려고 고개를 돌린 곳에 있는 아나스타시아를 원망 섞인 눈초리로 쏘아볼 수밖에 없었다.

         

       “히엑.”

         

       그 시선에 어린 원망이란 너무나 뜨거우면서도 날카로운 것이었다.

         

       아나스타시아는 자신의 사랑스러운 동생이 당장 목을 조를 것처럼 노려보자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고, 그 자신을 태워버릴 것처럼 타오르는 그 원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손가락 끝에서 검은색 젤리 같은 것을 뽑아냈다.

       그리고 그 젤리를 검지 끝에 올린 채 엘라의 손등에 살포시 올려놓고, ‘사용자의 의지를 소리로 변환해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무언가’의 힘을 사용해 그녀를 위로해주었다.

         

       [ 동생, 아무 문제가 없답니다. ]

         

       문제가 없다고?

         

       엘라의 눈은 아나스타시아의 그 말에 도끼눈처럼 변했다.

         

       [ 은인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니까요! ]

         

       하지만 뒤를 이어 아나스타시아가 ‘진실’을 이야기하자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시선을 피하던 아까와는 다르게 슬그머니 눈동자를 돌려서 진성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고, 각자의 앞에 접시를 놓아주는 진성과 눈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엘라와 눈이 마주친 진성은 그것이 기껍다는 듯 눈웃음을 치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리곤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의 앞에 접시와 식기를 놔주면서 말했다.

         

       “프라우 빈터. 자연스러운 모습 역시 아름다우시군요.”

       “그, 그런가요…?”

         

       진성은 더없이 진심을 담아서 말한다는 듯한 얼굴로 담담히 그녀에게 칭찬을 던졌다.

         

       “오히려 이 모습이 더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화장했을 때는 화려하지만 인공적인 느낌이 났다면, 지금은 마치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을 보는 느낌이니까요.”

         

       진성의 칭찬은 여기서 끝을 맺었다.

       엘라가 유럽에 있을 때 많이 마주했던 여자를 꾀는데 환장해있던 프랑스 남자였다면 ‘이 시간에 당신을 만날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화장하지 않고 가벼운 차림이어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꽃과 같은 자연스러운 얼굴에 아름다운 옷을 입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지 상상도 할 수 없다’라는 등의 느끼하기 짝이 없는 말을 던졌으리라.

         

       하지만 진성은 정말로 칭찬을 던진다는 듯 딱 거기서 끝을 맺었고, 다른 시시콜콜한 말은 하지 않고 음식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카피바라를 구운 음식입니다.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남미 쪽에서는 꽤 즐겨 먹는 음식 재료죠. 거기서는 진미라고도 말할 정도로 맛이 뛰어나고, 영양가가 많으면서도 기름기가 적어서 건강에 좋은 음식입니다.”

         

       진성은 자연스럽게 나이프를 들어 그녀의 고기를 잘게 썰어주었다.

       엘라가 품위 있게 식사한다며 어떤 음식이든 작게 조각내어서 입에 넣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한 배려였다.

         

       “카피바라의 고기는 집중력 향상과 미용에 좋다고 합니다. 또한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고 노화 과정을 늦춘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불면증에도 좋다고 합니다. 이 고기를 먹고 잠자리에 드신다면 푹 주무실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진성은 야식을 먹는다는 그녀의 부담감을 덜어주고자 카피바라를 먹어도 크게 살이 찌지 않는다는 말부터 미용에 좋다고 말해주었고, 맛있게 먹으라는 말과 함께 그대로 이아린을 향했다.

         

       “은-인- 저는 안 잘라주시나요-”

         

       당연하게도 엘라의 옆에 있는 아나스타시아의 불평이 날아왔지만, 진성은 방긋 웃으며 그녀의 불평에 답해주었다.

         

       “프라우 렌츠께서는 저보다도 더 좋은 도우미가 계시니까요.”

       “…아시는군요?”

         

       진성의 말을 들은 아나스타시아는 살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가 기분이 좋은 듯 배시시 웃었다. 그리고는 의미심장한 시선을 보냈는데, 그것은 마치 비밀을 교환한 사람들끼리의 유대감을 담은 것 같았다.

         

       치지직.

         

       그리고 그렇게 시선을 보낸 아나스타시아는 이제 거리낄 것도 없다는 듯 소매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천 하나를 끄집어내었다.

       별다른 문양이 없이 단순하면서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그것은 보자기처럼 보이기도 했고, 유럽에서 사용하는 식탁보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마술이라도 부리는 듯 그것의 중앙을 살짝 꼬집어 들었고, 그것을 그대로 카피바라 구이 위에 얹어놓았다.

         

       “짜잔!”

         

       아나스타시아가 그것을 치우자 놀랍게도 하나도 뜯기지 않았던 카피바라 구이가 먹기 좋은 크기로 조각나 있었다.

         

       심지어 아나스타시아가 먹기 편하도록 뼈와 고기가 분리되어 있기까지 했으며, 셰프가 심혈을 기울여 플레이팅이라도 한 듯 규칙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모양을 이루고 있기까지 했다.

         

       그녀는 진성을 바라보며 어떠냐는 듯 바라보았고, 진성은 그녀의 자랑을 미소로 답해주었다.

       아나스타시아는 진성이 보낸 미소를 어떻게 해석한 것인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그릇 위에 잘 분리된 채 쌓여있는 뼈들을 집어서 보자기 안으로 휙휙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것을 잘 감싼 뒤 허공에 들어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렇게 몇 차례 흔들고 난 뒤 천을 다시 펼치자 놀랍게도 그 안에 들어있던 뼈는 사라지고 없었다.

       천은 아까 전과 똑같이 얼룩 하나 없이 깔끔했으며, 뼈가 자기 생각보다 맛있었던 모양인지 바람이 없음에도 슬쩍 펄럭이며 자신의 기분을 표출했다.

       아나스타시아는 그런 천이 귀엽다는 듯 몇 차례 토닥이더니 그것을 다시 자신의 소매 안으로 집어넣었다.

         

       “저거 볼 때마다 편리해 보이던데….”

       “꼭 그렇지만은 않을걸…?”

         

       그것을 본 이아린은 부러운 듯 소매로 사라진 천을 바라보았지만, 이세린은 그레모리에게 무언가 듣기라도 한 듯 의미심장한 얼굴로 이아린의 부러움을 일축했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다가온 진성을 향해 입을 열었다.

         

       “오빠는, 안 드시나요…?”

       “나는 기내식을 먹어서 괜찮다.”

         

       진성은 맛있게 먹으라는 말과 함께 캐리어를 챙겨서 그대로 식당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렇게 식당 밖으로 나서는 진성의 뒤에 이세린이 지금 떠올랐다는 듯 다급하게 소리쳤다.

         

       “오, 오빠 방 가는 길에 있는 화병에 서류 가방이 있어요! 앞으로 있을 성인식 관련 서류인데 언제 오빠가 올지 몰라서 거기에다가 뒀다고 해요. 시간 날 때 꼭 읽어보세요…!”

       “알겠다.”

         

       진성은 그녀의 말을 귀담아듣고는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가는 길목에는 이세린이 말한 것처럼 자물쇠가 채워진 서류 가방이 놓여 있었다. 서류 가방은 청소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게 하려는 듯 화병과 벽 사이에 끼워져 있었다.

         

       진성은 그것을 들고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고,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것인지 묘하게 쌓인 먼지가 그를 맞이해주었다.

         

       그렇게 방으로 돌아온 진성은 가장 먼저 입고 있는 옷을 다 집어 던지고 캐리어를 열어 목검을 꺼냈다. 그리고 목검 안에 들어있는 마나를 느끼며 천천히 한 번 쓰다듬었고, 그 안에 담긴 마나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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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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